*너는 눈 뜨지 않을 것이다
이 세계로부터 깨어날 수는 있어도 네가 꾸지 않는 꿈이 너를 잡아두고 있다
“ 너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사주한 것은 아니지만 ”
*권누리, 한여름 손잡기
TXT 수빈
순애 남성 32
물웅덩이 고요함 비관적 현실주의 존재증명 결핍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영원한 건 없다고 하지만 사람의 근본은 어딘가 고정되어 꼭 그 한 곳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 같다고, 남자는 종종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지독한 결핍이 해결되지 않을 리가.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배우였다. 스무 살에 찍은 영화 하나 덕분에 국민 첫사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했던가. 확실히 그 말에 의심할 구석 따위는 없었다. 그가 어릴 적, 어머니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영화를 보며 아이 역시 제 어머니가 맡은 역에 반해버리고 말았으니.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스무 살에 찍었다는 영화 속 어머니는 눈이 부시게 반짝였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어머니는 웃으며 지금은 그러지 않느냐 묻고는 했는데, 어머니만의 신실한 아들이었던 아이는 늘 정답만을 내놓고는 하였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아름다웠으니까. 다만… 스크린 속 그녀가 반짝이는 눈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열정으로 가득 찬 그 눈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 아이는 그 눈빛에 홀렸다. 홀렸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이가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들인 것은, 첫사랑과 닮고 싶다는 선망과도 같았다.
어린 그의 외모는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를 쏙 빼닮아 있었고, 연기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스크린 데뷔가 어렵지 않았다. 사랑받고 자란 살가운 성격은 촬영장에서 늘 예쁨 받았다. 난데없이 눈물을 터트리거나 혹은 쓸데 없는 고집을 부리거나 하여 어른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자신을 예뻐하는 이유라는 걸 아이는 빠르게 알아차렸다. 바쁜 촬영장에서 우는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주는 데에 기운을 빼고 싶어 하는 직장인은 없을 테니. 그리하여 그 애는 예쁘장한 인형을 자처하였다. 감히 말하자면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실력은 부가적인 것이었다. 천재만큼은 아니어도 수재는 널리고 널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청난 연기의 천재가 아니다. 빠르게 촬영을 끝낼 수 있는, 얌전하고 조숙한 어른 같은 어린애다.
아이가 늘 그렇듯 짧게나마 촬영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였다. 감독은 아이의 연기를 몇 번 보더니 예정에 없던 장면을 조금 더 늘려주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아이는 감독이 저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였다. 아이가 찍은 네 번째 영화였고, 이 영화로 인하여 아이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커리어는 빠르게 쌓여갔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필모그래피도 점차 다양해졌으며 길을 거닐다 보면 사람들이 아이를 알아보는 일도 잦아졌다. 눈도장을 찍다 못해 사생활을 궁금해할 정도의 관심이 따라붙었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분간이 안 가는 나날이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아이에게 큰 문제는 없었다. 당시까지는.
그리고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잠적을 타게 된다.
이름 순애. 나이 서른둘. 12월 31일 출생. 행복 빌라가 세워지고 얼마 안 지났을 당시 입주하였다. 이름이 순애인 것과 별개로 그는 순애와는 거리가 먼 타입이었다. 연애를 하면 한 달을 갈까 말까 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 때문에 순애가 빌라에 데려오는 사람은 매번 달랐는데, 그냥 데려오기만 하면 다행이지 밤마다 종종 망측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문제였다. 화이트보드에 누군가 불만을 적어놓아도 못 본 척 무시하고 넘어가기 일쑤. 되려 가끔은 같은 빌라 사람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물론 사귀는 사람이 없을 때 한정으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의 도덕성은 가지고 있는 놈인지라. 물론 그렇다 하여도 난잡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 정말, 순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빌라에 오래 산 것치고는 교류하는 사람은 적었다. 성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인사는 두루두루 하고 다니는 쪽에 가까웠고 자주는 아니어도 문화 행사에도 몇 번 얼굴을 비추는 편이었다. 아마 그 스스로가 꾸준하게 이어나가기를 꺼려 하는 것과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흑백병이 발발한 초기, 모두의 일상이 서서히 어그러지기 시작한 당시. 사실 순애는 크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시력을 잃는 병이라니. 걸리면 돌아다니기 힘들겠네, 정도가 그의 감상이었다. 그의 주변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떻게든 일이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믿음으로 가볍게 넘긴 것이 순애의 죄목이라면 죄목이렸다.
인간은 자연재해를 감히 이길 수 없다. 이 병이 자연재해가 아니면 도대체 뭘까. 병이 유행한지 고작 삼 개월 만에 모든 시설이 마비가 되었다. 중심이 어그러지자 사람들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평범한 일상은 이제 도저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약하다. 약하기 때문에 감히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랬다. 마냥 선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서. 길이 두 갈래가 있다면 가시밭길을 피하고 싶어서. 더 편한 길을 택하게 되는 건 그만큼 인간이 약해빠진 존재라는 증거였다. 한번 무너진 사회가 도통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몇몇 곳은 곧 무법지대가 되었다. 법이나 도덕적 관념은 빛바랜 구시대의 흔적으로만 남은 것마냥 행동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빼앗는 입장이 되어야만 했다. 이때까지도 순애는 일부러 현실감각을 잊으려 했다. 구태여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평생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었으나 세상 일은 언제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그간의 모든 것은 모두 네가 꾸며낸 꿈이나 다름없다고. 이제 그만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누군가 그리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감히 현실을 외면한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이었을까? 아니,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닐 테다. 그저,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는 말처럼 이는 운명일지도 몰랐다. 그래. 빌어먹게도 순애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인 점은 행복 빌라가 언덕 위에 위치한 덕에 현실감을 덜 느끼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하여도 이곳만은 평화롭다는 건 또 아니었던 터라. 비단 감염자의 잔류에 대해 언성을 높이던 것만 보아도 아슬아슬한 축이었다. 비말 감염도 아니라는데 구태여 내쫓을 필요가 있나. 순애는 그리 여겼으나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다. 피곤한 건 질색이었으며 투표로 판가름 날 것을 입 아프게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주민 회의 방식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순애는 이 방식에도 회의감을 느끼는 참이었다. 민주적인 방식이 되려 이들을 서로 곪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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