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공탕] 연락처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캐해는 잘 모르겠고 보고 싶은 걸 씁니다. ※

※※ 본문은 펜슬 내에서만 감상해주세요 🫶 ※※

  신호음이 하염없이 가던 핸드폰이 결국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했다. 김태영은 말없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입술을 꽉 깨물어 턱끝까지 치민 욕지거리를 삼켰다. 분명 전화 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유튜브나 보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맥없이 꺼져버린 화면을 다시 켰다. 김태영이 남긴 부재중 전화가 21통이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받지 않는 안성민도 참 대단했다. 싸운 것도 아니었다. 이게 싸울 거리를 제공하는 거면 몰라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니까 안 받는 거라고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이면 어쩌려고. 그래놓고 늘 태도가 당당했다. 이유는 뻔하지. 김태영이 본인 좋아하는 거 안다 이거다. 

  쓸데없는 이야기여도 좀 받아주면 안 돼? 어려운 거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면 안성민은 또 말을 돌렸다. 아니 그래서 쓸데있는 이야기인 적 있었냐고. 그럼 김태영은 늘 그랬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래도 반문할 거리는 많은데 그냥 입 꾹 다물게 됐다. 이 지겨운 말싸움 끝이 안 날 거 알아서. 둘 다 고집불통이라 서로 죽어도 안 봐주고 자기 주장만 했다. 

  그렇게 죽도록 싸워놓고도 안성민은 자기 필요할 때 쉽게 김태영을 찾았다. 그러시겠지. 본인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전화 한 번 받아주면 될 걸 고집스레 안 받는 게 참 안성민다웠다. 끼리끼리라고 그걸 또 받을 때까지 배터리 닳도록 전화 해대는 김태영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은 김태영이 안성민을 못 이기지만.

  김태영은 처음엔 그런 안성민이 귀여웠다. 뻔히 제가 보고 있는 앞에서 전화 무시하는 걸 들켰길래 말했다. 성민아, 얼굴값 한다. 그럼 싸가지 없고 귀엽게 응, 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마저 귀여워서 안성민의 머리만 괜히 헤집고 말았었다.  

  그런데 하루이틀이어야지. 그럴 거면 핸드폰 왜 들고 다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 문제로 싸웠다. 싸우기 싫은데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한참 열을 내고 있으면 그러든가 말든가 들은 체도 안 하고 무시하는 안성민의 모습에 또 속이 답답해졌다. 전화 걸면 좀 받아달라고 아주 사정을 해보기도 했다. 그럼 또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거다. 쓸데없다고.

  이쯤되니 화도 나는데 속도 상했다. 야, 난 너한테 뭐냐? 우리 사귀는 사이인 건 맞아? 그렇게 물어보고 싶은데 못 물어봤다. 또 싸울까 봐. 그러니까 이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언젠가는 일어날 줄 알았던 상황. 

  지겹도록 똑같은 문제로 인한 일이었다. 17통의 부재중을 남기고서야 겨우 연결된 전화를 안성민이 끊기도 전에 김태영이 먼저 끊었다. 이러다가 정말 속에 묵혀두던 말 쏟아내듯 퍼붓고 후회할 것 같아서. 한참 손이 부들부들 떨리도록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다. 김태영은 애써 가라앉힌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안성민이 좋다고. 그래서 안성민의 번호를 삭제했다. 전화를 걸어서 안성민이 받지 않으면 자꾸만 안성민의 탓을 하게 되니까, 차라리 번호를 지우면 전화를 하고 싶어도 김태영 자신이 지웠으니 스스로를 탓하게 되니까.

  김태영이 친한 형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그 얘기가 나왔다. 김태영은 초연하게 말했다. 안성민의 번호를 지운 이유를. 그리고 김태영에겐 꼴불견 같아서 차마 말하지 못한 이유가 더 있었다. 안성민과 겹지인인 형들에게 이야기 하면 어떻게든 안성민의 귀에 들어갈 걸 알았다. 그걸 들은 안성민이 반성을 하든 지랄을 하든 뭐라도 반응해주길 바랐다. 결국 예상대로 안성민은 김태영이 자신의 번호를 지운 걸 알게 되었다. 다만 그 반응은 김태영의 바람과는 전혀 달랐다.

  "야, 너 내 번호 지웠다며? 웃겨."

  아무렇지 않게,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치는 안성민은 그냥 그 한마디가 다였다. 지랄은커녕 뭣도 없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몇 년이 지나도 김태영은 안성민을 못 이겼다. 게다가 김태영은 사실... 번호는 지웠지만 안성민에게 전화가 온다면 자신이 단번에 받을 걸 알았다. 안성민 전화번호 8자리 다 외우고 있으니까. 

  김태영이 안성민한테 헤어지자고 한 건 그게 쪽팔려서가 아니고, 그게 짜증나서가 아니었다. 실제로도 당시에 한 말이 아닌 몇 개월 후에 꺼낸 이별이었다. 결코 쉽게, 감정에 휩쓸려 홧김에 한 말이 아니란 뜻이었다. 모든 반복이 김태영을 지겹게 했다. 끝없는 도돌이표가 김태영을 지치게 했다. 그 끝에 안성민을 싫어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김태영은 고작 연락 문제로 안성민과 헤어질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안성민과 접점이 없는 아는 형한테 친구를 팔아 말하면 그건 고작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했다. 그런가. 그런가 봐. 형이 이해한 헤어짐의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내 사랑이 다 이겨? 누군지 몰라도 김태영은 그 말 한 사람이 참 부러웠다. 김태영의 사랑은 다 못 이겼다. 내가 그것밖에 안 됐나 보지. 남탓할 기운도 없어서 그것마저 본인 탓으로 돌렸다. 

  그럼에도 아직은 안성민을 좋아하긴 하는데. 아닌가. 맞나. 이제 김태영은 자신이 안성민을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전에 안성민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사실이 슬펐다. 

  두 잔의 음료를 앞에 두고 김태영과 안성민은 이자대면 했다. 이것도 연락할 방도가 없어서 김태영이 직접 안성민이 수업 듣는 강의실로 찾아가 기다린 결과였다. 김태영이 한숨과 함께 건네는 헤어짐에 안성민이 조금의 뜸들임도 없이 되물었다. 

  "왜? 너 나 좋아하잖아."

  "응. 그런데 계속 사귀면 널 싫어하게 될 거 같아. 그러니까 그 전에 그만하자 우리."   

  "싫다면?" 

  "......미안해, 성민아. 잘 지내."

  안성민의 그 예쁘고 귀여운 얼굴에도, 싸가지 없고 깜찍한 말투에도 김태영은 잡힐 마음이 안 들었다.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것보다 자신이 중요했다. 진심이 담긴 사과와 함께 무탈한 미래를 빌어주고 김태영은 카페를 나섰다. 

  홀로 남은 안성민은 김태영이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 순간부터 자신의 지능이 저능해지는 기분이었다. 김태영이 하는 말들을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같은 사람과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데 이렇게 이해되지 않을 수가 있지. 이해되기도 전에 튀어나간 대답은 본능이었다. 

  싫다면? 그 세 글자는 안성민의 자존심이 박살나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처참하게 거절당했다. 조금의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줄곧 그 생각만 해왔다는 듯이. 완전히 상해버린 자존심 붙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됐어. 나도 김태영 따위 필요 없어.

  안성민은 그 말대로 지냈다. 김태영 말대로 잘, 김태영 따위 필요없이. 헤어졌다고 밥 굶는 건 멍청한 애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좋아하는 마라탕도 잘만 먹고 다녔다. 그런 줄 알았다. 어이없게도 마라탕의 빨간 국물을 보니 관종처럼 빨간머리 하고 나타났던 김태영이 떠올랐다. 뭐야? 그냥 셀프로 뺨 한 대 치고 접시에 얼굴 처박았다. 

  안성민의 통화 기록을 자기 머리마냥 빨간 부재중으로 채우던 한 사람의 연락이 뚝 끊겼다. 끊기는 것 없이 편하게 유튜브 볼 수 있겠다며 좋아하던 것도 일주일을 채 못 갔다. 그 집착 같던 연락이 그리워진 건 분명 아닌데. 왜 이렇게 텅 빈 것 같지. 원래 이별하면 다 그런 건가. 안성민은 김태영이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라서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쉽게 결론내릴 수도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시간표를 맞춰놔서 의도치 않게 자주 보는 김태영은 조금 피곤해 보이는 거 말고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저 피곤함이 안성민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것에 대한 후회에 잠 못 이루다 쌓인 거라면? 아 미친, 뭐래. 됐다. 안성민은 자신만 김태영을 신경쓰는 것 같아서 열이 받았다. 아주 헤어지고 싶어 죽겠다 싶었나 보네. 기다린 것 마냥. 속으로 실컷 비꼬았다. 그래봤자 안성민에게 남는 건 허전함과 공허함, 결국은 후회 뿐이었다. 

   안성민은 결국 인정했다. 자신이 김태영에게 미련이 있다는 걸. 그러니까... 여전히 김태영을 좋아한다는 걸.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차여서 기분이 상했을 뿐 헤어지기 전에도 김태영을 안 좋아한 적은 없었다. 그냥 무의식 중에 늘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김태영은 내가 뭘 하든 날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니까. 안성민을 바라보는 김태영 눈이 그랬으니까. 그게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빛을 잃어가는 것도 모르고 김태영 눈 안 마주친 건 안성민이었다.

  안성민은 드디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김태영이 점령한 통화 내역에서 아무 군데나 눌렀다. 당연하게도 김태영에게 전화가 걸렸다. 연결음이 한참을 이어졌다. 낯선 멘트를 전하는 낯선 목소리. 안성민과 다르게 세 번 울리기 전에 받던 김태영이었는데. 삭제했어도 번호 알 텐데. 아닌가... 그래도 차단은 안 했나 보다. 그 사실에 안심하는 기분이 익숙하지 않았다. 

  시간표를 보면 분명 공강이었다. 못 봤겠지. 화장실 간 거겠지. 입술 꾹 깨물고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안성민은 생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짓을 했다. 김태영 다음 수업이 있을 강의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늘 강의 시간 5분 전에는 와 있는 김태영을 알았다. 예상대로 김태영은 한 손에 음료를 들고 핸드폰을 보며 다가왔다. 그럼 분명 부재중을 봤을 텐데. 안성민은 그의 앞을 막고 김태영의 이름을 불렀다.

  "김태영."

  "...안성민..?"

  "내가 잘...못했어. 나 아직 너 좋아해. 잘 할 테니까 다시 사귀자."

  사과하는 안성민의 말투는 어딘가 도도했다. 김태영이 앞에 있으니 버릇처럼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아차 한 건 그 이후였다. 당황한 안성민은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게 아니라, 나 정말, 진심인데... 그 진심들이 입밖으로는 한 글자도 안 전해졌다. 누군가 입을 틀어막은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끔찍한 침묵이 한참을 이어졌다. 굳어있는 안성민을 말없이 보던 김태영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비로소 둘의 눈이 마주쳤지만.

  "나도 너 좋은데, 우린 다시 같은 문제로 싸울 거야. 난 그러고 싶지 않다."

  "......"

  "네 성격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나한테 말한 건지 아는데, 이제 나 네 말 무조건 들어줄 필요 없는 사람이잖아."

  "......"

  "성민아, 잘 가."

  완벽한 거절이었다. 안성민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좋으면 다시 사귀면 되잖아! 하고 유치하게 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서 좋을 것 하나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김태영의 말은 꽤 큰 충격이어서 말이 안 나왔다. 실제로 비슷한 생각을 했었으니 유구무언이었다. 김태영은 그런 안성민을 달래지도, 답을 보채지도 않았다. 안성민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음에도 김태영은 안성민을 등지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성민은 그 등이 사라진 강의실 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건 얼굴이 축축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쏠리는 시선을 느끼고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멍하니 쭈그려 있던 안성민은 핸드폰을 들어 주소록을 눌렀다. 시야가 얼룩져 잘 보이지 않았다. 눈가를 훔친 젖은 손으로 ㅌ을 치면 제일 위에 뜨는 김태영. 그 이름을 누르고, 두 번 더 터치하면 네모난 창이 떴다. 

연락처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손가락이 허공을 방황했다. 혹여나 잘못 누를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앞에 뜬 두 개의 선택지. '예'를 누르는 게 맞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김태영에게는 이미 안성민의 번호가 없기에, 안성민이 김태영의 번호를 지우면 정말 끝이었다.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이라도 김태영이 나타나 저를 안아줬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떨어진 눈물방울이 액정을 적셨다. 마침내 결심한 안성민은 떨리는 손으로 하나의 선택지를 눌렀다.


TMI - '[텽들] 좋아한다고' 상편에 제목 스포했었음..ㅎ

작중 웹드라마 내용과는 다르지만요

혼자만의 재미였다는... 그런 TMI

'예'를 누르면 끝인 거고

'아니오'를 누르면 미련 시 작 역지사지 되는 거죠 뭐..

열린 결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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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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