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이야기
텐리쿠
복도를 지나온 B의 머릿속엔 A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붉은 장미가 가득한 정원, 작은 주인님, 웃는 얼굴.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며 한 귀로 흘려듣는 눈치였다. B역시 그러고자 했지만 저 아래에서부터, 의구심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왔다. 매일, 같은 시간마다, 똑같은 청소를 반복하는 별관의 방은 누구의 방일까?
알람소리와 함께 일어난 B는 재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문 앞에 걸어둔 의복으로 갈아입고, 흐트러졌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었다. 티 나지 않는 검정색 핀으로 잔머리들마저 정리한 후에 거울 앞에 선 B는 제 모습을 확인했다. 하녀장님과 마주쳐도 문제없겠지.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만족스런 웃음과 함께 B는 방을 나섰다.
매일 사용하는 트롤리 위에 깨끗하게 세탁한 침구류와 커튼을 얹고, 그 아래 칸에는 청소 용품을 챙겼다. 주인님의 집무실을 청소하는 이들보다 더 복잡스러웠지만, 작은 주인님이 직접 명한 일이었기에 B는 혹여나 빼먹은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준비를 마치고 트롤리의 손잡이를 잡은 B는 별관으로 향했다.
다른 가문들에 비해 쿠죠 저택은 조용한 편이었다.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을 비롯해 타지로 요양을 간 아가씨 한 분, 쿠죠 일가 세 명과 열대여섯 명의 사용인이 전부였다. 커다란 저택의 규모에 비해 사용인의 수는 적었고, 당연히 사용인 하나하나에게 맡겨진 일은 꽤 많은 양이었다. 대부분 본관과 관련된 일이 주어졌지만, B에게는 다른 일이 주어졌다.
“고개를 들어보겠어?”
빳빳하게 굳은 목을 들어올린 B는 제 앞에 있는 작은 주인님을 조심스럽게 훔쳐봤다. 도자기 같이 하얀 얼굴 속엔 인형 장인이 빚어서 만들었을 법한 고운 이목구비가 있었다. 서류를 향해있던 얼굴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귓바퀴에 걸려있던 연분홍빛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타고 흘러내렸다. 뺨을 가리듯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B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을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라했던 그의 말이 떠올라 급히 고개를 들었다.
“별관 청소를 맡기려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네!”
“번거로울 수 있는데?”
“할 수 있습니다!”
“…매일 10시, 별관 2층 가장 안쪽에 있는 방. 그곳을 청소하면 돼. 침구류를 비롯해 방 안에 있는 모든 천류를 새것으로 갈고 세탁하도록 해. 세탁물은 모두 햇빛에 건조시키도록. 청소하는 동안엔 환기를 하고, 청소가 끝난 후에는 창문을 닫아, 방 안에 찬기운이 남지 않도록 만들어. 탁자, 선반, 창틀, 손이 닿는 모든 곳에 먼지 하나 없도록 해야 할 거야.”
어느 정도 일이 힘들다는 것을 예상하고 지원했으나, 예상을 웃도는 업무량에 B는 대답을 망설였다. 여기에서 포기해야하나, 아니면 한 번 시도라도 해봐야하나?
“시급은 다른 이들의 두 배. 그리고 그것만 끝낸다면 이후 시간은 모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해주지.”
“하겠습니다!”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어디에도 이만한 파격대우는 없었기에 B는 곧장 대답을 토해냈다.
가만히 저를 들여다보던 작은 주인님의 시선은 다시 서류를 향했다. 이어지는 펜소리에 B는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집사를 통해서 서류를 작성하도록 해. 이만 가도 좋아.”
허락이 떨어졌다. B는 입술을 꾹 물어 터져나오려하는 소리를 참고, 있는 힘껏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이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알려야할지 고민하는 B의 발을 붙잡은 건, 뒤에서 들려온 덧붙은 말이었다.
아, 대신 별관에서 본 모든 건 그 어디에도 발설해서 안 돼. 만약 발설하게 된다면,
돌아올 대답이 없다는 건 알지만, B는 문을 두드리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매일 방을 나가기 전에 커튼을 묶고 나가는데, 아침마다 꼼꼼하게 쳐져 있는 커튼으로 봐선 누군가 이 방을 사용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도대체 누구일까. 곱씹듯, 뱉어낸 말과 함께 커튼을 걷어내려던 B는 평소와 다른 방 안의 분위기에 돌아섰다. 어디지, 어디가 다른 거지? 걷어진 커튼 사이로 하얀, 햇빛이 들었다. 길게 이어진 빛은 침대를 가로 질렀고, 평소와 달리 불룩한 이불에 B는 발꿈치를 들고 천천히, 그 옆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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