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리스트
우리의 마음은
결코 꺼지지 않는 별빛이어서
세상이 잠든 새벽에도 밤새 빛났다
- 안리타, <구겨진 편지는 고백하지 않는다> 중.
디어리스트 dearest
비가 내린다. 창밖으로 보는 하늘이 잿빛이다. 우중충하게 마음을 흐리는 먹구름으로부터 물방울이 툭툭 잘도 떨어져내린다. 저 먼 위 어딘가에서 누군가 세상에 으름장을 놓듯 울려대는 천둥과, 또 이상하게 멍하니 생각을 놓고 있을 때만 번쩍여 놀라게 하는 번개가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고개를 내리고 펜을 집어 든다. 흰 종이가 때로는 너무 넓고 어느 날은 너무 좁다. 하고픈 말은 너무도 많고, 정돈된 말로 꺼내어지는 것은 너무도 적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필사하며 사랑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고민해 본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사랑이란...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의 숨결, 당신의 눈동자 속 환히 웃는 나, 휘어지는 당신의 눈매와 여름날 더위에도 꼭 붙들고 있는 손.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보고 당신에게 이야기해주려 기억해두는 일, 비 내리는 오후 함께 우산을 쓰기 위해 마중 나가는 일, 한참이고 먼 거리가 단숨에 달려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일. 미래에 대한 대책도 없이 당신이 좋아지고, 그보다 더 좋아지면 다시 당신과 미래를 그리고, 잊어가던 과거에게 색채를 불어넣고, 그 어느 때보다 현재를 만끽하고. 당신에게 할애하는 어느 시간도 아깝지 않으며 또 그저 보내주기엔 우리의 모든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지는 일. 사랑이란, 당신의 이름을 매일 밤 중얼거리는 것. 사랑이란, 당신의 모든 것. 사랑이란, 수억 년의 별빛이 스러지고 또 피어도……
단어를 떠올리면 수많은 공상 끝에 늘 하나의 결론으로 도달하게 된다. 내 평생에 사랑이라는 단어 옆 네 이름 외에는 올 것이 없겠지. 오늘따라 구름을 닮아 영 먹먹한 마음이 쉬이 떨구어지질 않는다. 마음 대신 한 글자도 완성하지 않은 펜을 내려놓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너를 사랑하나 보다, 하고.
세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랑에도 어느 증명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져 자꾸만 끝없는 언어로 사랑을 장식한다. 굳이 그리 표현하지 않아도 너만큼은 진정으로 나의 이해자가 되어줄 거라 믿으면서도 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은 그것이 내가 아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예쁜 걸 주고픈 마음. 아는 사실을 구태여 아름답게 치장해 네 귀에 몇 번이고 들려주고 싶다. 그렇게 자꾸 소중한 것들을 너와 연결해 들려주며 고유한 것으로 우리 감정을 잔뜩 꾸민다.
비가 내린다, 스칼렛. 비 내리는 날 창가에 서 있다가 빗방울 하나쯤 내게 튈 때면 물 튀기는 걸 싫어하던 네 생각을 한다. 그렇게 빗물은 내게 사랑이고 비 내리는 날도 내게 사랑이다. 하루가 지나면 세상의 얼마만큼이 더 사랑으로 변해있을지 알 수 없다.
나의 디어리스트,
스칼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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