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이야기
텐리쿠
쿠죠 저택에 관한 소문은 무성했다. 누군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가의 저택이라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궁정 악사로 하사 받은 저택이라 했다. 또, 저택에 살고 있는 큰 주인님은 자애로운 신사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또 어딘가에선 반쯤 미치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어떤 게 정답이라고 단정할 순 없으나, 저택의 사용인 A는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쿠죠 저택의 작은 주인님은 이중인격이라는 걸.
오늘로 일주일. 쿠죠 저택의 신입 사용인 A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주인님의 집무실을 비롯한 서재, 식당처럼 매일 같이 들르는 곳에 대한 길은 꿰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저택 내에서 모르는 곳이 태반이었다. 저택에서 길을 잃는 건 예삿일이라는 얘기였다.
집사장에게 건네야할 물건을 안고 복도를 누비던 중, A는 오늘도 길을 잃고 말았다. 며칠 전만해도 어찌할 줄을 몰라서 당황했지만, 오늘의 자신은 달랐다. 침착하게 저택의 중앙에 있는 작은 정원을 기점으로 길을 더듬으며 걷던 A는 수풀 사이로 보이는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췄다. 작은 주인님. 분명 작은 주인님이 틀림없었다.
인사를 드리던 날을 제외하고, 작은 주인님과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업무로 인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산책이라도 나오신 건가?
붉은 장미 더미의 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작은 주인님에 A는 저도 모르게 넋을 잃었다. 말 그대로 꽃을 닮은,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품안에서 흘러내리는 물건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그곳에 못 박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급히 팔을 추스르며 정신을 차린 A는 발을 뗐다.
다행히 늦지 않게 물건을 전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던 A는 복도를 채우고 있는 익숙한 얼굴들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A 오늘도 바쁘네. 무슨 일하던 중이었어?”
“집사장님께 뭐 전해드리고 오는 길이에요. 오늘 복도 청소세요?”
“응. 작은 주인님이 돌아오신대.”
“작은 주인님? 아까 정원에서 봤는데?”
“뭐라고?”
“아까 장미가 핀 정원에서 작은 주인님을 봤어요. 웃으면서 산책하고 계시던데.”
붉은 장미가 가득한 정원, 작은 주인님, 웃는 얼굴.
교집합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들은 서로를 번갈아보다, 남은 일이 많다는 얘기로 말을 얼버무리며 하나 둘 흩어져갔다. 널찍한 복도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A는 입술을 비죽였다.
“진짠데….”
A는 거칠게 발을 내딛었다. 단정치 못한 구두굽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 모습을 다른 이들이 봤더라면 분명 한 소리 했을 테지만, 지금 A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한 A는 제가 꺼냈던 말들을 곱씹듯 뱉어냈다. 진짜로 작은 주인님을 봤는데!
“어디에서?”
갑작스레 덧붙은 질문에 A는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작은 정원에서 봤다니, 까….
복도 끄트머리에 세워져있는 기둥 뒤로 눈에 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작은 주인님. A는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매서운 시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관통했다. 눈앞에 보이는 동그란 구두코가 점점 가까워지는 감각에 A는 급하게 눈을 꿈뻑였다. 뭔갈, 잘못했나? 급하게 돌이켜 보려했지만 이미 마비된 사고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새하얘진 머릿속을 울린 건, 차가운 목소리였다.
“정원에서. 날 봤다고?”
“….”
“대답.”
“…아, 아까,”
단정한 구두굽 소리와 함께 시야를 비집고 들어온 매끄러운 구두 표면 위로 당황한 얼굴이 거꾸로 비쳤다.
“대답.”
“봐, 봤습니다!”
…알겠어. 가보도록 해. 한참 끝에야 돌아온 대답에 A는 황급히 돌아섰다. 급하게 내딛는 걸음에 발이 꼬여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민망함 따위의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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