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시이나 선생님과 착한 아이의 약속♪ 下

“맛있게 드세여~!”

……아니. 전언철회다. 이건 이 자식의 문제다. 나는 그냥 휘말린 것뿐이다. 니키자식, 이상할 정도로 사근사근하게 날 대하고 있다. 거기다 이 식탁은 뭐란 말인가. 아무리 오랜만에 먹는 니키의 식사라지만 내가 그 차이를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었다. 요리의 가짓수부터가 평소와는 달랐던 것이다.

오므라이스에 피자만 해도 이미 충분히 많고 어울리지도 않는데 그 옆에는 바짝 익힌 야채가 곱게 담긴 묽고 진한 카레가 놓여있다. 게다가 구석에 단정하게 차려진 고등어조림은 그냥 영문을 모르겠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므라이스와는 눈에 보이는 재질부터 다른 게 느껴지는 계란말이와 바삭하게 튀겨낸 가라아게까지……. 수많은 요리들이 크지도 않은 식탁 위를 넘치도록 메우고 있다.

요리사라는 놈이 이렇게 중구난방의 식사를 차려도 되는 건가? 아니, 국적이 다양해지는 것이 집밥의 숙명이란 정도야 나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음식들이 집밥의 퀄리티가 아니라는 건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위장이 대형 프로덕션 급인 시이나 니키가 먹기에도 많았다. 게다가 그의 맞은편에 앉은 것은 평소처럼 술 한잔 하며 오후 다섯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주구장창 음식을 밀어넣을 수 있는 술꾼이 아니라 성장기라고 하기에도 나이가 덜 찬 꼬맹이였다. 위장의 크기가 다르단 말이다. 기숙사에 가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다 보니 2인분의 단출한 식사가 어색해진 걸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눈 앞의 놈은 시이나 니키다. 이 녀석이 요리에서 실수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유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뿐이다. 내가 어려졌기 때문이다. 앞뒤가 안 맞는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시이나 니키가 이 정도까지 요리를 한 것이 그가 들떠있기 때문이라는 걸 모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들뜰 만한 이유라고 하면……. 뭐, 그 정도라는 거다.

“안 먹어여?”

그냥 어디서부터 먹어야 될 지도 모르겠다. 구운 야채가 눅눅해지기 전에 먹어야 하는 건지, 피자 위의 치즈가 딱딱하게 굳기 전에 먹어야 하는 건지……. 식탁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뿐이다. 게다가 니키의 요리다. 분명 맛있을 것이다. 기쁘지 않냐고 하면, 뭐…… 기쁘지 않다고 하는 게 거짓말이겠지. 그럼에도 이런 참담한 기분마저 드는 건, 이 식탁 위의 어떤 음식들은 먹는 것조차 굉장히 오랜만이었던 탓일 테다.

쭉 늘어나는 치즈는 물론이고 폭신폭신한 오므라이스의 계란조차 아닌, 나조차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만을 곱씹으며 식탁 위를 내려다보던 나는 이윽고 니키를 향해 물었다.

“너, 나한테 왜 이렇게 잘 해줘?”

그 말에 눈만 굴려 나를 바라본 니키가 고개를 갸울였다. 내 물음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말을 고르는 것처럼 머뭇대다 다시 한번 물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쇼타콤?이야?”

“……엥?”

니키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아니아니아니!”

그리고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니, 무슨 린네 군 같은 소릴 하고 있어여?! 아아니! 린네 군이 맞긴 한데!”

그 멍청한 소리에도 나는 아무 대꾸 없이 니키를 바라보기만 했다.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지기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고작 이까짓 일로 사람이 사람에게 서운해 할 수 있다니.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니키는 무얼 망설이는 것처럼 눈을 굴리다 머쓱한 듯 웃었다.

“그, 음……. 우웅…….”

그러고도 머뭇대는 것이, 영 니키답지 않은 태도였다. 어울리지 않게 단어라도 고르는 걸까. 니키는 한참만에야 겨우 목을 울렸다.

“린네 군에겐……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어여?“

뒤늦게 내게 닿은 물음에는 어쩐지 숨이 막혔다. 커다란 손으로 입을 틀어막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니키는 다시 한번 물었다.

“사랑받는다고 느낀 기억은?”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아버지의 훈육이나 히이로의 걱정 또한 어떤 종류의 사랑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아무리 그것들이 사랑이라고 머리로는 알아도 결국 내가 원했던 방식의 사랑은 못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버리는 순간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사랑은 내 발밑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내가 원한 것은 온전한 사랑이었다. 내가 한심하고 멍청하게 굴다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난 채 무너져내려도 나를 품어 줄…… 그런 사랑 말이다. 그게 한심한 이기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대답하지 못하리란 정도는 니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니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 없었거든여.“

담담한 목소리였다. 알고 있던 이야기였음에도 그 목소리로 듣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문득 그의 얼굴을 확인하면 니키는 여전히 웃는 낯을 하고 있다. 요리사라고는 해도 결국 작은 가게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서비스직이다. 마치 몸에 익힌 영업용 미소가 오래도록 배었다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지만 틈만 나면 해외로 돌았고 선생님들은 체제 안의 착한 아이들을 좋아하죠. 뭐, 애초에 그 좁은 교실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저 같은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있었을 리도 없구여.“

생판 모르는 남의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심한 말투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니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땐 그게 당연했어여. 오히려 편하기도 했고.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구 남한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었으니까.“

니키는 그런 녀석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기꺼워하지 않는다. 내가 은혜를 갚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도 니키는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니키에게 있어서는 결국 다른 사람들 이상의 존재는 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했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의 제게 린네 군이 굴러들어와서……. 린네 군이랑 같이 지내는 동안 함께 식사하고 게임도 하면서 항상 함께였잖아여?“

그때의 기억은 내게도 선명하다. 흑백의 세계에 비로소 색채가 생겨난 것처럼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쌓였다. 고향에서 지내던 시절 주어졌던 방보다도 좁은 집에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고 사랑을 알게 되었다. 전부 니키가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받아들여줬기에 겪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니키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언젠가 꼭 은혜를 갚기 위해 지금도 벼르고 있다. 니키의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포기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결심이었다. 혹여 내가 니키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냥 발에 치이는 돌멩이와 같은 존재라고 해도 괜찮았다. 니키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니키에게 받았던 모든 색채가 바래버리는 것은 아니니까.

“덕분에 열네 살의 시이나 니키는 외롭지 않았어여.“

하지만 니키는 그렇게 말했다. 니키도, 나로부터 어떤 것들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좋겠다. 평생이 걸려도 니키에게 받은 것들을 전부 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니키가 나로 인해 무언가를 얻었다고, 외롭지 않았다고 생각해주는 것이 기뻤다.

”……뭐어, 그때까지의 제가 외로웠었다는 걸 거꾸로 깨달아버리긴 했지만여.“

니키는 농담처럼 말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은 곧바로 잦아든다. 이내는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니키가 말했다.

”저는…….“

조금 망설이던 니키가 말을 이었다.

”린네 군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지만……. 린네 군은 한 마을의 군주가 될 사람이었고 동생 씨의 형이었으니까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겠죠.”

아주 멋대로 지껄인다. 그럼에도 그 말을 부정하거나 웃어넘기지 못하는 건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일 테다.

“애초에 저도 자랄 만큼 자란 린네 군만 알고 있잖아여. 만나는 순간부터 린네 군은 엄청나게 커다랬고, 지금도 여전히 저보다 크고 어른이고.“

맞다. 니키를 만날 즈음의 나는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막 지난 다음이었다. 그러고도 키야 조금씩 자랐지만 성장세는 느려졌다. 그사이 뺨이 갸름해지고 몸이 단단해졌다. 실루엣은 이미 완연한 어른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니키는 갓 성장기에 들어선 꼬맹이였다.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쑥쑥 자라기야 했지만 그러고도 여전히 나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니키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보다 어리고 나보다 작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때의 멍청한 나 역시 니키에게는 어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 니키보다 아주 조금 더, 어른일 것이다.

“그래서 저는 한 품 가득 린네 군을 안아줄 수가 없어서.“

그 당연한 사실을 니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던 적따위는 없었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먼저 나이를 먹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니키는.

”그게, 좀…… 아쉬웠던 것 같아여.“

그런 소리나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스스로도 제가 우습다는 듯 피식 웃고는 제 뺨을 긁적였다. 그 모습에 어쩐지 뒷목이 근지러워졌다.

그 시이나 니키다. 하여튼 담백하고 무심한 성정의 남자였다. 그는 분명 다정했지만 그의 다정함은 그 담백함과 무심함에서 나오곤 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니키가 본래 가지고 있던 다정함과는 아무래도 괴리가 있었다. 니키가 단 한순간이라도 그런 것을 생각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낯간지럽고 동시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기뻐서…….

“그래서 아주 만약에. 꿈에서라도, 어리고 외로운 린네 군을 만나게 된다면…….”

니키는 조금 느리게, 머뭇거리는 기색을 지우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지금껏 나는 니키의 솔직함은 조금 다른 형태이리라고 생각했었다. 숨기지 않고 전부 내보이는 것이 시이나 니키의 솔직함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랬는데, 지금의 니키는.

“린네 군을 꼭 안아주고 싶었어여.”

그렇게 묻는 얼굴이 내게 동의를 구하는 것 같았다. 앉은 채로도 충분히 나보다 시선이 높은데도 지금의 니키는 마치 나를 올려다 보는 것 같은 순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안다. 이 녀석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이게 시이나 니키가 보여줄 수 있는 필사의 솔직함이구나.

하지만 그렇다. 몸이 아무리 어려졌다 해도 나는 정신 멀쩡한 성인 남성이다. 그리고 만약 머리까지 어려졌다 해도 그런 말에 마음을 열 수 있을 만큼 말랑한 어린애는 아니었으니 니키의 말은 크게 와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 그러니까 그냥 니키가 읽어낸 나의 외로움에 차마 솔직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듯 동그랗게 솟아오른 오므라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도 뜨겁게 달아오른 귓바퀴까지 잊을 수는 없었다.

“뭐어, 끌어안으려다 얻어맞기만 했지만영!“

니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게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라는 정도는 뻔히 알았다. 역시 눈치채버린 거겠지. 섬세한 녀석이니 모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뜨거운 귓바퀴를 만지작거렸다. 조심스럽게 니키의 눈치를 보면, 니키는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양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웅, 이러다간 음식들이 식겠어여. 저희 얼른 먹어여!”

니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스푼 가득 카레 속의 구운 야채를 떠서는 그 끝을 내 쪽으로 가져다 댔다. 아, 카레부터 먹으면 됐던 거구나. 나는 허탈하게 웃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어른들이나 쓸 법한 커다란 숟가락이 입 안에 들어섰다. 커다란 숟가락은 어린애의 입에는 조금 버거웠다. 별수 없었다. 니키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커다란 숟가락으로 조급한 식사를 했고 나는 다 자란 몸으로 이 집에 왔으니 니키가 굳이 어린애의 숟가락을 집에 둘 이유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한 번도 아이일 수 없었다는 거다.

뭐,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식사는 따뜻하고 맛있었으니까. 입 안 가득 들어차는 카레의 따뜻한 국물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향신료의 풍미가 진하게 느껴졌고 잘 익은 야채는 이가 닿는 순간 바삭하게 갈라져 부드럽고 촉촉한 속을 드러냈다.

카레를 한 입 먹은 뒤에는 피자를 먹었다. 얇은 도우 위에 조금 과할 정도로 담뿍 얹어진 토마토 소스와 피자치즈의 의도야 뻔했다. 내가 피자를 좋아하는 이유를, 그 시이나 니키가 모를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크게 베어 물어도 치즈가 쭉 늘어날 뿐이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치즈 사이로 바질의 향기가 감돌았다.

시로다시로 간을 했다는 고등어조림은 맛이 강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기름진 육질은 부드러웠지만 기름진 생선 특유의 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오므라이스는 녹아내릴 것처럼 폭신했고 계란말이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가라아게의 통통한 닭다리살은 육즙이 가득 배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결을 따라 찢어지는 발그스름한 살코기가 반질거렸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젤라틴을 녹여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부드러운 푸딩이며 바삭하게 구운 러스크 따위를 내어주었는데, 맛이야 훌륭했지만 그 즈음 되니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어코 뱃속에 욱여넣을 정도는 되었고 결국 그릇은 거의 비웠다. 술도 없이 이만큼이나 먹다니……. 어린애의 위장도 무시 못하겠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좋았고 기뻤다. 나 이상으로 잔뜩 먹은 니키는 배가 부른 덕분인지 더욱 들떠서는 평소보다 수다스러웠다.

아니, 아니다. 그런 것들은 이제와서 겨우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니키는 내가 말하지 않는 만큼 더 많이 말한다. 그리고 내가 다가서지 않는 만큼 더 다가선다. 니키는 오지랖 넓고 다정한 녀석이다. 본래 가진 품성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러니까, 무심코 생각해버리고 만다.

만약 원래의 내가 니키보다 어렸다면. 원래의 니키가 나보다 어른이었다면……. 우리는 보다 솔직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었을까? 머리가 다 자라버린 내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어쩌면 니키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을까. 니키 역시 어린아이인 나에게라면 지금처럼,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해줬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니키는 그때의 나 같은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어른이다. 다정다감하며 허물이 없고 솔직하다. 허세로 들어차 솔직해지는 걸 어려워해서는, 나를 걱정해 다가와줬던 니키에게까지 무뚝뚝하고 공격적으로 굴었던 나 같은 것과는 다르다.

그 시절의 나는 니키가 기억하는 것과는 달리 한없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군주로서의 의무와 형으로서의 책임에서 도망친 인간이란 말이다.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는데 그냥 몸이 멋대로 어른이 되어버린 것뿐이다.

그러니까 열네 살의 시이나 니키가 만났던 게 내가 아니었다면. 니키가 더 훌륭한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니키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잘 준비는 다 마쳤어여?”

목욕을 마치고 나온 니키는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훔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길어진 머리카락이 보다 넓어진 어깨 위에서 가볍게 흩어졌다.

“응.”

“그럼 이제 잘까여? 일찍 자야 쑥쑥 크죠. 원래 린네 군만큼 커지려면 갈 길이 멀다구여~“

그렇게 말한 니키가 수건을 대충 걸어두고 침대에 걸터앉아 내 베개를 정리해줬다. 니키의 머리카락에서는 여전히 물기가 배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니키보다 먼저 씻고 나온 내 머리카락에는 더 이상 물기가 없다. 시간이 지난 덕분도 있겠지만 니키가 수건으로 잘 말려줬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 위로 떨어져내린 물방울이 시트에 스미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예전에도, 조그만 니키는 나의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려주곤 했다. 그때도 니키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젖어 있었다.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단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니키의 수건을 받아들려 하면 항상 거절했었던 것을 기억한다. 오래도록 품었던 물음은 어느새 물방울처럼 번졌다. 나는 무심코 목소리를 내었다.

“너는, 후회하지 않아?”

툭 던져진 물음에 짚이는 바가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니키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마디 더 덧붙이는 데에만도 망설임이 섞였다.

“……나랑 만난 거.”

“우웅~”

내 물음을 곱씹는 모양인지 니키가 눈을 굴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미래의 나는 마을과 히이로에 대한 의무를 포기하고 도망쳐 나온 거잖아. 널 도와줄 만큼 책임감 있는 어른은 아니었을 것 같아서.”

“우와……. 린네 군, 미래의 린네 군한테 엄청나게 박하네여…….“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질린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마을과 동생을 버린 남자는 목숨을 거둬 준 은인에게도 보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호언장담한 주제에 은혜를 갚기는커녕 그를 두고 떠날 생각까지 했다. 아마기 린네는 그런 인간이다. 책임과 의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도망친다. 도망친다 해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기 린네는, 수많은 후회를 점토삼아 만들어진 인간이다. 덕지덕지 붙은 후회는 나의 수많은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들 뿐이다.

“웅……. 그럼 린네 군은 어때여?”

조금 더 고민하는가 싶던 니키가 목을 울렸다. 대답이 아닌 물음이 나를 향했다. 짧은 침묵이었는데도 그새 목이 잠긴 것처럼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니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때 만난 게 나 같은 멍청한 어린애가 아니라…… 린네 군을 이끌어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여?“

마치 자학 같은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퍼뜩 고개를 들어 니키의 얼굴을 마주보면 니키는 웃는 얼굴을 한 채 고개만 가볍게 까닥였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동생만 한 어린애가 상대라는 이유만으로 전부 마음을 허락할 리가 없다. 만약 어른이었다면 좀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니 그 순간의 아마기 린네는 애초에 도움을 상정한 적조차 없었다.

전부 틀렸다. 나의 유일한 최선은 시이나 니키였다. 차선책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때 내가 만난 것이 현대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이 아니었다면. 대도시에서 기아의 불안을 품고 살아온 소년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외로이 죽어가던 불쌍한 꼬맹이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위태로운 존재가 아니었다면. 죽음을 곁에 둬 본 일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래서 내 몸에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가, 시이나 니키가 아니었다면……. 좁은 길 한구석에 구겨져 있던 나 따위에게 관심을 주었을 리가 없다.

“나는…….”

목을 긁어올리는 것처럼 말했다. 어쩐지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가 말을 잇는 것보다 빠르게 니키가 합장하듯 손뼉을 쳤다.

“아! 미안해여! 이런 거 물어봐도 지금의 린네 군은 모를텐데.”

그 말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내는 꾹 다물었다. 하마터면 분위기에 휩쓸려 전부 말해버릴 뻔 했다. 니키가 뺨을 긁적이며 눈을 굴렸다.

“저, 린네 군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지금의 린네 군은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지금의 린네 군이 알 리가 없는 것까지 물어보게 된 것 같아여. 미안해여.“

“아, 아니……. 괜찮아.”

나는 맥없이 대꾸했다. 잘못한 건 내 쪽인데도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의 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니키는, 나를 편하게 만들어준다.

니키 앞에서는 군주나 형이 되지 않아도 된다. 아이돌일 필요도 없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아마기 린네로 존재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내겐 그 사실이 위안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관계를 기꺼이 여겼다 해서 니키에게도 그랬기를 바랄 수는 없다. 아무 것도 아닌 아마기 린네 따위를 필요로 해줄 이유가 없다. 니키는 그저 책임을 다했을 뿐이다. 나를 저의 의무로 삼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편해지기 위해 니키에게 짐을 지운 것이다.

“린네 군, 저는여.”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시선을 떨어트리면 머리맡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니키의 목소리에는 나지막한 웃음기가 섞여있었다.

“그런 이유로 후회한 적은 없어여. 저, 군주나 형을 필요로 해서 린네 군을 주운 게 아니니까여. 애초에 누가 도와주길 바란 적도 없구.”

니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치만 군주도 형도 아닌,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린네 군이 있어줘서…… 저와 함께 해줘서 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거잖아여? 군주님이랑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건 좀 외람……?되기도 하구.”

스스로의 단어 선택을 의심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린 니키가 작게 키득였다.

“필요에 의해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어쩐지 쫌 삭막한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아요. 제게는 그런 린네 군이 필요해여.”

그 말에 겨우 고개를 들어 니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곧은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군주도 아니고 형도 아닌, 어느 무엇도 되지 못한 한심한 아마기 린네를…… 니키는 언제든 올곧게 바라봐준다.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니키가 양팔을 넓게 벌리며 말했다.

“제 품을 따뜻하게 해줄 린네 군이여!”

마주한 얼굴이 능글맞게 히죽거린다. 웃기지도 않는다. 나는 그의 품에 얌전히 안기는 대신 보란 듯이 코웃음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니키가 또 뭐라고 칭얼대었다. 나는 그걸 무시하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면 오래된 침대가 가볍게 흔들렸다. 시야를 덮은 눈꺼풀 위로 내리쬐는 형광등이 불빛이 어두워졌다. 순간 눈을 떴다. 내 시야에 들어선 니키의 모습이 훌쩍 가까워져 있었다. 깜짝 놀라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키스를, 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잘 자여, 린네 군.”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깨 위를 덮는 묵직하고 포근한 감촉에 재차 눈을 뜨면 지근거리의 니키가 보였다. 이불을 끌어올려 내 위로 덮어준 니키는 방긋 웃기만 했다. 그 다정한 얼굴이 어쩐지 짜증난다.

니키는 잘 준비를 마치고 돌아와 내 곁에 나란히 누웠다. 다시 한번 침대에 무게가 실린다. 니키가 내가 덮은 이불을 나눠덮으면 차가운 공기가 흘러든다. 그뿐이다. 침대의 흔들림은 금세 멎고 차가운 공기는 녹듯이 데워진다. 니키의 깊은 숨소리는 잠들기 위한 그것이 분명하다.

진짜, 그냥 이대로 자려는 거구나. 어이없는 전개에 멍하니 눈만 깜박이던 나는 고개만 돌려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둠은 금세 눈에 익는다. 도시의 어둠이라봐야 거리의 불빛 탓에 그리 어둡지도 않다. 니키의 매끈한 뺨과 단정한 콧등 위로 희미하게 빛이 어린다. 그의 가슴팍이 느린 호흡으로 오르내렸다. 그새 잠든 걸까.

누군가가 필요로 해준다는 건 그저 짓눌릴 듯 부담스러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니키가 말하는 필요에는 어쩐지 다른 감정이 든다. 오히려 기쁠 정도다. 이토록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나를 필요로 해준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가만히 쓸었다. 따스한 온기가 손 끝에 맺히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나려는 기색은 없었다. 숨을 죽인 채 니키에게 다가갔다. 옷자락과 이불이 엉키듯 스치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나는 그대로, 니키의 살짝 벌어진 입술 위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아니. 입을 맞추려고 했다.

“웁…….”

하지만 내가 니키의 입술에 입을 맞대는 것보다 먼저 입이 막혔다. 커다란 손이 내 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눈만 굴려 내 입을 틀어막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나하항…….”

시선이 마주치면 니키는 동그란 눈동자를 굴리며 웃었다. 그 얼굴이 어쩐지 난처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안 돼여. 린네 군 거라서.”

그 말에 얼이 빠졌다. 멍해진 내 시선을 마주한 니키는 내가 납득했거나 포기했다고 느꼈는지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풀었다. 하지만 커다란 손은 금세 거둬지지 않았다. 니키의 손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이내 뺨을 쥐었다. 아, 이건 어른의 손이다. 커다랗고 따뜻하고, 다정한. 니키의 손 끝이 느리게 내 뺨을 문질렀다. 귀여워하는 듯한 손짓은……. 아마도 답지 않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결코 싫지 않다. 오히려 좀 더 쓰다듬어줬으면 하는 마음마저 든다.

“아니, 린네 군이 맞긴 한데…….”

속삭이듯 나지막하게 내는 목소리가 달착지근하게 울린다. 나는 니키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의 손바닥에 뺨을 문질렀다. 내 의도를 눈치챈 것처럼 니키가 손을 움직여 내 뺨을 쓰다듬었다. 다정한 손길에 느리게 눈을 감았을 즈음, 니키가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따뜻한 가슴팍에 머리를 묻은 채 숨만 쉬고 있으려니 머리맡에서 니키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하하……. 얼른 돌아와여. 저도 정말, 이대로는 곤란하니까.”

곤란하다니.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알고 싶다. 시이나 니키의 욕망을 알고 싶다. 어린 나와는 할 수 없는, 무엇을 내게 원하고 있는지…… 니키의 목소리로 확실하게 듣고 싶다. 순진한 척 의도를 되물어 니키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상상을 했다가, 그것도 어쩐지 우습게 느껴져 그냥 그의 품에 얌전히 안긴 채 눈만 깜박였다.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인데도 어쩐지 공기가 부족한 것처럼 답답했다. 그리고 이내는 그것이, 니키에게 안겨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의 품에 안긴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이렇게 위태롭고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구나. 그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한 일이었다. 가까운 숨소리는 고요하고 일정한데도 거슬리고 희미하게 울리는 고동엔 머리가 어지럽다. 비단 나에게만 불편한 것은 아닐 테다. 자칫하면 나를 품에 안은 니키마저 깨워버릴 것 같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닿은 몸에서는 저항을 닮은 반응이 돌아온다. 아마 내 움직임에 자세를 고치는 것일 테다. 니키가 잠들고 나면 그때는 나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될까. 덕분에 내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더욱 어색해진다.

그 모든 불편에도 불구하고 니키를 밀어내고 그로부터 벗어나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품에 더 파고들고 싶을 정도다. 서로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맞닿아 호흡마저 공유하고 싶다. 이 불편함을 좀 더, 즐기고 싶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그의 넓고 다정한 품에서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옷장의 냄새가 났다. 내가 니키에게 안긴 채 몸을 바르작대자 니키가 간지럽다는 듯이 작게 키득대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니키의 품에 깊이 몸을 묻은 탓에 맞닿은 살갗을 타고 그의 간지러운 웃음소리가 파고든다. 온몸이, 시이나 니키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 안 되겠다. 솔직한 니키에게 솔직하게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이대로라면 나 역시 곤란해질 것 같다. 얼른……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

어린아이의 몸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꽤 지쳤던 모양이다. 결국 니키의 품에 안긴 채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인의 기척에는 예민한 편인데, 상대가 니키인 탓인지 그 상태 그대로 잠을 설치는 일도 없이 푹 잤다. 그리고 그사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자기 전에 적당히 원래 옷을 걸치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결국 하룻밤이 지나도록 니키와 서로 마주안고 있었다는 건데, 눈을 떠보니 니키의 좁은 침대에서 서로의 다리를 얽은 채 잠들어 있었다. 몸이 커다래지면서 뒤척이기라도 한 건지 잠들기 전과는 반대로 지금은 니키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다. 곤히 잠든 순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목을 울렸다.

“윽, 이 자식 뭐냐? 지금 어디에 얼굴을 묻고 있는 거야? 니키큥 변태야? 죽을래?“

그러고는 니키를 발로 차 침대 밖으로 밀어냈다. 중력에 저항하지 못한 인간이 내는 둔탁한 타격음에 이어 바닥에 떨어진 니키로부터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랐는지 몸을 벌떡 일으킨 니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익! 뭐, 뭐예여! 무슨 일이에여!”

”완전 큰일이라고. 귀여운 린네 군이 배고파서 죽어가고 있단 말이지? 빨리 일어나서 밥해.“

“리, 린네 군?!”

내 얼굴을 확인한 니키가 당황하든 말든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루가 지났다. 꿈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미리 계획했던 대로 말했다.

“엥? 야. 내 휴일 사라졌는데.”

내가 그러든 말든 니키는 절망한 얼굴로 침대 모서리에 기어오르듯 매달려 우는 소리를 내었다.

“으아앙, 이럴 수가! 문제는 그게 아니라구요! 귀여운 린네 군이 사라져버렸어여~!”

“니키 이 자식 무슨 헛소리야? 사라진 건 내 휴일이고요~ 린네 군은 언제나 귀여웠는데요~”

“그게 아니라~!”

니키가 징징대는 목소리로 내 말을 부정했다. 그러더니 묻지도 않은 어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려진 나와 쇼핑을 하고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뭐, 평소라면 절대 믿지 못했을 이야기야 그렇다 쳐도…….

“린네 군, 어렸을 때는 그렇게 귀여웠는데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된 거예여~!“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나는 니키의 목에 팔을 걸치며 은근하게 물었다.

“니키큥~ 진짜 쇼타콤이었어~? 어리고 깜찍한 린네 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우왁! 아무 짓도 안 했다구여! 무슨 짓을 한 건 오히려 린네 군, 우겍…….“

니키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니키의 목을 졸라버렸다. 내가 니키에게 키스하려 했던 걸 떠벌리기라도 할 셈이었을까. 그렇다면 절대 용서 못한다. 목을 꽉 조르자 니키가 발버둥치며 필사적으로 나를 떨어냈다. 내가 목을 놓아주자마자 니키가 바로 입을 열었다.

“헉, 허억! 당신 진짜 미니 린네 군이었다구여! 저 당신한테 맞아죽을 뻔 했어여!”

그쪽이었냐. 어쩐지 조금 유쾌해져서, 나는 가볍게 코웃음치고는 대꾸했다.

“고럼고럼. 린네 군, 꼬맹이일 시절에도 강하고 영리하고 귀여웠지? 쇼타콤 변태자식을 알아보고 처리하려던 거잖아?“

“크아아~!”

재미있는 반응이 돌아온다. 나는 낄낄대며 웃었고 니키는 내게 대들기를 포기한 건지 눈으로만 욕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니키큥 어디 가~?”

“아니, 당신이 밥하라면서여!”

일부러 발까지 쾅쾅 굴리면서 주방으로 향한 니키가 앞치마를 걸치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린네 군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여?”

좋아하는 요리에 집중한 탓일까. 투덜거리던 기색은 스위치가 들어가기라도 한 양 그새 사라졌다. 먹고 싶은 거라고 해봤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제 다 먹었다. 그것도 과할 정도로 많이. 한동안은 필요하지 않다 싶을 정도로……. 말로나 그렇지 아마 해주면 또 맛있게 먹을 거다. 니키의 요리는 뭐든 맛있으니까. 대답을 고민하며 눈을 굴리던 나는 슬금슬금 몸을 일으켜 니키를 따라나서며 대답했다.

“니키가 제일 잘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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