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매듭짓기

나는 린네 군 때문에 죽을 운명인 게 분명하다.

“별일이네. 시이나 군도 식욕이 없을 때가 있어?”

“하아~ 저두 최근에 첨 알았잔아여.”

내가 영 먹지 못하는 꼴을 보며 점장도 놀라는 눈치였다. 이런 성질이지만, 아니, 이런 성질이기에 오히려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 만큼 자란 뒤에는 항상 배를 채워야 할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음식은 언제나 나의 첫 번째였다.

이게 왜 과거형이냐면 이젠 딱히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항상, 언제나……. 이런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은 린네 군을 주웠을 때던가. 그때부터 우선순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린네 군을 보았고 린네 군을 생각했고 린네 군을 걱정했다. 덕분에 만나자마자 죽을 뻔 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멍청하니까, 아마 꼭 린네 군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 테다. 오히려 최근에는 린네 군이 아이돌 활동으로 정신없는 내 입에 초코바를 물려주는 경우도 있고. 린네 군 덕분에 연명하고 있다는 것도 아주 틀린 명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돌 활동도 린네 군 때문에 하고 있는 짓이다. 린네 군에게 고마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고민거리라도 있는 거야? 연애 문제?”

“에~ 저, 연애 같은 거 생각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구.”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지? 지금도 그 사람 때문에 식욕이 없는 건 아니고?”

점장의 말에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는 린네 군 때문에 죽을 운명인 게 분명했다.

린네 군은 요즘 아주 바빴다. 한동안 할 수 없게 됐던 아이돌 활동을 다시 하게 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린네 군이 원하던 아이돌 활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애초에 그건, 아이돌이라기보다는……. 린네 군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이돌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착한 인간이라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레기 같은 놈이었냐 하면, 그렇긴 했다.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예전엔 그래도 나한테만 그랬는데 이제 아무한테나 쓰레기 같이 구는 것이다.

그러는 인간이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무대의 그늘로 숨어든 다음에야 내가 알고 있는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숨어서 궁상떠는 꼴을 왜, 내가 봤느냐고 하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혼자 숨어서 맛있는 거라도 먹을 셈인가 감시라도 할 요량이었겠지.

아무튼 그 남자가 그러는 꼴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거기다 정신없이 바빠진 린네 군이 타이밍 좋게 내 입에 사탕을 물려주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러나 저러나 이렇게 된 건 전부 린네 군 탓이다. 그래서 내가 점장한테까지 걱정을 사게 된 것이다. 음식점도 결국은 서비스업인 탓인지 점장 눈치가 빠르다!

문제는 점장 말대로라면 내가 그 인간을 좋아한다는 건데.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그건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미안했어, 니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게 해서.

참나! 아무리 그래도 린네 군이 그딴 소릴 했을 땐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하며 함께 살아놓고 이제와서 예의를 차리고 선을 긋는다!

아무튼 이 상황이 되기 전까지 린네 군은 몇 번인가 내게 청혼했다. 나는 남자고 린네 군도 남자니까 이런 걸 상정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만약 내가 그때 그의 청혼을 받아줬다면, 그걸로 우리의 관계에 어떤 형태를 부여했다면 당신이 내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일은 없었을까?

우리의 사이에 붉은 실 같은 건 없다. 나와 린네군은 운명 같은 대단한 걸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까 린네 군은 내 손목에 제 것을 닮은 팔찌를 걸어주며 끊임없이 결혼을 말했던 거다. 우리의, 붉은 실로는 결코 증명할 수 없는 이 관계에 믿음이 없었으니 그랬겠지.

운명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리도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 내가 어떻게 운명을 부정할 수 있을까.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나와 린네 군을 이어주는 붉은 실 같은 건 없다는 거다.

차라리 운명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닥쳐올 불우한 운명 같은 것에, 나와 그를 묶어준 적 없는 붉은 실 따위에, 린네 군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함께 가겠다고 했다. 붉은 실로 서로를 옭아매거나 운명을 초월하는 짓은 쉽게 할 수 없으니 그냥 몸으로 때우기로 한 거다. 내가 그렇게 나서자 린네 군은 나의 체질을 걱정했다. 어차피 나는 이 도시에서도 죽음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겼다. 이렇게 여유로운 공간에서조차 기아의 위협을 받으며 살고 있었으니 언제 어디서 죽든 죽음의 형태는 실제 비슷할 터였다.

애초에 인간은 어떻게든 죽는다. 그러니까 나는…… 어차피 죽는다면 린네 군과 함께인 채로 죽고 싶다. 사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불우한 인간이니까 그냥 여유가 없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열량을 소비한다. 그래서 깊이 생각할 수 없었고 고민을 오래 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행복이 뭔지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아침을 먹으며 점심 전까지 어떻게 버틸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점장에게 말했던 그대로였다. 나는 연애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나의 목표는 목숨을 연명하는 그 자체에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삶을 원했다. 가장 단순한 지표였다. 사는 것 이상을 바랄 여유가 내겐 없었다. 그러니까 죽을 때 만큼은, 이 목숨을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지는 내가 정하고 싶다.

생각을 많이 하면 배가 고파진다. 그나마도 칼로리를 너무 소모해서 죽어버리기 전에 내가 린네 군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사실이 조금 서글프고 무척 덧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린네 군의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올랐다. 그의 고향은 아주 멀었고 한 번에 가기도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린네 군을 바라보았다. 얌전히 잠든 얼굴이 어처구니없게도, 조금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을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의 이름을 가만히 불렀다.

“린네 군.”

“……엉?”

아직 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잠자리가 불편했을 테다. 뻐근한 몸을 꾸물대며 고쳐앉으면서도 내게 붙들린 손을 빼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여.”

“어.”

“소바 먹고 싶어여.”

“아?”

린네 군은 그제야 제대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잠에서 덜 깬 멍청한 얼굴이었다. 그 멍청한 얼굴이, 더욱 멍청한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어차피 나는 그런 인간이다. 길고 가느다란 실을 생각하면 면 요리를 떠올리고 타오르는 듯 강렬한 붉은 색을 생각하면 린네 군을 떠올린다. 아주 단순하고 보잘 것 없는 연산이다. 어쩔 수 없다. 오래 생각하면 배가 고파지고 배가 고프면 인간은 죽으니까. 나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내 목숨과 결부된 것만을 떠올리도록 18년의 인생을 들여 구성되어졌다.

하지만 린네 군은 분명 이런 나를 받아줄 것이다. 분명 나와 함께 소바를 먹어줄 테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살아갈 것이다.

“하아~”

그것도 뭐, 귀찮아하는 기색으로 니키는 어쩔 수 없다느니 뭐라느니 하며 한참 생색을 내고 실컷 투덜댄 다음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된 거 얼른 가버릴 생각이었는데 니키는 정말 어쩔 수 없네. 다음 서비스 에리어에 들러서 먹는 걸로 할까.”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에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소바를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뜬 것 같았다. 주린 배를 채울 생각에 신이 난 나에겐 별 관심이 없었는지 린네 군이 다시 차창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며 말했다.

“으으응, 그럼 난 좀 더 잔다!”

가만히 눈을 감은 린네 군의 얼굴이 어두운 유리에 비친다.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손을 뻗어 린네 군의 머리를 차창에서 떨어내 내게 기대게 했다. 별 반응이 없기에 그새 잠들었나 했더니 그 순간 내 손을 쥔 손에 살며시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 차가운 살갗은 한참을 맞잡고 있었던 탓에 내 온기를 앗아 따뜻하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맞잡은 손만이 온기를 전한다. 실 같은 건, 온기를 전해줄 수 없다.

우리에겐 우리를 이어주는 붉은 실이 없고 나도 린네 군도 불우한 운명을 타고났다. 행복하게 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원하는 건, 붉은 실이 없어도 그의 손을 맞잡고 내 운명이 다해 죽는 순간에도 이 남자와 함께인 것. 그 뿐이다.

서비스 에리어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나도 조금 더 편하게 그에게 기대며 속삭였다.

“응. 잘 자여, 린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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