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4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현관 밖에 린네 군이 서있었다. 분명 스페어키를 줬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린네 군은 내가 문을 열어주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힘없이 떨어트린 시선만이 바닥을 향해있다. 길게 자란 앞머리가 현관의 조명을 가로막아 그의 갸름한 뺨 위로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린네 군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다녀왔어여?”
“…….”
하지만 내가 인사를 건네도 린네 군으로부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린네 군은 그저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물었다.
“식사할래여?”
이번에도 린네 군은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문을 열어둔 채 몸을 물렀다. 린네 군은 여전히 집 밖에 선 채였다. 들어올 생각이 없으면 노크도 하지 말든가. 집주인에게 초대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흡혈귀 같은 건가? 하여튼 정말 귀찮게 구는 인간이다.
“빨리 들어와여. 찬바람 들어온다구여.”
린네 군은 그러고도 조금 머뭇거리다 겨우 집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느릿느릿 신발을 벗는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다 말했다.
“오늘 저녁은 얼려두지 않아도 괜찮겠네여~”
내가 비꼬듯 말하자 신발 뒤축을 손 끝으로 누르고 있던 린네 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드물게 반응을 하는 걸 보니 내 투정이 효과가 있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뭐, 음식이 남으면 얼려두고 나중에 해동해서 먹으면 된다는 건 흔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음식이 남을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상식의 도움을 곧잘 받고 있다.
“린네 군도 꽤 잘 먹는 편이니까 린네 군 몫까지 만들어버리면 항상 남아버려서여.”
린네 군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는 그런 린네 군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는 조리대로 향했다. 린네 군이 한 걸음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그 즈음 린네 군은 자주 외박을 했다. 점심에도 사내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오는 일은 없었고 그래서 종종 나까지도 점심 때를 놓쳤다. 항상 함께 식사하고 같이 잠들었던 만큼, 우리의 사이가 갑작스럽게 멀어진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이 투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웬만하면 냉동해놨던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저녁 즈음 되면 깜박하고 또 요리를 해버리는 거예여. 저 멍청하니까.”
거짓말이다. 언제나 린네 군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아니, 돌아오길 바랐다. 린네 군이 작고 귀여운 길고양이가 아니라 허우대 멀쩡한 인간이라는 건 내게 있어서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위안이었다.
린네 군은 고양이와 달리 길바닥에 나앉는다고 해서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 차라리 객사했을 거라고 지레 넘겨짚을 수 있었다면 린네 군의 식사를 만드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돌아올 것을 기대해버렸다. 내가 준 스페어키로 문을 열고 들어올 린네 군을 생각하며, 나는 항상 2인분의 요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린네 군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맞은편에 두고 린네 군을 기다렸다. 슬프고 힘들 때일수록 함께 식사를 해야 하니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따뜻한 밥을 먹고 나면 힘을 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지런히 놓은 린네 군의 젓가락 앞에는 끝내 누구도 앉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오지 않는 린네 군을 걱정한 적은 없었다. 나는 남겨진 나를 걱정했다. 나는 이대로 혼자 남겨진 걸까.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한 건 린네 군이면서. 알고 있다. 린네 군은 고양이와 달리 내가 없어도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이대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비어있는 맞은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다잡았는데도……. 저녁 즈음 되면 그 각오를 깜박하고 또 요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멍청하니까 말이다.
“냉동실이 가득 차버렸지 머예여. 나하항…….”
나는 굳이 린네 군 보란 듯이 조그만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는 채워질 일이 별로 없었다. 내가 사는 식재는 대부분 마감세일 때 싸게 사는 것이었으니 그날그날 소진됐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음식은 항상 부족했으니 냉장고에 보관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오래 두고 먹는 밑반찬 몇 가지와 물병 따위만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랬던 냉장고에 지금은 잘 포장해 얼려둔 음식들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다. 나답지 않은 광경이었다. 린네 군도 놀란 것처럼 입을 살짝 벌렸다. 당황한 얼굴이 마음에 든다. 그 탓에 이어지는 선고는 조금 풀어진 목소리가 되어버린다.
“린네 군도 이거 치우는 거 도와줘야 해여.”
“……응.”
겨우 대답이 돌아온다. 뭐, 이 정도 되면 대답을 안하고 넘어가긴 어렵겠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린네 군은 손을 뻗어 냉동실 안의 음식을 집어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바로 음식을 낚아채 다시 냉동실에 넣어버리고 문을 닫았다.
“뭐, 오늘은 생선 구워줄테니 그거 먹구여.”
그러면 린네 군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귀여웠는데. 힘 없이 처진 어깨도, 내가 빼앗는다고 빼앗길 정도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아귀도,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울 것 같은 얼굴도…… 전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눈 앞에서 치워버리면 된다. 나는 서둘러 식사를 했고 우리는 아주 간만에 함께 식사를 했다. 갓 지은 따뜻한 밥과 노릇하게 익은 생선구이였다. 린네 군은 가지런한 젓가락질로 느릿느릿 생선을 먹었다. 뽀얗게 익은 생선살이 린네 군의 발그스름한 입술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작은 단정했고 이내 도드라진 울대뼈가 느리게 맥동했다. 내가 물었다.
“어때여?”
“……맛있어.”
린네 군은 조금 망설이는 듯 했지만 결국 그렇게 대답했다. 그제야 나도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했다. 내 몫의 생선은 젓가락을 댄 흔적 없이 아직 온전하고 깨끗했던 것이다. 아. 그 순간 생각했다. 나,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린네 군은 이제 거의 아이돌 활동을 하지 않는다. 겨울 즈음에 개최된 SS로 코즈프로는 큰 타격을 입었고 많은 사람들이 쓸려나갔다. 린네 군을 코즈프로에 데려온 프로듀서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랬으니 린네 군도 함께 처분되는 게 맞았겠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그 프로듀서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린네 군의 가치는 앞으로도 충분히 효용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것일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잊혀진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린네 군이 계륵이었던 건 사실이었다. 린네 군은 솔로 아이돌이었고 업계와 소비자들은 유닛 단위의 아이돌을 더 선호하는 추세였다.
아무리 린네 군이 필사적이고 열정적이더라도 시대의 흐름만은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겠지. 설 자리를 잃은 린네 군은, 어쩐지 붕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정말로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다. 내 시선은 항상 그를 따라다녔고 식사는 금세 뒷전이 되었다.
그때쯤 나의 우선순위가 어그러졌다. 린네 군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걸 좋아했었다. 하지만 기운 없는 린네 군을 겨우 붙들어 맞은편에 앉히고 나면 린네 군을 살피느라 바빠 내 식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린네 군이 없으면 없는 대로 린네 군이 오기까지 촉각을 세우고 기다리곤 했으니 이러나 저러나 밥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곤란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건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린네 군과 함께가 아니면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린네 군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린네 군이 저녁 식사를 챙기러 내 아파트로 기어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언젠가 본 냉장고의 정경이 큰 충격이었던 것일 테다. 린네 군의 귀가가 늦어지기에 냉동시켜놓은 음식 몇 개를 해동하고 있을 때였다.
“니키.”
린네 군이었다. 나는 냄새에 민감했으니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이미 린네 군이 풍기는 냄새에 속이 안 좋아진 참이었다. 그의 것이 아니었을 담배 냄새에 숨통이 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네 군을 본 순간에는 그 이상으로 불쾌해졌다. 어쩐지 시야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하얀데도 혈색이 좋아서 잘 익은 복숭아처럼 곱게 물들어있던 피부는 창백했다. 썩어들기 시작한 내부가 그의 생기를 빨아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돌아봐도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린네 군은 바닥만 바라보는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린네 군이 말을 씹어뱉는 것처럼 느리게 말했다.
“제안이 들어왔어.”
“다시 활동하는 거예여? 아이돌로?”
내가 서둘러 되물었다. 그러면 린네 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떨어트렸다. 어쩐지 반응이 좋지 않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린네 군의 대답을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린네 군이 말한 제안은 아이돌 활동에 대한 제안이 맞았다. 하지만 이상한 조건들이 몇 개 붙어있었다. 코즈프로에서 조직한 유닛으로 활동하고 기한 내에 무슨 이벤트에 참여해 실적을 내야만 한댔다. 그리고 실패하면 해고, 성공하면 계속 그 유닛으로 활동하게 되는 거다. 들어보니 기한의 기준인 이벤트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았다. 딱 여름까지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건 제안이 아니다. 계약서라고는 음식점과의 알바 계약서 정도나 써봤던 멍청한 나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것도 다른 업계도 아니고 얼굴과 이미지를 파는 아이돌이다. 린네 군이 아무리 실패했다고 쳐도 열심히 활동했고 그럭저럭 수요도 있었다.
그런 남자에게 데드라인이 주어졌다. 린네 군은 분명 필사적으로 돈을 끌어모을 것이다. 어쩌면 추잡해질 수도 있고 이전의 착하고 상냥한 이미지는 전부 박살날 지도 몰랐다.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려서 아이돌로서 연명하게 되어도 이미지 손실은 클 것이고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실패한다면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리기만 할 뿐이다. 어느 쪽이든 손해보는 장사다.
하지만 린네 군은 분명,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린네 군에게 할 말은 없었다.
“니키한테도 곧 연락이 갈 거야.”
그러나 린네 군 쪽에서는 내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ES?의 빌딩이 들어서면 코즈프로의 사무실도 그 빌딩의 한 층을 쓴다고 듣기는 했다. 그리고 나도 ES 내의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코즈프로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하지만 린네 군이 말하는 연락이 이것일 것 같지는 않았다.
“니키도 아직, 코즈프로 소속이잖아.”
“아.”
그랬다. 그 인연으로 코즈프로의 아이돌이자 사내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내가 코즈프로가 들어설 ES 빌딩의 사내식당으로 인도된 것도 있었다. 단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린네 군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 인도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니키는…… 코즈프로에서 잘려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린네 군이 중얼거리듯 속삭였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코즈프로에서 잘려도 상관 없었다. ES에서 일할 수 없게 돼도 적당히 집 근처 번화가에 새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면 된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린네 군이 굳이 내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마도 코즈프로에서 조직했다는 유닛 멤버에 내 이름 또한 올라와있다는 의미겠지. 린네 군은 어쩔 수 없이 의욕 없고 관심 없고…… 먹기 위한 것이 아닌 일은 할 여력조차 없는 나를 이끌고 아이돌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했으면 좋겠어.”
입술을 꽉 깨문 린네 군은 곧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얼굴을 기억한다. 이 각오 또한 알고 있다. 그 때의 이 남자는 나를 위해 나를 아이돌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린네 군이 아이돌로 남기 위해서 나를 끌어들이려는 걸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이토록 필사적인 얼굴로……. 내가 린네 군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이돌 활동을 제안받은 것인지 물었을 때 린네 군이 대답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기억에 리소스를 크게 할당하지 않는 편이었으니 그 순간의 미심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Crazy:B가 첫 라이브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에는, 그가 머뭇거렸던 이유를 싫어도 납득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아니, 틀렸다. 라이브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다니. 그 말부터 어폐가 있다. 그런 걸 무대라고 해도 좋을까. 그리고 그 결과에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그건 애초에 Crazy:B의 무대가 아니었고 우리가 보여준 것도 춤과 노래가 아니었다. 춤과 노래는 그저 도구였다. 무대 위의 우리는 아이돌이 아니었다. 린네 군의 전략부터 그랬다. 그건 결코 아이돌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돌을 사랑하고 아이돌이 되고 싶어했던 남자였다. 이런 건 아이돌이 아니라고 분노하며 ES 빌딩에 불을 지르거나 Crazy:B를 기획한 부소장의 등에 칼을 꽂았다면 오히려 납득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권력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다른 아이돌의 무대에 난입해 타인의 성과를 밟아가며 스스로의 존재를 어필했다. 그런 건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랬다. 그 순간의 아마기 린네는, 아이돌이 아니었다. 린네 군은 스스로를 도박의 판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그게 맞았다. 그 순간의 린네 군은 갬블러인 동시에 판돈이었다. 린네 군이 걸 수 있는, 가장 유일한 가치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별수 없었겠지.
흐름을 탄 린네 군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난폭해졌으며…… 그만큼 불행해졌다. 외박을 일삼던 작년 말과는 다르게 매일 밤 아파트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아마 내가 냉동해놓은 밥을 먹으라고 억지를 부린 탓이겠거니 싶었다. 린네 군은 내가 얼려뒀던 밥을 해동해 먹으며 기획서에 매달려있곤 했다. 나는 그 맞은편에서 멍청한 얼굴을 하고 함께 식사를 했을 뿐이다.
우리의 사이에 대단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린네 군도 그 즈음 해서는 무얼 각오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만 했을 뿐, 더 이상 울거나 약한 소리를 하는 일은 없었다. 그게 오히려 지독한 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울거나 약한 소리를 해도 무엇 하나 해결될 것은 없다고. 그렇게 전부 포기한 사람 같았다.
……뭐, 포기가 맞았을 것이다. 더 이상 아이돌을 해나갈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대를 욕보이고 스스로를 더럽히는 방식으로 모든 아이돌을 망가트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사랑했던 것을 스스로 짓밟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잘은 몰라도 린네 군의 얼굴을 보면 그리 행복해보이지는 않았다. 억지로 입 안에 밀어넣은 음식은 여전히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질식할 것만 같았다.
린네 군의 계획은 성공했다. 이걸로 모두가 해피엔드다.
물론 그 모두에 린네 군은 없다. 린네 군은 악역이었고 악역은 권선징악의 논리에 따라 퇴장해야 했으니 말이다. 내게는 내가 한 번도 원한 적 없었던 아이돌이라는 직업과 한동안 부족함 없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만이 남았다. 말하자면 린네 군이 내게 남기는 유산이라는 것이다. 그건 린네 군답다면 아주 린네 군다운 유산이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것과 내가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것을 동시에 남겼다는 점에서 말이다.
린네 군은 아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나를 끌어들인 것이겠거니 싶었다. 나는 린네 군을 위해 아이돌 활동을 할 셈이었는데 결국 린네 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거다. 각오를 다진 듯한 얼굴은 아마도 나와 Crazy:B의 멤버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떠날 결심으로부터 나왔던 것이겠지. 린네 군이 몇 번인가 내게 말했던, 목숨에 대한 빚을 갚을 셈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 곁에 있을 이유를 없애버리고 나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거다. 하여튼 고집스러운 인간…….
하지만 그의 유산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건 사망보험금으로 빚을 갚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게 아닌가. 께름칙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나도 인간이고 항상 배가 고팠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돈이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산이란 이름 그대로 떠나는 이가 남는 이에게 남기는 것이다. 그러니 남을 생각이 없는 내가 그의 유산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지? 린네 군을 어떻게 하면 찾아낼 수 있을까. 그게 문제였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행선도 뭣도 알지 못했다. 그게 조금 분했던 것 같다. 린네 군이 정말 떠날 생각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 해도 린네 군을 찾아낼 수 없을 거라고…….
린네 군은 처음부터 그랬다. 언젠가 떠날 것 같았다.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그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거둬서 아무리 먹이고 재우고 소중하게 키워도 들짐승은 들짐승이다.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들짐승이면서도 도시의 고양이와는 달랐다. 이대로 떠나보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그는 그의 이세계 같은 고향에서는 왕 같은 존재랬다. 나 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시민과는 다르다. 매일 같은 나날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평화롭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전조도 없이 나타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말도 없이 홱 나가서는 며칠을 내리 비웠다가도 다시 돌아왔던 날을 알고 있다. 그러니 당신은 분명 떠나는 순간에도 그럴 터였다. 어떤 전조도 내게 보이지 않은 채로,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를 떠나갈 것만 같았다. 막연하게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껏 린네 군의 행선을 알아두지 못한 나 자신이 멍청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린네 군을 살핀 보람도 없었다.
그래서, 식당까지 찾아와 식칼을 든 채 나를 노려보는 린네 군을 마주한 순간에는…… 우습게도 안도했다. 그를 발견한 것과 거의 동시에 텅 빈 식당 가득 울려퍼지기 시작한 벨소리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알은 체를 하려는 순간 냅다 식칼이 들이밀어졌다. 곧게 나를 향한 칼 끝이 날카로웠다.
대체 무슨 컨셉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성한 조리도구를 이런 용도로 쓰다니! 한 마디 해줄 심산으로 그를 노려본 순간이었다. 린네 군이 턱 끝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내게만 매섭게 향해있는 눈동자가 꼭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의 그것처럼 보였다. 식칼을 든 남자를 상대로는 멍청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비유를 생각하며 나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화면을 확인한 내가 전화를 받는 대신 린네 군을 바라보면 린네 군이 물었다.
“누구야?”
HiMERU 군의 전화였다. 내가 말 없이 화면을 보여주자 표정을 굳힌 린네 군이 대꾸했다.
“받아.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말하지 말고.”
“예이예이~“
휴대폰의 스피커를 켜고 통화를 시작했다. 텅 빈 사내식당에 HiMERU 군의 목소리가 울렸다. HiMERU 군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린네 군의 행방을 묻는 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들키게 된다면 그땐 린네 군이 칼을 들고 협박했다고 말하면 된다. 아무래도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HiMERU 군이라도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다. 그것도 뭐, 우리에게도 나중이 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린네 군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제게도 알려달라고 당부하기에 가볍게 대꾸했다.
“그 사람, 절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컵라면 정도로 생각하잖아여.”
나는 눈 앞의 린네 군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를 노려보고 있던 린네 군이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떨어트리고 입술을 짓씹었다. 그건 상처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 섬세한 남자가 어디에서 상처받은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내가 컵라면 같은 인간이라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3분이면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쉽고 편한 인간이어서, 린네 군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나를 찾아온 거다. 가능하다면 계속, 린네 군의 컵라면으로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통화를 마친 나는 요리에 집중했다. 마침 식사 때였고 린네 군도 배가 고팠을 터였다. 우리의 식사 시간은 비슷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나 함께 식사를 했으니까. 내가 배고플 즈음이 되면 린네 군이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린네 군이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고 찾아오지 않으려 했을 때는 나마저도 배고픈 걸 잊어버리곤 했다. 너무 멍청해서 이렇게 목숨이 걸린 일마저 소홀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린네 군이 필요했다. 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린네 군이 있어야 했다.
세상에서 린네 군이 사라진다면. 몇 번이나 그런 것을 상상했고 언제든 결론은 같았다. 나는 린네 군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분명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의 나는 린네 군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나는 린네 군이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린네 군은 왕이 돼서 혼자 편하게 먹고 사는 건 역시 얄밉지 않은가.
여기서 거절하면 무얼 들먹일지도 전부 생각해놨다. 린네 군은 내게 빚을 졌다고 했다. 목숨을 살린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내가 린네 군의 보은을 묵살한 것은 전부 이 순간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현대 문명이 발달한 도시에서의 삶과 산속에 위치한 폐쇄적인 공동체에서의 삶이 같을 수는 없었다. 린네 군이 왕 같은 존재라고 해도 음식의 수급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도시의 편의성은 잊어야겠지. 하지만 나는 도시의 안전망에서 이미 한 걸음 벗어난 존재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싶은 곳에 있기 위해서…… 나는 레일을 벗어났다. 이제와서 살짝 불편해지는 정도를 무서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린네 군은 그 순간에도 또, 조금 슬픈 표정을 했다. 이번에도 그는 멍청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린네 군은 내가 저를 따라가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나도 살기 위해서는 물러날 수 없었으니 아마 다투게 되었어도 결론은 비슷했을 테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심야버스를 타고 린네 군의 고향으로 향했다.
린네 군은 사용하던 휴대폰을 성주관의 4인실에 버리고 길을 나섰는데, 버스에 오를 즈음엔 다른 휴대폰으로 뉴스며 SNS 따위를 보고 있었다. 추적을 피할 요량이었을까. 원래 휴대폰을 두개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린네 군의 SNS 계정은 어떻게 봐도 아마기 린네의 존재를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계정이었다. 그가 그 계정으로 확인하는 것은 MDM의 정보나 Crazy:B와 ALKALOID의 소문들이었다. MDM은 당장 내일이었고 아이돌과 관련된 소문은 원래 지면보다는 SNS에 더 빠르게 도는 법이다.
떠나기로 했으면서도 다른 휴대폰까지 이용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버리면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계속 보고 있는 건 고향이 아닌 무대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일 테다. 나도 알고 있다. 린네 군은 이 버스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아니, 이 남자는 애초에 왕이 될 재목이 아니다. 여왕벌은 자기가 죽으면 벌집 전체가 끝난다는 걸 알기에 독침조차 함부로 쏘지 않는데, 이 남자는 미친 벌이라는 이름 탓인지 아무 데나 쏘고 다니지 않았는가. 그 작고 약한 곤충보다 못한 군주란 말이다. 그러니까…… 그냥 답잖은 짓 하지 말고 있고 싶은 곳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분풀이를 하듯 그의 어깨를 때리는 것처럼 머리를 기댔다. 린네 군이 잠깐 나를 봤다가, 다시 SNS로 눈을 돌렸다. 뭐, 텅 빈 머리로 맞아봤자 크게 아플 것 같지도 않긴 하다.
나는 잠자코 SNS를 새로고침하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가 쥔 스마트폰의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Crazy:B의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화제가 되어 있었다.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별명이나 약자를 써서 검색을 어렵게 하는 편인데, 아마기 린네에 대한 이야기는 가감없이 올라오곤 했다. 이 남자가 원한 게 바로 그것이었겠지만……. 아이돌을 사랑하고 아이돌로 있고 싶었던 이 남자는, 아이돌을 모욕하고 아이돌로 있을 수 없게 된 아마기 린네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린네 군이 쥔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린네 군을 버스에서 끌어내려 다시 MDM이 치뤄질 무대로 끌고 가고 싶기도 했다. 린네 군이 다치지 않도록 지키고 싶었고 린네 군이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등을 떠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시이나 니키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은 아니다. 린네 군을 설득할 수 있는 언변도 없었고 린네 군을 억지로 끌고 가거나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이나 니키는 그저…… 아마기 린네가 더 오래 고민할 수 있도록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끄는 것 외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린네 군.”
“응?”
린네 군은 SNS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다음 서비스 에리어에서 잠깐 내려여. 저, 뭔가 먹고 싶어여.”
내가 그렇게 말하자 린네 군이 나를 흘끗 바라보고는 조금 뒤늦게 알겠다고 했다. 내 체질 이상의 변명거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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