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you

[도윤이안] The light

서도윤은 곧 죽어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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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윤은 확신했다.

내가 사랑이란 걸 할 리가 없지.

*

서도윤이 회고하기에, 무생물을 향한 사랑마저 사랑의 범위 안에 넣을 수 있다면, 그의 첫사랑은 분명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한 사실을 짚어보자면 스테인드글라스보다도 색유리를 투과해 바닥으로 쏟아지는 빛 그 자체다. 새까맣게 덮이는 어둠을 끔찍하게 여겼던 어린 서도윤에게 그 빛은 하나의 구원이었다. 하염없이 찬란하고 아름답고 눈부시고 영광되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절로 벌어진 입에서 숨소리조차 새지 않고 밭게 떨리는 홍채 너머의 망막에 오직 스테인드글라스만이 오롯한 상으로 맺혔다. 매료됐다. 홀렸다. 그 순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서도윤은 기꺼이 자신의 심장에 못 박아 그 찬연한 빛 아래에 걸리라 다짐했다. 앞으로의 생에 어둠만 가득해도 이 기억 하나만으로 살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했다.

그랬기에 서도윤에게 있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다는 행위는 일종의 구애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이모는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지원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서도윤은 만들지 않으면 죽을 사람처럼 스테인드글라스에 매달렸다.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끼니를 때우는 것도 잊어 픽픽 쓰러지는 일도 잦았다. 눈을 뜬 시간을 모조리 스테인드글라스에 쏟아붓고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정성을 다했다. 시간, 돈, 노력, 탁월한 재능까지 더해지니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한국으로 와 제작하기 시작해 좀처럼 출국하는 일이 없는데도 외국에서 더 유명할 정도였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이름값에 우쭐해지는 일은 없었다. 한때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에 다가가는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명성, 돈, 사람들의 경탄과 칭찬. 그 모든 것은 서도윤에게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저 빛,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에 열중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열여덟, 부모님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서도윤은 부모님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서도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독일의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무 살, 한국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도윤은 독일의 집으로 향하기 위한 짐을 쌌다. 한국의 작업실이 그에게 너무 작다는 이유였다. 이모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라도 하라며 잔소리를 하다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사랑을 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이모는 걱정돼 죽겠다, 아주."

서도윤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걸 왜 걱정하지? 내가 사랑을 할 리가 없는데.

*

서도윤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치고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을 하기에 그는 사람의 역겨운 면을 너무나 잘 알았고, 자신은 정신적인 결함이 있으며, 스테인드글라스만으로 생을 채우기도 벅찼다.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성정도 아니었기에 그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삶에서 제외하고 살았다. 스테인드글라스에만 매달려 미친 듯이 시간을 쏟아부었다. 쏜살 같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반쯤 정신이 나간 적도 있었다. 앞으로 평생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해도 제가 도달하고자 하는 빛의 끄트머리나 만져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덜컥 겁 먹기도 했고 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에 하염없이 넋을 놓기도 했다.

오직 스테인드글라스와 서도윤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 찬 나날이었다.

*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서도윤은 자신의 감각이 새로 트였다고 인지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었다. 고작 네 개의 현이 만들어내는 음율에 전율하여 감히 시선을 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소리가 이끌어주는 대로 사고가 따라갔다. 이윽고 그 넓은 홀에 적막이 깔린 순간 그는 박수치기보단 연주가 강제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형상을 그저 상기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빛이 쏟아졌다. 왜 몰랐을까? 그저 시각만이 감각이 아니고 눈만이 수용기가 아닐진대. 모두가 박수치는 상황에서 동떨어져 서도윤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만들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여태 쌓아온 모든 시간이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고, 그 오케스트라에 후원을 하고, 다시 작업을 하고, 연주회를 찾아가는 나날이 반복됐다. 그 사이 서도윤은 자신의 작품이 조금 달라졌음을 알았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이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설령 돌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변화였다. 전문가들이 칭하길 이미 극에 달한 서도윤의 스테인드글라스였으나, 거기서 더 변화하여 완전히 새로운 궤도에 들어섰다. 이를 폄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도윤을 아는 이들은 모두 숨을 죽여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이미 번데기를 찢고 나와 비상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천재가 사실 번데기 속이었다는, 그래서 이제와 변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다.

그 이목의 집중 속에서 서도윤은 미친 듯이 박차를 가했다. 작업, 감상, 작업, 감상……. 그러다 그의 번데기를 찢은 바이올리니스트를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완전히 날아올랐다.

"이 곡이 주문서가 될 수 있나요?"

CD와 카드 한 장. 바이올리니스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서도윤은 대답했다.

"이렇게 섬세한 주문서는 첨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크기, 문양, 색, 모양까지 모두 내가 정하겠습니다."

*

관계는 빠르게 발전했다. 서도윤은 제가 사람과 이렇게나 많고 깊은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차이안―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이었다. 처음 알았을 때, 서도윤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은 빠르게 서도윤의 일상에 침투해왔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리던 그가 처음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매료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이안과의 만남 이전과 이후의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것에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차이안의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면 꼭 보러 갔다. 그뿐이랴, 독주회며 뭐며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했고, 언제는 투어까지 따라가려다 현타가 와서 그만두었다. 그때 놓친 투어는 오래도록 서도윤의 마음에 흠집으로 남아 몇 주 동안은 마음을 다잡지 못 하기도 했다.

내가 미친건가? 서도윤의 의심은 타당했다. 그는 고질적인 정신질환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정신과에 출석도장을 찍으러 다닐 예정이지 않은가. 그러나 차이안과 관련된 모든 일은 서도윤에게 고통보다는 기쁨을 주었고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미쳐서 세상을 행복하게 살게 된다니! 물론,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도윤은 이미 정신질환이 하나 있는 사람으로서 '미쳤다'는 것은 그리 인생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으로 알고 있었다.

의심과 행복으로 점철된 삶은 서도윤의 혼란과 별개로 긍정적이게 나아갔다. 서도윤은 제 평생에 다신 없을 작품을 만들고 차이안에게 선물했다. 그와 교류하며 새로운 영감을 받고 그것을 구현화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와 대화하며 우연히 눈이 마주친 순간, 서도윤은 차이안의 눈이 찬란한 은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 깨달음을 단순히 '알게 되었다'의 영역에 둘 수 있을까? 차이안이 은색 눈을 가졌다는 사실은 옛적에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자리한 그의 프로필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건, 이것은…….

'빛…….'

감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손끝이 움찔 떨리고 숨이 느리게 멎는다. 서도윤은 차이안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전에 한 번 겪었던,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다른 전율이 몸을 강타했다. 그때가 매료라면 이것은 자각에 가까웠다. 오래 전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 못 박아두었던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며 자기 존재를 피력했다. 맙소사,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믿지도 않는 신은 서도윤의 황망에 답을 주지 않았다. 때문에 서도윤은 오롯이 홀로 그 깨달음을 감당해야 했으며, 결국 그것은 최종적인 도착지에 봉착했다.

'망할…, 내가 이안을 사랑하나봐.'

꿰뚫릴 듯한 빛이 고인 은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서도윤은 스스로에게 판결을 내렸다. 과거의 서도윤을 향한 사형 선고였다. 땅땅땅. 머릿속에 울린 경종이 위기감인지 축복인지, 당시의 서도윤은 알지 못했다. 하필 이안이 서도윤을 불렀고, 서도윤은 그에 속절없이 이끌려 응했기 때문이다. 반쯤 굳은 혀로 대화를 이어나가며 서도윤은 처음으로 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상상 이상으로 몹시 거대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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