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니 외관 묘사
끔찍한 날이었다. 태양이 목덜미를 찌르는 듯 느껴지는 날씨에, 골목에서는 거친 욕설이 들러온다. 어쩐지 감시당하는 듯한 기분까지 느껴지는 거리라는 생각을 뒤로하고 목적지로 향한다. 탐정 사무소의 문은 열려 있었다. 의외로 방범보단 의뢰인의 접근성을 중시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치곤 받았던 명함은 센스가 없었지만.
사무소 안은 텅 비어있었다. 자리를 비운 모양이라 찬 음료라도 사 올까 싶어 걸음을 돌린 순간, 인기척도 없이 그 탐정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버릇처럼 미소를 걸친 채 인사하는 탐정과 달리 나는 깜짝 놀라 두어 걸음 물러났다. 결과적으로는 사무소 안에 발을 들인 셈이었다.
“편하게 앉으시겠어요?”
탐정은 그런 반응마저도 예상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지나치는 순간조차, 그에게선 어떠한 향이나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테이블 앞의 1인용 소파에 앉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그 앞의 긴 소파에 앉았다. 긴장에 허리를 뻣뻣하게 세운 채 그를 응시하자, 그가 자연스럽게 음료를 건넸다.
“잠시 의뢰인 분께 드릴 음료를 사 왔거든요.”
음료를 내미는 손에는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손이 제법 큰 남자 같았다. 방금 나를 지나칠 때도 확실히 얼굴을 올려다봐야 하긴 했지. 나는 문득 내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음료를 마시는 척 그를 훑어봤다.
그는 이 여름에도 더워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검은 가죽 장갑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날씨에 셔츠와 코트까지 걸치고 밖을 걸어 다닌다면 분명 눈길을 끌지 않으려나? 그러고 보니, 그의 복장뿐만 아니라 얼굴 또한 이목을 끌게 생긴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맑은 색의 머리카락이나 단정한 이목구비에 늘 걸치고 다니는 부드러운 미소는 한 번 기억하면 잊기 어려운 모습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저번에 명함을 받았을 때도 그의 얼굴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음료가 마음에 안 드셨나요?”
반듯한 눈썹의 꼬리 부분이 슬쩍 내려가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자아낸다. 턱을 당기고 이쪽을 올려다보듯 살피는 모습에 그만 죄책감이 들어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순한 눈매에 동그란 안경 탓인지, 그에게는 그런 표정이 잘 어울렸다. 빛에 따라 갈색이나 녹색으로 빛나는 헤이즐 빛 눈이 종종 나를 꿰뚫어 보는 듯 느껴질 때면, 특유의 가벼운 표정과 저 여린 얼굴이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총알이 스친 자리가 뜨거웠다. 그 탐정이 아니었다면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죽고 말았겠지만. 부드럽고 유순한 눈매와 표정을 가진 사람이 괴한과의 격투에선 그렇게나 폭력적으로 보일 줄은 몰랐다. 괴한이 나에게 총을 난사하던 순간, 언제 뒤따라 들어온 건지 그 탐정이 나를 감싸 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 뒤로 눈으로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괴한에게 접근해 괴한에게서 총을 빼앗아 던져버리더니 격투 끝에 괴한을 제압했다. 괴한과 격투를 할 때의 그는 평소와 달리 잔뜩 찡그린 얼굴에 옅은 짜증이 묻어났고, 그 탓에 늘 부드럽게 느껴지던 눈빛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잘 정리해 세팅한 머리도 흐트러져 구겨진 미간 위로 살랑거렸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숨을 몰아쉬며 격투를 살피던 중, 탐정이 내게 등을 돌린 채 괴한을 묶어둔 후 푹 쓰러진다. 나도 모르게 뛰쳐나가 상태를 확인해 보니 아까 난전 중 총을 맞은 것인지 탐정의 옆구리와 어깨에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 짙은 피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탐정은 코트를 벗겨 상처를 확인하려는 내 손을 잡아 부드럽게 떼어냈다.
“괜찮으니 조금 물러나시겠어요?”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붙잡은 채였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어쩐지 힘이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의 상처보다 내가 그것을 신경 쓰는 것이 더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나를 잡은 손의 힘이 아주 약했기 때문에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그의 상처를 꾹 눌렀다. 아주 작은 신음과 함께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역시 상처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탐정의 얼굴을 살피자 부드러운 얼굴이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는 것이,
…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는 상처가 보였다. 손을 대어 확인하니 이미 아문 흉터였다. 이런 흉터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칼로 난자당한 듯한 상처가 다행히 지금은 잘 아문 모양이다.
처치 도구를 가져오며 방의 불을 켰을 때 그는 눈을 감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탐정의 장갑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묻어있었고, 그 장갑으로 덮었던 눈 위의 흉터에도 피가 묻어났다. 탐정의 코트를 벗기고 지혈을 하려고 하자 작은 반항이 있었다. 얇은 눈썹을 찡그린 채 왼쪽 눈만 가늘게 떠 이쪽을 따갑게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 헤이즐 빛 눈길이 나를 꿰뚫는다고 느꼈던 것이 착각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처치를 끝내고 그의 흉터 위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 후 탐정이 짜증을 숨기지 않고, 그러나 별수 없이 고분고분 오른쪽 눈을 떴을 때 그의 초점 없는 회백색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쩐지 오른쪽을 향하는 공격에 반응이 느리다 싶더니, 아마 시력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렇게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훨씬 정확하게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얇고, 잘 정리된 눈썹 위로는 옅은 파란빛의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그 밑으로 순한 눈매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내는 헤이즐 빛 눈은 왼쪽뿐이었다. 오른쪽 눈은 혼탁한 느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얇은 콧대에 얹혀 있던 안경, 아니… 선글라스는 이미 바닥에 던져버린지 오래였다. 그 밑으로 늘 웃음을 걸치고 있던 입술 또한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었다. 나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을 작정이란 것이 잘 느껴졌다. 상처를 처리하며 본 그의 몸을 생각하면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 다부진 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근육이 많고 흉터가 다양한 것이 아까 격투가 익숙해 보였던 이유인 모양이다.
내 인생에서 전무후무할 사건이 해결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잠시 휴식을 갖기 위해 방문한 휴양지에서 그때의 탐정을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가디건에 장갑까지 껴입은 아주 더워 보이는 차림이었다. 첫 만남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것이 가면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휴양지에서 경계심을 날카롭게 세울 일은 많지 않으니 당연한 모습이려나.
탐정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다시 휘어 웃으며 마주 인사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서 예전과는 달리, 달콤한 향이 풍겼다.
“이런 곳에서 다 뵙네요, 그 후로 후유증은 없으셨나요?”
그가 내게 당부했던 비밀 유지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는 정말로 반가운 예전 의뢰인을 만난 듯 나를 걱정했다. 그게 거짓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동시에 그저 가벼운 인사치레로 느껴지긴 했다.
휴양지에서의 그는 전보다 더 가볍고, 전보다 덜 위화감 있는 모습이었다. 분명 이 가게 주인도 그를 보고 호감형의 남성이라고 생각하겠다 싶은 그런 모습. 머리를 가볍게 넘겨 정돈한 모습이나 순한 눈매의 눈을 휘어 웃는 표정들이 그의 무해함을 강조하는 듯했다. 동그란 안경조차 그렇게 계산한 것이려나. 그의 흉터나 선글라스를 봤던 입장에서도 지금 그의 모습은, 우리의 첫 만남보다 훨씬 무해하고 순해 보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이민 가시기 전에 휴가차 들리신 건가요?”
눈썹을 늘어뜨리고 이쪽을 보는 그 특유의 표정에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리깐 듯 작게 튀어나오는 웃음소리 뒤로 시원한 향기가 나는 듯했다. 그는 옅은 푸른색의 속눈썹이 헤이즐 빛 눈을 가리도록 눈을 휘어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즐겁게 즐기다 가세요, 의뢰인분.”
그러곤 조용히,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스쳐 지나간다. 코끝에 남은 바다 향기를 닮은 향수 냄새만이 그의 존재를 알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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