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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이안] 사랑의 이름

His Name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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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윤은 사랑에 이안의 이름을 붙였다. 만약 언어학자들이 서도윤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면, 더없이 포괄적이고 보편화된 감정에 일개 개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웬 말이냐며 노발대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도윤으로서는 다행히도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의 소유였으며, 그의 좁은 세계는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언어학자들은 평생을 가도 모를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차이안이라는 개인에게 속하게 되었는지.

*

"슈티, 내 옆에 앉아."

곧고 섬세한 손가락이 공기를 부드럽게 가르며 흔들렸다. 그 손짓이 지극히 우아하여 서도윤은 찰랑이는 물 속에서 유유히 흔들리는 베타의 지느러미를 떠올렸다. 나긋하고 유려하다.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다. 정적이면서도 화려하여 그 대비에 쉽사리 눈을 돌리기 어렵다. 서도윤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저항할 의지조차 모조리 그의 손에 쥐여준 양 그의 말에 순종해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사박거리는 발걸음이 몇 번, 그 길지 않은 거리를 좁히며 서도윤은 머릿속이 흐무러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 멍청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안에게 오롯이 집중된 이성으로 헛생각을 한 서도윤은 이안의 손짓에 따라 그의 옆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가 그를 안정적으로 받치는 감각이 익숙해야 당연한데 기묘하게 낯설었다. 가까이에 붙은 이안의 체향이 서도윤을 기민하게 자극해 숨이 미약하게 떨렸다. 어디에선 썸을 타다가 연애에 성공하게 되면 감정이 팍 식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건 죄다 거짓말인 게 분명했다. 두뇌의 의지와 신체의 자기주장이 강력하게 엇갈려 몸이 삐걱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에 시선이 마주쳤다. 이안은 제가 어떤 상태인지 뻔히 안다는 듯이 길게 빠진 눈꼬리를 사르르 접으며 미소를 그렸다. 빛을 비추지 않아도 선명하게 반짝이는 은빛 눈동자에 즐거움이 선연히 드러났다. 내가 그렇게 좋아? 확신 섞인 물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서도윤은 마주친 눈을 감히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서서히 벌게지려는 목덜미를 느릿하게 쓸었다. 그 열기가 끝내 귓가와 얼굴까지 올라오자, 서도윤의 사랑스러운 연인은 그제야 시선을 떼어주며 소리내어 웃었다. 부러 짓궂게 놀리는 것이 분명했지만 서도윤은 이안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 마냥 따라 웃었다.

즐겁게 웃고 잔웃음을 털어내며 제게 닿아오는 온기가 그저 기뻤다. 손에 손이 겹치고 부드러운 흑발이 제 어깨 위로 쏟아진다. 이안의 무게가 서도윤에게 내려앉았다. 제게만 허락된 사랑의 흔적을 달게 받들며 서도윤은 소리없이 웃었다.

이러니 이안일 수밖에 없다.

서도윤은 제 안의 모든 단어가 이안을 중심으로 재정립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사랑이 이안이라 명명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도윤의 짧은 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심지어 이루어졌다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으니 이건 곧 기적이고, 서도윤은 기적을 만들어낸 이안에게 사랑을 넘겨주었다. 다른 사람일 수 없다. 이안이어야 했다. 이안뿐이었다. 사랑과 이안이 일치되었고 이것이 불변한다면 사랑에 이안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무어 잘못되었단 말인가.

"이안."

서도윤이 조심스럽게 경애와 은애, 존중을 담아 이름을 불렀다. 사랑에 그의 이름을 붙였으니 그를 호명하는 것이 곧 밀어를 속삭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이름자가 너무도 소중하고 귀하여 서도윤은 매순간마다 모든 심력을 쏟아 이름을 보호했다. 가장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이안의 이름을 불렀다. 가장 부드럽게 울린 낮은 부름에 그의 사랑이 마주잡은 손끝을 살짝 까딱였다. 듣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움직임이 하염없이 애틋하기만 해 서도윤은 기도를 비집고 나오려는 신음을 꾹 눌러참았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이 머릿속을 둥둥 울리는 박동으로 느껴졌다. 서도윤이 조금만 더 어렸다면 너무 좋다며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감정이 살그마니 혀 위에 올랐다.

"…사랑해."

말끝이 살짝 떨렸지만 서도윤은 이안이 이를 꼬집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것이 이안의 한 켠에 남아 제 사랑에 대한 확신의 근거로 쓰이게 될지도 몰랐다. 소리로 듣는 것은 무엇하나 놓치는 법이 없는 이안에게 이 떨림만큼의 확신이 또 있을까. 제 감정이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져 이안에게 남는다는 것이 이것의 유일한 부끄러움이었으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서도윤은 달달 떨리는 혀끝을 가볍게 물어 왈칵 넘치는 수많은 감정을 삼켰다. 그저 좋았다. 뺨이 발긋하게 물들고 손끝에 열기가 돌았다. 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은 애정표현이었기에, 서도윤이 이안의 머리 위로 살며시 제 뺨을 기댄 순간이었다.

"나도 사랑해."

기대하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서도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녹아내린 얼굴로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로, 이안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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