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젬] 최초의 축복을 위하여
아이들의 생일파티
*직젬 패밀리
어떤 존재가 세상에 탄생하여 첫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어머니 태내에 있던 세포에서 벗어나 독립된 하나의 존재로서 그들을 배척하는 세계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첫 숨을 들이마시고, 울음을 터뜨리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 낯선 세상의 유이한 보호자를 인식한다. 탄생은 곧 한 생명체의 개화를 의미한다. 완전히 개화하여 별개의 존중받아 마땅한 생명이 되기까지, 일개 세포에 불과했던 것은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까다로운 선별과정과 어머니의 주의, 아버지의 보조를 거쳐 세포에 불과했던 것이 생명을 얻는다. 그렇기에 그를 두고 우리는 축복이라 한다.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닥쳤을 다양한 고난을 이겨내 결국 이 세상에 탄생한 너를 환영하며.
*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떤 존재에게 안 그러겠냐마는, 제마에게 있어 생일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어머니의 태내에서조차 기대받지 못했고 첫 울음을 터뜨림과 동시에 창고에 버려졌다. 태내에서는 그나마 어머니로부터의 영양 공급이 있었으나 어머니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립된 이후로부터는 모든 공급이 끊어졌다. 그 모든 고통에도 그가 살아남은 것은 이웃의 다정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웃의 다정은 그의 탄생까지 책임져 줄 수 없었다.
제마는 평생에 걸쳐 생일을 잃은 채 살아왔다. 다정한 이웃이 그의 어머니에게 생일에 대해 물었으나 어머니는 그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은 상태였다.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조차 그의 생일을 잊었다. 그리하여 그의 생일은 기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다행히 이웃이 다정하여 제마는 이웃에게 거둬진 날을 생일로 삼을 수 있었다. 이후 이웃이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며 생일의 의미를 잃었으나, 이름뿐인 생일이라도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생일조차 새로운 탄생으로 인해 잊혔다. 그러자 자연히 제마의 생일은 '있으나 없는 것'이 되었다. 새로운 생이 열린 것은 이전 생의 죽음과 동일했고, 이웃이 그에게 쥐여준 생일은 이전 생의 죽음과 함께 옛것이 되었다. 하나 새로운 생의 탄생을 생일이라 하기엔 제마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개체였으므로 결국 생일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생일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잃은 것이기에 그만큼 생일에 대한 애틋함이 깊이 남았다. 축복 받아 마땅한 날을 잃은 것은 존재의 근원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새로이 뿌리를 내렸다. 그의 새로운 생, 새로운 존재들, 연인, 그리고 유이한 피붙이들. 그 새로운 뿌리 위에 그는 굳건히 존재했다. 다만, 영원히 사라져버린 생일에 대한 아쉬움만이 짙게 남았을 뿐이었다.
"엄마! 이번 생일도 생크림 케이크 먹자!"
"생크림? 엄마는 작년에 에아가 '내년 생일은 제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야!'라고 한 걸 기억하는데?"
"아! 내가 그랬었나?"
"그랬어, 그러다가 그냥 생크림 케이크랑 치즈케이크랑 둘 다 먹으면 안 되냐는 말도 했지."
제마 대신 답변하며 작년을 떠올린 제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이만큼 많은 양의 케이크를 해달라고도 졸랐고, 치즈 케이크와 생크림 케이크가 절반씩인 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도 했었다. 보관 문제나 기타 등등의 사유로 기각되었지만, 아마 올해와 작년과 비슷한, 그러나 기상천외한 내년 생일 케이크 주문을 할 것이다. 에아는 나이를 먹은 게 다 먹고 노는 생각의 발달로 빠지는 건가? 제이가 파티용 그림이 알록달록 걸린 줄을 벽 위쪽에 대어보고는 테이프로 접착했다. 규칙적인 호선을 그리며 늘어진 파티용 줄의 그림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샤코레피아의 집에서 생일을 갖는 이는 총 세 명이다. 지구, 그리고 사랑스런 쌍둥이 에아와 제이. 그러나 지구는 오래 산 생만큼이나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에 따라 이 집에서 생일에 의미를 부여받은 이는 쌍둥이뿐이었고, 이 집안의 커다란 이벤트 역시 지구와 제마의 결혼기념일과 쌍둥이의 생일 둘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가 바로 그 큰 기념일 중 하나인 쌍둥이의 생일이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에 맞춰 에아가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다. 그 기대에 발맞춰 올해도 어김 없이 네 식구가 모두 힘을 합쳐 드넓은 초원 위의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작년과 다른 장신구들을 달고 화사한 전구로 고쳐 끼웠다. 함께 만들 케이크에 대해 논의하고, 아이들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부모님이 주실 선물을 기대하는 환호성이 울렸다. 제마는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제 허리에 매달리는 에아를 보며 사르르 미소지었다. 담담하게 집을 꾸미는 제이 역시 은근슬쩍 선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게 보였다. 덤덤하고 진중해도 제이는 한참 어린 아들이었다. 선물이 무엇이냐고 재잘거리는 에아의 머리카락에 입 맞추며, 제마가 짐짓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그렇게 보채도 엄마는 안 알려줄 거예요. 우리 에아가 몰래 선물 찾아볼까 봐 아직 준비하지도 않았지~. 에아 선물이 무엇인지는 엄마 머릿속에만 있어."
"으엉? 아직도?"
"그럼. 재작년에 우리 에아가 엄마아빠 침실을 다 뒤집어 놓았었잖아? 그러니 최대한 미뤄두었다가 준비할 거야."
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에아가 제마의 허리춤에 얼굴을 문질렀다. 빵실하게 밀려올라가는 볼살을 보며 표정을 허물어뜨리고 웃은 제마가 성큼 에아를 안아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에아의 팔이 제마의 목을 감싸 안았다. 제마는 제 뺨에 닿는 딸의 뽀뽀를 받으며 제이를 불렀다. 꼼꼼하고 손이 빠른 제이는 금세 벽 한 켠을 다 꾸며놓았다. 노랗고 아기자기한 기린을 들고 어디에 붙일까 고민하던 제이가 제마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고 어린아이의 얼굴에서 제 흔적과 지구의 흔적이 선명히 보였다. 이젠 익숙해진 줄 알았던 새삼스러운 감정이 제마의 가슴을 낙낙히 적셨다. 남는 한 손을 살랑살랑 흔들자 제이가 기린을 상자에 넣어두고 달려왔다. 양팔을 벌리는 제이 역시 냉큼 안아들며 제마가 거실을 가로질렀다.
"아버지 마중하러 가나요?"
"응, 고모삼촌 네로 갔으니 곧 올 거야. 분명 또 고모한테 실컷 놀림받고 올걸? 가서 위로해주자."
"나는 아빠 놀릴건데!"
깔깔 소리 높여 웃은 에아가 발을 동당거렸다. 아이의 얼굴 가득 깔린 기대를 보며 제마가 작게 웃었다. 유독 힘이 좋은 에아가 놀리겠다고 매달리면 힘이 다 빠진 지구가 받아내기엔 다소 벅찰 것이다. 미친듯이 직진하는 에아 로켓을 맞고 휘청일 지구를 생각하니 웃음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느 정도 힘을 빼놔야겠지. 속으로 생각한 제마가 쌍둥이를 내려놓았다. 파스락, 잔디가 아이들의 발목을 스치며 흔들렸다.
"아빠가 오기 전 포탈에 먼저 도착하면 생일날 엄마가 특별한 자장가를 불러줄게. 조건을 둘 다 함께 도착할 것. 다른 꼼수 쓰면 내기는 취소."
특별한 자장가. 이곳에도, '제마'의 고향인 사신계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제는 '서예경'의 흔적으로만 남은 것. 좀처럼 옛날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제마를 알고 있기에 두 아이들의 눈에 빛이 반짝반짝 돌았다. 좋아, 동기부여는 충분하네. 제마가 짓궂게 웃으며 준비, 땅! 하고 외쳤다. 팍, 풀잎이 흩어지며 아이들이 훌쩍 멀어졌다.
순식간에 작아지는 두 형체를 보며 제마는 여유롭게 웃었다. 좀 더 달려야 할 텐데, 하고 흥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새 시야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아이들의 흔적을 좇으며 제마가 발끝에 힘을 주었다.
*
"아! 아까워!"
에아가 숨을 몰아쉬며 발을 동동거렸다. 옆에 서서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급히 숨을 고르는 제이 역시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이들보다 먼저 도착해 지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제마는 즐거움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을 보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빠른 호흡을 뱉는 아이들의 얼굴이 찍어낸 듯 똑같은 표정이었다. 제이는 지구를 닮고 에아는 나를 닮았는데 어쩜 이럴까. 웃음소리를 흘린 제마가 아이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특별한 자장가는 놓쳤지만, 생일에 멋진 손님들이 올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멋진 손님?"
"응, 특별한 사촌들이지."
몸이 약해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던 쌍둥이의 사촌들. 놀림을 감수하고 찾아간 지구가 이번에 얻어온 쾌거였다. 자장가를 놓쳤음에 아쉬움을 표현하던 아이들의 뺨이 사촌들에 대한 기대로 동그랗게 부풀었다. 발간 혈기가 도는 아이들의 말랑한 볼을 슥슥 쓰다듬으며 제마가 지구를 돌아보았다. 저와 비슷한 표정을 한 채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모습에 심장이 속절없이 뛰었다. 내 사랑, 내 배우자, 나의 반쪽.
제마의 표정을 본 제이가 은근슬쩍 에아의 손을 당겼다. 우리 먼저 가자, 에아. 응? 왜? 어머니랑 아버지 두 분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드려야지. 응? 잘 모르겠지만, 제이가 그러면 그런 거겠지.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이야기하다 말도 없이 먼저 쓩 가버리는 뒷모습에 제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올 때만큼이나 갈 때도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훌쩍 멀어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제마가 지구의 손을 붙잡았다. 곧장 시선이 맞닿고 체온이 오간다. 살며시 눈을 휜 제마가 달달하게 속삭였다.
"그럼 우리는 부부의 데이트를 즐겨볼까?"
다감한 소리가 너른 잔디밭의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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