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you

[직젬] For good night

동떨어진 세계의 밤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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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회색 하늘 아래로 그림자가 양지의 영역을 밟았다. 성큼 들어오는 어둠을 막아내기엔 태양이 일찍이 저버렸으므로, 몇 시간 전만 해도 푸릇했던 잔디들은 제 몸을 짙게 물들이는 밤에 속절없이 잠겼다. 한결같이 푸르른 상록수와 여름을 맞이해 활짝 잎새를 틔워낸 낙엽수는 사위를 그림자로 덮어버리는 밤에 의해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 그곳엔 오직 푸르른 어둠과 고요한 그림자만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이 땅을 부드럽게 식혀줄 것처럼 아직 어린 밤이 샤코레피아의 중앙까지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다채로운 색깔이 모두 밤에 담긴 이 시간에 유일하게 노란 빛을 흘리는 집 한 채에게 어린 밤이 닿았다.

아, 짧게 터진 탄식이 열 오른 지구의 이마를 스쳤다. 뒤로 젖힌 고개가 가는 목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부드럽고 하얀 살결을 노출시켰다. 도발하듯 저를 향한 검은 눈이 나긋하게 눈웃음을 그렸다. 깜박이는 속눈썹의 움직임이 나폴거리는 꽃잎 같았다. 뭐해? 얼른. 재촉하는 입술이 불빛을 매끄럽게 반사했다. 벙긋거리는 입안으로 고른 치열이 얼핏 보이더니 발간 살덩이도 아른거렸다. 그 시각적 자극이 아찔해 심장이 크게 두방망이질 쳤다.

지구는 방금 전까지 저 입안을 헤집었던 감각에 젖어 혀 끝을 물었다. 그리고 눈앞을 희게 물들이는 살결에 입술을 부딪쳤다. 얇은 피부를 사이에 두고 닿는 체온이 뜨거웠다. 하아, 지구가 뜨거운 숨을 쏟아내며 당장에라도 제마를 잡아먹을 것처럼 입을 벌렸다. 방금 입술이 닿았던 부분에 혀가 닿았다. 짙은 소유욕이 고개를 처들고 지구의 욕구에 불을 지폈다. 물어. 그를 가져. 지구는 욕구의 명령에 저항하지 않았다. 제마의 목덜미에 잇자국을 내고 입술을 내린 부분을 혀로 세게 짓뭉갰다. 혀 아래서 맹렬한 맥박이 요동쳤다. 존재 자체만으로 위압적인 사람이 제게 급소를 노출했다. 그 사실이 지구의 가느다란 이성의 끈에 톱질해 그의 입술을 좀 더 깊은 충동으로 이끌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감각이 쾌감인지 소유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하아……."

혈관을 타고 흐르는 강렬한 생명의 움직임이 지구의 혀 아래 짓눌렸다. 제마는 얕은 호흡을 쪼개어 토해내고는 서슴없이 지구를 끌어안았다. 제가 내어준 목덜미에 기어코 이를 박아넣은 지구의 행위가 퍽 만족스러웠다. 오직 너만이 내게 이럴 수 있어. 제마는 희미하게 들뜬 목소리로 은근히 지구에게 속삭였다. 자그마한 웃음소리까지 덧붙이자 지구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제마의 살갗을 힘주어 빨아들였다. 으응, 조그만 비음은 지구에게만 닿고 사그라들었다.

있잖아, 지구. 제마가 숨결이 섞인 목소리로 지구를 불렀다. 동맥을 중심으로 수없이 울혈을 남기던 지구가 탐욕스런 입맞춤을 우뚝 멈추었다. 불빛을 등진 눈동자는 더이상 침착하지 않았다. 밝은 연둣빛으로 타오르는 눈동자의 기저에 깔린 욕망이 제 것과 같았다. 그 찰나의 욕구를 읽어낸 제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지구, 만족스러운 호칭과 함께 제마의 고운 손가락이 지구의 뺨을 쓸었다.

"이제 밤이야."

목소리가 꿈결 마냥 달았다.

"모든 생명이 어둠에 묻히고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을 테지."

"……제마."

"그러니 괜찮아."

제마가 지구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추었다. 얼른 집어삼켜. 명령에 가까운 재촉이 타닥 불티를 튀겼다. 불티가 옮겨붙은 도화선이 빠르게 타오르고 완전히 끊어진 이성은 작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다. 제마. 지구가 탁하게 깔린 목소리로 제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응, 지구. 제마는 얇은 슈미즈 아래로 기어드는 손길을 느끼며 발갛게 웃었다. 열기가 투과되는 얇은 옷감 아래로 진정 뜨거운 손길이 침범해왔다. 부드러우나 단단한 허벅지를 움켜쥐는 손끝에 힘이 실리고 갈급하게 제 입술을 찾는 지구의 호흡이 이전보다 사나웠다. 제마는 깊이 파고드는 손끝을 인지하며 눈을 감았다.

청회색 하늘이 완전히 까맣게 덮였다. 하늘과 땅을 구분하던 얄팍한 그림자는 하늘과 땅의 경계에 묻혀 사라졌고 희미한 푸른기가 돌던 풀잎은 어두운 땅과 구별되지 않았다. 안락한 샤코레피아에 내려앉아 사방을 그림자로 덮었던 어린 밤은 더이상 어리지 않았다. 성숙한 어둠이 외부인의 침입을 거부하는 작은 세계를 덮었다. 새까만 밤은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던 어느 집 앞에 멈춰서서 그 창문가에 엎드렸다. 달짝지근한 연인의 입맞춤과 서로의 이름을 밀애 마냥 속삭이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윽고 밤의 유일한 불빛마저 사라졌을 때, 이제 어리지 않은 밤은 연인의 오랜 밤을 위하여 창문가에서 잠들었다. 잘 자, 속삭이는 연인의 웃음소리가 어슴푸레 들린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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