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 in your favor
드림 헝겜에유 백업 / 2924자
마지막 추첨식 날 아침은 정말로 별 것 없었다.
진설하는 혼자서 아침을 먹고 도로 침대로 돌아갔다. 자고 있던 설하를 깨운 것은 전영중이었다. 대체 나갈 준비를 다 하고 누워서 자는 이유가 뭐냐며 다그쳤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설하가 일어난 건 그냥 영중의 얼굴을 봐서 일어난 것이다.
마을 중앙으로 가는 동안 사람들이 영중에게 드문드문 말을 붙여왔다. 진설하에겐 관계없는 일이었다. 인간관계의 확장이란 캐피톨 사람이나 할 사치 아니겠나. 사실 이것도 변명이다. 설하는 그냥 인맥을 성준수 전영중 단 둘로 끝내고 싶었다. 더 많아질 일도 적어질 일도 없이.
성준수는 이미 단상 위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었다. 딱히 긴장한 건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런다. 눈만 봐도 더럽게 날카로웠다. 눈이 마주치자 입을 벙긋거렸다. 가만히 짜쳐있어. 성지수가 단상과 애매하게 떨어진 곳에 있길래 명당을 알려주고, 두 명도 적당한 곳에 서있기로 했다.
두 명. 진설하는 독백한다. 몇 년이나 됐지만 전영중이 가족과 함께하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건 신기하다. 혼동하지 마시길, 절대로 싫지 않다. 그가 나와 함께해준다면 납작 엎드려야 하는 쪽은 나다. 대체 어떻게 비위를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뭘 하면 남아있을 건지.
무조건적으로 그가 곁에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설하는 잠시 자신이 그의 무엇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생각하다 진행자의 목소리에 주의를 빼앗겼다.
“행운이 기꺼이 네 편이 되길!”
소름끼치도록 즐거운 어조였다. 저 문장을 직접 들은지도 벌써 7년이다. 올해로 만 18세. 다음 생일이 지나면 더 이상 이름이 불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이번 추첨식이 끝나면.
같이 살자고 했지. 추첨식이 끝나면.
전영중의 그 말은 모든 것을 포기했던 진설하에게 약간의 희망을 주기 충분했다.
“레이디 퍼스트.”
그래서였을까. 설하는 순간 영중의 손목을 붙들었다. 전영중은 진행자에게 둔 시선을 옮기지 않고 설하의 손을 뗐다. 그리고 손을 맞잡아주었다.
“진설하!”
영중은 숨을 들이쉬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멀리서 환호를 내지르려다 입을 틀어막는 누군가의 부모가 보인다. 길을 비켜주려 하는 누군가의 자식이 보인다. 마을 사람의 이름도 모르는 캐피톨의 저 치는 주민들의 머리 위에 서서 조공인이 스스로 걸어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영중은 도저히 그들과 같은 공간에, 같은 배경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름이 불리자마자 세계가 유리된 기분이었다.
“영아.”
세계와 저의 틈 사이로, 잡힌 손을 빼달라는 듯, 설하가 영중을 올려다봤다. 그것은 예비된 자의 자세였다. 표정 따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고자 했다. 저를 부르는 늪으로. 높은 심해로. 스스로.
사실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10구역에서 가족 모두를 먹여살리는 학생은 없다시피 한다. 있다 해도 10구역은 일자리가 많다. 가족 모두 포리지를 즐기는 입맛으로 바꾼다면 이름을 적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럼 그 다음은 혼자 살아가는 학생 쪽이다. 소잡이에 재능이 없고, 험한 일을 맡기기엔 못 미더우며, 시답잖은 악기 연주에나 재능을 보이는. 하. 전영중이 헛웃음을 뱉었다. 손은 이미 놓은 상태였다.
“설하야, 미쳤어? 저 단상이 뭔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준수가 우승했다고 그게 쉬워 보여?”
단상 주변은 자갈이 깔려 진설하가 걸을 때마다 저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짧은 시간이 지났으나, 떼거지로 몰려있던 사람들은 진설하와 단상 사이 일직선으로 된 넓은 길을 터놓은지 오래였다.
“별로 다르지 않아. 지금 안 걸어가면 끌려갈 거고, 이번에 죽지 않으면 나중에 죽겠지.”
전영중은 진설하가 우승할 생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기합리화도 열심히 하네. 죽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여기서 무릎꿇고 말해. 죽기 싫다고. 제발 누구라도 자원해달라고….”
“그랬으면.”
차각. 자갈이 발등에 밀려 산처럼 쌓였다. 딱 절반까지 나아갔을 때였다. 설하는 뒤를 돌아 중얼거렸다. 오두막의 벽난로 앞에, 소리치면 오히려 들리지 않을 거리에 앉아있던 전날처럼.
“자원해줬을 거야?”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설하야. 나는 네가 뽑힌다고 해도 대신 끌려갈 수가 없잖아. 그렇게 멀리서 말하면 들리겠어? 나라서 겨우 들은 거지 다른 사람은 안 들려. 설하야.
“어서 올라와! 아직 한 명의 이름을 부르지 못 했단다…. 너와 우승의 영광을 두고 싸울 신사!”
‘싸우다’와 ‘신사’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군. 사람들의 눈높이는 훌쩍 넘는 단상 위에서 진설하는 생각했다. 물론 전영중의 신장까지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중을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라, 설하는 단상이 마음에 들었다. 유리공이 흔들렸다. 성준수는 뒤쪽에 앉아있었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둥둥둥둥둥. 다리를 떨며 생기는 진동이 전해졌다. 진행자는 신나서 이름을 외쳤다.
“전영중!”
카앙. 철제 의자가 비참하게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필시 우리의 친구가 내는 소리다. 상황에 맞지 않게 진설하는 무심코 안심했다.
전영중은 무슨 정신으로 단상까지 올라왔는지 기억이 안 났다. 성큼성큼 걸어와 단숨에 진설하 곁으로 돌아왔다. 이것으로 이제 자원할 사람은 없다.
성준수는 일그러진 얼굴로 하늘을 쳐다봤다. 전년도 우승자에게 두 명을 살릴 책임이 주어졌다. 그는 잠자코 서있다가 툭 한 마디를 뱉는다.
“XX, 내가 못 할 줄 알아?”
예술과 낭만은 개나 준 시대라고들 했다. 폐허 위에 세워진 나라는 아름다움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가 유랑시인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로 실어나르는 대기를 총과 칼로 억압할 수 있는가?
다시, 바람이 불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닫은 세 명의 서사시에 음을 붙여 읊는다.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연무의 주인공은 셋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성준수는 이길 것이다. 전영중은 지킬 것이다. 진설하는 연주할 것이다.
뺨을 스치는 높새바람에 진설하는 터질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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