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 Game

드림 헝겜에유 / 2747자

이해불능 by 묘
6
0
0

10구역의 바람은 언제나 쌀쌀했다. 건물에 막히는 일 없이 너른 풀밭과 축사를 쓸고 오는 공기의 흐름은 여름의 명물이다. 그러나 가을이 다가오면 바람은 두려움으로 변한다. 바뀐 것은 태양의 주기 뿐, 대기는 변함이 없건만, 인간의 친애는 180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방향을 뒤튼다.

인간에게도 변명거리는 존재한다. 바람이 사납게 느껴질 무렵 마을 중앙에는 단상이 설치된다. 원래도 차가운 바람이었다. 마을에서 사람 두 명 분의 부피가 사라지자마자 누군가는 그 추위를 이기기 위해 유리공에 사라진 만큼의 종이를 던져넣어야 했다. 기억과 배경은 하나로 뭉쳐져 그 구분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라, 10구역 주민들 중 바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좀처럼 찾기 힘들다.

물론 그곳에서도 전영중은 제게 불어오는 맞바람을 사랑하는 이를 알고 있다. 그건 영중의 특권이었다.

“너 집에 안 가?”

그리고 그 범상찮은 인물은 자신의 객을 향해 저런 무례한 말을 해대고 있다.

“설하야. 내가 지금 널 위해서 같이 있어주는 거잖아. 사람의 호의를 그렇게 무시해도 괜찮은 거야?”

“아니, 언제는 혼자 있어서 위험했던 적이 있었대?”

입을 비죽이며 진설하가 의자 위에서 몸을 웅크린다. 설하는 때로 그렇게 안정감을 얻곤 했다. 다리와 팔을 잔뜩 구겨넣고는 눈만 빼꼼 내밀어 영중을 바라봤다. 표정을 읽는 것일까. 혹은 얼굴을 기억에 새기려는 것인가. 물리적인 거리를 가늠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 고요가 지나면 진설하는 종일 팔에 주고 있던 힘을 느슨하게 푼다는 점이다.

설하는 변두리 오두막에서 혼자 산다. 하지만 저 때문에 위험하면 위험했지 남에게 해코지당할 일은 없다는 건 알았다. 근데, 어쩌라고? 전영중은 진설하가 자신을 절대 먼저 내보내지 않을 것임을 안다. 십여 년간 알고 지낸 덕이다. 진설하는 혼자 있기 싫어한다. 진설하는 버터보다 크림을 좋아한다. 진설하는 친구가 전영중 성준수 끝이다. 기타 등등.

어쨌든 내가 있어야 쟤 마음이 편해지니, 이건 내가 친히 베푸는 호의다. 영중은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딱 한 시간만 더 붙어있기로 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더 버티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아마도? 고개를 저었다. 나 좋으라고 하는 건 아니지. 쟤 좋으라고, 내가 져주는 거지.

그러니까 이건 전후사정을 전부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하나라도 빼먹는다면 도통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이다. 여기서 전후사정이란 작년에 성준수가 게임에서 우승하기 직전까지 죽을 뻔한 장면이 구역에 생중계된 것과, 진설하가 해마다 그 미친 게임에 끌려갈 확률을 늘려가며 근근이 살고 있는 것과, 그 와중에 구역 전체가 기름 수급이 힘들어지자 전영중에게 기름을 나눠줬다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정을 담고 있다.

“몇 장이야.”

“나 열두 장, 너 일곱 장. 다 알면서 왜 또 물어봐.”

말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영중이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표정이 풀어지던 설하였다. 준수가 설하를 만나면 언제나 개빡친 상태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다. 물어본 사람은 속 터져 돌아가실 지경인데 걱정해준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만 하다. 하. 영중은 헛웃음과 한숨 사이 언저리를 뱉었다.

“영아, 들어봐.”

“이름 제대로 불러.”

“응. 영중아, 들어봐.”

구겨진 표정을 마주하고 설하가 슬 다리를 내리며 정자세로 앉았다. 혼나는 자세다. 달리 말하자면 쓴 소리는 듣겠다만 잘못은 안 했으니 사과하지는 않겠다는 자세다. 그러고는 힐끔대며 말을 붙이려는 모습이, 영중에겐 헛소리를 시작할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네가 이름 적는 게 더 싫어.”

그 한 문장 이래로 진설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전영중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침묵. 진설하가 유리공에 던져넣은 이름을 대가로 받아온 기름만이 방을 데우며 소리를 냈다.

시끄러운 건 영중의 머릿속 뿐이었다. 무슨 뜻인데. 정말로, 그게 무슨 뜻인데. 단순히 내가 죽는 게 싫다는 말이야? 네가 죽으면서까지 나를 살리고 싶다는 의미야? 아니면 낙관적으로 생각해서, 우승자의 영광을 나한테 뺏기기 싫다는 거야? 만약 내가 내일 호명된다면, 네가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망설임없이 자원할 수 있어?

“서라.”

“응.”

영중이 발음을 뭉개서 불러도 설하는 그저 조용히 대답했다. 이러면 또 나만 쓰레기지. 전영중은 문득 생각한다. 너는 나를 계속 한심하게 만들고, 또 미련하게 만들고, 결국 멍청하게 만드는데. 너는 내게 뭐고 나는 또 무엇인가.

“내일, 추첨식 끝나면….”

바람이 불어올 때면 진설하는 옷을 껴입고 달려 나왔다. 영중이 보이면 바로 붙잡고는 같은 얘기를 수십 번째 반복했다. 영아, 오두막이랑 마을의 바람 소리는 달라. 건물 때문이야. 바람이 노래하는 건. 사람들이 움츠려있을 때 진설하 만큼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제게 말했다. 그건 영중의 유일한 특권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유일한 김에 너에게도 유일했으면 좋겠다.

“그냥 같이 살까….”

중얼거림에 가까웠으나 말끝을 흐리지는 않았다.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나왔지만 부러 숨기지는 않았다. 애정이지만 친애는 아니다. 분명하나 애매했다.

무슨 뜻일까. 진설하는 영중을 바라보았다. 더 파고들지 않았다. 내일 모든 것이 결정될테니. 작년, 저들보다 빠르게 사라진 친우의 이름을 떠올린다. 우리의 이름도 어떻게든 내일 사라지게 될테다.

영중의 말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것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떨리진 않았다. 죽는 게 무섭지 않은 걸까. 저는 뽑히지 않는다는 확신이 은연중에 생겼나. 아니면, 혹여나 죽는다 해도, 네가 있으면 괜찮은 걸까….

생각을 멈췄다. 여기서 더 이어진다면 추첨식의 결과에 순순히 승복할 자신이 없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