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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로태] 반려 강아지

반려 강아지는 파양이 안 되세요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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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말이지만 예쁨 받는 삶은 익숙하다. 그것은 그가 한태서로 남아 있는 한 평생 이어질 것이기도 했다. 민증도 나오지 않을 나이엔 아버지로부터 예쁨 받았고 아버지께 반항하기 시작할 무렵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예쁨 받았다. 비싼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탔다. 차고 넘칠 만큼 용돈을 받아 사치를 부렸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만끽했다. 지나치게 재롱 떨면 광대밖에 되지 않으니 적당히 새침하게, 너무 튕겨대면 진절머리 낼지도 모르니까 상황따라 융통성 있게. 그의 아버지는 완벽한 교육과 통제를 원했기에 납작 엎드려 예뻐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채팅창 너머의 다수는 달랐다. 한태서에겐 그것들을 잘 조율해낼 센스가 있었고 실제로 여태 실수한 적이 없었다.

하루에 수천만 원을 벌었다. 남들은 하루에 십만 원이라도 벌려고 아등바등하는데 그는 자리에 앉아 두어 시간만에 수천만 원을 쓸어모았다. 한 끼 먹을 돈이 없어 이천 원 남짓한 삼각김밥을 사 먹는 사람이 있는 걸 앎에도 수십 만원을 기꺼이 입가심용 음료로 태웠다. 패션처럼 자동차를 바꿔 타고 구두를 골라 신었다. 디자인이 질린다는 이유로 삼천만 원짜리 시계를 서랍 구석에 처박았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소비하는 삶이었다. 소모되는 삶이었다.

즐거울 일 없는 애완 강아지의 인생.

한태서는 무엇이 부족한지 몰랐다. 그는 금전적 부담에 시달린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으레 겪는 성적에 대한 부담도 겪어본 일 없었다. 내밀한 친구는 없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어울리는 데 부담을 느낀 경험도 없었고 외모의 경우 차고 넘치기만 했다. 즐겁지는 않지만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니던가? 한태서는 진실로 그렇게 믿었다. 인터넷에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판을 치고 모두가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삶을 사는 듯 보였다. 한태서의 삶과 같았다. 물론 한태서에겐 돈이 있었지만, 딱히 즐겁지 않게 사는 게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냥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람은 자신의 사고대로 살아간다.
한태서는 즐거울 일 없이 살아왔다.
또한 살아갔을 것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는 독특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성까지 붙여도 독특했지만 성을 떼어내면 더 그랬다. 로지(Rosy)라니, 로맨틱한 이름이지 않나? 비록 한태서의 삶에 로맨스 같이 거창한 건 없었지만 미디어로부터 학습하는 건 있었다. 자식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다니 어지간히 딸을 예뻐하는 부모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예쁨 받는 애 치곤 까탈스러운 성격에 미묘하게 가시를 세우고 벽을 치는 듯했지만, 뭐, 그런 사람도 있겠지. 저 같은 이도 있는데. 한태서는 사람의 다양성을 너그럽게 수용했다. 넌 그렇구나, 난 이래. 부러 플러팅 섞인 말을 던지고 상대가 응수해오는 것을 보며 웃었다. 회상하기로, 그때까진 나름의 유흥이 있었던 것 같았다.

변화는 한 순간이었다. 한 송이가 피면 순식간에 넝쿨 전체의 장미가 만개하듯이, 노을 지는 시간이 되면 하늘이 빠르게 붉게 물들듯이, 그는 순식간에 집어삼켜졌다. 실로 오랜만의 당황스러움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뭘 해야 하지? 채팅창을 내려다보며 눈만 깜박였다. 바보 같이 얼어붙어서는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거렸다. 우왕좌왕하다 한 번 놓칠 뻔한 이후로는 꺼릴 것 없이 들이박았다. 새 직업을 가지려 공부를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예쁨 받던 삶을 내던지고 한다는 게 고작 바텐더라니. 교재를 주문하는 내내 진지했다는 점이 웃겼다. 한태서, 진심이야? 5살이나 어린 여자애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막 나간다고? 아버지껜 어떻게 설명드릴거야? 설득할 자신은 있나? 바보 같아, 그 애가 널 예뻐하길 관둔다면 어쩌려고. 그렇게 수없이 중얼거리던 끝에 한 일은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따위의 문장 하나는 보고 웃는 거였다. 등신 머저리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그 등신 같은 일을 하며 기대감을 느꼈다. 네가 알면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해줄까? 평생 예쁨 받으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칭찬해주는 그를 상상해보니 있는 줄도 몰랐던 갈증이 사라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달았다. 그가 저를 예뻐해주기만 한다면 그를 위한 애완 강아지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예쁨도, 불특정다수의 예쁨도 필요 없었다. 돈이며 사치품이며 다 없어도 좋으니 단지 그에게 예쁨 받고 싶었다. 미래를 향한 기대를 심어주는 그에게,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그에게. 난 너에게 칭찬 받고, 예쁨 받고, 그리고, 그리고……,

사랑,
…받고.

욕망을 자각한 그 찰나가 전환점이었다. 예쁨 받던 한태서의 인생에 '사랑'이 끼어든 순간이었다.


*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다음은 뻔한 이야기지. 애완 강아지는 무슨, 절대 만족 못해! 난 반려 강아지가 될 거야! 하고 우다다다 달려갔잖아. …그날 내게 달려온 건 자기였지만."
"그럼 태서 씨가 운다는데 어떻게 안 가요? 당장 보러 가야지."
"우는 게 예쁘니까?"
"네, 예쁘니까."


사락, 기타를 쳐 끝에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태서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보기 좋은 이마 위로 가닥가닥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넘겨주자 태서는 마치 그 손길이 햇살이라도 된다는 양 지그시 눈을 감으며 웃었다. 기묘한 천진함이 배어 스물여덟보다 어려 보이게 만드는 웃음이 얼굴 가득 스며들었다. 그가 애교부리듯 고개를 젖혀 손에 기대자 로지가 킥킥 웃으며 매끄러운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그가 엄지로 눈가를 쓸자 마치 명령이라도 들은 양 눈꺼풀이 열렸다. 엷은 금빛을 띤 눈이 기쁨과 행복, 로지를 담아 반짝였다. 자기야, 우리 로지, 평소보다 더 눈부신 것 같네? 제가 원래 좀 눈부시긴 하죠. 으응, 그치. 우리 자기 눈부시지. 그치만 역시 예쁨 받으려 애쓰는 태서의 노력을 좀 봐줬으면 좋겠달까? 태서를 마구 귀여워해줬으면 좋겠달까? 능청스러운 어조에 로지가 장난치듯 웃었다. 뭐예요, 그게.


"설마 예쁨 받기만 하고 싶은 건 아니죠?"
"당연하지, 사랑도 줘."


태서가 냉큼 엉겨붙자 로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넘어가주었다. 소파에 뒤엉켜 즐겁게 장난치는 그들의 위로 오후의 햇빛이 살랑살랑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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