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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이안] Coram Deo! 1

그분의 총아寵兒

Nebula by 소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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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기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이 한 몸 아량으로 포용해주시어, 사랑해주시어, 또한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시어,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존재하게 하소서. 눈을 가리는 악마의 세욕을 떨치게 해주시옵고 또한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주시옵고 나로 하여금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제가 우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잘못을 꾸짖어 우자가 당신의 아들로서 태어날 수 있게 용서할 힘과 의지와 사랑을 주소서.

"……."

신이여, 기도합니다. 태어난 죄로 이곳에 매달린 우자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그의 더럽혀진 마음을 정화하여 주시옵고, 마침내 그가 새로이 태어날 수 있게 하소서. 죄인은 다만 존재하는 것이 악이라, 그 모든 죄를 당신의 뜻으로 밝혀 스스로 죽을 깨달음을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딸아들에게 보다 깊은 희망과 의지와 등불을 하사하소서.

"……."

신이여, 기도합니다. 참회를 허락하시옵소서. 죽음을 허락하시옵소서. 희생을 허락하시옵소서. 우자의 사멸이 고귀할 것을 간절히 바라노니, 신이여, 부디 죄인을 매달아 뜻을 밝히소서.

"……."

아아, 신이여…!

*

휩쓸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대로를 달리던 마차가 급히 정거하며 몸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반사적으로 손을 보호하려 했으나 무의미한 짓이었다. 대로엔 사람이 많았고 종교적 갈등이란 것이 으레 그러하듯 민간인들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 팔을 어딘가 세게 부딪쳤는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로서는 그게 더 무서웠다. 아파야 하는데 아프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고칠 수조차 없는 것 같았다. 마차에서 튕겨나오며 부러진 다리가 맹렬히 아프다는 점이 팔의 무통증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얼마나 다친 거지? 사람들의 비명이 귀를 찌름에도 그의 시선은 왼팔에 꽂혔다. 시퍼렇게 죽은 피부가 무섭도록 부어오르고 있었다. 만져도 감각이 없었다. 눌러도 아무렇지 않았다. 혼란 한가운데서 느낀 짧은 공황을 끝으로 의식이 끊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본 목적지였던 황궁이었다. 태의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늙은 남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들여다보며 침통해 했다. 미안하네, 이안 경. 내 힘으로는 이게 전부였어. 폐하께서도 경의 부상에 매우 상심하시었고……. 그 뒤로 이런저런 말이 들려왔으나 무엇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 소리를 놓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얕은 이명만이 울려 그 외의 모든 소리를 갉아먹었다. 모든 게 흐렸다. 마치 판결처럼, 그에게 더 이상 소리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결말이다. 종말이다. 이 상황엔 재고 여지를 구할 재판장도 없었다. 한순간에 양친을 잃은 것과 같이, 그는 이번에도 한순간에 제 팔을 잃었다. 잘라내지 않음에 기뻐해야 하는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가. 오래 전과 마찬가지로 신의 이름을 부르짖어봤자 그의 팔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는 새파랗게 맑은 하늘 아래서 침묵했다. 시들지언정 저물 줄 모르던 은빛 눈동자가 꺼지고 늘상 자유롭게 바이올린 활을 들던 오른팔이 붕대 감은 왼팔을 붙잡았다. 황실에서 내어준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간 그는 칩거를 시작했다.

황제의 명을 받은 태의가 주기적으로 들렀다. 태의는 솜씨 좋은 치유신관을 만나게 된다면 팔을 낫게 할 수 있으리라 말하며 신전이나 성당 따위를 둘러볼 것을 권했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헌금을 끌어모으는 황도의 신관조차 손을 쓰지 못했는데 다른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시장된 거나 다름없는 마법이라도 붙잡을 만큼 간절했고 조금씩 팔이 움직인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꼈다. 들지 못하던 물컵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아픔에 잠을 설치지도 않았다. 그는 황제가 친히 내려주었다는 귀금속과 돈을 챙겨들고 한평생을 살아온 저택을 나섰다. 엄선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뒤를 맡기고서 오직 팔의 치료만을 보고 황도를 떠났다.

그는 황도와 가까운 도시부터 돌아다녔다. 성당이며 신전이며 빠지지 않고 들러 팔을 치료하려 했다. 그러나 허탕, 허탕, 또 허탕뿐.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치유신관을 보기 어려워지고 그들의 신성력 역시 생채기를 겨우 치유해낼 정도였다. 길이 없다는 좌절감이 파도처럼 그를 덮쳐왔다. 어느 시점부터 회복을 멈춘 왼팔이 그의 불안감에 부채질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지고 희망은 집념으로 변질되어 그의 몸을 이끌었다. 걸음이 느려지고 의지가 삭풍에 깎여나가던 나날, 어느 겨울, 절망을 뒤집어 쓴 그는 어느 마을에 도달했다. 중앙도 아니고 신전도 없어서, 오래 전 마을 사람들이 돈 모아 지은 성당 한 채만 남아 있다는 낡은 마을이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그런 마음이었다. 실제로 그는 제국의 모든 신전을 다 가 보았다. 사제가 있다는 성당도 모조리 들렀다. 이제 남은 곳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이비들의 성당, 혹은 사기꾼들의 거처, 그리고 이교도들의 은신처 정도였다. 이곳이 마지막 남은 예외일까. 수 년 전 버려져 사제 한 명 없다는 이 성당이 예외라니.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팔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옛적에 잃었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낫게 할 힌트만 얻어도 족했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었지만, 제법 번성한 마을 사이에 있어 여관의 시설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짐을 풀고 곧장 마을 외곽에 있다는 성당으로 향했다. 여관의 주인은 젊은 청년이 뭐 그런 데를 가냐는 둥 말을 붙였으나 그는 장단 맞춰줄 기분이 아니었다. 흙바닥이나 다름없는 길을 지나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향했다. 노을 지기 시작한 하늘이 그의 길을 붉게 덮었지만, 그는 성당을 모조리 뒤집어 힌트를 찾아낼 생각이었기에 밤이 되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 위로 뿌리를 드리운 나무들을 지나치며 숲의 깊은 곳으로 향한 그는 이윽고 거미줄 쳐진 나무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웅대하고 보잘 것 없는 문을 앞에 두고 그가 탄식했다.

"……하."

성당은 작았다. 창문 일부는 깨져 있었으며 나무문은 바스라지기 직전이라 철제 장식이 덧대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문의 역할마저 하지 못했을 듯싶었다. 돌벽엔 거미며 개미가 기어다니고 작게 난 구멍으로는 쥐가 돌아다녔다. 문 위로 조심스레 손을 올리자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뭇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이딴 게 마지막이라니. 차라리 황도로 돌아가 치유신관들의 신성력을 뒤집어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는 행하려는 것의 마지막에서 돌아서는 성격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가 낡은 성당의 문을 연 것은 제 고집스러운 성격 탓일 뿐이었다.

끼, 이익. 녹슨 경첩이 삐걱이며 방문자를 환영했다. 문이 그의 어깨 너머로 닫히고 구두가 먼지 쌓인 바닥을 밟았다. 오래 묵은 먼지 냄새와 희미한 풀 냄새가 공기 중을 떠돌아다녔다. 흐릿하게 바람소리가 들리고 풀잎이 누우며 빗소리를 부르짖었다. 깨진 타일 사이로 삐져나와 자란 잡초, 부스러지고 망가진 성당의 의자들, 제일 안쪽의 조그마한 단상, 그 위에 걸린 신의 표식과 양 옆의 녹슨 촛대. 성당에 들어와서 눈에 담을 것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성당에 발 디딤과 동시에 한 곳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노을에 흠뻑 젖어 따뜻해보이는 엷은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내리감은 눈꺼풀 아래로 촘촘한 속눈썹이 미약한 그늘을 내렸고 틈없이 다물린 입술은 연한 분홍빛으로 생기가 돌았다. 흰 셔츠가 몸을 부드럽게 감싸 이따금 바람에 살랑였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것이 유행 지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았다. 셔츠 아래로 쭉 뻗은 바지는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그 끝에 드러난 맨발이 성당의 분위기와 미묘하게 어우러져 신비스러움을 더했다. 그리고, 신의 조각가가 빚은 듯한 아름다운 얼굴. 사람을 현혹시켜 마땅할 그것은 깨진 유리창 건너편에 '걸려 있었다'.

눈이 아득해지도록 쏟아져 들어오는 노을빛에 팔다리가 꿰인 채로.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얼어붙은 듯 멈춰섰다. 경악도 감탄도 거대한 충격에 밀려 스러졌다. 오래 전 사라졌다는 마법인가, 하는 의구심보다도 이 광경에서 느껴지는 몽환적인 감각이 그를 흔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사람이 빛에 꿰여 매달려 있다니. 그것은 죄인처럼 매달린 주제에 성스러워 보였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성당에서 그것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완성된 채로 존재했다. 그 이질감에 그는 찰나 이 성당이 그것을 위해 세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만한 것이었다. 실로 그럴 만했다.

사박. 그의 걸음이 그것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 성당 바닥을 덮은 흙먼지를 밟으며 그것에게로 간 순간이었다.

정물처럼 닫혀 있던 눈꺼풀이 열렸다. 노을에 젖은 눈동자는 모든 것이 타고 남은 재의 색이라, 그 눈에 담긴 것이 무엇이 되었든 오롯한 잿빛으로 반사되었다. 아득한 상실과 포기, 절망감, 체념이 회색 홍채에 묻어났다. 그것의 눈동자가 아래로 향했다. 모든 것을 무감하게 응시하던 눈동자에 그가 스몄다. 일순 눈동자에서 빛이 번뜩였다. 밝게 튀었다 사라진 빛은 착각이라 생각하기 쉬웠으나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 그것은…….

"네가 그의 총아인가?"

증오, 간절함, 투지, 절망감.

그 모든 것.

"대답해. 네가… 네가 그의 아들이냐 물었어."

던져진 물음에 뒤섞인 감정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버거웠다. 그리하여 그는, 차이안은 그것의 의도를 지레짐작하기보단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한 문답을 택했다. 왜 이곳에 매달려 있는지, 네가 묻는 '그의 아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지. 물어볼 것은 충분히 많았고 이제 막 하늘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남은 밤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마음 먹은 차이안에게 밤은 길었다. 첫 질문을 정한 차이안이 입을 열려는 순간.

쿵. 노을빛에 매달려 있던 그것이 추락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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