調丹

모든 말은 한없이 가벼워 보이게,

로그 by 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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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우리의 대화는 과거에 갇혀만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앞으로 나아갈 의지도, 마음 속에 간직한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그저 수레바퀴처럼 뱅뱅 돌며 지난 날의 추억만 상기하지. 지난 날의 경험은 쉬이 물어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다. 그런 와중에 불안정한 기억에 저 좋을 대로 환상을 덧씌우는 꼴이란! 주란은 서향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을 긋는다. 타인에게는 최소한의 관심만. 관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들어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것은 거친 세상살이 하며 진작에 배웠다. 이름을 기억해 봤자 부르면 어디서든 돌아와줄 것도 아니면서. 얼굴을 기억해 봤자 만나지도 못하는데 괜히 그립기만 하지…. 그러니 주란은 다시 입을 연다. 실없는 소리로 공백을 메꾸는 것은 제 몇 없는 특기 중 하나였으니.

“아이, 참. 기특하기도 하지. 꽃님이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부러워지려 하는걸. 나도 어디서 살짝 긁혀오면 요 섬섬옥수 고사리 손으로 보듬어주나? 내 꽃님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둔해도 너무 둔한 것 아닌가 몰라.”

습관처럼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대는 것은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네게 응석 부리고 싶다가도 가슴 한 가운데 뚫린 깊은 수렁에서 거리를 두라며 아우성쳤다. 그러니 말은 이렇게 해도 네가 한순간 사라진다면 찾지 않을 것이다. 찾지 못할 것이다…. 구태여 찾아내어 제가 네게 쉽게도 버리고 떠나갈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라니, 제 자신에게 너무나 가혹한 짓이지 않은가. 가족이고, 친우고, 그 누구던간에 영원히 제 옆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일진데 그걸 인정하기가 왜 그리도 어렵던지. 그러니 이것은 농을 한꺼풀 씌운 진담이다. 본인조차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언정.

“여행은… 글쎄. 혼자서 돌아다니는 건 외로워서 싫어하는지도…. 내가 보기보다 겁쟁이어서 말이다. 그러니 이리도 식견이 좁을 수 밖에, 후후. 그래, 꽃님이가 다녀왔던 곳 중에 기억에 남는 곳이 있으면 알려주지 않겠니? 내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 들러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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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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