調丹

蘭香

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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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이 총총해서, 밤공기가 서늘하니 기분 좋아서― 따위의 감성적인 변명은 더이상 통하지 않으리라. 제 눈앞에 선연한 별님이 있는데 주위에 널린 풍경 따위를 담을 여력이 있을 리가. 주란은 그 누구보다 이성적인 상태였다. 그간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도 아직도 부여잡을 이성의 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러니 그 실날같은 이성을 붙잡아 겨우 내뱉은 한 마디란 정말로 볼품없기 그지없었다. 마치 깊은 수렁에 서서히 잠겨가던 중에 내려온 동앗줄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붙잡는 것 마냥 추하고 이기적인 날것의 감정이 도사려서는….

서향아. 그저 네 이름을 부르고서는 맑게 웃는다. 무엇이든 전부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전부’에 자신은 당연하다는듯이 제외하고서.


가족이라는 것은 참 병적인 구석이 있지. 제 뼈와 살을 깎아 서로를 부양하고, 무슨 짓을 저질러도 서로를 보듬어주는 피로 맹세한 견고한 울타리 안의 무법지대…. 그래, 이 역겹고도 끔찍한 역할놀이를 나는 뻔뻔하게도 네게 제안한 것이다. 그 질기고도 케케묵은 연 하나 끊어내기 위해 한 번 죽기까지 했으면서도 빌어먹을 정신머리는 아직 고쳐지지 않은 모양이지. 자신은 네게 부채감이자, 연민의 대상이자, 아픈 손가락이 될 것이며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도 너는 제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요구였다. 그러니 강가에 종이배 떠나보내듯 순순히 떠나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꼭 제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가족이라는 사슬에 지독히도 얽매이길 바라면서….

“네가…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가족이 되자고 한 게 아니야. 네가 훌쩍 떠나버린 그 곳이 저승이라도 쫓아갈 각오로 그렇게 말한 거란다. 도망갈 기회는 지금 뿐이니 잘 생각해보련. 함께한다고 한 이상 우린 저승까지도 함께 가는 거야. 서로의 거짓말로 몇 번을 속든 용서해주고, 이 앞이 가시밭길이더라도 서로를 안아들고 맨발로 걸어가야 하는 거야…. 가족이라는 건, 그런 거야.”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우리는 필연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상처가 될 것이다. 잔뜩 생채기를 내면서도 부둥켜 안고 상처가 곪아 터질 때까지도 겉으론 멀쩡한 척 웃어보일 테지. 그런데도 너와 함께하는 미래가 기대가 된다니, 참 정신이 나가도 제대로 나간 모양이다. 무심코 마주한 자신의 내면은 추악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어 꽁꽁 숨기고 싶은 동시에, 네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기도 했다. 그러니 주란은 티끌만치 아주 조금만, 그러나 평생 살아온 중에 가장 솔직한 태도로 본심을 내비친다.

그러니 어서 평생 날 견뎌주겠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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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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