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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오페라 락 X 살리에르

underwater by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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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을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곧 나의 모든 충동과 욕망의 대행자이고, 실재하지 않는 환영이며 잘못을 부추기는 사념임을 알기에. 피하고 부정하는 것만이 옳다고 여겼었지요. 그러나, 이제…… 더는 당신이 두렵지 않아요.

 곧은 시선이, 거울에 비친 청년을 향한다. 맑은 암갈색 눈동자는 깊이를 증명하듯 흔들림 없다. 뒤편에 홀로 선 그는 침묵한다. 충분히 황홀하지 않은 응시라고 생각하면서. 짐작할 수 없는 표정들이 투명한 낯 위로 스쳤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적막 가운데 살리에리가 반추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도, 허황된 욕심도 아니다. 다만 청년의 경직된 얼굴이 스스로의 어린 시절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뿐. 그 때의 일들은 얼마나 아득하게 느껴지는지.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대도 오래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내저을 수 있는, 그런 오래된. 닫힌 과거를 버리는 일은 또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잘도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높낮이도, 흔들림도 없는 청년의 목소리.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이토록 얄팍한 거리감을 누구 하나가 먼저 깨뜨리지 못해서. 둘은 불명확한 의심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실현되지 않는 가능성을 유보하면서. 탁한 은판 너머에서 맞부딪히는 일방향의 시선. 살리에리의 침묵이 연장되는 사이 청년으로부터 한 마디가 더 떨어져나온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 말을 들어 주시는 건가요? 그 은근하고 싸늘한 기대가 내포하는 것은 함께하는 영광이요 완벽히 완성되는 음악이겠으나, 살리에리는 조용히 그것을 부정했다. 말갛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이그러지는 것을 본다. 다음 뱉어질 문장에 필요한 것은 단 몇 초간의 고요뿐이다.

 “당신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곧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체 없는 어둠의 속삭임은 겁낼 만한 것이나, 거울 속에서 메아리치는 혼잣말에는 아무런 위험도 없듯. 익숙한 훼방꾼이 무서워 숨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단단한 목소리. 그러나 그것이 채 완전히 굳어지지 않았음을 질투는 쉬이 알아챌 수 있다. 꽉 말아쥔 손아귀의 힘이 이전과 같음 역시도. 의뭉스러운 표정과, 동시에 가늘어지는 그의 눈을. 살리에리는 말없이 바라본다. 과연 그가 이번에도 순순히 사라져 줄까, 생각한다. 이번의 연멸(煙滅)은 종언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질투는 언제나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존재였으므로.

 지속되는 적막. 청년은 잠시 정지해 있다.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곧은 시선이 깊게 박힌다. 그 안에서 타오르는 청염은 꺼질 길이 없고. 고집스레 다물린 입이 마침내 미세하게 달싹이기까지는 다시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방식으로 발성하지 않으면서도, 입술을 벙긋거려 그를 흉내내는 친절함이란. 언제나 저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쏟아내던 독단과도 닮아 있는 것이어서. 살리에리는 끝내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 선명하다. 이제야 나를 알게 되셨다고요. 이것은 슬픔도, 분노도 아니다. 어쩌면 허탈함이나 쓸쓸함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그래서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엇. 그렇기에 어떤 대꾸도 뱉어 놓을 수 없다. 질투는 살리에리의 어깨너머로 비치는 표정들을, 이름모를 것들로 가득 얼룩져 더는 깨끗하지 않은 얼굴을 본다. 돌이킬 수도, 걷잡을 수도 없이 흘러가는 마음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물러서는 수밖에는 없다. 그것이 못내 아쉽고 비참했던 시절은 이미 먼 옛날이 되어, 이제 남은 것이라곤 단지 무감한 흉터뿐.

 다시 한참의 인고 끝에, 살리에리가 기어코 눈을 뜬다. 어두운 거울에 맺히는 상은 그 혼자뿐이다. 뒤돌아 확인해도 마찬가지. 질투는 자취를 감추고 없다. 살리에리는 무너지듯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올려다본 거울 안은 텅 비어 있다. 마치 이 모든 일이 꿈에 불과했던 것처럼. 창밖에 어스름이 깔렸다. 희끄무레한 빛으로 물드는 시야. 뒤늦은 아침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2

 

 모처럼의 휴가가 동반하는 안식과 나태는 마치 은퇴 후를 미리 겪어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단 사흘. 길지 않은 휴식이 될 테지만 살리에리는 새벽부터 마차에 실려 궁으로 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얼마만인지 모를 낮잠에서 깨어난 초저녁, 이른 식사를 챙기러 나온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요리의 절반을 물리고 앞으로도 그리하라 지시했다. 디저트 역시 한두 종류면 충분하다 일렀을 때 사용인들은 몹시도 의아해했으나 그들은 굳이 반문하지 않았고, 살리에리도 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기행에는 늘 뒤따르곤 하던 이명도 없었다. 못내 뿌듯한 심정으로, 그는 식사를 깔끔하게 마치고 입가를 닦아냈다. 기묘한 해방감이 뒤따랐다.

 그는 또한 서랍 안에서 긴긴 잠을 자던 일기장을 다시 끄집어내 기록하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오래된 노트에 불과했으나 누구보다 신실한 친구이기도 했으므로, 묻어두었던 생각들을 죄 붙잡아 펼쳐 놓는 일은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한 전환이 되었다. 비록 두 번은 읽어보지 않을 페이지라고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어떤 말이든 적어내릴 수 있었다. 결코 입밖으로 내지 않을 상념을 종이 위에 휘갈기며, 살리에리는 누구에게 평가받을 필요가 없는 삶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영 손에 쥘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의 윤곽을 더듬는다. 생각만큼 대단치 않은 동시에 생각보다 놀라운 감각이었다. 이런 어떤 자유 속에서, 그는 음악에게 쾌락을 구걸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것은 전생의 일처럼 멀고 희미하며, 심지어는 무가치하다. 이런 평범한 삶도 나쁘지만은 않을 터인데. 왜 불가해한 것에게서 의미를 찾으려 애썼던 걸까.

 살리에리는 침상의 촛불을 응시한다. 작게 일렁이는 광휘는 언제나처럼 위태롭다. 이런 감상에 젖어들 때면 꼭 틈입해 방해를 놓곤 했던 이명은 찾아올 기미가 없다.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허전한 감각이 놓아 보낸 음악에 대한 것인지, 혹은 사라진 그림자가 보내는 신호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막연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도 없어서. 비로소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해졌다고 느꼈건만. 그 해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금세 추방으로 뒤바뀌고 만다. 미약한 불빛으로 눈앞이 어른거린다. 문득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 그 끔찍한 감각을 잊기 위해 습관적으로 저지르곤 했던 일들을. 음악에 스스로를 파묻던 지난날을 차례대로 떠올려야 했다. 그제야 낯설고 또 익숙한 사람, 모차르트의 생각을 한다. 충분히 오래되지 않은 죽음을 곱씹는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의 속내를 헤아리려는 노력은 소용 없는 것이겠으나. 살리에리는 그의 부재에 안도하는 스스로를 혐오하는 동시에, 거대하고 절대적인 죽음에 압도당한다. 가지고 싶다 생각했지만 한 번도 진정으로 원한 적 없는 그것. 언제고 결정적인 순간에 뒤돌아 도망치기 바빴던. 살리에리는 그 공포를 기어코 움켜쥔 모차르트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완결이 내심 부러웠다.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흔들리는 불빛을 오래 지켜보지 못한다. 숨을 작게 내쉬었다. 훅, 꺼지는 촛불. 어둠 속에 짙게 흩어지는 연무. 살리에리는 펜을 내던지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무겁고 깊은 잠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휴가를 만끽할 여유는 충분치 못하다. 기한 내에 완성해야 할 협주곡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하루를 종일 자느라 낭비했으니 남은 이틀은 작업에 매진해야 했다. 이미 절반이 조금 넘게 완성해두었으니 남은 작업만 잘 갈무리하면 되는 일인데, 살리에리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깃펜의 끄트머리만 질겅질겅 씹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협주라는 것에 대해 묘연해진다. 선율은 결코 계시처럼 내려진 적 없는 것. 서로를 보완하며, 받쳐 주며 뒤엉켰다 풀리기를 반복하는 그 연쇄를 살리에리는 어떻게 표현해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전에 썼던 곡들을 죄 헤집어 보아도 낯설고 어렵기만 할 뿐. 곡을 빚어내던 감각은 이미 희미하다. 그는 음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더이상 알 수 없었다. 뭇 사람들이 바라는 음악이란 그럴듯한 형식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껍데기를 만들던 방식조차 잊고 만 지금이라면. 선율 속에 무엇을 담거나 담지 않는 것은 이미 논외의 일이 아닌지. 이제 음악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써 기능하는 음악이라니, 이 얼마나 불경한 생각인가!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 음표를 집어삼키던 날들의 비참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럼에도 음악이 제게 늘 목적 아닌 수단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허나 지금 살리에리의 머릿속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이미 예술적 영감을 붙들려는 시도가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마감 기한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다. 하필이면 황제의 측근이, 그것도 자제의 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촉탁한 작업인 탓이었다. 실패한다면 잔금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평판에까지 타격이 있을 게 분명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귀족은 예술에 아주 조예가 깊은 자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이미 거금을 받고 수락한 일을 엉망으로 해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도무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살리에리는 단 한 마디의 멜로디도 새로 찾아내지 못한다.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막연해진다. 텅 빈 오선지에 무의미한 얼룩이나 흘려넣고 있던 그가 마침내 펜을 내려놓은 것은, 피아노포르테 앞에 앉은 지 고작 한 시간이 채 못 된 때였다. 살리에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대신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쉬이 떠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음악의 성질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력감이 전신을 휩쓴다. 버렸으나 버려지고 싶지 않은 모순된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의미를 잃은 것을 붙들고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이제라도 인정해야 했다. 숭배해온 것이 음악 아닌 세상의 관심임을. 음악은 스스로 일궈낸 성공의 증표인 동시에 허울뿐인 명예를 지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과, 일정량의 자유를 포기해야 할지언정 정상에 서고자 하는 야심을 버릴 수 없음 역시도. 결국 이제껏 바라마지않던 것은 그의 질투가 부르짖던 대로 무한한 영광인 것이 아니던가. 그것도 대가 없는! 어차피 혼자 힘으로 이뤄낼 수 없는 일, 딱 한 발짝만 못이기는 척 물러나면 모든 것이 마법처럼 이루어지게 될 텐데. 이 유혹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일생을 그에게 얽매여 부자유한 삶을 살게 되겠지. 살리에리는 다시, 이 모든 번뇌가 닿지 않는 곳으로 진작 떠나간 이에 대해 생각한다. 이미 자유롭게 된 자에 대한 질투는 불안을 양식 삼아 자라난다. 걷잡을 수 없는 고통. 수순대로 자신을 돕던 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모든 괴로움도, 안식도 결국 그가 키워내는 열매다. 무조건적인 헌신과 숭배에 가까운 애정을 쉬이 내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애써 변명하지만. 바라는 모든 것을 제게 주겠노라 현혹하던 목소리의 온도를 떠올린다. 깊고 서늘하던 그 음성은 얼마나 아늑한 어둠이었는지. 기실 살리에리는 그와 함께하는 영광의 실현 여부를 의심해본 적 없다. 다만 얄팍한 자의식에 불과한 존엄을 지켜야만 했으므로, 스스로 해내고 말 것이라 합리화했을 뿐. 질투는 자신의 모든 억눌린 욕망이요, 또한 그로부터 기인하는 부정(不淨)이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일은 너무도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몹시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으며, 동시에 사람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살리에리에게 욕망하는 행위란 그 자체로 스스로를 해치는 독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모두 극복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언가 바라기를 그만두었으니, 더는 휘둘릴 일도 없을 터였다. 따라서 추한 면면들을 모조리 도려낸 지금이라면. 마침내 이 속박에서 탈피해 미美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손 안에 남아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

 스스로 도려냈다고 믿었던 것은 다름아닌 제 자신이었음을. 살리에리는 이제야 깨닫는다. 대체 무엇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단 말인지. 결코 평범하기를 바란 적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스스로 완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일을 숭고한 음악을 위해서라 가장하지 않았던가. 음악을 하고 있는 한 그는 무언가 대의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때에만큼은 하찮은 미물이기를 그만두고 신의 소명을 대행하는 신성이 될 수 있었는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잃은 지금, 살리에리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수도 없는 일. 왜냐하면,

 오로지 당신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겠지요. 보다 느긋해진 청년의 목소리가 대답한다. 어깨에 슬며시 내려앉는 차가운 손을, 살리에리는 떨쳐내지 않았다. 절망과 희열이 얼룩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볼 뿐. 부분부분 생김이 좀더 선명하고 또렷해진, 마침내 성숙한 질투의 얼굴을 응시한다. 그 어지러운 시선을 질투가 기꺼이 받았다. 좀 더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뭐랄까, 마에스트로답네요. 그만 인정하세요. 받아들여요. 당신의 추한 욕망을. 그것이 곧 당신이라는 사실을. 부드럽게 달싹이는 입술. 쏟아져 온 몸을 적시는 서느런 음성. 살리에리는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다. 고작 협주곡 하나 때문에 굴복할 수는 없다고, 중얼거린다. 질투가 웃는다. 둥근 어깨를 쥐었던 손이 천천히 목께를 타고 올라가 마른 뺨을 감싸 쥐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발끝부터 옭아매는 듯 끈질긴 주시. ‘고작 협주곡 하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아시잖아요. 당신이 나를 버릴 수는 없어. 단호하게 씹어뱉는 발음. 언뜻 연민으로 보이던 시선이 분명한 증오로 물든다. 성마른 손길이 살리에리의 왼손목을 단단히 쥐어잡았다. 이것은 호소 아닌 질책. 나를, 알게 되었다고 하셨나요? 그래서 두렵지 않다고 하셨던가요?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달라요. 못 하잖아, 당신. 당신은 내가 될 수 없잖아.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당신의 대리인으로써 존재하는 겁니다. 짙은 그림자 아래에 선 살리에리는 망연해진다. 어떤 말도 쉬이 꺼낼 수 없다. 이토록 위압적인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간신히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솔직해질 수 없다면 차라리 그의 탓이라도 해야만 했다. 흔들림 없는 질투의 눈. 살리에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만져 본다. 느껴지지 않는 온도. 텅 비었던 낯이 끝없는 비참과 황홀로 뒤덮인다. 문득 물에 잠긴 것처럼 귀가 먹먹하다. 사방의 소리가 멀어진다. 여전히 미동도 않는 곧은 시선에 꿰뚫린 듯 숨이 막혀 온다. 엉망으로 이지러지는 풍경. 까무룩, 눈이 뒤집힌다.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고꾸라지는 살리에리를, 그의 질투는 말없이 바라본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먼 데서 울렸다.


3

 

 살리에리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종종 입궁해야 하는 때가 아니라면 굳이 침실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해지기 전에는 인기척조차 거의 들리지 않아 시종들은 문간에서 자주 귀를 기울여야 했다. 기껏 반으로 줄였던 식사조차 아예 거른 채 식물처럼 햇볕 아래에 놓여 꾸벅꾸벅 조는 것이 그의 낮의 전부였다. 그러나 빛이 사라지고 집안이 밤으로 얼룩지면, 살리에리는 이제 피아노포르테 앞으로 거처를 옮겨 오선지를 낭비하는 것이었다. 고작 촛불 몇 개에 의지해 써내리는 음악은 어느 때보다도 거침이 없고 자유롭다. 어떤 의식 없이도, 힘들이지 않고도 최선의 결과를 출력해낼 수 있었으므로. 그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환성과 찬사는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유능하다는 기분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이 된다. 마치 진정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감각에 사로잡힌다. 극약을 삼킨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질투는 본디 달콤한 것이다.

 살리에리는 제 곁을 맴돌며 악보 뭉치를 정리하는 청년을 넘겨다본다. 섬세한 손끝이 세어 넘기는 종잇장이 사그락대는 소리가 들린다. 곧 시선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고 옅게 미소지었으나 그뿐이었다. 침침한 낯 위에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악보 위로 되돌아가는 눈길. 살리에리는 문득 그가 부르짖던 것이 과연 함께하는 영광인지, 혹은 음악을 양분 삼아 연명하는 삶인지 알 수 없다. 주제넘은 생각이다. 금방 고개를 저어 흩어 버린다. 청년은 전부 알면서도 그저 묵과할 뿐. 오선 위에 어지러운 음표들을 갈무리하는 동작에는 끊김이 없다. 살리에리는 이제 그가 처음 나타났던 날을 떠올린다.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은 푸른색 아닌 밀밭의 황금빛이다. 모차르트. 마침내 질투를 불러냈던 그 천재를 생각한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삶도 없었을까. 무심하고 평범하게 흘러갔을 날들을 가만 상상한다. 견딜 수 없어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인생의 드라마틱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가, 또 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그러했듯 젤라스 역시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면. 그들이 갑작스레 나타났던 것처럼 또 갑작스레 떠나가 버린다면.

 남은 질투를 붙들어 놓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 죽음을 끌어들이는 일부터 포기해야 했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무엇도 버리지 말아야 했다. 살리에리는 제게 예정된 끝이 연극과는 거리가 먼 것이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무사히 성공했다는 낙인을 안고서, 누구보다 평범하게 늙어 죽게 되겠지. 피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이미 예정된 숙명이다. 또 한 번 그에게 졌구나, 생각한다. 그가 이기기를 원한 적 없다는 사실은 살리에리에게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침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묵묵한 질투가 함께한다. 밀리는 문의 무게가 유독 더하다고 느낀다. 커튼을 채 닫아 두지 않은 창가에 선다. 투명한 밤의 벨벳 위에 맺히는 빗방울들.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 미끄러져 부서지고 마는. 수없는 투신의 흔적이 창 위로 얼룩진다. 거울 대신 마주보는 것은 질투의 얼굴이다. 옛 자신과 닮아 있는, 그러나 깊이감 없는 말간 낯. 왜 그를 낯설고 나쁜 것이라 생각했을까. 발치에 매달려 있는 그림자가 해롭지 않듯 그 또한 마찬가지일 텐데. 그림자가 분리 불가능한 자신의 일부이듯, 그 역시…….

 그와 하나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지금껏 터부시해온 것을 하루아침에 받아들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질투는 스스로 감춰온 모든 비밀이었고, 숨겨진 욕망이었다. 영광의 빛이 환할수록 등 뒤에서 짙어지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 늘상 주변에 도사리는 이 위협을 감수할 수 있을까. 그와의 거래가 발각된다면, 그의 존재를 들킨다면. 그리하여 모두가 자신의 이 미쳐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러한 속내를 들여다본 듯, 질투는 손을 뻗어 살리에리의 젖은 눈가를 매만진다. 다시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게요. 이 얼마나 유혹적인 속삭임인지. 늘상 그를 떨쳐내고 싶어했으나 성공한 적 없듯, 그 역시 종종 도피하곤 했지만 완전히 떠나간 적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처럼 거침 없이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한, 그에게서 버림받는 일 역시 없을 것이었다. 살리에리는 마침내 포기하기를 택한다. 그에게 의존해야 함을, 타인의 관심에 매달려 살아야 함을 인정하기로 한다. 저를 다정히 감싸 안는 손길에 모든 삶을 내맡긴다. 그가 추한 욕망이라 일컬었던 것들을 직면하고, 또한 그 추(醜) 자체가 되어. 질투가 선사하는 거짓 아름다움을 기꺼이 입기로 한다.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만큼 간절해지기로 한다. 존재의 유지를, 그리고 또한 불안을 위해서.

 이것은 굴복이자 극복이라는 합리화. 태초부터 끌어안고 있었을 이 더러운 것들을 인정하고, 감히 신성을, 아름다움을 침범하여 그것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죽여 없애기로 하는. 그것의 행위자 아닌 경험자가 되고자 결단하는 순간.

 그러니 더는 두려움을 두려워할 필요도, 구분지을 필요도 없다. 호흡하는 일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것처럼. 이미 자신, 그 자체인 것에 대해 알거나 알지 않으려고 애쓸 이유는 없다. 살리에리의 눈꺼풀이, 누군가 감겨 주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닫힌다. 거친 뺨 위로 흐르도록 허락된 것은 단 한 방울의 눈물뿐이다. 살리에리는 주먹을 아프도록 말아 쥔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두렵지 않습니다.”

 대답은 얼마를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 문득 눈을 뜨면, 있어야 할 이는 그 자리에 없다. 아득한 빗소리만 끝도 없이 계속될 뿐. 공허한 밤의 노이즈만 방 안을 울린다. 

♪ 이하 간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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