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루/대협태웅] 그럼, 여러분.
Newspaper 01. 센도 아키라라는 남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말이 있다.
현 시점, 센도 아키라는 일본에서 가장 억울하게 연기를 피우고 있는 굴뚝 중 하나였다.
센도 아키라, 전격 은퇴?! 다음 시즌 재계약 무산. 팀 이적 가능성도 불투명해….
센도의 은퇴 뉴스가 다섯 번째로 신문에 실린 날이었다. 후, 하고 눈썹을 들어 올리면서 센도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이제는 연례행사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학 리그에서 뛰면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이 년에 한 번 꼴로 이런 루머를 들었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물론 뉴스는 오보였다. 그보다는 루머에 가깝다고나 할까. 다음 시즌에 대해 구단과의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외는 전부 기자의 창작이었다. 진실 하나에 자극적인 추측과 망상을 양념으로 곁들여서 그럴듯한 뉴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 신문사나 갖고 있는 기본 소양 중의 하나였고 이번에 그 메인 재료가 된 것이 하필 센도였을 뿐이다.
대충 읽은 신문을 적당히 접어서 툭, 하고 던져놓으려니 막 라커룸의 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람이 흠칫하고 몸을 굳혔다. 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었다. 아마 이 뉴스를 이미 읽었는지 센도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움직인다. 아, 쟤는 아직 모르는구나. 센도가 피식 웃으면서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쫄지 마. 나 화 안 났어.”
“쫀 거 아닌데요….”
억울하다는 듯이 투덜거리지만 목소리에는 한결 안도의 기색이 보였다. 곧이어 약간의 소요와 함께 몇 명의 선수들이 한 발 늦게 라커룸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보이는 주장과 신입의 모습에 익, 하고 찔끔하긴 했지만 지각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센도가 평소보다 유난히 일찍 나와 있었을 뿐이었다. 인사를 건네던 이 중 하나가 센도가 던져둔 신문을 발견하고 말을 붙였다.
“아, 캡틴. 올해는 좀 일렀네요.”
“최근에 센또뉴가 없었으니까.”
센또뉴는 뭐야, 이 자식들아. 센도가 한숨처럼 웃으면서 이상한 신조어를 내뱉은 후배를 을러댔다.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센도가 또 뉴스에. 다만 당사자 앞에서 당당하게 입에 올리는 꼴이 귀여우면서도 같잖았기 때문이다. 뒤에서만 쑥덕거리는 것 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센또뉴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신입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대화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저 녀석도 말수가 적은 것에 비해서 주변에 신경을 많이 쓰고 팀에 빨리 녹아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누군가를 닮은 것도 같아서, 센도는 친절을 베풀었다.
“너네만 아는 이야기 하니까 사토가 궁금해 하잖아.”
“아아~ 센도씨가 워낙 신문이나 뉴스에 자주 나오잖아. 그 이야기야.”
뭐, 태반은 그냥 루머나 가십이니까 다 믿지는 말고. 센도의 면을 세워주려는 듯이 덧붙이는 말에 신입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센도는 뉴스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가끔 고개를 내미는 은퇴 기사 외에 단골 손님은 가벼운 스캔들, 또는 월척 갱신이었다.
본인에게 불리한 뉴스라도 일단 공식입장만 한 번 밝힐 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 소소한 가십거리를 찾아헤매는 기자들의 입맛에 잘 맞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수많은 스캔들은 전부가 교묘하게 편집된 순간포착이나 오해였고 대부분은 하루이틀 정도 반짝 흥미를 끈 다음 정정보도와 함께 빠르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만 한번쯤 흥미롭게 시선을 보낼 만큼의 호감을 모으고 있는 잘생긴 스포츠스타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곤란하게도 사람들은 이성과의 스캔들을 무슨 업적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기자들은 이 미혼의 유명 선수에게 달라붙는 소소한 스캔들이 폐가 될 거라고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 나이가 스물아홉인데, 15살짜리 아이돌과의 스캔들은 사회적으로 좀 아웃 아닌가. 농구 경기를 제외한 화제로 마지막으로 신문에 이름을 올렸던 석 달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센도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센도의 나이 반토막이자 몸무게도 거의 반토막일-그보다 더 적을지도 모른다- 소녀와 거의 동시에 건물 입구로 들어서는 바람에 잠깐 문을 잡아준 것뿐이었는데 그 찰나를 사진으로 찍혀 신문사에 새로운 간식거리가 되어주었을 때는 아무리 센도라도 심장이 철렁했다. 누굴 범죄자로 보는 거야? 드물게 그때는 곤란한 티를 팍팍 내면서 강력부정 했었기 때문에 그래도 당분간은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러니 이제 이성관계가 아니라 다른 문제로 신문들이 슬그머니 떡밥을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신뢰가 없나?”
쓴웃음 섞인 투덜거림에 팀원들이 당장에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형만큼 신뢰받고 있는 사람이 우리 팀에 또 있어요? 얼마나 든든한데. 입에 발린 말이라도 고마웠다. 게다가 더더욱 고맙게도 대체로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센도는 후배 중에서 가장 버르장머리가 없고 정직한 녀석의 허리를 쿡 찔렀다.
“그럼 이 센또뉴는 왜 자꾸 튀어나오는 거야?”
“뭐…. 아무래도, 바깥에서 보기에는 센도씨가 그렇게 절박해 보이지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 그건 맞아요. 경기를 대충 한다는 건 절대 아닌데! 뭐랄까, 너무 완벽해서 다른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으니까….”
그건 또 어디의 바람둥이 같은 인평이야. 센도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하지만 농구밥을 먹으면서 문학적 소양은 비슷비슷하게 저렴한 수준으로만 쌓은 놈들 입에서 퍽 대단한 해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피식 웃으면서 잡담을 끝낸 센도가 손을 휘휘 저었다. 몸 풀러 가자. 일단 오늘 경기를 이겨야지.
시즌 마무리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센도의 팀은 상위 8위 안에는 가뿐하게 들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한 경기 허투루 뛰지는 않았다. 전년도에는 아쉽게 준결승에서 끝났으니 올해는 최종우승을 하자고 팀원들 모두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코트 위에서 일렁거리는 기분 좋은 열기를 느끼면서 센도도 던져놓은 신문을 뒤로 했다.
“센도.”
“응, 루카와.”
그날 저녁에 당장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루카와의 전화가 신문배달보다 좀 늦었다. 미국에 있으니 일본의 뉴스가 전해지는 것이 빠르지도 않을 텐데, 어떨 때는 센도가 신문기사를 읽기도 전에 루카와의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있었다. 이런 전화가 오는 날에는 센도는 어쩐 일이야, 하고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괜찮아.”
“안 괜찮아.”
“왜 네가 더 속상해.”
응? 달래듯이 조곤조곤하는 목소리였지만 루카와는 센도의 말을 예리하게 읽어낼 줄 알았다. 가끔은 너무 예리했다. 더 속상하다는 것은 덜 속상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덜 속상한 것도, 어쨌든 속상한 거다. 루카와는 누군가를 달래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신 열심히 들으려고 애썼다. 그것을 아는 센도가 작게 웃으면서 수화기에 입술소리를 내었다.
“자, 너도 뽀뽀해줘.”
잠깐의 침묵 후에, 작고 까슬까슬한 바람소리가 전기신호가 되어서 센도의 귀를 간지럽혔다. 바다 건너에서 온 입맞춤이었다. 이제 진짜 괜찮아. 소중하게 바람소리를 음미한 뒤 센도가 루카와를 다독거렸다. 미국은 지금 새벽일 테니 아마 루카와는 잠도 자지 못하고 지금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 잠 많은 애가 이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오늘 경기가 있어서 머리를 비우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자신은 차라리 편했다. 다른 생각 할 여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루카와는 뉴스를 본 직후부터 센도의 경기가 다 끝나고 집에 들어올 시간이 될 때 까지 계속 기다렸을 것이고, 그럼 몇 번이고 곱씹은 생각들이 부피를 늘려갔을 것이다.
게다가 몇 년 주기로 되돌아오는 일이니 익숙해 질 만도 하건만, 루카와는 오히려 지난번 보다 더 마음이 다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루카와의 반응이 옳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지표가 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루카와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센도의 은퇴설은 다양했다.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농구를 그만두고 가업-그의 본가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을 이을 것이다, 화려한 대학 생활을 마치고 나면 프로팀에 입단하지 않을 것이다, 팀에 우승을 안겨주고 나면 훌훌 떠날 것이다, 주장을 딱 한 시즌만 맡은 뒤에 전설처럼 그만 둘 것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끝은 제각각 달랐지만 항상 화려한 피날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은퇴 소식이 다시금 고개를 들 때 마다 센도는 꼭 사람들이 저의 등을 밀어대며 은퇴를 재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최초의 것은 고등학교 3학년 가을 무렵이었다. 카나가와에서 보낸 3년을 끝으로 마지막 여름을 불태운 센도 아키라가 당연히 도쿄로 돌아가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들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센도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소문에는 도쿄의 대학에 스카우트를 받았다는 사실은 쏙 빠져 있었다. 농구 그만 두는 거 아니었어요? 주저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낸 후배의 놀란 얼굴을 보면서 센도 역시 얼빠진 표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남들 눈에는 당연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입맛이 썼다. 쩝, 하는 소리가 들렸는지 수화기 건너편에서 루카와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오늘 경기 어땠어?”
“재미있었어. 팀 성적은 솔직히 꽤 차이가 났는데, 역시 직접 붙어보니까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고.”
“응. 그게 재미있지.”
경기가 끝난 뒤에 어린 팀원들은 다소 우는 소리를 내뱉었었다. 압승할 줄 알았는데, 위험했어요. 하지만 센도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도내 시드교인 료난이 벤치 층도 얇고 초심자까지 끼어있는 쇼호쿠와 첫 연습경기를 했던 그날처럼. 전화기 너머로 그 감정이 전해졌는지, 그제서야 루카와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자. 모레도 경기 있잖아. 내일 다시 컨디션 돌려놔야지.”
“넌 내일 쉬어?”
“응. 우리는 더 여유 있으니까.”
NBA에 비해서 B리그는 경기 수도 더 적고 리그 기간도 길어서 여유가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루카와가 굳이 한 번 더 물은 것은 내일 센도의 일정을 알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것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린 센도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낚시 하러 가려고. 카나가와에.”
“…응. 고양이 보면 사진 찍어놔.”
“알았어.”
잘 자, 하고 그제서야 졸음이 몰려온 것 같은 목소리로 루카와가 인사를 했다. 전화가 끊기는 것을 기다렸다가 센도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루카와와의 통화는 늘 길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했다. 수화기의 등을 손끝으로 몇 번 톡톡 기분 좋게 두드린 센도가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의 낚시에는 양동이와 미끼통 대신에 카메라가 동행했다. 센도가 고교시절 삼 년 내내 봐왔던 카나가와의 바다는 변함이 없어서, 미끼 없이 낚싯대만 드리우고 있는 인색한 낚시꾼에게는 좀처럼 물고기를 던져주지 않았다. 센도는 낚시찌가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오늘은 간식 없어.”
부둣가를 영역으로 삼고 낚시꾼들에게서 간식을 얻어먹는 것을 주업무로 삼은 고양이가 센도의 곁으로 다가와서 몸을 슥 비볐다. 최근 좀처럼 온 적이 없는데도 아직 센도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햇빛으로 따끈따끈해진 바닥에 발라당, 드러누운 고양이의 턱 아래를 살살 긁어주면서 센도는 아예 낚싯대에서 손을 놓고 카메라를 찾았다. 센도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보았던 고양이이니 이제 10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건강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다. 바닷바람이 길고양이도 잘 보듬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참 센도의 손아래에서 골골거리면서 몇 장인가의 셔텨찬스를 주던 고양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낚시꾼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마 저 쪽은 이것저것 짐이 많은 것을 보니 고양이에게 줄만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고양이는 도도한 발걸음으로 센도를 떠나갔다. 고양이가 부르는 소리 때문에 고개를 돌린 사람이 센도와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말없이 눈인사만 나눈 다음에 당연한 듯이 시선을 돌렸다. 이런 곳에서 굳이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고양이나, 아니면 고양이에 가까운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가끔 연습을 무단으로 이탈하고 낚시를 하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낚시를 하려고 굳이 료난을 선택한거냐는 타박도 들었지만, 사실 낚시는 센도가 카나가와에 와서야 배운 취미였다. 도쿄의 소년 센도 아키라에게는 바다가 필요 없었다. 소금기어린 바람을 처음 맡으면서 자취방에서 혼자 잠이 든 날, 센도는 자신에게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동시에 열려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도.
그래서 센도의 첫 낚시도 지금처럼 빈 낚싯대 하나만 갖고 시작했었다. 낚시에는 미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멍청이는 아니었다. 다만 필요 없었을 뿐이다. 한참동안 물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청소년이 빈손이라면 주변 사람을 꽤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눈치가 빨랐다고 하는 쪽이 더 알맞았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낚시 자체에도 재미를 붙이게 된 것이다.
똑같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먼 곳의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파도 위로 능숙하게 올라타며, 누군가는 해풍의 방향을 읽어낸다. 그리고 센도는 낚싯대를 드리웠다. 카나가와의 PG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다를 받아들였다.
오늘의 센도는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면서 물고기 대신 다른 것을 낚았다. 오래 고민하던 것이 손에 잡히는 것도 같았다. 오래간만에 카나가와의 바다와 마주할 수 있었던 덕분일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은 사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필름 현상을 맡기고 난 뒤, 센도는 개운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시즌 중에 간 크게도 하루를 통으로 쉰 후에 복귀했는데도 센도에게 불호령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B리그는 정말로 시합 날짜에 여유를 두고 진행되는 편이었고, 팀 성적도 호조라서 하루 정도의 휴식은 눈감아줄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하지만 팀 분위기는 미묘하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주장인 센도와 감독, 그리고 구단주가 함께하는 회의가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시즌 막바지에 구단주까지 끼어든 회의를 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시즌이 다 끝나고 나서 총평을 보고 재계약 여부를 검토하는 구단도 있었지만 센도가 소속된 곳은 정규리그가 종료되기 전에 일치감치 계약을 마무리해서 다음 시즌까지 선수들을 잡아두는 편이었다. 연봉협상이며 재계약 여부를 확정하기 전에 구단 측에서 주장인 센도의 의견을 듣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은 시기였다.
그러고 보니 정작 캡틴인 센도씨의 재계약은 아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훈련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센도가 돌아오지 않은 라커룸에서 팀원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아마 엊그제의 그 신문 기사도 그 정보가 어딘가로 새어나가서 만들어진 루머인 것 같았다. 설마 진짜로 은퇴하는 거야? 목소리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불안한 눈빛들이 라커룸 안을 날아다녔다. 그때 쾅, 소리를 내면서 문이 열렸다.
“저, 저기…. 제가 바깥에서 들었, 아니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닌데 다들 목소리가 커서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사토가 말을 더듬으면서 라커룸 안으로 들어왔다. 뭘 들었는지는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모두가 그 화제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회의 내용의 일부를 들은 것이다.
“센도씨, 아무래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그만두나 봐요…. 감독님이 지금까지 쌓은 게 아깝지 않냐던가, 나이를 생각하라던가, 그런 말을 하고 있었어요….”
“우와…….”
아깝다, 는 말에 동조하듯 몇 명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물아홉에 은퇴하기에는 센도는 아까운 남자였다. 단순히 팀의 믿음직한 캡틴이기 때문은 아니다. 센도 아키라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센도의 여정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유달리 특별한 점이 있거나 감탄이 나올 정도로 화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팀원들 모두 그 건실함과 탄탄함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다. 신문의 지면을, 또는 티비 와이드쇼를 통해서. 처음에는 그저 잘생긴 선수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사람들은 금방 센도의 다른 매력들을 발굴해 냈고 그것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고교 동아리를 끝내고도 농구를 계속하기를 선택해서 결국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프로리그이다. 인터하이에서 전국 무대를 누비지 않은 선수가 더 드물었다. 1학년 여름부터 주전으로 날뛴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는 가운데, 센도 아키라의 전국 데뷔는 오히려 늦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교 이름을 걸고 센도 아키라의 팀으로 전국에 발을 디딘 것은 3학년 인터하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꾸준히 농구를 해왔음에도 빛을 보는 것이 늦은 선수들이 있다. 흔히 대기만성이라고 표현하고들 하지만, 센도는 그런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꽤 이른 시기부터 센도 아키라는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전국에 나가는 것은 개인의 노력과 실력 외에도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료난이 엉망인 팀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카나가와 내에서는 4강에 꾸준히 들어왔으며 팀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감독이 오랜 기간동안 공을 들여 다듬어온 내실 있는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운이라는 것을 놓쳐버리면 센도 아키라 정도의 남자도 전국 문턱을 3년 동안 한 번 밖에 넘지 못했다.
어떤 스포츠 평론가는 반 농담 삼아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 넷을 뽑아본다면, 오래된 순서대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사나다 유키무라, 히지카타 토시조, 그리고 마지막이 센도 아키라일 것이라고.
다행스럽게도 센도는 그 계보의 조상님들처럼 아름답게 실패하지는 않았다. 료난을 졸업한 후에는 도쿄의 대학 농구부에 스카우트가 되었고, 그 이후로는 물 흐르듯 순조롭게 농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반까지는 대학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프로 농구 리그 발족과 함께 구단의 창단 멤버로 스카우트가 되었다. 그때는 아직 루키라고 불리던 시절이다. 그리고 그 후로 6년, 꾸준히 리그에서 활약을 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은 팀의 리더로서도 경기를 훌륭하게 운영해왔다.
이 정도면 원만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막연한 루머에 가까웠던 센도의 은퇴가 구체화를 띄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더 이상 충격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 상쾌하게 잘 웃고 묘하게 여유 있는 미남은 금방이라도 즐거웠다, 한 마디로 그간의 농구 인생을 정리하고 어디론가 떠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 해 걸러 한해마다 튀어나오는 은퇴설이 그런 이미지에 박차를 가했다.
“음? 분위기가 왜 이래?”
미묘한 공기가 가라앉은 라커룸 문이 열리면서 센도가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후배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황급히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눈동자들을 알아차린 센도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게 신호가 된 듯, 막내가 달달 떨리는 손을 번쩍 들고 대선배에게 질문했다.
“서, 선ㅂ…, 캡틴. 구단 떠나신다는 게 정말이에요?”
“이 자식아. 우리 아직 시즌 중이다.”
8강 플레이오프는 시작도 안 했어. 우승컵 안 탈거야? 피식 웃으면서 사토의 머리를 잡고 벅벅 문질러대는 손길은 태연했다. 하지만 그 말이 꼭 이번 시즌은 팀원들 걱정 없이 뛰게 해주겠다는 다짐임과 동시에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듯 한 울림을 갖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훈련을 재촉하기 위해 들어온 코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센도에게 눈짓했다. 후, 하고 한숨을 짧게 쉰 센도가 막내를 부주장에게 토스했다.
“미안한데 오늘도 난 훈련은 무리일 것 같다. 코치님이랑 네가 지휘 좀 해.”
주머니 한 쪽에 손을 넣은 채로 센도가 터덜터덜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팀원 중에 누가 언론에 흘렸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장 선수뿐만 아니라 스텝들만 해도 적은 수가 아니었으니까. 어쨌건 하루 종일 센도가 회의실과 위층 구단주 사무실을 오가며 회의를 한 날 이후로, 센도 아키라의 은퇴는 모든 신문이 스포츠란에서 가볍게나마 한 번씩 다루는 뉴스가 되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바쁜 나날이었다. 더군다나 시즌 중이다. 경기와 훈련 일정만 해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그래서 겨우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나서야 센도는 벌써 이 주 전에 맡긴 필름의 인화물을 찾으러 갈 수 있었다. 고양이 사진을 포함해서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사진 몇 장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국제소포가 도착해 있었다. 미국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이런…. 급하게 보냈구나.”
의외로 동글동글한 글자체를 가진 루카와답지 않게 빠르게 날려 쓴 주소가 귀여워서 글자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센도가 소포를 뜯었다. 루카와는 통화도 길게 할 성격이 못 되었고, 편지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길게 쓰지도 않았다.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센도에게 소포를 보냈다. 소포의 내용물은 언제나 거의 같았다. 원정경기를 갈 때 마다 한 장씩 사 오는 지역 관광엽서 모음, 그리고 직접 녹음한 믹스테이프.
이번 달의 선물은 로스앤젤레스와 네바다가 각각 한 장, 그리고 뉴욕이 두 장이었다. 일정에 따라 같은 곳을 두 번 방문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정직하게 엽서를 꼭 한 장 씩 더 사서 보내오는 루카와의 성실함에는 웃음이 나왔다. 엽서 뒷면에는 별다른 간지러운 말은 적혀있지 않았다. 대신 경기 날짜와 출전 시간, 그리고 그날의 결과만 적혀있었다. 그 짧은 숫자만으로도 루카와의 일상이, 그리고 감정이 손에 잡힐 듯이 전해져 왔다. 센도는 숫자들 위에 짧게 입맞춤을 한 다음 식탁 위에 놔둔 카세트를 끌어당겼다.
“이번 달의 신곡을 소개합니다. 루카와 선수, 이번에는 어떤 노래를 들으셨나요?”
라디오 DJ라도 된 것처럼 바다건너의 루카와에게 말을 걸면서 센도가 테이프를 카세트에 꽂아 넣었다. 찰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깐의 노이즈 후에 음악이 흘러나왔다.
Do you remember
When we fell in love?
“하핫….”
센도가 마른세수를 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신곡이 아니었다. 너무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루카와 카에데가 아직 미국으로 가기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처음으로 센도에게 주었던 테이프에 담겨 있었던 노래였다. 그 때 당시에는 최신곡이긴 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날 지경까지 되고 나서야 고이 모셔두었던 그 믹스테이프.
곡명도 가수 이름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무작정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만 모아놓은 바람에 센도는 인터하이가 끝난 후 정확한 곡명을 알아내기 위해서 들리는 대로 최대한 받아 적은 가사를 들고 카나가와 시내의 레코드점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다.
테이프를 받은 것은 센도 아키라의 마지막 인터하이, 료난과 쇼호쿠의 전국 진출이 결정된 날이었다. 그 해에도 도내 베스트 5에 센도와 루카와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갔다. 시상식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루카와가 센도를 불러세웠다. 센도는 그때 루카와가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국 대회는 내가 선배야.
센도는 한참이나 눈을 깜빡거리면서 루카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게. 내가 작년에는 전국엘 못 갔지. 너는 갔고. 그렇지만 그런 말투에도 불구하고, 센도를 빈정거리거나 조롱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약간 상기되기까지 한 루카와의 얼굴은 기대감과 기쁨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렇군. 잘 안내해줘. 센도는 그냥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실력으로 자신이 루카와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 루카와 본인도 센도를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때의 루카와의 말은 확인이었다. 네가 보고 있는 방향이 이쪽이 맞느냐고 하는. 그때 센도가 그렇게 대답했기 때문에, 루카와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의심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고민거리에 타인의 의견을 필요로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가 상대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대신 상대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서로에게 맞는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농구와 관련해서, 서로가 어떤 결정을 하건 이해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루카와가 보내온 믹스테이프를 들으면서 편지를 쓰고, 그것을 그동안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내주는 것이 센도 아키라의 답장이었다. 이번에도 미리 준비해둔 편지지와 펜을 들고 노래를 틀었지만, 결국 센도는 글자를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테이프의 앞뒤 80분을 꽉꽉 채워서 녹음되어 있는 노래의 가사를 곱씹으면서 몇 십 번이나 들은 다음에, 센도는 결국 이번의 답장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았는데도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팬들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차라리 기회가 있을 때 정식으로 알리는 게 좋을지도 몰라.”
오랜 대화 끝에 겨우 협의를 끝냈던 감독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센도에게 말했다. 팀의 사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한 일이었으니 더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 보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센도는 리그 8강에 포함되어 플레이오프에 대한 포부를 밝히는 주장 인터뷰에서 잠시 개인적인 소식을 알릴 기회를 갖게 되었다.
스포츠 신문으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몇몇 광고주는 난색을 표한 것 같지만 구단주 선에서 다행히 수습이 되었다고 한다. 여느 때보다도 많은 기자들이 모인 회견장에서 센도는 정장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우선은 당면한 8강 시합에 대한 각오부터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정규리그 1위로 진출한 팀에 대한 적당한 칭찬과 질문이 오고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팀을 사랑하고 응원해주신 팬 분들께 송구스러운 소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라이트닝 도쿄의 주장 자리를 내려놓고….”
센도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울림을 갖고 공간을 채웠다. 마치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기자들이 침묵했다. 예의를 갖춰 애도를 표하는 것처럼. 그런 정중한 호의와 상냥함을 느끼면서 센도는 속으로 몰래 웃음 지었다.
미디어에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의 숙명이 무엇인지 센도 아키라는 진작 알고 있었다. 치열하게 꽃피우다가 일순간에 화려하게 산화하는, 그런 끝을 모두가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완벽하지만 덧없고 아름다운 남자를 남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겠지.
미안하게 됐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에 샌디에고 보이저스 소속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코트에 붙어 있을 작정이거든. 상대팀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막아서고 한 골이라도 더 넣기 위해서 달려갈 거야.
적절한 시기라고는 누구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 졸업 직후, 빠르면 그 이전부터 이미 NCAA에서 주목받던 루키들로 가득 찬 무대이다. 운이 좋아 몇 경기를 뛸 수 있다고 한들 이후의 스카우트가 보장되지도 않는다. 국내 리그 1, 2위를 다투는 강팀의 주장 자리를 내려놓고 쉽게 달려갈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한 박자 늦은 충격이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여기저기서 질문을 위해 손을 들어 올리는 기자들이 보였다. 센도는 정중하게 한 손을 들어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막았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센도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었다.
“그럼, 여러분.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새벽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센도는 놀란 기색도 없이 받아들었다. 이 시간이지만, 걸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웃음을 꾹 참고 루카와, 하고 부르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곧장 루카와가 입을 열었다.
“들었어.”
“들었구나.”
“…아메리카는 내가 선배야.”
어쩐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센도는 웃음을 터트렸다. 허리를 숙이면서 웃는 바람에 귀에서 멀어진 수화기 너머에서 루카와가 조용히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센도는 웃음기가 묻어있는 목소리로, 아마도 루카와가 오랫동안 기다려왔을 말을 해주었다.
“그렇군. 잘 안내해줘.”
“…응.”
수화기 너머로 바다 소리와 닮은 바람소리가 작게 들렸다. 파도에서 한 방울 튄 것 같은 물방울을 센도의 손끝이 간지러운 듯이 만지작거렸다.
* * *
어떤 버전의 센도 아키라도 좋아하지만, 헤드캐논을 한 번 정도 정리해두고 싶었어요.
현 B리그와 NBA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반영했지만 팀명의 가상의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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