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시스터 콤플렉스 本
영원한 평화는 없었다. 오오사키 쇼타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조건 일어나지 않게 막을 수 있도록.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그래. 누나가 몇 년을 꼬박 사귄 남자 친구를 자신에게 소개 시켜 주고 싶다고 연락이 온 순간부터일 것이다. 오오사키 쇼타로의 누나, 오오사키 나나코 (大﨑 奈奈子) 는 한마디로 완전무결한 천사 같은 인간이었다. 奈奈子. 사슴으로 유명한 나라현(奈良県) 의 '奈'와 같았다. 미인에 다정한 성격, 바보 같이 착하고, 항상 방긋 웃고, 어른스러운. 천사가 인간의 형상을 하면 나나코의 모습을 하지 않았을까. 보통 남매, 형제, 자매들의 사이는 가깝지 않고 다투기만 한다고 하지만, 쇼타로와 나나코만큼은 달랐다. 유년 시절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후, 쇼타로에겐 나나코를 지켜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원래 천사 같은 인간에겐 벌레가 꼬이는 건 불변의 법칙이니까. 나나코가 사랑에 빠지는 남자들은 모두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었고, 꼭 그녀를 울게 만들었다. 미친 새끼, 개자식들. 쇼타로는 그럴 때마다 그녀의 남자친구를 찾아가서 먼지가 폴폴 나게 패곤 했다. 오오사키 쇼타로의 약점은 오오사키 나나코였다. 어떻게, 감히, 천사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지? 쇼타로가 가쿠란을 입을 시절부터, 나나코는 괴상한 연애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팔을 붙잡고 그만 하라는 나나코의 우는 목소리에 쇼타로는 자주 절망에 빠졌다.
오오사키 쇼타로가 한국 대학에 입학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오오사키 나나코가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 대학에 먼저 입학을 했으니까. 처음 나나코가 한국 대학에 합격했다고 기뻐했을 때, 쇼타로는 인생 최대로 기함을 했다. 이 누나가 나없이 어디를 가려고. 그래서 한국어를 그렇게 공부한 건가? 아니, 또 가서 이상한 남자 만나고 우는 건 아닌지. 남자 뿐만이 아니라, 요즘 세상엔 이상하고도 기분 나쁜 인간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때부터 쇼타로는 이마를 짚고 한국어를 공부했다. 가고 싶었던 대학, 그리고 전공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진로보다 오오사키 나나코였다. 한국에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과는 분명히 있을 테니. 한국어는 글을 쓸 땐 그림 같았고, 언어를 하나씩 꼬박꼬박 말할 땐 어딘가 노래 같기도 했다. 쇼타로는 매일 밤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먼저 한국으로 넘어간 누나와 통화를 할 때마다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 때문에 굳이 한국으로 안 넘어와도 돼. 나나코의 말에 쇼타로는 누나 때문에 아니거든. 툴툴대며 대꾸했다. 그리고 누나 이상한 놈 만나면 내가 혼내줘야지. 겨우 본심을 꺼내자 나나코는 한국어 많이 늘었네. 작게 웃었다.
“맞다. 나 만나는 사람 생겼어.“
“또 이상한 놈 만나는 건 아니지.“
“아니야, 엄청 잘해 줘.“
항상 같은 레퍼토리. 모든 인간은 다 처음엔 잘해주는 법인데. 여태껏 속았으면서 또 이번엔 다르겠지, 하고 믿는 나나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애 뿐이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나코는 상처를 받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모든 이기적인 관계에서 용서를 하는 대인배의 입장이기도 했고. 모두 오오사키 나나코를 긍정적으로 이야기 할 땐 천사 같다고 했으며, 부정적으로 이야기 할 땐 순진해서 바보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과연 요즘 세상에 천사 같은 다정한 성격이 칭찬일까? 쇼타로도 꽤 다정한 성격이었지만, 나나코만큼은 확실히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항상 사람 좋게 웃고, 타고난 유전적인 다정함으로 나름 인기도 유지하던 쇼타로에게 동급생이 너희 누나 진짜 예쁘더라. 남자 친구 있냐? 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딴 이야기 한 번만 더 해 봐. 죽인다. 라고 섬뜩하게 대꾸했었다. 시스콤 새끼. 그 시점부터 생긴 오오사키 쇼타로의 불명예스러운 별명이었다.
브로큰 시스터 콤플렉스 本
누나, 남자는 다 믿지 마. 아니, 여자도 믿지 마. 그 말에 나나코는 속도 없이 웃더니 너도 남자잖아. 짧고 굵게 펀치를 날린다. 참 나. 가끔 나나코는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곤 했다. 쇼타로의 말엔 허점이 있었다. 남자도 믿지 말고, 여자도 믿지 말라고 하면 그냥 인간을 믿으면 안 된다는 고립을 뜻하는 것이니까. 머쓱함을 느낀 쇼타로는 변명을 한다. 누나랑 나는 가족이잖아. 그리고 침묵.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쉽게 믿으라고 못하겠어. 인간은 이기적이니까. 변명이지만, 나름 솔직한 진심에 나나코는 나긋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 쇼타로.“
“누나가 어떻게 알아.“
“내가 증명할 수 있어.“
과연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쇼타로는 나나코가 무심결에 던진 좋은 사람이라는 부분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집중했다. 합격 통지서를 받을 때도, 유학 준비로 짐을 쌀 때도, 인천 공항에 도착할 때도, 오랜만에 사랑하는 누나를 만날 때도, 자취방을 구할 때도, 입학식에 갈 때도. 그리고 나나코가 자신의 남자 친구를 소개 시켜주고 싶다고 할 때까지. 쇼타로는 나나코를 만날 때마다 은근히 남자 친구에 대해서 묻곤 했다. 이름은 정성찬. 나이는 나나코보다 네 살, 쇼타로보단 여섯 살이 많았다.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고 하지만, 쇼타로의 눈엔 그저 도둑놈 새끼 중 하나였다. 어때, 잘생겼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을 때 여자 울리게 생겼어. 쇼타로는 흥, 바람 빠지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사랑에 빠진 눈으로 그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의 누나가 행복해 보였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찌 됐든, 오오사키 나나코가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오오사키 나나코의 남자 친구, 정성찬은 꽤 멀쩡한 남자였다. 무테 안경을 쓰고, 깔끔한 자켓을 걸치고 온 남자. 눈이 꼭 사슴처럼 맑았다. 나나코. (奈奈子). 사슴으로 유명한 나라현(奈良県) 의 '奈'와 같았는데, 이런 게 운명인가 싶었다. 사슴이 생각나는 이름을 가진 천사같은 누나와, 사슴처럼 맑은 눈을 가진 남자. 연애 기간은 거의 2년. 누나가 이렇게 울지 않고 연애를 할 수도 있구나. 쇼타로는 내심 안심하면서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커피를 빨대로 쪼록, 마시는 순간까지도 쇼타로는 성찬과 누나의 행동을 눈에 담았다. 흐트러진 나나코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건조하지만 꽤 다정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쇼타로와 성찬의 시선이 닿는다. 한 번, 두 번.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신을 향해 빙긋 웃는 그 웃음이 예뻤지만, 어딘가 기묘해서 쇼타로는 몇 번 따라 웃다가 시선을 회피했다. 찝찝한 느낌이 왜 드는 걸까. 매일 우는 연애만 하던 누나를 곁에서 지켜봤으니 본능적으로 상대의 안 좋은 점만 체크하는 버릇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잠시 후, 나나코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찬은 쇼타로에게 번호를 물어봤고, 쇼타로는 기꺼이 자신의 번호를 알려줬다.
“종종 연락해도 돼요?“
“네,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돼요. 형인데.“
“아, 그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보세요.“
“내 첫인상 어땠어?“
무슨 이런 질문이 다 있지. 쇼타로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기울인다. 첫인상? 누나의 남편이 될 수도 있으니 좋게 말을 해야 하나. 사실 외모도 그렇고 다정함도 그렇고 여태껏 나나코가 만난 남자 중에선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어딘가 드는 기분 나쁜 기묘함에 차마, 무조건적으로 좋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좋게 이야기 하면 괜히 콧대가 높아져서 나나코한테 거만하게 행동하면 큰일이었으니. 쇼타로는 천천히 말을 고르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자리를 비웠던 나나코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성찬의 곁에 선다. 무슨 이야기 해? 성찬은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익숙하게 나나코의 허리를 끌어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이상하다. 좋아하는 연인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정보다는, 냉한, 아니 기분 나쁜 미묘한 눈빛으로. 벌써 둘만의 비밀이라도 생긴 거야? 나나코는 아쉬운 표정을 짓자, 남자끼리의 비밀도 있는 거지. 여전히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작게 속삭이는 성찬의 모습에 쇼타로는 그저, 사람 좋게 웃을 뿐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거, 취소다. 이 새끼의 눈깔도 어딘가 돌아있었다.
성찬 씨 어때? 성찬과 헤어진 후, 쇼타로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질문하는 나나코에, 쇼타로는 차마 부정적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그 자식 눈깔이 수상해. 라거나, 기분 나빠. 라고 성급하게 말하기엔 증거가 없었다. 증거 없이 사랑하는 누나의 눈에 눈물을 또 쏟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 쇼타로는 대답 대신 누나 행복해? 질문을 던졌고, 응, 너무 행복해. 나나코는 활짝 웃었다. 바보 같은 오오사키 나나코, 바보 같은 나의 누나. 행복하다는 그 톤이 너무 소중해서, 쇼타로는 그래도 조심해. 꾸역꾸역 부정적인 의견을 삼켰다. 자신의 몫은 정성찬을 예의주시하며 누나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누나를 울리면 또 주먹질을 하고. 계속 웃게 하면...... 결혼까지 하겠지. 나나코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시야가 오답이길, 쇼타로는 속으로 몰래 기도했다.
[ 기분 나빠요. ]
[ 뭐가? ]
[ 첫인상. ]
[ 무례하네, 쇼타로 군...... ]
무례하다고 하면서도 하나도 상처받지 않은 말투의 텍스트가 괜히 가슴에 콱 박히는 느낌이 든다. 뭘까, 이 사람. 보통 이렇게 말하면 상처 받지 않나? 쇼타로는 미친 척 보낸 부정적인 메시지에 혹시 누나랑 헤어지자고 하면 어떡하지, 내심 불안했지만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메시지에서 성찬의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거 같다. 높낮이가 크게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나긋나긋한 말투의 나나코와 확실히 달랐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더 이상 딱히 할 말도 없어서 답장을 보내지 않기로 하지만, 몇 분 뒤 띠롱, 메시지 알람음이 울린다.
[ 데이트나 할까. ]
[ 메시지 잘못 보냈어요. ]
[ 너한테 보낸 거 맞아. ]
뭐야, 누나한테 보내야 하는 문자를 잘못 보낸 게 아니라고. 데이트라는 단어도 영 불쾌했다. 데이트는 오오사키 쇼타로 말고, 오오사키 나나코랑 하세요. 메시지를 읽고 씹으려고 할 때 또 한 번 알람음이 울린다. 별 다른 내용 없이 링크만 적혀있다. 링크를 눌러보니 몇 주 전부터 보고 싶었던 전시회 홈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예약도 빡세다고 했는데 티켓은 어떻게 구했는지. 아마 이게 그 '데이트' 라는 거겠지. 쇼타로는 화면을 한참 동안 노려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
[ 기분 나쁘다는 첫인상 만회 좀 하려고. ]
이상하게 죄책감을 주는 메시지다. 첫인상을 만회할 필요까진 없는데. 어차피 자신과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나코와 하는 연애이니 그녀에게만 잘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동생의 눈치를 보는 걸까? 너무 부정적으로 첫인상을 표현한 거 같아서 쇼타로는 괜히 미안함이 생긴다. 그냥 조금 좋게 말해줄 걸. 생각해 보면, 아주 약간 쎄할 뿐이지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닐 텐데. 모든 인간은 음침한 구석이 다 있으니까. 나나코에게 완벽한 인간을 찾다 보니 그 한 톨의 음침함도 부정적으로 보는, 자신의 과잉보호도 한몫 했을 테다. 그나저나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캐치한 걸까? 아님, 정말 우연히 취향이 겹치는 걸까? 확실히 나나코는 이런 전시회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나코는 전시회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했고, 영화관보다 집에서 OTT를 보는 걸 더 선호했다. 쇼타로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그 데이트를 수락하기로 한다. 여기서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다. 성찬의 말대로 첫인상을 만회할 기회, 그리고 자신도 조금 더 정성찬이라는 인간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싶었으니까.
성찬과 전시회에 간다는 소식에 나나코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둘이 친해지면 좋겠다. 말투에서 꽃이 활짝 피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그래도 누나의 남자 친구인데 첫 만남때 어두운 머리로 염색할 걸 그랬나. 거울을 볼 때마다 나름 마음 먹고 한 탈색머리가 볼품 없다고 생각했다. 단정한 나나코와 자신은 확실히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다. 그나마 부모님이 자신에겐 엄격해도, 남들에겐 항상 다정해야 한다고 강요했으니, 그 점만 비슷하게 닮았겠지만. 전시회 앞에서 만난 성찬은 여섯 살 차이의, 그러니까 어른의 냄새가 확실하게 났다. 아님 향수 탓일까. 쇼타로는 성찬의 곁에서 남몰래 향을 맡았고, 그걸 눈치 챘는지 성찬은 손목을 쇼타로의 코에 갖다대며 향수의 이름을 알려줬다. 쇼타로가 애용하는 향수와 같은 브랜드였다. 쇼타로는 자신의 향을 알려줬고, 성찬은 아아.... 말끝을 나른하게 늘이며, 취향이 비슷하네. 작게 웃었다. 향 맡아볼래요? 쇼타로가 손목을 내밀자, 성찬은 그 제스처를 무시하고 고개를 약간 숙이더니 쇼타로의 목덜미에서 향을 맡는다. 목덜미에 닿는 숨결이 뜨겁다. 아, 역시 이상하다. 어딘가 핀트 나간 인간이 분명했다. 향, 너랑 어울려. 성찬의 목소리가, 어딘가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같은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는데.
만족스러운 전시회였다. 작품을 보면서 성찬과 나누는 대화도 좋았고, 간만에 취향이 맞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모든 경계심이 바닥까지 쭉쭉 내려갔다. 그런 쇼타로를 성찬은 계속 눈으로 좇았다. 나나코와 닮은 얼굴. 정확히 말하자면 나나코보다는 조금 더 예민하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성격도 좋은 편이지만 경계심이 훨씬 더 높았다. 꾸미는 걸 좋아하고, 탈색 머리와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남매가 이렇게 취향이 달라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나나코는 귀걸이는 무슨, 목걸이와 팔찌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쇼타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향수를 뿌렸다. 누군가는 영안실 냄새가 난다고 하고, 누군가는 포근한 우디향이 난다고 하는 향이었다. 오오사키 쇼타로의 목덜미에선 아주 가벼운 쇠냄새와 그리고 후에 포근한 우디 향이 몰려왔다. 아, 조금 더 맡고 싶다. 성찬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자꾸 화려한 목걸이를 한 목덜미에 시선이 닿는다. 한 번만 씹어보면, 무슨 반응을 할까. 저렇게 신난 표정에서 처음 만났을 때 경계하던 그 표정으로 돌아가겠지. 아님, 그 표정도 아닌 혐오스러운 얼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렇게 웃는 모습이 예쁜 인간의 혐오스러운 표정은 어떤 느낌일까. 성찬은 쇼타로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키가 몇이야? 가벼운 질문에 쇼타로는 178이요. 기분 좋게 대꾸한다. 머리를 만져도 아무렇지 않은 듯 쇼타로는 말이 쭉쭉 이어진다.
“염색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왜?“
“ 탈색 머리 너무 유치한 거 같아서....“
이렇게 경계심이 내려간 티를 내다니.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 성찬은 속으로 몰래 웃었다. 귀여운 구석이 있네. 나나코가 보여준 고등학교 시절 사진에선 흑발의 단정한 쇼타로가 브이를 하고 웃고 있었는데. 아, 그때의 오오사키 쇼타로도 꽤 궁금했다. 나나코는 고등학생 때도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쇼타로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나도 안 유치해. 성찬은 괜히 다정한 목소리로 애정을 담아서 말을 꺼낸다. 간지러운 말에 쇼타로가 고개를 돌리자 순간적으로 서로의 시선이 닿는다. 가깝다. 성찬은 몰래 웃는 걸 포기하고, 기분 좋게 웃어보인다. 지금도 잘 어울려.
전시회 잘 보고 왔어? 나나코의 연락에 쇼타로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8평의 자취방 침대 위에 풀썩 쓰러진 후 하루를 천천히 복기하자 남는 건 기분 좋게 웃는, 그러니까 거짓 하나 없는 웃음으로 잘 어울린다고 하는 정성찬 뿐이었다. 웃는 모습, 되게 예쁘구나. 사르르 솜사탕이 녹는 것 같은. 그럼 무미건조하게 웃던 그 웃음은 다 거짓일까. 나나코에겐 그렇게 웃지 않았는데. 에이, 2년 동안 그렇게 한 번도 안 웃었겠어. 쇼타로는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내기 바빴다. 누나, 형이 잘 웃어 줘? 뜬금없는 질문에도 나나코는 항상 진심을 다해서 답을 해 주곤 했다. 으음, 잘 웃는 편은 아닌데...... 진짜 그런 답이 나오지 않기 바랐는데. 바라지 않는 답만 꼬박꼬박 나오고 있었다. 쇼타는 졸리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고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아. 차라리 그 기분 나쁜 눈깔이 더 마음 편했을 수도 있다. 괜히 웃는 모습을 봐서, 더 기분이 엉킨 것 같았다. 지금도 잘 어울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 웃는 그 모습이 짜증나서. 왜 짜증나는지 이유도 모르겠지만, 쇼타로는 곧바로 미용실을 예약했다. 그냥 흑발로 덮어야겠다고.
헤어 디자이너의 만류에 흑발 대신 갈색 머리로 타협했다. 언젠가 탈색 하고 싶을 때 분명 흑발을 한 순간이 후회 될 거라는 의견이었다. 갈색 머리도 꽤 단정해 보였으므로, 쇼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머리를 하고 셀카를 찍어서 나나코에게 보내자 [ 우와, 잘 어울려~ ] 칭찬 가득한 메시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한 통 더. [ 성찬 씨도 잘 어울린대! ] 아, 빌어먹을. 의견이 궁금하지도 않은 사람의 평가에 쇼타로는 한숨을 푹 쉬었다. 며칠 동안 성찬에게 오는 메시지를 모두 열심히 무시하고 있었더니, 이렇게 연락을 알릴 줄이야. 오랜만에 세팅된 머리와, 안 좋아진 기분을 올리기 위해서 귀가 대신 백화점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향수를 새로 하나 살까. 쇼타로는 향수 매장을 천천히 한 바퀴 돌다가, 자신과 성찬이 사용하던 브랜드 앞에서 한참동안 망설인다. 그 향, 꽤 좋았는데. 향이 좋았던 걸까, 아님 그 향을 정성찬이라는 인간이 사용해서 좋았던 걸까.
“혹시 이 향으로 시향 가능할까요?“
“네, 당연하죠.“
< 미 서부의 와일드한 평원에 고독하게 앉아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모닥불의 불빛이 드리우고 머리 위로는 인디고블루의 밤하늘이 펼쳐집니다. 주변에는 사막의 부드러운 바람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자유로워요. > 설명 하나는 기가 막혔다. 쇼타로는 시향지를 받곤, 향을 맡아본다. 좋다. 정말 좋은데...... 정성찬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최악인 건. 성찬에게서 나는 향이 더 좋았다는 점이다. 끙, 쇼타로는 앓는 소리를 한 번 내곤 향수를 구매한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더 늘려야 하나. 순식간에 가벼워진 지갑이 애처로웠지만, 그래도 이 향을 자신의 향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음껏 뿌려도 정성찬 생각이 나지 않도록. 정성찬은 자신의 연인이 아니니까. 애초에 이 생각마저도 죄스러웠다. 그 향수를 뿌리고 잠에 든 날, 오오사키 쇼타로의 꿈에 정성찬이 나왔다. 섹슈얼한 꿈은 아니었지만, 정성찬은 분명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누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빌어먹을 다정한 말투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말만 뱉고, 헉, 하고 꿈에서 깼을 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한 상태였다. 발신자 정성찬 형. [ 꿈에서 너 나왔어. ] 씨발. 장난해?
그 다음 성찬을 만난 건, 두 달 후였다. 성찬은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곤 했지만, 쇼타로는 굳이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 거창한 메시지도 아니었다. 잘 잤냐, 밥은 먹었냐, 잘 자라. 이런 시시콜콜한 연락이었다. 참 관심도 많아. 쇼타로는 시니컬하게 메시지에 마음만 남기거나, 아님 무시하곤 했다. 가끔 [ 데이트 할까? ] 라는 연락이 오면 [ 바빠요. ] 라고 짧은 답장만 보내는 정도였다. 그걸 제외하고도 나나코에게서 성찬의 소식은 꾸준히 듣고 있었다. 어느 날은 다퉜다고 하고, 어느 날은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그저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연인이었다. 다퉜다는 말에 쇼타로는 무작정 한 대 패러 가고 싶었지만, 다음 날 다시 사이 좋게 지내는 사진을 보고 이런 게 평범한 연애구나, 쇼타로는 안심했다. 그리고 동기들과 술 한 잔을 약속한 날, 이상하게 술이 쭉쭉 들어갔다. 아마도 이 평화가 꽤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나나코의 연애도 순항 중, 대학생활도 순항 중, 그리고 이제 그 향수를 뿌려도 정성찬이 꿈에 나오지 않으니 얼마나 평화로운가. 이제 집에 갈래. 쇼타로가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나자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에 풀썩 쓰러진다. 괜찮아? 동기들이 걱정하는 목소리에 쇼타로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휴대폰 화면에 주소록을 하나씩 뒤진다. 정신은 꽤 말짱한데, 몸이 못 버티네. 누나한테 연락을 할까.... 싶지만 나나코의 집과 쇼타로의 학교 쪽에 위치한 술집의 거리는 꽤 멀었다. 그러니 패스, 그리고 얘도 패스, 패스, 패스.... 마지막으로 남는 건 정성찬. 정말 최후의 보루였는데, 쇼타로는 연락처를 한 번 보고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가 거하게 술에 취한 상태였다. 얼굴이 다 붉게 달아올라서. 챙겨주는 건 무슨, 각자도생이 시급했다. [ 저 취했어요. ] 쇼타로는 메시지를 보낸다. 보내고 나니, 뭔가 음흉한 느낌이 들어서 급하게 한 통 더 전송한다. [ 어지러워서 못 일어나는 중. ] 무슨 연락을 기다린 사람처럼 칼같이 답장이 도착한다. [ 주소 찍어. ]
아니, 새벽 두 시에 사람을 불러도 저렇게 멀끔하게 올 수 있는 걸까. 여전히 깔끔한 행색으로 성찬은 조심스럽게 쇼타로를 일으켰다. 누구냐는 동기들의 질문에 쇼타로는 대놓고 누나의 남자 친구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셨나? 혀가 굳은 게 틀림 없다. 대답은 성찬의 몫이었다. 친한 형이에요. 친한 형이라는 말이 웃겨서, 쇼타로는 흐흐... 웃음을 흘렸다. 새빨간 거짓말. 우리가 어디가 친하다고. 성찬은 쇼타로를 익숙하게 부축했고, 쇼타로는 아, 모르겠다. 마음 편하게 품에 기댄다. 익숙한 향. 익숙한...... 순간적으로 술이 확 깬다. 왜 정성찬한테서 내가 쓰던 향수의 향이 나는 거지?
“신기한 거 알려줄까.“
“네?“
“나나코한테 네 향수를 뿌렸는데.“
“아, 안 듣고 싶은,“
“그 향이 안 나더라고.“
성찬은 쇼타로에게 안전벨트를 채워주곤, 향수는 간택 받아야 한다는 말이 맞나 봐. 무심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훅 들어오는 얼굴. 무표정의 얼굴. 그러니까 생기 하나 없는, 자신이 처음에 봤던 그 표정. 목덜미에 아주 잠시 성찬의 입술이 닿는다. 깊게 들이마시는 숨. 뭐야, 내 향수 뿌렸네. 비웃는 것 같은 목소리에 쇼타로는 두 눈을 감았다. 그냥 부르지 말 걸. 누나의 남자 친구와 이게 무슨 짓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나나코를 생각하자 미칠 것 같았다. 집으로 가자. 어울리지도 않는 나긋한 목소리. 자취방 주소도 모를 텐데, 익숙하게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니 필히 목적지는 오오사키 쇼타로의 자취방이 아니었다. 아, 내릴래요. 내릴래. 취기에 발음이 조금 더 어눌해진다. 정신을 붙잡고 이야기 해도 투정처럼 들릴 만큼.
전시회에서 쇼타로의 목덜미를 욕정했던 바로 그 다음 날, 성찬은 그 향수를 구매했다. 자신에게 뿌려도 영,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열 받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의 침대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오오사키 나나코였다. 성찬은 미친 짓을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잠든 나나코의 목덜미에 향수를 뿌리고, 목덜미에 입술을 맞췄다. 아, 같은 성을 가지고 있어도, 얼굴이 닮아도 향까진 같을 수 없구나.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지. 왜 오오사키 쇼타로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질까. 경계심이 가득하거나, 아님 경계심을 낮추고 신나서 말을 하는 모습이 자꾸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나나코가 자신의 어깨를 두 팔로 끌어안자 성찬도 다정하게 그녀를 끌어안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나긋한 목소리가 제 취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 오오사키 쇼타로가 겹쳐보인다. 침대 위에 눕히면 그 애도 이렇게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키스를 할 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곧 서로의 입술이 닿는다.
“형.“
“왜.“
“저희 누나, 사랑하죠?“
현관문이 열릴 때, 쇼타로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하냐고요. 쇼타로는 마음이 급해진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자 성찬은 사랑했지. 과거형으로 돌아올 뿐이다. 그 과거형의 원인이 자신 같아서, 쇼타로는 피가 실시간으로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든다. 이게 무슨 말이지? 사랑한다는 현재형, 사랑할 것이다는 미래형, 사랑했다는 과거형. 자신이 한국어를 잘못 알고 있나. 모든 걸 부정하기에 바빴다. 성찬은 쇼타로의 손목을 쥐고,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반항을 할 기력조차 없었다. 발이 엉키고, 세상이 자꾸 돌고, 성찬의 목소리가 물에 빠진 상태에서 울리는 느낌이 들어서 구역질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푹신한 침대. 시야에 천장이 보이는 게 아니라, 정성찬의 얼굴이 보인다. 왜 과거형으로 말해요, 개새끼야..... 울고 싶은데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무표정의 정성찬. 나 여기서 너희 누나랑 잤어.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를 따박따박 알려주는 심보가 뭘까. 쇼타로는 성찬을 밀어내며 욕을 뱉지만 돌아오는 건 목덜미에 이를 박는 미친 행위 뿐이다.
“나나코랑 자면서도 네 생각만 나던데.“
“씨발, 미친 놈아.....“
“나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목덜미를 얼마나 세게 씹었는지 쇼타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파, 아프다고. 끙끙 앓는 목소리에도 본능적으로 쇼타로는 성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었다. 아, 오오사키 가문 사람들은 취향도 다 다른 것 같은데, 남자 취향은 같나 봐. 성찬의 비틀린 웃음에 쇼타로는 심장이 쿡, 뚫리는 기분이 느낀다. 어디선가 피가 새고 있을 것 같은.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향수 쓰고 내 꿈 꿨지. 나도 네 향수 쓰고 네 꿈 꿨거든..... 비틀린 웃음이지만, 절대 비웃는 건 아니었다. 그게 더 기분 더러웠다. 차라리 비웃으면 증오라도 할 텐데. 쇼타로는 이걸 사랑이라고 여기고 싶지 않았다. 왜, 왜 하필 나야? 쇼타로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너 게이야? 나는 게이도 아닌데. 쫑알쫑알 말이 많아지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웠다. 침대 위에서 우는 건 별로였지만, 오오사키 쇼타로만큼은 예외일 것이다. 나도 게이 아닌데. 성찬은 혀를 내어 쇼타로의 눈물을 핥는다. 정말, 정말이지 미친 새끼였다.
“천사같은 인간이 취향이지만.“
“그럼, 우리 누나 맞잖아.“
“완벽한 천사보다는 망가지는 쪽이 더 취향이라서.“
우리 운명 맞다니까. 정성찬은 큭큭 소리내어 웃었다. 완벽하고 고결한 천사 같은 오오사키 나나코. 그리고 자신이 건드리는 대로 망가지는 천사 같은 오오사키 쇼타로. 날개 하나 꺾으면, 꺾인 상태로 자신의 곁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유감스럽게도 오오사키 나나코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날개가 꺾이지 않을. 음침한 구석이 있는 자신과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 정성찬은 조심히, 오오사키 쇼타로의 날개뼈를 손끝으로 더듬는다. 왜, 그냥 너희 누나를 사랑할까? 이제 마음도 없는데 평생 마음 있는 척 그렇게 연기 해 줄까? 성찬의 말에 쇼타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어버려, 죽어버렸으면. 자신의 누나에게 상처를 줄, 가장 완벽한 인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신도 상처를 주는 인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나나코랑 결혼해도, 너랑 평생 이런 짓 할 건데. 곧 성찬의 손이 쇼타로의 상의 속으로 부드럽게 파고든다.
“쇼타로, 너는 내가 개새끼 같지.“
“제발 죽어, 그냥 죽어.....“
“네가 제일 후회하는 건 나를 만난 거잖아.“
“시끄러워...“
“아, 아님 한국에 온 건가?“
사랑하는 누나가 울지 않게 지켜주고 싶어서? 정성찬의 모든 말이 화살처럼 쿡, 쿡 박히지만 쇼타로는 대꾸를 할 여력도 없었다. 나나코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분명히, 나나코를 울리게 하는 인간들을 다 없애버릴 거라고 다짐해서 한국에 온 건데. 지금 누나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랑 개같은 짓을 하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성찬의 말이 다 맞았다. 한국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에 오지 않았으면...... 누나를 조금만 더 믿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허리를 느리게 주무르던 성찬의 손이 빠져나오더니 손끝으로 쇼타로의 뺨을 천천히 문지른다. 왜 울어. 너만 사랑이 아니면 되는 건데. 뺨은 짓누르던 손은 곧, 쇼타로의 입술을 향하고, 곧 성찬의 검지가 쇼타로의 입술을 누르더니, 입 안으로 파고든다. 취기가 오른 혀가 뜨겁다. 혀를 누를 때마다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눈시울이 붉어져서 켁켁, 울면서도 노려보는 모습이 딱 제 취향이다. 혐오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절대로 손가락을 씹지 않는, 다정한 구석이 확실하게 있는, 사랑스러운 오오사키 쇼타로. 성찬의 입꼬리 말려 올라간다. 여태껏 자신이 본 인간 중에 가장 아름다울 거라도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고결하기만 한 아름다움은 비정상적이었다. 아름다움은 아주 약간, 망가지는 맛이 있어야 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
“네가 아닌 나나코를 먼저 만난 거야.“
너를 먼저 만났으면 이렇게 불쾌하게 바라보지도 않았겠지. 성찬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감정을 무표정으로 쏟아냈다. 물론, 오오사키 나나코를 한국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오오사키 쇼타로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쇼타로를 먼저 만났다면, 그렇게 자신의 손을 탔다면 이렇게까지 서로 엉망진창으로 엮이지 않았겠지. 사진에서 본 흑발, 처음 만났을 때의 탈색머리, 그리고 갈색 머리. 모두 다 아름다웠다. 이렇게 침대 위에 눕혔을 때 나나코처럼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길 바랐는데, 분노와 절망감에 얼룩진 표정인 건 꽤 유감스러웠지만.
그냥 미친 놈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타이밍이 좋지 않은 놈일까? 누나가 아닌, 나를 먼저 만났어도 이렇게 사랑했을까? 오오사키 쇼타로는 더 이상 몸에서 향수 냄새가 아닌 절망과 불행, 죄책감이 가득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혀를 누르고 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쇼타로는 헉헉, 숨을 몰아쉰다. 개새끼가 된 느낌과 불쾌함에 몸을 한 번 떨자 성찬은 고개를 숙여 쇼타로의 뺨에 입을 맞춘다.
“키스하고 싶은데, 오오사키 군.“
이 타이밍에 성을 섬뜩하게 부르는 것도, 목소리는 또 한없이 다정한 것까지 모두 개같았다. 쇼타로는 성찬의 턱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안경을 벗겨서 바닥으로 던져버린다. 안경에 금이 갔을까. 차라리 금이라도 가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텐데. 너는 좋은 사람이야, 쇼타로. 나나코의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바보 같은 누나, 바보 같은 오오사키 나나코. 이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야?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을 테다. 오오사키 나나코는 반드시 울게 될 것이다. 이제 곁에서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없을 만큼. 지독하게 절망을 하겠지.
그러니, 영원한 평화는 없을 것이다. 평화 뒤엔 무조건 절망이 따라오는 것 또한 불변의 법칙이었다. 오오사키 쇼타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조건 일어나지 않게... 막을 수 있을까? 더 이상 모르겠다. 키스해 주려고? 샐쭉 웃는 정성찬은 빌어먹게 아름다웠다. 무표정은 어디 가고, 대책없이 사랑에 빠진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한테서 좋은 냄새 나. 정성찬은 오오사키 쇼타로가 느낀 절망과 불행, 죄책감, 그 모든 부정적인 단어의 냄새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딱 내 취향이거든...... 불행의 냄새를 취향이라고 하는 말에, 오오사키 쇼타로는 결국 정성찬과 입을 맞추기로 한다. 입술이 닿고, 팔을 뻗어 정성찬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제 누나가 키스할 때 하는 버릇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며 정성찬은 조용히 웃었고, 오오사키 쇼타로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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