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회계사무소장 대리의 평범한 일상

부제:카론의 (개미치겠는) 하루

앨리스 보일, 아니... 이 이름은 잘 모르겠지.

괄호 치고 자칭 괄호 닫고 민간인, 엉망진창인 빌런들과 마구 뛰어다니는 히어로들 그리고 중재한답시고 있지만 영 중재하는 것 같진 않은 이능력 통제 협회 사람들이 엉켜있는 이 마을에서 바뀌지 않을 영원한 소시민, 지나치게 자유로운 사장님과 빌런들 (어쩌면, 히어로 포함)의 폭거에 눈물짓는, 평범한 얼굴과 평범한 신체와 평범한 성격을 가진 평범함의 대명사,

그래, 바로 플루토 회계사무소의 부사장, 카론이다. 28세 성인 여성. 이제 곧 있으면 서른. 그런 것 치곤 어째 받는 취급이 영 나이 든 사람의 그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데 이 동네에서 나잇값 하는 사람 그렇게 흔하진 않지? 이런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그런 카론이 살고있는 하루의 시작은 단조롭다. 6시 반, 재킷만 간신히 벗어두고 소파에 엎어져 잠들었던 카론은 뻐근한 몸을 뼈저리게 느끼며 눈을 뜬다. 어제는 잔업이었다. 엊그제도 잔업이었다. 사실 잔업을 없는 날을 세는 것이 더 쉽겠지만..., 그래도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잔업 없는 칼퇴 기간이 넉넉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조금만 더하면 쉴 수 있어.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좀비처럼 집에 기어들어 와 기절한 기억이 난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어제 저녁 안 먹었어. 배고파.

냉장고를 뒤져보면 남은 건 별로 없다. 안 봐도 뻔하지, 분명 동거인이 또 냉장고를 죄다 털어먹었을 것이다. 예상은 했어. 했지만... 그 끝도 없는 식욕에 통감하며 오늘은 조금이라도 퇴근 시간을 앞당겨 마트에 들를 계획을 세운다. 뭐라도 채워놓지 않으면 그 인간, 냉장고를 씹어먹을지도 몰라... 먹을 수 있는 게 아닌 걸 먹는 걸 본 적은 아직 없지만, 왠지 가능할 것만 같다. 아니 분명 가능해. 막연한 불안감에 몸을 살짝 떤다. 안돼, 우리 집 가구를 지켜야 해...

어떻게든 찬장을 뒤져 찾아낸 인스턴트 수프에 물을 타고, 대충 휘휘 저어 들이킨다. 아 뜨거. 그리고 가루 씹혀, 짜다... 대충 저으면 이게 문제다. 하지만 수프 젓기, 귀찮은 거지, 은근... 얼렁뚱땅 허기만 채우고 적당히 씻고 머리를 정돈하고 겉옷을 챙겨 집을 나온다. 출근을 해야 한다. 회사와 집은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산 뒤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돼... 그리고 오늘은 잔업을 조금 적게 하고 퇴근해서, 회사에서 보도로 15분이 걸리는 곳에 있는 마트를 가자... 그래, 그렇게 하자.

카론은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뜀박질로 집을 나섰다. 아, 집 문단속 잊지 말고.

하지만 뜻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과연 인생이겠는가. 오히려 그 반대면 반대였지.

카론이 죽은 눈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씹었다. 하이잭 당한 버스에서의 아메리카노가 각별하기도 하지. 어쩌면 인생 마지막 음식일지도 모르는데 음미해두자. 음, 씁쓸한 맛이 난다...

아, 젠장. 내 인생이 이렇지 뭐!


"부사장님, 웬일로 좀... 늦으셨네요?"

"미안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건만 묘하게 퀭한 낯의 카론을 걱정하는 건지 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지각해 헐레벌떡 회사에 들어왔는데도 누구 하나 힐난의 눈빛보단 걱정스러운 얼굴로 안부를 물어봐 주는 것은, 아마 카론 그녀의 인덕일 것이다. 괜한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아 카론은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중간에 운동화 끈이 풀려 그걸 묶다가 버스 하나를 놓치고, 그다음 버스를 타다가 그대로 하이잭 당해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가, 빛처럼 나타난 히어로가 영 어리숙했던 잡범의 머리통을 걷어차 날려버렸고... 이후 구출된 인질들 모두 경찰서에 동행해 사정 청취를 끝내고 왔다는 이야기를 굳이 직원들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댈 이유도 없지 않은가. 일단 카론은 마음속으로 구해줬던 그 히어로에게 익명의 후원을 넣어둬야겠다, 하고 내심 다짐했다. 감사합니다 히어로. 역시 민중의 방패! 멋있어! 반한다! 과잉 대응으로 시말서는 좀 쓸 것 같던데 시민들의 여론을 긍정적으로 몰면 별 큰일 없이 적당히 수습될 것이다. 구해준 은혜는 이걸로 갚습니다... 그리 생각하며 카론이 유순한 낯으로 머쓱하게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부사장인데도 지각하다니, 모범을 보이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다..."

"에이, 부사장님 원래 안 그러시는 분인거 모두가 다 아는데요~"

"맞아요~"

"그래도요. ...반성의 의미로 오늘 아침 커피들은 제가 살까요? 시킬 테니 다들 메뉴 정하세요. 꼭 커피가 아니어도 되니까."

"우와!"

"부사장님이 사시게요?"

"그럼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전 아아요."

"아, 저도... 부탁드립니다."

"오! 나 두 개 먹어도 돼? 디저트 빵."

"평등해야죠. 인당 한 메뉴에요."

"치사하다. 우우, 짠돌이."

저기 혹시 앞으로의 보너스 같은 거에 관심 없으신가 봐요? 앗 미안 하나만 먹을게.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카론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직원들이 눈치를 덜 본다. 카론은 언제나 수평적이고 편안한 회사 분위기를 원했기 때문에, 내심 그에게 보너스 챙겨줄 일 생기면 조금 더 넣어주자... 하고 생각했다. 뭐, 보너스 받아 가려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셔야겠지만. 그건 그의 능력에 달린 일이다.

모두의 메뉴를 듣고 스마트폰으로 하나씩 눌러가며 주문한 뒤, 가볍게 박수를 쳤다. 가벼운 파열음과 몰리는 시선에 카론은 희미하게 웃었다.

"주문도 다 했고, 슬슬 일합시다."

네,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들에 카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할 시간이다.

"부사장님, 저번에 컨설팅 문의가 왔던 거기인데 꼭 사장님을 뵈어야 하겠다고..."

"아... 제 쪽으로 돌려놓으세요. 괜찮아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누가 여기 0 하나 더 썼어?"

"뭐야? 개별공시지가 이의신청대리를 왜 여기로 보내? 세무사무소나 보내드려!"

"미안한데 이것 좀 복사해줄래요?"

"오케이~"

"이거 자료 어딨어?"

사무소는 크지 않다. 이 말은 작고 소소한 인원들이 이것저것 다방면의 업무를 해내야 한다는 뜻이다... 어우 정신없어. 어수선한 사무소 안, 카론은 은은하게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떼고 조금 안심한 표정의 직원에게서 인계받은 전화를 받는다. 네 플루토 회계사무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뭐야? 사장 바꿔달라고!"]

"지금 사장님이 부재중이셔서 제가 총책임자입니다. 무슨 용건이실까요?"

["뭐?... 사장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객님, 어떤 용건이실지에 따라 대부분은 이쪽 선의 권한으로 처리가 가능합니다. 어떤 용무로 사장님을 찾으실까요?"

["..."]

곧 잠시 침묵하다 말고 응답 기계처럼 사장과 얘기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카론은 조금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아, 이새끼 회계사무소 건으로 전화 건 거 아니네.

"죄송하지만 사장님 관련 개인적인 연락은 개인번호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회선은 업무 회선이라서..."

["개인 번호를 알아야 연락을 할 거 아닌가! 급한 일이야, 어떻게 안 되나?"]

그럼 네가 플루토님한테 딱 그 정도의 인간이라는 거지, 버러지놈아.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카론은 눈썹을 팔자로 늘어트리며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디서 소문 듣고 기어들어 온 건지... 대외적으로 우리 사장님은 신비주의인데. 적당히 알아봐야...

"...사장님이 돌아오시면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만 개인 번호로 연락이 갈 테니까, 업무 회선은 저희 회계사무소 관련 용건이 있을 시에만 사용해주시면 감사합니다."

["...뭐, 그 정도로 어쩔 수 없나. 그렇게 해주게."]

"네,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조금 불안한 낯으로 이곳을 보는 직원에게 별일 없었다는 듯 가볍게 손을 내저은 카론은, 다시 업무로 돌아가려 키보드에 손을 올리며 마음속으로 11자리의 숫자를 외웠다. 개인 번호는 무슨, 네가 사장님의 개인 정보 하나라도 얻을 것 같냐? 네가 왜 사장님을 찾으려 하는지 대체 사장님의 뭘 어디서 들은 건지 실오라기 한 올까지 싹 다 털어주마. ...젠장, 쓸데없이 추가 업무가 또 늘었어.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려 했는데... 마트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곧 키보드 소리와 가끔씩 울리는 전자음 소리만 사무실을 채운다.


사무실의 불을 끄고 보안을 확인한다. 가장 마지막까지 사무소에 남아있기로 이름이 자자한 회계사무소의 부사장, 카론은 시계를 보며 마트까지 가는 시간을 가늠했다. 음, 지금 가면 한창 마감 세일 하고 있겠다...

예상치 못했던, 급하게 해결해야 할 잔업—그 개자식 3시간에 한 번씩 아직도 사장님 안 들어왔냐고 전화질이더라—을 하느라 결국 아침의 계획보다 좀 늦게 사무실을 나서고 말았지만, 마트를 아예 가지 못할 시간대도 아니다.

좋아, 적당히 조깅도 할 겸 걸어가자, 아니 걷긴 시간대가... 좋아, 살짝 뛰자... 하고 마음을 먹고 카론은 지친 몸을 끌었다.

...끌었을 텐데.

"아..."

카론은 탄식하며 흐릿한 눈으로 마트를 바라보았다. 불 꺼진 건물의 외벽이 엉망친장이었다. 흠집이 난 문에 붙어 있는 벽보만이 새것처럼 빳빳했다. [금일 있었던 기물파손 사건으로 인해 짧은 재정비 시간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손님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 빌어먹을 동네는 기물파손이 일상이다. 허구한 날 나타나는 빌런들의 유쾌한 소동(그러니까, 빌런들 입장에서는.)과 그걸 저지하려는 히어로(정의의 편에게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가끔 힘이 너무 들어간 과격파 히어로들이 없잖아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둘의 과한 분쟁을 막으러 달려오는 이통협(달려와서 말려주면 고마운데 만약 밥 잘 드시는 어떤 분이 와버린다면 중재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끝장이 난다.) 사이에 낀 도로, 건물, 가로수들은 불쌍한 샌드위치 재료가 되어 납작해질 수 밖엔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카론의 사장님도 거기에 일조하고 있지 않은가? 제기랄, 혹시 이게 업보라는 놈인가?

그렇지만 우리 사장님은 건물을 부수고 다니진 않는다구요! 사람 정신은 몰라도! 잠깐, 내용이 이상한 곳으로 새잖아. 우리 사장님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마? 카론은 그리 생각하며 머리를 짚었다. 에잇, 아무튼 간에.

중요한 점은 오늘의 마트가 이미 카론의 곁을 떠나갔으며, 카론은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론은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냉장고 채워야 하는데...


...우선 저녁이라도 어딘가에서 사서 먹고 들어가자. 배달비가 아까워, 그리 생각하며 주변 상가를 돌아보고 있을 차였다.

도로 한 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는, 특이한 패션의 사람을 보자마자 카론은 감으로 알았다. 저 사람 빌런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미친 동네는 히어로와 빌런의 밀집 지역이라, 허구한 날 야생 포켓몬처럼 이렇게 야생의 빌런과 마주하곤 한다.

소시민의 생존본능이 경적을 울렸다. 카론은 바로 발걸음을 돌려 소리 없이, 빠르게 걸었다. 엮이지 말자. 모브 특유의 한적한 존재감을 믿어...

"거기 너, 잠깐 서 봐."

"앗 넵."

이런 제기랄.

카론은 얌전히 제자리에 멈춰 서며 식은땀만 찔끔 흘렸다. 이럴 땐 반항하지 않는 게 상책이며 모브의 마음가짐이다. 최대한 심기에 거슬리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민간인의 삶은 가혹하다...

하지만 이렇게, 지극히 평범하고 재미없는 일반인의 반응을 보여준다면 몇몇 빌런들은 그냥 보내주기도,

"춤이라는 건 삶의 표현이지? 그렇다면 댄스 배틀은 삶의 표현을 대격돌시키는 거잖아? 그럼 결론은 데스 게임이라고 생각 안 해?"

"네?"

뭔소리야 이 사람.

앗 이 사람 약간 플루토님 과—극한의 마이페이스—잖아. 큰일났다. 카론은 조금 주춤거렸다. 수많은 경험으로 깨달은 바, 이런 타입은 최대한 빨리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안 그럼 얽혀. 자연재해처럼 엮인다.

...하지만 모두가 알겠지.

자연재해가 피해진다고 피해지는가?

"좋아. 우선 춤 출까. 드랍 더 비트."

"네? 아뇨, 싫어요..."

"하—하!"

"왜, 왜 이러세요. 잠깐, 다가오지 말.. 아악! 무서워! 가까워!! 저기요!? 저기요!!"

"하—하하!"

"흐아아악, 미친 사람아—!"

"하—하하하!!"

"아——악——!!!"

장장 30분의 술래잡기는 비명을 듣고 달려온 한 친절한 정의의 히어로에 의해 수습되었다. 카론은 그 히어로를 백마 타고 광야로 내달린 초인처럼 보며 말 없이 구원자에 대한 감사로 손을 모았다. 오오 감사합니다.

히어로는 정의의 편에 걸맞은 따뜻한 미소로 빌런을 수갑 채워 철장에 처넣고 카론을 집까지 마중해준 뒤에야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카론은 다짐했다. 익명 조공을 해야겠어... 익명으로 히어로 협회에 저 히어로 이름으로 후원을 넣어야지..., 카론은 은혜 갚기의 방법이라곤 키다리 아저씨 밖에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뭐 그녀의 은원 감각이 어쨌든 일단 집이다. 굉장히 피곤했다. 카론은 은인에게 익명의 키다리아저씨—따지자면 키다리 청년일 것이지만—가 되기 전에 우선 잠부터 자고, 그리고 일어나서 씻고 다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차가운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작은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동거인이 틀어놓았나 싶은 TV의 소리가...

그리고 카론은 문득 떠올렸다.

아,

저녁 안 샀어...

정신이 너덜너덜했다.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영 아니었다. 텅 빈 냉장고와 인스턴트 수프로 시작해서 출근길부터 버스 하이잭을 당하는 탓에 회사는 지각, 일하는 도중엔 뭔 거지 같은 진상이 사장님을 찾아대며 업무를 추가시키지 않나, 늦은 잔업을 끝내고 찾아간 마트는 오늘 하필 휴무, 어쩔 수 없으니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가려 하니까 갑작스럽게 마주치는 빌런...

아침 저녁을 빌런과의 멋진 대담으로 끝내다니 기분이 아주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카론은 아는 정보상에게 연락해 그 두 놈 다 뒷정보 탈탈 털어 약점이라도 잡아두겠다고 다짐했다.

집에서 해결한 저녁은 냉장고가 텅텅 비었으니 적당히 아무거나 배달시켰다. 동거인에게 3분의 2는 뺏겼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동거인이 냉장고를 씹어먹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저녁 먹고 들어왔댄다. 냉장고가 무사함에 카론은 유일하게 감사했다. 아니, 근데 저녁 먹고 들어오셨으면 제 저녁은 왜 또 뺏어 드시는 거죠...

그래...

정말 오늘 하루는... 참...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사장님을 본받는 거야.

오늘 하루는 조금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 많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밑바닥을 쳤다면 올라갈 길만 남은 거겠지.

오늘은 많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에 비하면... 내일이고 모레고 글피고, 오늘보단 나을 것 같다... 분명 오늘보단 낫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쁠 것도 없다.

그래...

내일은...

어쩌면 조금 괜찮을거야...

눈꺼풀이 무겁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양말을 벗었던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뭐... 괜찮아...

카론은 그렇게 하루를 끝낸다. 꿈에서 카론은 플루토와 대화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사장님이 웃고 계셨으니 좋은 일이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난 카론은 아침부터 직원들에게 걸려 온 다급한 전화를 받고 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으로 사무소 절반이 반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론은 그대로 뒷목을 잡고 넘어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과로와 스트레스성 위염을 진단받고 3일을 입원했다. (다행히 어디 사는 무면허 야매 의사의 병원은 아니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응급실이더라. 목숨을 건졌다.)

창문으로 돌격! 다이나믹 병문안! 을 행하신 사장님은 그 참상을 듣고 폭소하며 '슬슬 자네 머리가 과부하로 펑크날 것 같아서 어디로든 휴가 보낼 심산이긴 했어. 잘됐네! 이참에 잠이나 늘어지게 자게! 난 사무소를 폭파시킨 자들을 구경이나 가겠다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가셨다.

카론은 휴가(강제)가 생겼음에 기뻐해야 하는지 퇴원 후 미친 듯 몰아칠 밀린 일감들을 상상하며 울어야 하는지 모르는 얼굴로 일단 잠을 잤다. 그리고 14시간을 자고 멀끔해진 정신으로 일어나 히어로 협회와 보험 회사에 손해비용을 청구했다. 빌런 쪽에는 나중에 따로 뭐라 말하기 힘든 방법으로 갚아뒀다. 카론은 상쾌하게 웃었다. 하하.

추락하는 데엔 끝이 없다더니 매일매일이 저점 갱신이네.

개미친 동네. 플루토님만 아니었어도 진작 떴다...

그렇게 오늘도 플루토 회계사무소는 영업 중이다.

복지 완비 사대보험 적용 국가 모범기업 선정 화이트 회사, 그리고 좀 평범한 부사장이 일하고 있는 플루토 회계사무소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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