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멧새

단장x팬텀 약간

by 쿠리
39
2
0

혀가 뚫리는 고통은 달콤한 피 맛과 함께 목 너머로 와인처럼 흘러간다. 루시안은 이 귀한 경험을 두 번 겪어 봤다.


"아프니?"

루시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은쟁반 위에서 꿈틀거리는 자신의 살덩이를 볼 수도 없었다. 입안에 꽉 다물리도록 물린 솜은 입을 열기는 커녕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었으니까. 그저 고개를 가만히 푹 숙이고 있을 뿐이다. 루시안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흐르는 피는 다 삼켜야 한다. 그 가르침 대로 꼴깍꼴깍 자신의 피를 받아 삼키며 이 통증과 쑤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자신의 삶에서 고통은 지워질 수 있을지 우울한 생각을 곱씹었다. 생각과 함께 삼켜진 피는 뚝뚝 위장으로 쏟아진다. 타인의 살점을 뜯어먹는 것처럼 위장은 자신의 신체를 잘도 소화했다.

"며칠 지나면 너는 좀 더 능숙하게 노래하게 될거다."

극단장은 은쟁반에 올라간 루시안의 살덩이를 포크로 쿡쿡 눌러 찍었다. 루시안은 방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감히 극단장에게서 등을 돌릴 순 없었기 때문에 그저 그가 루시안의 일부를 희롱하고 건드리는 걸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아만 했다.

"루시안."

기껏 바닥으로 내렸던 시선이 올라간다. 루시안은 자신의 피가 번들거리는 은쟁반에서 시선을 돌려 극단장을 바라보았다.

"혀는 매우 고급 식재료라는 거. 알고 있니?"

알고 있을리가 없었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고 그마저도 부모를 잃었다. 극단에 들어와서는 훈련과 연습만 거듭했지 질 좋은 요리나 고급스러운 식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자들은 내장같은 가축의 부속물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런건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혀도 그런 부속물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루시안은 가난한 시절 가끔 고기를 얻어먹을 때에도 혀 만큼은 먹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시안은 침묵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럼 한 번 보는 것도 좋겠구나."

극단장은 뾰족한 끝으로 말랑한 루시안의 살덩이를 밀어 헤집었다. 벌려진 틈 사이에서는 뚝뚝 체액이 스며나온다. 극단장은 한 방울 흐르는 피를 은식기로 긁어내렸다. 은끼리 부딪히는 고운 소리가 울리고 반짝이던 표면이 액체로 번들거렸다. 루시안은 시선을 돌리고 싶었으나 꾸욱 참고 다시 한 번 피와 함께 침을 삼켰다. 탱글거리던 형태를 유지하던 루시안의 살덩이는 극단장의 손길에 맞춰서 뭉그러졌다. 한 조각도 되지 못할만큼의 작은 일부. 그러나 지금 극단장의 손 끝에서 벌려지고 체액을 흘리고 무력하게 문질러지는 살은 분명 루시안의 일부가 맞았다. 극단장이 은식기를 긁으면서 루시안을 빤히 바라본다. 루시안은 그 눈속에 담긴 감정을 알 수도 읽어낼 수도 없었지만 그가 그 살점을 대하는 태도로 루시안 자신을 대하고 싶어한다는 것 즈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극단장의 손이 들린다. 그 끝에 쥐어진 나이프에 맺힌 루시안의 피. 극단장은 입을 벌리고 자신의 혀 위로 그 피를 퍼발랐다.

“음….”

감미로운 콧소리와 함과 극단장은 눈을 감는다. 루시안은 천천히 겨우 호흡을 이어나간다. 나를 잡아먹었어. 저 사람은 지금 나를 먹었어. 본능이 비명을 지르지만 지금 루시안은 목구멍은 솜으로 가득차 비명은 커녕 한 마디의 숨조차 제대로 뱉을 수 없다.

“나쁘지 않군.”

극단장은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나쁘지 않다는 건 최상의 표현과 가깝다. 요리조차 되지 못한 피가 그렇게 맛있을까? 뻣뻣하게 굳은 루시안을 보고 미소를 지은 극단장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장갑 아래에서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방금 루시안의 혀 일부를 잘랐던 셰프가 걸어나온다. 그리고 아직 생생하게 피를 흘리는 살점이 담긴 은쟁반을 들어올렸다. 살점은 극단장에 의해서 유린당했다.

"네 혀는 무척 근사한 요리가 될거야."

루시안은 토하고 싶었다.


오늘 크림슨 극단의 신성이 무대에 오릅니다.

무대의 막이 서서히 열리고, 샹들리에가 무대 중앙에 높이 걸렸으며, 무대 아래 객석은 꽉 찼다.

오늘의 레퍼토리는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혀가 잘린 주인공은 무대 중앙을 걸어간다.

여기에서는 무대 위의 배우도, 무대 아래의 관객들도, 심지어 입을 벌리기 시작한 주인공도, 평등하다.

그날의 무대에서는 모두가 도륙당했다.

한 사람의 인격이 잡아먹힐 때, 그 때 토하지 못 한 것들을 주인공은 모조리 무대에 쏟아냈다.


“미아웅.”

검은 고양이가 바닥에 누운 루시안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입에는 죽은 새가 물려있다. 루시안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자신은 살인자다. 극단의 배우도, 관객도 모두 그냥 살인자다. 우리는, 나는 너무 많은 생명을 죽였어. 우리가 죽인 생명의 살점 만으로도 온 도시를 먹여살리고도 남을거야. 루시안은 극단을 나온 이후로 식욕이 없었다.

“웨엥.”

미스 크리스틴이 루시안의 얼굴 옆으로 새의 사체를 떨어트린다. 깃털 한 가닥이 루시안의 얼굴 위에 닿는다. 미스 크리스틴은 미동없는 그를 바라보면 새의 머리를 씹었다. 우드득 까드득. 생명이 꺼진 신체의 뼈가 눌리며 씹히는 소리가 생생하게 온 방안을 울린다. 루시안의 얼굴 위로 얹어지는 깃털은 늘어만 간다. 작게 감은 두 눈은 소음에 천천히 뜨이고 그녀가 하나의 생명을 갈취하고 섭취하는 광정을 똑똑히 목도한다.

삶은 생명을 갈취하는 것으로 유지된다. 그게 타인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을 거두는 것에서 시작한다. 루시안은 극단의 모두를 죽였다. 그들의 생명을 갈취했다. 그들의 살점과 피를 삼키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음으로 자신의 새로운 삶을 만들었다.

“크리스틴….”

루시안의 부름에도 그녀는 대답이 없다. 혀로 샥샥 살점을 핥고 깃털을 뽑아 날릴 뿐이다. 그녀는 새의 머리를 뜯어먹고 곧이어 날개와 가슴을 씹어삼켰다. 바닥에는 작은 핏방울과 함께 깃털을 비롯한 부속물만이 남는다.

“…”

루시안은 그녀가 삶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할 수 없다. 그녀가 새를 사냥하고 잡아먹고 부속물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타인의 생명에 대해서 루시안은 더 이상의 간섭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명백하게 있다. 그리고 그런 욕구를 루시안에게 가르치려고 한다. 루시안은 눈을 감았다. 미스 크리스틴은 곧 루시안의 몫을 사냥해 가져올 것이고, 루시안은 그걸 먹지 않을 것이며 결국 그 새의 사체는 그녀의 다음날 식사가 되겠지.

루시안에게 있어 삶이 포기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루시안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죽음을 행한 탓에 이 이상의 생명을 거두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그의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루시안은 극단을 와해 시킨 이후로 제대로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구루륵.”

식사후에 기척없이 사라졌던 미스 크리스틴이 다시금 되돌아온다. 입에 무엇을 물고 있는지 목을 울려서 낸 소리. 루시안은 눈을 뜨지 않았다. 깃털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리는 간지러운 촉감에도 움직임 하나 없이 여전히 누워있었다.

“삐룩.”

들려서는 안될 소리, 생명이 깃든 소음에 드디어 루시안이 다시금 눈을 뜬다. 미스 크리스틴의 입에는 살아있는 멧새가 날개가 꺾인 채 잡혀있다. 비틀린 날개에서 작은 피가 천천히 새어나와 깃털에 스며든다. 멧새는 다시금 길게 울음을 터트렸다. 크리스틴에게 완전히 붙잡혀 푸드덕 푸드덕 날개짓조차 하지 못한다. 한 쪽 다리는 이미 부러졌고 날개는 꺾였다. 지금 치료한다고 해도 이 생명은 살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눈을 뜬 루시안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미스 크리스틴은 다시금 목을 울렸다. 그리고 입을 살짝 벌렸다가 꽈드득 깨물었다. 멧새의 날개가 잘린다. 바닥으로 떨어진 작은 새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삐룩삐루룩 거리던 울음소리는 기괴하게 뒤틀렸다. 곧 모든 생명이 꺼지게 될게 분명했다.

루시안은 겨우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스 크리스틴은 살아있는 멧새를 루시안에게 콧잔등으로 밀어 권한다.

"…나…나는..“

루시안은 아직 죽지 않은 멧새를 내려다본다. 새가 발버둥을 칠 때마다 바닥에 핏방울과 깃털이 더욱더 나부낀다.

“먹고 싶지 않아…”

하지만 미스 크리스틴은 루시안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금 그림자 처럼 나타난다. 그녀의 입에는 이제 과도가 놓여져 있다. 루시안은 그 과도가 멧새의 옆에 떨어지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메웅!”

그녀는 피묻은 입가를 훔치고 다시금 루시안의 앞에 자리잡는다. 그녀는 루시안을 따랐고 함께하기로 원한 간청을 들어주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루시안의 삶에 강력하게 간섭했다. 이걸 거절하면 아마도 그 다음에는 잠자는 루시안의 입에 새를 물여다가 먹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루시안이 살아가기를, 삶을 유지하기를 욕구한다.

루시안은 먹어야 한다.

어쩔줄 모르는 루시안의 손 위로 미스 크리스탄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멧새를 물어다가 놓는다. 루시안은 그녀가 직접 깃털을 물어 뜯는 것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벌겋게 드러난 살. 떨리는 생명. 차가워지는 온도. 루시안은 미스 크리스틴의 울음소리에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멧새의 몸 위로 이를 세웠다. 연한 살가죽이 물컹하게 이에 닿아오고 비릿한 피와 살점이 혀를 달랜다. 루시안이 한 점을 뜯는 순간 멧새의 숨은 완전히 끊어졌다.

"아파. 미스 크리스틴. 나 아파."

날카로는 새의 뼈는 거침없이 루시안의 혀를 찌르고 피를 낸다. 루시안은 눈 앞에서 먀아악 우는 검은 고양이에게 순순하게 고통을 토로하고 입에서 흐르는 피를 훔쳐내었다. 제대로 발음 할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문장들이 바닥에 나뒹군다. 루시안은 혀가 꿰뚫리고 짭짤하게 피가 섞여서 목 넘어로 흘러가는 걸 꿋꿋하게 삼켜내면서 웅얼거렸다. 하지만 미스 크리스틴은 고통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루시안은 자신의 손아귀에 든 생명을 다 먹어치워야 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삶에 있어서 그는 침묵해서는 안되었다. 한 입 한 입 살점을 뜯고 과도를 들어 깃털과 큰 뼈를 잘라낸다. 루시안은 칼날에 자신의 손이 베이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가 바라는 식사를 계속했다.

루시안은 식사를 하면서 엉엉 울었다. 자신의 피와 섞여들어가는 멧새의 살점이 너무 맛있었다. 익히지도 않았고 비릿한 피맛이 그득하며 씹기도 어렵기만한데 자신이 아닌 생명을 섭취하는 행위는 너무나 달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생명을 갈취하며 깨달은 사실은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는 견해 뿐인데도, 지금 당장 손아귀에서 맞이한 죽음은 너무 신선하고 달다는 사실에 자신이 너무 추악하게만 느껴져 루시안은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혀 위로 감도는 짠맛이 피맛인지 눈물의 맛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우흑…”

루시안은 울면서도 꾸역꾸역 새의 작은 뼈를 마저 삼켜냈다. 본능같은 위장은 기뻐하며 지 몸의 피인지도 모르고 새의 살점과 함께 소화한다. 루시안은 자신의 피가 묻은 손가락을 핥고 빨았다. 먹지 않을 때에는 몰랐으나 입에 뭔가가 들어가기 시작하자 시장함과 공복감의 고통을 버틸 수가 없었다. 삶의 타인의 생명으로 유지된다면, 삶의 본질은 고통임이 틀림없다. 그 고통을 덮고 달래주는 게 식사가 아니던가.

“웨웅.”

그녀가 루시안을 바라본다. 그리고 피흘리는 손가락을 핥아준다. 그녀의 혀, 그녀의 입속으로 자신의 생명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루시안은 과도를 내려놓았다.

“먀아웅…”

그녀가 속삭인다. 루시안 너는 사냥하는 법을 안다고. 은밀하고 조용하게 생명을 거둘 줄 안다고. 루시안은 자신의 피와 멧새의 피가 그득한 칼을 바라보았다. 그는 살육을 자행할줄 안다. 그는 사냥꾼이다. 그는 암살자다.

살육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의 하나야.

루시안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깨우쳤다. 어느 나라던 어느 장소던 정치와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는 추악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추악한 일을 해줄 암살자가 필요하다. 그건 빅토리아도 다르지 않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안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는 어두운 밤을 떠도는 유령, 무대막 뒤의 환영이다. 그는 스스로를 자조하며 새로운 코드네임을 팬텀이라고 지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