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의 고착

그분독자

300화 짧은 조각글


아. 또 저런 얼굴이다.

나에대해 다 아는 표정을 짓고서 마치 자신이 제 유일한 구원인 것 마냥 구는 위선자의 얼굴.

내가 어둠에 빠져 질식하고 있을 때, 자신의 몸이 산산히 부숴져도 날 끌어 올려 숨이 트이게 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한 놈의 얼굴. 또한, 그 얼굴은 절 향해 있는 것이 아닌 다른 나에게 향해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 마자 속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에 역겨움을 느끼며 놈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은 손으로 옆에 놓인 와인잔을 들었다.

와인을 한모금 마시자 그가 내게 요구했다.

“..절 이만 지구로 돌려보내 주시죠, 은밀한 모략가.”

마치 오래 전부터 날 아는 것 마냥 제 수식언을 말하는 데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구원의 마왕,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지?“

“..예?“

“어째서 3회차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 거지? 네놈만 아니였다면 그 회차의 유중혁은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입 밖으로 꺼낸 활자들에선 새파란 날이 서 있다. 

놈만 아니였어도 ‘유중혁’, 적어도 그 회차의 ‘유중혁’만큼은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놈만 아니였으면 ‘유중혁’은 지옥도보다 더 큰 지옥같은 현실에서 끝 없는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구원의 마왕, 김독자만 아니였어도…

김독자는 은밀한 모략가를 올려다보며 가장 역겨운 위선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난 그런 위선따윈 필요하지 않다. 저런 끔찍한 동정의 얼굴을 비틀어버리고 싶다. 저 날개를 꺾고, 뿌리를 다 뽑아 놈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다. 발목을 분질러 버리고 팔목을 비틀고 마지막으로 목을 조른다면…

물론 그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에게 가장 끔찍한 지옥도를 선물해준 사람과 동시에, 자신... 아니, ‘유중혁’의 유일한 구원자.

이런 광적인 집착을 알고나 있을까.

그를 산산조각 내고 싶다는 생각과 그를 누구에게도 깨지지 않도록 감싸고 싶다는 생각이 뒤섞여 비로소 자신의 유일한 구원자에게 다가간다.

“은밀한 모략가..? 뭐 하시는..”

그의 입에 베일을 덮고 그의 숨결에 자신을 섞었다.

정말 흥분도, 질척이지도 않는 그저 입술을 붙이는 행동이였다.

행동을 마친 뒤 그의 얼굴에서 떨어졌다. 베일을 걷어내니 하얀 얼굴은 이미 새빨간 색이였고, 새하얀 목덜미도 누가 핏방울을 떨어뜨린 듯 물들어 있었다.

지금은, 이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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