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혁독자] 2월 15일 김독자 생일 글
*퇴고x
2월 15일은 무슨 날인가? 밸런타인데이? 그건 2월 14일이다. 그렇다면 15일은 무슨 날인가? 일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날인데?’하고 되물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반 사람에게 묻는다는 전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질문해야 대답을 들을 수 있는가? ‘그’를 아는 사람에게 질문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모두를 구원하고 지옥으로 떨어트린 인물이며, 수많은 별 중 하나임과 동시에 패왕 유중혁의 애인 ‘김독자’다.
애인의 생일은 커다란 별이 100개 붙을 정도로 중요한 날이다. 며칠 전부터 어떻게 애인의 생일을 축하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
김독자는 유중혁의 생일을 위해 코인을 탈탈 털어 ‘사랑하는 연인의 생일파티 세트(ver. 성인용)’을 구매해 금전, 정성은 물론 몸까지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축하했다.
과연 유중혁은 무엇을 준비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흉흉한 얼굴과 살을 찌르다 못해 후비는 기세만 아니라면 말이다.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퀭한 눈, 거멓게 죽은 피부, 굳게 다물린 퍼석한 입술, 그리고 생각에 짓눌려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 하나가 검은 숲에 우뚝 서서 빛에 바스러지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심각하게 만들었다.
”억후! 악마종인 줄 알고 칼 던질뻔했네.”
아무리 유중혁이 심각한 조각상으로 변했다고 해도 한수영이 던진 칼을 못 피할 정돈 아니었다. 애초에 악마종을 칼 하나 던진다고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 근심이란 근심은 다 안은 검은 눈이 한수영을 향해 데구루루 굴렀다. 기괴한 유중혁의 행동에 소름이 돋은 한수영은 팔을 연신 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렇게 봐?”
한국인이라면 놀라거나 무서울 때 나오는 필터링에 가려지는 나쁜 말을 내뱉은 한수영이 유중혁과 거리를 벌리며 물었다.
무엇도 읽을 수 없는 눈을 한 미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의 한숨을 주워 담으며 그의 근심을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안쓰럽고 근사한 얼굴이었다. 어디까지나 근심 가득한 미남이 유중혁이 아니라면, 그걸 본 사람이 한수영이 아니라면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유중혁. 그 이름을 듣는다면 ‘유중혁에게 걱정거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패왕’이 주는 이름값과 그의 행적만 본다면 그렇다.
유중혁과 근심이라니. 안 어울린다. 걱정거리가 생겨도 힘으로 좍좍 찢고 칼로 난도질해 우주 먼지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인물이 아니던가. 뭐, 아니면 말고.
어쨌거나 뭣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이미지를 가진 유중혁이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땅을 파고 있으니, 궁금증이 생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수영이 멀찍이 떨어져서 입을 열었다.
“시나리오 문제냐? 말해봐. 누나가…….”
“김독자 생일이 내일이다.”
한수영의 말을 썩둑 자른 유중혁의 말은 한수영에게는 전혀 심각하지도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괜한 것에 귀한 시간을 썼다고 투덜거린 한수영은 약지로 귀를 후비며 획 몸을 돌렸다.
처음으로 말을 걸어 같이 고민해 줄 사람을 찾은-상대가 한수영이라는 건 반갑지 않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유중혁은 순식간에 한수영의 뒤에 도착해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아악!”
무식하게 세기만 한 아귀힘에 한수영이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설렁설렁 지나가던 몇몇 사람조차 두 사람을 멀찍이 떨어져 쓱 보곤 제 갈 길 갔다.
냉정한 현실을 곱씹으며 간신히 유중혁의 손에서 탈출한 한수영은 말 못 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어깨를 문지르며 으득 이를 갈았다.
“김독자 생일 선물을 준비했나.”
“내가 왜?”
항의하기도 전에 창처럼 들어온 질문을 방패로 막았다.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며 선을 긋는 한수영에 유중혁은 눈을 치켜뜨더니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질문할 사람을 잘못 골랐군.”
명백한 비웃음.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를 낮잡아 보는 눈. 한수영은 도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유중혁이나 한수영이나 자존심 강하고 걸려 온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은 아니라고 부정하겠으나 다른 사람이 보기엔 똑같았다.
“그러는 넌 뭐 좋은 거 준비했나 봐? 명색의 애인인데 김독자 눈 돌아갈 만한 걸 준비했겠네.”
안 그래? 팔짱을 끼고 턱을 든 한수영이 유중혁을 도발했다. 유중혁이 왜 이렇게 심각한 얼굴로 잔해더미에 앉아있는지 보기만 해도 답이 나오건만, 한수영은 그 잔해를 들쑤시다 못해 폭탄을 설치했다.
턱에 호두가 생기고 손가락이 손바닥을 향해 굽었다. 푸른 핏줄이 불거진 손등과 대비되는 우수에 찬 눈과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퍽 잘 어울렸다. 소름 끼치는 화합에 한수영이 필터링이 적용된 육두문자를 혀끝에 굴렸다.
“준비 못했냐?”
“…….”
대답을 듣지 않아도 유중혁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수영은 씰룩이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눈이 즐거움에 휘어지고 광대가 올라갔다. 입이 크게 벌어지더니 푸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천하의 유중혁이! 패왕이!”
애인 생일 선물 준비 못 해서 똥폼 잡고 고민했다니! 숨넘어갈 정도로 낄낄 웃던 한수영은 유중혁의 손이 검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스타스트림이 몇 분 뒤 망한다는 심각한 말을 들은 듯한 얼굴로 유중혁의 고민을 기꺼이 함께 나눴다.
근데 내가 왜 이걸 생각하고 있지? 얼마 가지 못해 삐죽 솟은 마음이 경로를 이탈해 버렸지만, 1초든 1분이든 함께 고민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김독자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 그거나 입어줘.”
“미쳤나?”
아무것도 읽을 수 없던 눈에 경멸이 담겼다. 한숭영은 기분이 매우 나빴으나 참고 유중혁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고로 선물이란 받는 사람이 받으면 좋아할 것을 주는 거야. 게다가 애인 생일 선물이면 범위는 더 넓어지지. 그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너도…….”
“닥쳐라.”
“좋은 마음으로 알려줘도 지랄이야?”
“죽인다.”
“내가 김독자냐고!”
후다닥 달아난 한수영은 유중혁에게 아름답고 상쾌하며 저속한 손동작으로 유중혁의 고민을 털어주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둘러 하늘을 가르고 별을 떨어트릴 것 같던 기세의 유중혁은 한수영을 쫓아오지 않았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벽을 짚은 한수영은 턱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빌어먹을 커플.”
커플 지옥 솔로 천국. 세상에 필요 없는 말은 없다. 한수영은 속으로 커플들이 죄다 깨졌으면 하고 중얼거렸다. 물론 지금 말고!
한수영의 시야에 휘적휘적 이동하는 김독자가 걸렸다. 재미있는 순간을 놓칠 수 없는 법. 한수영은 힘 빠진 다리를 움직여 김독자에게 달려갔다.
“여, 김독자!”
“뭐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걸 지금 알아서….”
좀 무섭다랄까. 우리 중혁이 질투가 얼마나 심한데. 한숨을 폭 내쉬며 유중혁을 피해받은 초콜릿 다 먹어 치우러 간다는 그에 한수영은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치 않은 깨달음이었다.
“누나가 좋은 소식 물어왔는데. 알고 싶지 않아?”
한수영이 말하는 건 영양가 없을 거라 판단했는지 김독자가 손을 휘적였다. 필요 없다는 제스처에 한수영은 마음에 가시가 돋아나려는 것을 애써 누르며 김독자의 어깨에 두른 팔에 힘을 실었다.
“유중혁이랑 관련된 건데도?”
“…뭔데?”
김독자에게 유중혁은 그저 ‘애인’이라는 단어에 묶일 존재가 아니다. 어두운 삶을 비춘 빛이자 지탱해 준 지팡이 같은 존재였다. 그런 김독자를 붙잡을 미끼로 알맞았고, 김독자는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유중혁이 너를 위해 근사한 걸 준비한 모양이더라?”
“…지금 죽었다가 살아나면 시나리오에 지장 없으려나.”
유중혁이 근사한 걸 준비했는데 왜 네 죽음을 걱정하냐는 질문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한수영은 잘 참았다.
“내일이 무슨 날이지?”
한수영의 말에 김독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머릿속의 달력을 훑은 김독자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애인이 있으면 세상이 망해도 절대 놓쳐선 안 될 날이지. 그렇지?”
그러니까 네가 8월에 성좌들까지 끌어들여 그 짓을 한 거 아니겠어. 사랑하는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가장 기쁘고 보람찬 일이니까. 안 그래? 악마의 속삭임에 김독자의 귀가 팔랑거렸다.
“그 말은….”
“도깨비 보따리 확인해 봐. 있어야 할 게 없을걸?”
한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독자는 보따리를 열었다. 이름과 내용물이 조금씩 바뀌는, 달에 단 하나만 파는 ‘생일파티 세트’에 품절이 붙어있었다.
플래티넘 이상 회원만 구매 가능한, 무려 10만 코인이나 하는 쓸모없는 아이템을 누가 사냐고 비웃곤 작년 8월에 샀던 김독자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유중혁이 이걸…? 정말? 다른 성좌가 산 게 아니고? 사랑에 죽고 못 사는 성좌 대표 커플 몇몇을 떠올리며 부정하던 김독자는 한수영을 획 쳐다보았다. ‘진짜?’하고 묻는 눈에 한수영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김독자, 좋겠네?”
“흠흠. 우리 중혁이가 사랑을 알아.”
“얼씨구.”
방금까지 나 죽네 어쩌네 하며 우중충한 먹구름을 끌고 휘적휘적 가던 사람이 누구더라? 괜히 꼬투리 잡아 애써 높여놓은 기대감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한수영은 모른 척 김독자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김독자를 구름 위에 앉혔다.
김독자가 팔랑귀는 아니지만, 옆에서 바람을 넣고 구름 위에 앉혀 띄워주면 기대하게 된다. 사람이란 종족이 그랬다.
이 행동이 질 나쁜 짓임을 알고 있으나 유중혁이 그렇게 고민했으니 입 다물고 지나갈 것 같진 않았다. 마침 지친 화신들에게 휴식이라는 당근이 주어진 참이니 시기도 딱 맞았다.
김독자에겐 아주 조금 미안하지만, 한수영은 뱉은 말을 줍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사내 연애 금지하자는 말을 듣지 않고 열렬한 애정을 쏟으며 옆구리 시리게 하라 했던가. 한수영은 싱긋 웃으며 “좋겠네, 김독자.”하고 구름에 묶인 모래주머니를 풀었다.
* * *
2월 15일 00시. 누구보다 제일 먼저 김독자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겠다 다짐한 신유승과 이길영 덕분에 김독자는 날짜가 바뀌기 무섭게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선물까지 두 손 무겁게 받은 김독자는 색종이가 머리카락인지, 머리카락이 색종이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뒤집어쓴 색종이를 털어내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건 제 성좌가 전해달라고 했어요. 낮에 주라는데 지금 필요할 것 같아서 저도 지금 줄게요.”
“우리엘이 말입니까?”
“네.”
“어… 고맙습니다, 우리엘.”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한쪽 눈을 찡긋입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생일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예상 못 한 선물을 받은 김독자는 커다란 선물을 유심히 살폈다. 꼼꼼하게 포장된 상자는 내용물을 알 수 없었다. 흔들어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궁금함에 김독자가 포장을 뜯으려고 하자 간접 메시지가 시야를 가렸다. 발신인은 우리엘이었다.
[성좌 ,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지금 열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성좌 ,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유중혁과 함께 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성좌 ,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절대 혼자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성좌 ,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혼자 있을 땐 열리지 않는 상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성좌 ,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궁금하면 어서 유중혁에게 가보라고 말합니다.]
[성좌 ,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쏟아지는 간접 메시지에 김독자는 눈을 감았다. 순수한 호의도 있지만, 사심의 비율이 높은 선물인 듯했다. 이걸 바로 버릴 수도 있지만, 선물을 준 성좌가 그냥 성좌도 아닌 우리엘이었다. 처음부터 쭉 자신을 지켜봐 온 대천사.
김독자는 우리엘을 진정시키고 유중혁을 찾았다. 두리번거려도 유중혁의 머리카락 한 올 찾아낼 수 없었다. 이 자식 내 생일 축하해주기 싫어서 도망친 거 아니야? 타당한 의심이었으나 한수영이 한 말과 안 그렇게 보여도 은근 순정파인 유중혁이 그럴 일 없었다.
좀처럼 유중혁을 찾아내지 못하는 김독자가 답답했는지 우리엘이 기다려보라는 말을 남기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행동파 우리엘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유중혁의 위치를 가져온 그녀는 기꺼이 김독자에게 공유했다.
유중혁은 이상한 곳에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으슥한 곳.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위치였다.
“처음 보는 위치인데…. 설마 이 자식 독식하려고?”
꼭 애인 생일에 이래야 했는지. 유중혁답다는 생각과 서운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뿌리를 내렸다.
오징어 뒷다리 씹듯 유중혁을 혀 위에 이리저리 굴린 김독자는 유중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너진 건물의 흔적만 남은 폐허에 유중혁이 있을 만한 곳은…….
“중혁아, 여기 있어?”
허리를 숙여 잔해더미의 아주 작은 틈에 대고 속삭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머쓱함에 허리를 펴고 일어서려는데, “혼자인가?”하는 유중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독자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잔해 속의 어둠을 살폈다. 유중혁을 닮은 어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야.”
“…들어와라.”
“아니 여길 어떻게 들어가.”
“재주 넘치지 않던가.”
“거…. 기다려.”
이기적인 유중혁. 저곳에서 뭘 하는지 몰라도 별거 아니면 흙을 먹일 것이다. 굳게 다짐한 김독자는 소형화를 사용했다.
작아진 김독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분을 이해했다. 새로운 감상에 빠져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김독자는 폴짝폴짝 잔해를 넘어 유중혁의 목소리가 들린 작은 틈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치지직.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손으로 눈을 가랍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손가락 사이로 훔쳐보며 콧김을 내뿜습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중얼거립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비명을 지르며 제발 채널을 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 * *
16일. 해가 하늘 꼭대기에 도달한 지 한참이 지났건만 유중혁과 김독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엘을 비롯한 다른 성좌들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정희원이 캐물어도 우리엘은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럴 거면 큰 소리로 중얼거리지를 말던가.
답답함과 궁금증에 정희원이 화를 내도 우리엘을 멈추지 않았다. 김독자의 유일한 화신인 신유승은 걱정되는 얼굴로 하늘을 보았다.
“아저씨….”
어린 화신의 간절함이 닿은 것일까. 저 멀리서 유중혁이 보였다.
유중혁의 등에는 김독자가 업혀있었다. 심장이 지하까지 쿵 떨어진 정희원을 비롯한 김독자 컴퍼니 일원은 창백한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렸다.
김독자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건조된 오징어처럼 수분 하나 없이 바짝 마른 상태였지만 살아 있었다. 다친 곳도 없었다. 김독자의 안전을 확인한 몇몇 어른은 유중혁을 흘겼다.
“오빠, 얼굴이 반질반질해.”
유미아의 말에 정희원은 주먹을 쥐었고 한수영은 똥 밟은 얼굴을 했다.
‘말이 씨가 된다.’ 이런 말이 있다. 한수영은 그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유중혁과 김독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이 이루어졌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몸서리치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커플 일에 괜히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고민이든 기쁨이든 뭐든. 깊은 깨달음에 한수영은 사내 연애 금지를 꼭 이루고 말겠다며 다짐했다.
졸면서 쓴...김독자 생일 축하글...(아닌 거 같아지만 맞습니다)
독자야,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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