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제천독자
“그땐 정말로 깜짝 놀랐지 뭐니. 제천이 넌 왔으면 왔다고 나한테 연락이라도 좀 하지…”
“죄송해요, 제가 좀 로맨틱해서…”
“저걸 변명이라고. 야, 김독자. 뭐라고 좀 해.”
“…”
바다를 가진 날을 기점으로, 김독자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치달았다. 나쁘다고 생각했던 이전보다 더 나빴다. 언제나 바닥 밑에는 지하가 있었다. 호흡기를 매달고 희미하게 웃는 모습에 한수영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 제 가슴을 퍽퍽 쳤다. 그러다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마저 떠들기 시작했다. 가끔 김독자가 뭔갈 말하고 싶을 때면 손제천이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척척 말해줬기 때문에 웃기게도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수영 너 신작 낸다고 하지 않았어?”
한날은 손제천의 목소리를 빌린 김독자가 말했다.
“어엉, 좀 미루기로 했어. 괜찮아, 난 천재 미소녀 작가잖아. 게다가 돈도 많다고.”
중언부언 말이 길었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중혁이 너는 토너먼트 리그 하는 중이라며.”
그러자 유중혁이 움찔하며 딴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했다.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권했다. 유명해진 건 좋지만, 나 때문에 미아가 고생하더군. 그래서 좀 휴식기를 가지기로 회사랑 합의했으니 네가 신경 쓸 건 없다, 김독자.”
역시나 말이 길었다. 둘의 대답을 모두 듣고 난 김독자가 착잡한 표정을 했다. 한수영은 곧장 오바를 떨면서 괜찮음을 어필했고, 유중혁은 미아 때문이라는 말을 서른 번쯤 반복했다.
“독자가 알겠으니까 그만하래 얘들아.”
“…나 진짜로 너 때문 아니다? 편집자랑 싸워서 그래, 진짜.”
“마찬가지다. 미아가 고생하는 건 볼 수가 없어서 말이지.”
“한 번 더 들으면 마흔 번째라고 진짜 제발 그만하래 얘들아.”
“…”
“알겠대.”
한수영이 입을 달싹이자마자 손제천이 선수를 쳤다. 고양이처럼 새초롬한 눈으로 작게 흘겼다. 그러자 손제천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독자가 그렇다는데 어떡해. 유중혁은 입을 다물고 사과나 마저 깎았다. 야, 토끼사과 해줘. 무안해진 한수영이 말을 돌렸다. 그러면 유중혁은 싫다, 하고 대답하면서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았다. 이, 이렇게까지… 한수영이 기겁했다. 김독자는 할딱대며 웃었다.
그런 날들을 몇 날 며칠이고 보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달라지는 건 김독자 하나뿐이었다. 눈밑은 점점 시커매졌고, 오른쪽 눈마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호흡기 없이는 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김독자는 어둔 밤이 되면 바다를 봤다. 소리는 여전히 잘 들렸다. 다행이야. 시원한 파도 소릴 들으며 찬찬히 눈을 감노라면 어느새 다리도 잘 움직였다. 하얀 모래사장 위를 사박사박 밟으며 걷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이나 더 눈을 뜰 수 있을까?
몇 번의 아침을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한 걸음을 떼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그럴 때면 파도가 밀려왔다. 솨아아아… 발치를 시원하게 적시고 나면, 고민도 천천히 쓸려나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모조리 하얗게 부서져 먼 곳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잠들 수 있었다. 걱정했던 아침이 무사히 밝아오면, 감사하다고 기도하는 하루를 반복해나갔다. 슬슬 비우는 게 좋겠지. 김독자는 이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바다를 가져서인지 마냥 두렵지는 않은 것 같았다.
***
치료를 중단한 지 한 달째 되던 날 김독자는 혼수상태가 됐다. 검사가 끝난 후 의사는 이제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된다면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이수경이 눈을 하얗게 뒤집고 쓰러졌다. 한수영은 비틀대며 주저앉았다. 유중혁이 으스러지도록 이를 악물고, 손제천은…
“그럼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나요?”
“일시적 코마일 수 있으니까 하루 정도는 살펴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이상 있으면 바로 콜 누를게요.”
“…네.”
담담한 태도에 오히려 담당의가 작게 당황했다. 한숨을 작게 쉬며 혼자 중얼거렸다. 치료를 받았더라면. 손제천은 그게 꼭 자책하는 걸로 들렸다. 괜찮아요, 선생님은 충분히 잘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가늘게 웃으며 손제천의 어깨를 한 번 쥐었다 놓고는 병실을 떠났다. 손제천은 씩씩하게 행동했다. 쓰러진 이수경을 옆 병실의 빈 침대에 뉘고, 주저앉은 한수영을 일으켰으며, 유중혁의 꽉 쥔 주먹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서 펴주었다.
“독자, 눈만 못 뜨는 거야. 분명 다 듣고 있을 테니까…”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어떤 말이 올지 알았다. 다들 정신 차려, 독자가 걱정해. 한수영이 비틀거리면서도 손제천의 손을 탁하고 쳐낸다. 중심을 바로 잡고 서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유중혁도 순간적으로 세게 힘을 줬던 바람에 잘 움직여지질 않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고요한 김독자의 곁으로 손제천이 다가갔다. 호흡기에 의지해 쌕쌕대는 숨소리가 힘겹다. 버텨주고 있구나. 턱을 당겨 이를 악문다. 울음을 참느라 목에 핏줄이 세게 돋았다.
“아무리 준비해도, 이별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네. 처음 알았어.”
“…”
“이다음에는 외국에 있는 바다를 보러 가자.”
“…”
“그것도 너 줄 테니까……”
볼썽사납게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웃는 얼굴로 겨우 무마해보지만,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는 닿을 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야 만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김독자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누르고 병실을 다급하게 나갔다. 남겨진 이들이 차례로 떠나려는 이를 바라본다.
“너 이름 훔쳐다가 책 쓰려고.”
“…”
“양심 다 죽은 작가니까, 당사자 동의도 안 받고 마음대로 써야겠어.”
“…”
“엄청 많은 사람들이 네 이름 들먹이면서 울고 웃고 욕하게 할 거야.”
“…”
“그리고, 그리고 걔는… 걔는 아무리 죽어도 계속 살아나게 할 거라고. 알아들어?”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축축하고 무거웠다. 수도꼭지가 터진 것처럼 마구 흐르는 눈물 때문에 헐떡거리면서도 끝까지 말을 이어나갔다. 유중혁이 한수영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김독자.”
“…”
“나도 마찬가지다. 게임 캐릭터 이름을 지을 때 네놈의 이름 석 자를 사용해주지.”
“…”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김독자 트롤짓 한다고 온갖 욕은 다 할 텐데.”
“…”
“그런 말, 내가 하나도 듣지 않게 해주겠다.”
“…”
“영광인 줄 알아라.”
어깨를 쥔 손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한수영이 유중혁의 손을 감싸 쥐었다. 두 사람도 병실을 나선다. 김독자에게 말을 걸어줄 사람이 이제 없었다.
똑딱이는 시계바늘 소리, 김독자의 여윈 팔로 흘러 들어가는 수액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호흡기에 의지해 미약하게 뱉어내는 숨소리까지, 오롯이 혼자다.
제천아?
엄마, 수영아. 중혁아! …안 들려?
깜깜하네.
이제 오른쪽도 안 보이는 건가? 아니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 사방이 전부 새까맸다. 덜컥 겁이 났다.
죽었나 봐.
몸을 움직여 보려 노력하지만, 꿈쩍도 안 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최악의 공간. 김독자는 주저앉았다. 느낄 수 없었지만 분명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진짜 죽었나 봐……
귓속에 뜨끈한 물이 들어찬다. 그제야 눈물이 난 줄 알았다.
이제 겨우 마음먹었는데.
너무 급전개잖아, 이건.
……보고 싶어.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묵직한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아서 답답함이 배가 됐다. 죽었으면 좀 마음대로 되기라도 하던가. 이렇게 된 마당에도 자유롭지 못한 몸에 짜증이 치솟았다.
원래 죽으면 영혼이 된다던데… 아닌가 봐.
죽어서 알게 된 게 원통하다.
이것만 알려주게 잠시만 살려주면 안 되나?
말도 안 되는 협상을 슬쩍 시도했다.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캄캄하기만 한 시야에 순순히 포기한다. 하긴, 그랬으면 아까 짜증 낼 때 진즉 뭐라도 됐겠지.
……
…다들 너무 많이 안 울었으면 좋겠다.
욕심이겠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어둠과 함께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소리가 자신을 둘러싸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서, 점점 커졌다. 꼭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손제천이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이별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네. 처음 알았어.”
제천아, 나 진짜 죽은 거야? 대답해주면 안 돼?
“이다음에는 외국에 있는 바다를 보러 가자.”
그러게. 해외여행을 한 번 못 갔구나, 우리.
“그것도 너 줄 테니까……”
또? 반은 너 가져. 인심 썼다.
다급한 발소리가 멀어진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졌다. 울지 말라니까, 이 바보야. 잠깐의 정적이 흐르다 한수영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너 이름 훔쳐다가 책 쓰려고.”
와… 이름이 김독자인 캐릭터라니.
근데 걔 잘생겼냐?
“양심 다 죽은 작가니까, 당사자 동의도 안 받고 마음대로 써야겠어.”
네가 못 들은 거지, 난 허락했어.
어쨌든 걔 잘생겼냐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네 이름 들먹이면서 울고 웃고 욕하게 할 거야.”
잠깐, 민폐 캐릭터로 나오는 거, 아니지?
좀 무서운데…
“그리고, 그리고 걔는… 걔는 아무리 죽어도 계속 살아나게 할 거라고. 알아들어?”
…하하, 너 멸살법 표절하냐? 걸리면 욕먹어 임마.
애써 웃었다. 절박한 한수영의 진심이 폐부 깊숙이를 찔러서, 어떻게든 웃어주고 싶었다. 헐떡거리면서도 끝까지 말하려는 모습이 지나치게 안쓰럽게 느껴졌다. 뒤이어 유중혁이 말했다.
“…김독자.”
이젠 너야? 다들 돌아가면서 뭐하냐, 정말.
죽은 사람은 얼른얼른 보내줘.
“나도 마찬가지다. 게임 캐릭터 이름을 지을 때 네놈의 이름 석 자를 사용해주지.”
너희 내 이름이 공공재인 줄 알아? 그래, 써라 써.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김독자 트롤짓 한다고 온갖 욕은 다 할 텐데.”
너 설마…? 중혁아, 형은 너를 믿는다.
“그런 말, 내가 하나도 듣지 않게 최고로 만들어주겠다.”
…짜식. 나는 마왕 캐릭터 같은 게 좋더라.
“영광인 줄 알아라.”
영광은 내 이름을 쓰게 되는 네 캐릭터지.
어딜 은근슬쩍…
말을 많이 해도 목이 아프지 않은 건 오랜만이었다. 한껏 신이 나서 한 번도 더듬지 않고 툭툭 대답을 던지는데, 문득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갔나 보네.
심심한 시간을 다시 흘려보낸다. 난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죽었으면 천국이나 지옥 뭐 이런 데는 가줘야 하지 않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는데도, 여전히 몸은 묵직하고 앞은 캄캄했다.
답답해.
그 뒤로도 한참이나 조용했다. 혹시 귀도 먹었나? 잠깐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나 무료한 시간을 더 흘려보냈을까, 다시 주위가 소리로 가득 찼다.
“…독자야.”
엄마?
“우리 독자,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 어쩜…”
또 우시네, 울지 말라니까요.
“엄마가 밉지?”
안 미운데…
“차라리… …밉다고 말해주련? 미워 죽겠다고, 꼴 보기도 싫으니까 저리 가 버리라고. 그렇게, 그렇게 말해주겠니?”
……
“우리 아들, 응? 한 번만 눈 떠서, …아. … …잘생긴 우리 아들, 한 번만 이 엄마한테 말 좀 해봐. 밉다고, 미워 죽겠다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눈 감고 있지 않냐고……”
목소리가 엉망진창으로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죽을 것처럼 꺽꺽댔다. 울지 마세요, 제발 그렇게 울지 마시라고요. 그 순간 조금이지만 분명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안 죽었나 봐. 작은 희망이 보였다. 새까맣게 드리운 장막을 걷어내려 온갖 애를 다 썼다. 그 순간, 찬란한 빛이 한 눈에 여러 갈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
“도, 독자야.”
“…”
“아, 어쩜, 어쩜 좋아, 내 새끼, 어떡하면……”
이수경이 눈썹을 팔자로 휘고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기 시작했다. 김독자도 안간힘을 써서 씩 웃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오래 웃었다. 지독히도 닮은 웃음이었다.
비로소, 김독자에게 허락된 마지막 시간의 초침이 채칵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늘을 넘기긴 힘듭니다. 마지막 인사…를, 하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그 뒤로 몇 마디 말이 더 이어졌다. 의사는 손제천과 함께 병실로 들어갔다. 김독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 많았다고 얘기했다. 김독자가 웃었다. 그러자 유중혁이 한수영을 쿡 찌른다. 한수영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됐다. 의사는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화목한 병실을 나섰다. 손제천이 김독자를 본다. 어쩐지 미안하다는 눈빛이었다. 왜지? 단숨에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자리가 없었다. 한 손은 이미 이수경이 차지하고 있었고, 반대 쪽에는 유중혁과 한수영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일부러 한 마디를 던졌다. 내 자리는? 퀵 배송이요. 한수영의 달달한 엿이 날아왔다. 어쩔 수 없었다. 이수경의 곁에 앉아서 호시탐탐 손을 노리는 수밖에.
“있잖아, 오늘은 다 같이 자자.”
한수영이 코맹맹이 소릴 내면서 제안했다. 유중혁이 엄숙한 얼굴로 그러지, 하고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이수경은 어머, 이불이 더 필요하겠네. 하고 손제천을 바라봤다. 머슴, 손제천은 군말 없이 일어나서 담요와 베개를 더 가져왔다. 소파와 보조 침대 붙여 자리를 넓게 만들고, 옆 병실에서 보조 침대를 하나 더 빌려 왔다. 김독자의 곁은 여전히 만석이었다. 토라진 손제천이 이불을 팽개치는데도 다들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 올리듯이 더 달라붙었다.
김독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저녁도 모두 거르고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흘이나 코마에 빠져있었다는 걸 그때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여름이라 해가 늦게 졌다. 덕분에 김독자의 얼굴을 햇살 아래서 오래오래 볼 수 있었다. 해가 다 지고 나서는 눈이 약한 김독자를 위해 불을 약하게 켜고 또 그의 얼굴을 오래도록 봤다. 밤이 다 되도록 그러고 있었다. 남들은 다 쪄 죽겠다고 우는 소릴 하는 한여름이었는데도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웃으면서 눈을 마주쳤다. 조잘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눈 감으면 불 끌게.”
손제천이 말했다. 김독자는 머지않아서 눈을 느리게 감았다. 용케 버티고 있었던 거다. 다들 아쉽다는 듯 뭉그적거리다 자리에 누웠다. 손제천이 마지막으로 불을 모두 끄자, 캄캄한 어둠이 병실에 내려앉았다. 그는 김독자의 곁으로 가서 두 손을 모두 차지하고 앉았다. 깡마른 손을 한참이나 매만졌다. 모두가 한참이나 떠들다가, 천천히 말소리가 멎었다. 꼬박 하루가 걸렸던 인사였다. 피곤할 법도 했다. 다들 잠이 들 무렵, 김독자가 손을 미미하게 움직였다.
“이제 내 차례라고?”
“…”
어둠에 적응된 눈이 김독자의 얼굴을 빠르게 훑는다. 작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손제천도 따라 웃었다.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 음…”
“…”
김독자가 느릿하게 끔뻑인다. 천천히 해. 손제천은 울컥 눈물이 나는 걸 웃음으로 무마했다. 어둠에 숨어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중요한 말을 해야 하니까.
“내가 준 바다, 잘 간직하고 있지?”
“…”
“그럼… …이것도 잘 간직해줄 거지?”
“…”
주머니를 뒤적인다. 흰 상자를 꺼내 열었다. 작은 알이 박힌 은색의 반지가 하나 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바다를 줄게.”
“…”
“나랑… 결혼해 줄래?”
김독자가 손끝으로 손제천의 손등을 툭, 툭 친다. 그새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 태양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기어코 손제천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앞이 잘 보이질 않아 떨리는 손으로 신중하게 움직였다. 김독자의 약지에 반지를 끼운다.
“사랑해.”
“…”
“진짜로, 너무너무 사랑해 독자야.”
“…”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표현이 있다면, 그건 전부 네 몫이 될 거야.”
“…”
“그러니까, 그러니까……”
문장으로 끝나지 못했다. 울음이 말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김독자는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제 왼손을 들더니, 손제천의 왼손을 쥐었다. 같은 모양의 반지가 제각각 끼워져 있음을 더듬거리며 확인한다. 흡하고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손제천이 바르르 떨며 말했다.
“이제, 잘 거지?”
“…”
심박수를 알리는 기계가 불안하게 신호를 울린다. 손제천은 붉은빛을 내는 기계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김독자에게는 손제천만 보였다.
“많이 피곤했을 테니까, 푹 자야 해. 알겠지?”
“…”
“미안해하지 마. 푹 자고, 좋은 모습으로… …그렇게 보자, 우리.”
김독자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사 랑 해.
손제천이 입을 함지박 하게 벌리고 웃었다.
“응. 나도… ……나도, 사랑해.”
김독자의 손에 서서히 힘이 빠져나간다. 마지막으로 본 손제천은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물이 번진 얼굴이 달빛에 비쳐 반짝거렸다. 잘 닦아서 놓아둔 우리의 마음처럼 예쁘다. 반짝반짝. 그의 마지막 숨은 여름에 있었다.
창밖으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안온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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