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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혁독자] 테세우스 패러독스

중혁독자 앤솔로지 〈영원■■〉 참여글 / 필멸×필멸

어쩌다 by 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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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를 할퀴는 기계음. 시야를 메우는 척박한 은빛. 김독자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둥글게 뚫어둔 창 너머, 쪽빛이 있어야 할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옅은 먼지구름과 까마득히 솟은 철조 건물들의 그림자뿐이다. 그는 하늘의 본래 빛깔을 알지 못한다. 애초에 그런 시대에 태어났으므로. 레일리 산란에 따라 새파란 빛을 흩뿌렸다는 창공은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색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대에 그것이 무어가 중요하겠냐마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까르르 웃으며 사라지는 아이들의 목소리. 김독자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그 뒷모습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가볍게 숨을 들이켜고, 장갑을 벗어 의료폐기물 통에 넣고, 흰 가운을 걸어두고, 흐르는 수도에 손을 씻었다. 손으로부터 씻겨져 나가는 약품의 냄새. 배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켜져 있는 홀로그램 패널로부터 소란스러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10시 5분 전입니다.]

습관적으로 패널을 돌아보았다. AI는 낮은 울림이 있는 남성의 목소리로 말하고선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갑작스러운 방문객들 덕분에 하마터면 시간을 놓칠 뻔했다. 김독자는 저벅저벅 걸어 진찰실을 빠져나가 기다란 소파에 몸을 깊이 묻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사실은 매일이 그랬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러한 피로를 느끼는 것이 인간이라는 반증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김독자는 기꺼이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TV 전원 켜줘. 대답도 없이 반짝, 화면이 켜졌다.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안경을 집어 들며 김독자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화면 위로 떠오르는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래. 오늘 하루도 드디어 끝이구나.

 

* * * 

 

 

“검사 끝났습니다. 내려오셔도 돼요.”

반으로 갈라져 열린 원통형 기계에서 몸을 빼낸 남자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김독자는 손에 든 패널의 페이지를 넘기며 차트를 채워 넣고 네모 칸에 체크를 했다. 검사 결과는 3일 뒤에 나올 겁니다. 적합도가 높으면 다음 날에 바로 수술을 진행할 수도 있고요. 책상 위에 놓인 입체영상 영사기를 돌려가며 설명을 하자 남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설명을 마친 김독자는 영사기의 전원을 껐다. 그럼 3일 뒤에 뵙겠습니다. 의자에서 일어선 남자가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독자는 여느 때처럼 엷게 웃고는 소리도 없이 닫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마지막 환자였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체크를 했다. 이름, 안○○. 성별, 남성. 나이, 89세. 물론 그는 겉보기에는 고작 30대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타 진료 기록을 보니 피부 파츠를 주기적으로 갈아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의 기준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피식 웃은 김독자는 데이터를 업로드하고는 안경을 벗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부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긴 머리를 올려 묶은 여성이 진료실 안을 들여다봤다. 정희원이었다.

“진료 끝났어요?”

“네, 조금 전에요.”

앉으라고 눈짓을 했으나 정희원은 고개를 살래살래 젓고는 문에 기대어 섰다. 자동문의 센서가 붉게 깜빡거렸다.

“수술 일정 또 잡혔어요?”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적합도가 90%는 넘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요즘은 대부분 넘잖아요? 수술 못 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데.”

김독자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 위를 정리하고 겉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정희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방금 나간 남자가 수술 희망자인 거 맞죠? 몇 살이었어요?”

“환자 정보 유출은 불법인데요.”

“깐깐하게 구시네. 어차피 수술 잡히면 나도 확인해야 되잖아요?”

김독자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기보단 많습니다. 1세대예요. 그의 말에 정희원이 역시, 하고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김독자는 묵묵히 옷깃을 정리하며 정희원을 바라보았다.

수년 전부터 많은 이들이 인류의 불멸(不滅)을 예견했다. 이미 평균수명 100년을 달성한 시대였다. 80년을 100년으로 만든 생물학의 일진보는 100년을 150년, 200년으로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해낼 것이라 여겨졌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인간이라는 종(種)의 신체에 프로그래밍된 수명의 끝. 생물학적인 돌파구를 찾기보다 먼저 그것을 해결한 건 다름 아닌 기계공학과 나노공학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에 일어난 3차 나노·기계혁명으로 의료계는 비약적인 혁신을 맞이했다. 그 결과, 현존하는 대부분의 질병이 병소(病巢)를 기계화된 인공 장기로 대체함으로써 치료가 가능해졌다. 비단 질병 뿐만이 아니었다. 기술이 상용화되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노화를 맞이한 이들도 새로이 기계를 입고 청춘을 되찾았다. 건강한 신체는 기계로 교체되어 임계점을 손쉽게 뛰어넘었다. 인류는 그렇게 비로소 은빛 불멸에 근접했다. 그야말로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커다란 변화였기에 사람들은 그해 이전에 태어난 이들부터 세대를 나누어 구분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스물여덟인 김독자는 2세대에 속했다.

“1세대 사람들도 다들 인공 심장으로 갈아치우는 추세네요.”

그렇죠, 뭐. 요즘은 아예 태어나자마자 수술해버리는 경우도 많아서. 가볍게 대꾸하며 열려 있는 진료실 문을 나서자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뱉은 정희원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나도 아이 낳으면 인공 심장 수술부터 해줄까 봐요.”

“나쁘지 않죠.”

“독자 씨가 맡아줄 거예요?”

“저한테 맡겨도 되겠습니까?”

눈을 가늘게 뜬 정희원이 이내 킥하고 웃었다. 어디 사는 허여멀건 선생님은 믿을 수가 없어서 선뜻 못 맡기겠네요. 현성 씨라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동의해버릴 것 같지만요. 농이 분명한 소리에 김독자도 작게 웃었다.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은 잘해. 사실 다른 목적인 거죠? 의사라는 직종도 이제 얼마나 갈지 모르겠으니까,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둬야 한다, 뭐 그런 생각으로.”

“들켰습니까?”

김독자는 뒤를 돌아보며 씩 웃어주고는 어깨로 문을 밀어 열었다. 딸랑거리는 고전적인 방울 소리가 머리 위를 울렸다. 일단 저녁이나 먹죠. 현성 씨도 옵니까? 네, 벌써 가 있다는데요. 제가 늦었군요. 그런 일상적이고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걸었다. 살굿빛의 하늘.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고 있을 태양의 모양을 떠올리며 김독자는 사유했다. 언젠가, 우리는 이 땅에 해조차 지지 않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불멸이라고 믿으며.

그날이 오면, 죽어야겠다.

그는 그런 시시한 생각을 했다.

 

 

 * * *

 

“선생님!”

애앵─. 귀청에 때려 박히는 경고음에 김독자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깊은 잠을 자지 못한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깨어나는 것은 결코 반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쾅쾅쾅.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 선생님, 계세요? 선생님! 제발! 침입자 경보를 발동한 패널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정희원의 목소리였다. 황급히 침대에서 발을 내리며 달리듯 현관으로 향했다. 김독자는 그의 버릇을 잘 알고 있었다. 정희원은, 환자들 앞이 아닐 때는 그를 꼬박꼬박 ‘독자 씨’라고 부른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급한 때가 아니라면. 그럼, 지금은?

긴급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방울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를 홱 열어젖힌 순간, 코끝으로 진한 쇠 냄새가 흘러들었다.

“……!”

반사적으로 숨을 멈추며 미간을 찡그리자 아이러니하게도 시야가 명확해졌다. 정희원 곁에 선 이현성의 등에 웬 시커먼 사내가 업혀 있었고, 혈향은 그로부터 풍겨오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이현성과 정희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 김독자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희원 씨, 수술 준비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위급한 환자를 대형병원 대신 자신의 병원으로 데려오는 것은. 김독자는 파자마를 갈아입을 새도 없이 에어 샤워만 거치고 장갑을 집어 들었다.

[장치를 가동합니다.]

수술 보조 장치로부터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무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수술대 위에 올려진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김독자는 흡, 하고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피를 많이 흘려 창백한 얼굴이 몹시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저건…….

유중혁.

눈을 세차게 깜빡였다. 어떻게? 그리고, 왜? 하지만 그런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김독자는 검은색 옷 너머로도 선명히 번져 보이는 핏자국을 확인하고선 가위로 옷자락을 잘라냈다. 이윽고 드러난 상처 부위는 늑골 바로 아래를 비스듬하게 관통한 듯한 둥근 구멍이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진 모르겠지만……. 피를 많이 흘린 이유는 간을 다쳤기 때문인 듯했다. 다행히도 늑골은 부서지지 않았군. 김독자는 석션기의 작동을 조작하며 문 근처에서 대기 중인 정희원을 향해 말했다.

“희원 씨. 일단 예비용 간을……”

이식하죠, 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턱 하고 손목을 붙잡는 손길에 김독자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뼈를 부러뜨리기라도 할 듯 강한 악력이었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환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김독자는 커다란 손에 붙잡힌 제 손목과 유중혁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힘겹게 눈을 뜬 유중혁이 김독자를 노려보며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그만……둬.”

“뭐라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김독자는 그를 무시하고 수술을 강행하려 했다. 일단 여기에 온 이상, 죽기라도 하면 고발당하는 건 나다. 하지만 유중혁은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젠장, 뭔 놈의 환자가 이렇게 힘이 세……! 이현성과 정희원에게 제압을 부탁해야 할지 짧은 고민이 스쳐 갔다.

“그만두라고…… 했다.”

“지금 수술 안 하면 죽습니다.”

유중혁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이미 진통제를 놨는데도 잘 듣지 않는 모양인지 고통을 참아내듯 힘겨운 표정이었다. 그냥 마취부터 시킬 걸 그랬나. 그의 입에서 다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공 장기, 이식, 말고…… 다른, 방법으로…….”

그제야 김독자는 유중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이 녀석…… 그래, ‘그쪽’이었지. 간신히 숨을 내뱉는 유중혁으로부터 눈을 돌려 다시 한번 환부를 살폈다.

할 수 있을까?

장갑 안에 들어찬 손이 땀으로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인공 장기 이식이 보편화된 시대에, 원시적인 수술 방식은 그저 옛 잔재에 불과했다. 김독자로서도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기만 했을 뿐 실제로 해본 적이 없는 수술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질문은 필요 없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 그런 시대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손 놓으십시오.”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비로소 유중혁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김독자는 얼얼한 손목을 털어내며 대기 상태에 돌입해 있는 수술 보조 장치를 재가동시켰다. 절제술 준비해. 그리고 기계는 그에게 차갑고 정확한 대답을 내놓았다.

 

 

* * *

 

 

남자는 창가에 서서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열린 창 틈새로 들어오는 미풍에 얕게 곱슬진 머리가 흐트러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느 시대의 이름난 장인이 평생에 걸쳐 깎아냈을까, 섬세한 조각 같은 콧날 위로 희미하게 커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검고 깊은 눈동자는 투명한 유리를 투과해 한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그 묵직하고 섬연한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하지만 김독자는 감상에 젖기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사람이었다.

“누워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요.”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였는지 남자가 얼굴을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김독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것을 침상 옆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고갯짓을 했다. 잠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유중혁이 결국 저벅저벅 걸어와 침대 위에 몸을 올렸다. 소독을 할 테니 윗옷을 벗으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무심하게 손을 들어 환자복의 단추를 툭툭 풀어냈다. 긴 손가락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김독자는 이내 드러난 유중혁의 몸 위로 팔을 뻗었다. 붉게 물든 거즈를 고정하고 있던 테이프를 뜯어내자 동그만한 구멍이 완벽하게 균형 잡힌 신체의 유일한 오점처럼 자리한 것이 보였다.

소독약이 묻은 솜으로 굳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상처 부위에 닿자 쓰라린지 유중혁의 짙은 눈썹이 꿈틀댔지만 잠시뿐이었다. 김독자는 속으로 혀를 차며 손을 놀렸다. 정말이지 무언가 크게 내색해 보이는 일이 없는 사내였다. 스크린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긴, 그렇겠지. 배우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삶을 연기하는 직업이니까.

다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거두고 달그락거리며 뒷정리를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유중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수술이 끝난 지 3일이었다. 수술 자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 후처리가 문제였다. 유중혁은 다른 간호사나 간병인들에게 얼굴을 공개하길 거부했고, 그래서 이렇게 김독자가 직접 그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해주고 있었다. 딱히 싫거나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유중혁이니까. 하지만.

김독자는 지금껏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어이가 없어 조금 웃었다. 유중혁, 독한 자식. 그 순간 유중혁의 고개가 저를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귀신같은 놈이네, 소리도 안 냈는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며 정리를 마친 트레이를 들고 병실을 나가려는데 낮은 목소리가 바닥 타일을 긁었다.

“왜 웃었지?”

김독자는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꼿꼿한 자세로 침상에 앉아 있는 그의 눈빛은 매서웠다. 회복이 빠른 편이라지만, 저런 식으로 앉으려면 배에 힘이 들어가서 아플 텐데. 수술 부위에도 좋을 게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독자는 다시 걸어와 유중혁의 어깨를 비스듬한 침대 위로 꾹 밀었다.

“누워 있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왜 웃었냐고 물었는데.”

이 새끼가. 유중혁의 어깨는 돌덩이라도 된 마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봤지만 그는 전혀 움직여줄 기세가 아니었다. 한숨을 폭 내쉰 김독자는 벽 위로 떠올라 있는 시계의 숫자를 확인하고선 보조의자에 앉았다. 어차피 급한 일은 없으니까 상관없겠지.

“웃은 이유는 해결됐습니다.”

“동문서답이군.”

“환자와 만난 지 3일째인데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 없는 게 우스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반말이야? 유중혁.”

유중혁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김독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의 얼굴과 몸을 훑었다.

“유중혁, 남성, 스물여덟 살, 직업은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배우. 내가 설마 몰라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텐데.”

차트를 읽듯 담백하게 말하자 유중혁이 그를 쏘아보았다. 그렇게 봐서 어쩔 건데, 인마. 나는 네 주치의인데. 그래서 김독자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휘었다.

“나도 스물여덟이야. 네가 먼저 말 놨으니까 나도 놓는다.”

“…….”

유중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미소로 그 시선을 받아내자 짧게 눈을 흐린 유중혁이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여기에서 수술받은 사실은 비밀로 했으면 좋겠군. 우수 어린 목소리에 김독자는 다시 한번 빙긋 웃었다. 비밀이라. 단순히 입막음을 논하는 것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이야기였기에 할 말은 준비되어 있었다.

“진료 기록이 하나도 없는 게 그런 이유였어?”

“…….”

“왜 비밀로 하려고 하는데? 요즘 세상에 병원 좀 들락거린 게 무슨 흠이 된다고. 오히려 기록이 없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데.”

“네놈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역시, 순순히 대답해주진 않는군. 궁금하긴 했지만 물고 늘어질 만큼 집요하게 굴 생각도 없었다. 조금은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김독자는 담담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되면 의료보험 적용을 못 받을 텐데.”

“알고 있다.”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알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해? 이렇게 되면 내가 부르는 게 값인데.”

“양심도 없는 놈이군.”

유중혁의 새파란 시선에도 김독자는 어깨만 으쓱했다. 네가 나한테 그럴 입장이 아닐 텐데? 그리 말하자, 유중혁이 몹시도 심기 불편한 얼굴을 했다. 흠,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는데.

“수술비는 됐어. 애초에 뜯어낼 생각도 없었고.”

“…….”

대단히 미심쩍다는 시선이 돌아왔다. 무슨 수작인지 순순히 불어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김독자는 담백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별거 아냐. 개인적인 이유니까.”

“개인적인 이유?”

“나는 네 팬이거든.”

유중혁은 다시 한번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진짜 의중을 파악하고 싶은 것인지 날카로운 시선이 김독자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예의냐? 유중혁은 이내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신용할 수 없군.”

“뭘? 내가 네 팬이라는 걸?”

“아니. 나는 내 팬이라 해서 온전히 내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실수는 하지 않는다.”

이거 참……. 깐깐하신 놈일세. 그래서 김독자는 씩 미소 지으며 꼰 다리를 까딱였다. 마음대로 해. 어쨌든 나는 너한테 청구서 안 내밀 거니까. 그리 말하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흘긋 김독자를 돌아본 유중혁의 시선이 느리게 떨어져 나갔다.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잘생긴 옆얼굴 위로 진 그림자가 짙었다. 마치 그의 복잡한 속내를 대변하듯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김독자는 건조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진짜 유중혁이구나. 내 눈앞에 있는 게 정말로 유중혁이구나, 하고.

“쉬어. 밤에 팩 갈아주러 다시 올 테니까.”

보조 의자에서 일어나며 트레이를 챙겼다. 유중혁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유중혁의 회복 속도는 가히 비상식적이었다. 손상된 조직은 빠르게 수복되었으며 꿰맨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신체 징후들이 정상에 가까운 수치를 찾기까지 걸린 날짜를 세어보며 김독자는 혀를 내둘렀다. 유중혁 너, 이 정도면 거의 특수 케이스로 논문에 실어도 될 정돈데. 어때? 내가 한 번……. 부러 농담을 던져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거절뿐이었다. 자식이, 유머감각이라곤 뒤지고 없나. 저런 감수성으로 연기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물론 김독자는,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말했다간 그야말로 죽여버릴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으므로. 애초에 유중혁은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김독자가 열 마디를 던지면 그중 두세 마디나 받을까 말까한 정도.

그러므로, 유중혁이 먼저 말을 걸어왔을 때 김독자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을 들썩이다가 책상 위에 놓인 물컵을 엎어버린 것은…… 확실히 수상하게 보이기는 했겠지만. 김독자는 황급히 쏟은 물을 닦아내며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유중혁이 미간을 찡그리며 김독자가 하는 양을 빤히 지켜봤다.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에 울컥 화를 내려는 찰나 유중혁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안드로이드였냐고 물었다.”

“아.”

물기를 대충 닦아낸 김독자는 손을 털고선 닫힌 진료실 문과 유중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나간 환자? 그렇게 묻자 고개를 끄덕이기에 김독자도 마주 끄덕여주었다.

“맞아. 안드로이드. 진짜 사람이랑 구분하기 힘들지?”

김독자의 병원은 크게 환자 진료실과 안드로이드 정비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가끔 혼동을 일으킨 안드로이드들이 정희원의 정비실이 아니라 김독자의 진료실로 잘못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조금 전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정희원이라는 여자가 정비사인 모양이지.”

“의외로 알아차리는 게 늦네?”

슬쩍 놀리듯 말하자 유중혁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김독자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제 뺨을 두드렸다. 표정 풀어, 중혁아. 또 누구 들어올라. 더욱 열이 받은 유중혁이 벌컥 화를 내기 전에 김독자는 얼른 다시 말을 이었다.

“실력 있는 정비사지. 그러니까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 수리 업무도 맡고 있는 거고.”

유중혁은 입을 다물고선 무언가 생각하는 듯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은 시선을 따라가며 김독자는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유중혁,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 머릿속을 읽어낼 수 있는 신기술 같은 건 발명 안 되나.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하며 김독자는 제가 아는, 그리고 짐작하고 있는 유중혁에 대한 정보들을 가만히 뇌까렸다. 배우. 연기를 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

어릴 적 학교에서는 그런 것들을 배웠던 것 같다. 3차 나노·기계혁명으로 인해 변화한 미래 직업 전망. 사멸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 경비업자, 소방관, 의사, 택배업자, 기타 등등.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 AI 전문가, 안드로이드 정비사, 유전자 상담사, 기타 등등. 김독자는 그 시절 교과서에 늘어선 ‘사멸 예상 직업군’에 예술을 하는 직종이 올라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다음 중 컴퓨터가 그린 그림을 고르시오, 라는 사지선다 질문의 정답률이 30퍼센트를 밑도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껏 인류 역사에 존재해 왔던 수많은 미래 예측들이 그러하듯, 이 또한 실패한 예측으로 돌아갔다. 연간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출산 제한법이 제정된 지 18년. AI를 탑재한 안드로이드가 전 세계 인구수에 포함된 지는 5년이었다. 신체 일부를 기계장치로 대체한 신인류-이른바 ‘사이보그’-가 ‘인간’의 절대다수가 되어버린 오늘날에, 우습게도 각광받게 된 직업은 배우였다. 감정을 연기하는 직업.

감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뇌에서 만들어지는가, 심장에서 만들어지는가? 그렇다면, 뇌라는 실질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AI에게는 감정이 없는 것인가? 혹은, 기계 심장을 단 이의 감정은 거짓인가? 때아닌 철학의 범람이었다. 온갖 담론들이 어지럽게 오갔고, 그리하여 얻어진 결과가 바로 지금의 대치 상태였다. 인공 장기를 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감정 연기는 어떻게 다를까. 과연 어느 쪽이 더 진정성이 있을까. 그러한 대립 아닌 대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중혁은, 대표적인 후자였다. 기계라고는 나노단위로도 걸치지 않은 몹시도 희귀한 순정(純正)의 신체.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유중혁이 지금만큼의 유명세를 떨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스크와 피지컬의 우월함은 이미 일반인에게까지 기계 성형이 대중화된 시대에 배우로서 아주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인공적으로도 구현해낼 수 없는, 궤가 다른 아름다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고 환호했다. 하물며 그런 이가 연기까지 잘한다면.

유중혁의 연기는 그냥 보기엔 건조하고 담백한 경향이 짙었다. 마치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감정의 총량이 적은 것처럼.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반대였다. 절제된 표정이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들끓는 눈빛으로부터 전해지는 강렬하고 압도적인 감정의 크기. 유중혁의 연기를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철학적인 담론은 어찌 되든 좋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차고 넘쳤다. 그 연기는 많은 이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으며, 김독자 또한 순식간에 끓어 터지기보다는 뭉근히 달아올라 끝내는 범람하는 유중혁의 연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유중혁은, 그가 지금껏 상상해온 모습 그대로였다. 차가운 불꽃처럼 타오르는 눈동자.

“안드로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그 눈을 바라보고 있던 김독자는 유중혁의 질문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자 정연한 시선이 묵직이 다가왔다. 갑자기 무슨 소릴까. 김독자는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썼다. 기계를 한 올도 걸치지 않은 이가, 순도 백 퍼센트의 기계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인류의 진짜 미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여상한 목소리로 답하자 굳게 닫혀 있던 입매가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팔짱을 푼 유중혁이 성큼성큼 걸어와 김독자의 책상 맞은편, 환자들이 앉는 의자에 앉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뻔하잖아. 이미 인간은 기계화되고 있어. 그 끝에는 안드로이드가 있겠지. 지금처럼 AI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인간의 정신을 이식한 형태가 되겠지만. 어디까지 왔는지 수치로 환산하자면, 흠. 인간이 0, 안드로이드가 100이라고 놨을 때…… 80쯤 될까.”

“……그럼 너는.”

유중혁이 잠시 말을 멈췄다.

“기계로 이루어진 뇌와 심장으로부터 나오는 감정도 진짜라고 생각한다는 건가?”

김독자는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일렁이는 검은 눈동자가 창을 넘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났다. 마치 꿰뚫어 보려는 듯 날카로운 시선. 김독자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서는 이미 결론을 낸 질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김독자는 궁금해졌다. 유중혁이 어째서 제게 그런 것을 묻는지.

“내 대답이 너한테 중요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왜 내게 이런 걸 묻는 걸까. 어차피 답은 없는 문제고, 판단은 개개인의 몫일 터다. 사회의 주류 해석이 무엇이든 알 바 아니다. 김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유중혁에게 무슨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자랑은 아니지만, 유중혁의 오랜 팬인 김독자는 그의 성정을 알음알음 들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며, 신념이 확고하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꺾이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런데, 유중혁. 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거냐? 마치, 확신이 없는 사람처럼.

“괜한 질문을 했군.”

맥이 탁 풀린 듯 유중혁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흥미를 잃었다는 태도에 김독자는 어쩐지 초조해졌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하지만…….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불쑥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너, 네가 어쩌다 이런 꼴을 당해서 실려 온 건지 알아?”

순간, 집어삼켜질 뻔했다고 생각했다.

활활 타오르는 금빛 눈동자가 김독자를 덮쳤다.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몸을 물릴 새도 없었다. 놀라 숨을 멈추고 바라보자 유중혁이 흉흉한 눈길로 김독자의 흰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날카롭고 낮은 경고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이상 내게 관여하면 무사하지 못할 거다.”

책상을 짚었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진료실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가 닫혔다. 김독자는 유중혁이 나간 빈자리를 바라보며 간신히 막혔던 숨을 뱉어냈다. 하아, 헉……. 유중혁 미친 새끼.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젠장. 아까부터 왜 이러는 것일까. 충동적으로 굴고, 원하는 반응을 얻어내고선 성에 차지 않아 입맛을 다시는 꼴이라니. 평소답지 않았다.

물론, 김독자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유중혁이다. ‘그’ 유중혁이 제 앞에 있는데 어떻게 평소처럼 굴 수가 있을까. 오랜 시간 김독자의 삶을 지탱해주었고, 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녀석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부모 없이 홀로 자란 김독자가 줄곧 배워온 뒷모습.

그러니…… 김독자가 유중혁이라는 인간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은근슬쩍 떠보고선 반응을 알아보고 싶어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쓴 약을 넘긴 것처럼 입속이 텁텁했다. 물을 마시려 늘 컵을 두는 자리에 손을 뻗었으나 물컵은 비어 있었다. 아, 그래. 방금 쏟았었지…….

어쩌면 엎질러버린 것이, 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유중혁의 퇴원일이 다가왔다. 처음 예상한 날짜보다 훨씬 이른 날이었고, 그에 김독자는 조금 아쉬운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껏 무언가에 애착을 가지거나 연연하지 않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마치 세계가 멸망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래. 김독자에게 있어 유중혁이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어 놓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 인간이었다. 불멸이 인류를 근본부터 뒤집어 놓았듯이.

김독자는 문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유중혁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간 입고 있었던 환자복은 깔끔하게 개어져 침대 위에 올라갔다. 어차피 세탁해야 하는데 굳이, 싶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긴 손가락이 셔츠의 단추를 잠그고 검은 코트를 펼쳐 다부진 어깨에 걸쳤다. 처음 병원에 실려 왔던 때에 입고 있던 것이었다. 가만 지켜보는 시선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유중혁은 다시 한번 소지품을 점검하고선 김독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신세를 졌군.”

“신세는 무슨. 빈말은 됐어.”

“정말로 병원비를 받을 생각이 없나?”

유중혁은 못내 불편한 기색이었다. 어쩌면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혹은, 이것을 빌미로 제가 무슨 뒷수작을 벌이지나 않을지 의심하는 거겠지. 하지만 김독자는 결심을 되돌릴 생각이 없었다.

“말했잖아. 네 팬이라서 안 받는다고.”

“너야말로 헛소리는 그쯤 해둬라.”

이 자식이. 김독자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유중혁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서니 슬쩍 올려다봐야 하는 눈높이다. 김독자의 눈빛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어냈는지 유중혁이 올곧은 시선을 맞춰왔다.

김독자는 속으로 짧게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했다. 이 얘기를 꺼내도 좋은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 계속 이 순간을 후회하겠지. 지금 여기에서 유중혁을 붙들어둘 말을 하지 않으면, 그의 삶과 내 삶은 영원히 어긋날 것이다. 두 개의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고선 점점 더 거리를 벌려가듯이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이 녀석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겠지. 입이 바짝 말랐다. 긴장한 티가 나지 않도록 입술을 축이며 김독자는 입을 열었다.

“유중혁.”

묵묵히 내려다보는 시선이 돌아왔다. 김독자는 고개를 들며 명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 수술은 언제 한 거야?”

침묵은 길고, 무겁고, 차가웠다.

몹시 놀란 듯 커다랗게 떠졌던 눈이 금세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짙은 눈썹이 한데 모이고,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고. 바득 이를 간 유중혁이 한참 만에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냥, 경험적으로. 비슷한 환자를 본 적이 있어서. 다른 의사들은 아마도 몰랐을 거야. 수술 흔적이 워낙 미미해서. 그러니까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켰을까 걱정은…… 컥.”

순식간에 멱살이 잡혀 벽에 밀어붙여졌다. 그 반동으로 쓰고 있던 안경이 흘러내려 콧대에 아슬하게 걸쳐졌다. 막힌 숨을 기침하듯 뱉어내며 김독자는 제 목덜미를 틀어쥐고 있는 유중혁의 억센 손을 붙잡았다. 씨발, 유중혁…… 미친 새끼야. 이거 놔……. 하지만 유중혁은 손을 풀어주지 않은 채 이마를 쾅 부딪쳐왔다. 맞닿은 피부를 타고 맹수처럼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네놈, 어디까지 알고 있지.”

목을 놔줘야 대답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침밖에 꺼낼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숨이 막혀 몽롱해질 지경이 되어서야 유중혁이 손에 힘을 풀었다. 헉, 커흑, 벽에 늘어지듯 기대어 한참이나 콜록거린 뒤에야 김독자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미친놈이,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고……”

“대답이나 해라.”

하여간 성깔 더러운 놈……. 김독자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안경을 고쳐 쓰고 가운 자락을 정리한 뒤 유중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쏘아보는 시선을 그대로 맞받아치며 김독자는 생각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제대로 말해야 한다.

“네 심장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기계 심장이라는 건 알고 있어. 오래전에 만들어진 모델이라는 것도. 잘 숨겨뒀더라, 어떤 검사를 받아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하필이면 나한테 걸린 건 좀 운이 없었겠지만.”

“그리고?”

“……네 몸에 구멍을 낸 놈들이 누구인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알아.”

유중혁의 안색이 변했다.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지? 그렇게 묻기에 김독자는 씩 웃었다. 약간 연줄이 있어.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유중혁은 조금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렇겠지. 유중혁 자신도 모를 ‘적’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대뜸 폭탄선언을 했으니. 김독자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유중혁, 나는 널 도와줄 수 있어. 네가 왜 기계 심장을 달고 있는 걸 숨기고 싶어하는지도 대충 알고.”

“…….”

“나를 동료로 삼아. 난 네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

네 몸을 믿고 맡길 만한 의사가 필요하잖아. 유중혁은 그 말의 진의를 가늠해보는 눈치였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노려보더니 다시금 한 발짝을 내디뎌 거리를 좁혀왔다.

“그럼, 말해라.”

“뭘?”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다.”

김독자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번쩍이는 안광을 마주하며 김독자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쩌면 유중혁 자신도 잘 모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시대는 늘 변해왔고, 그에 맞춰 정부 또한 유기적으로 입장을 바꾼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의미는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었으며, 입헌군주제니 공화제니 하는 낡은 체제들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갈아치워졌다. 그리고 현재 이 나라는, 따지자면 정부와 시민 의식이 충돌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급격한 문화와 과학의 발전에 대부분의 사람은 빠르게 적응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중 일부는 강경파가 되어 빠른 개혁을 원하는 단일정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기계화 반대 시위’ 따위를 하는 사람들. 안드로이드가 인류의 정신을 파멸시킬 것이라 믿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유중혁’이라는 존재는 상징적으로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유중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간에, 결과적으로 그가 보이는 행보는 결국 ‘기계화 반대’와 궤를 함께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것이 정부에게는 못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하자 유중혁이 황당하다는 듯 하, 하고 한숨을 뱉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런 소리를 믿으란 말인가? 애초에 나는 강경파 따위와 뜻을 함께한 적이 없다.”

“믿든 안 믿든 자유지만, 적어도 네 가슴에 구멍을 낸 놈들이 정부 소속인 건 확실해.”

김독자는 손가락을 들어 유중혁의 옷 아래에 있을 상처 부위를 가리켰다. 그거,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들만 쓸 수 있는 부품의 흔적이거든. 유중혁의 눈썹이 크게 꿈틀했다.

“정부가 나서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래. 정확히는, 죽이기보다…… 치명상을 입혀서 인공 장기를 달도록 할 셈이었겠지. 그러면 강경파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안드로이드를 쓴 것도 그래서일 거야. 실제 인간을 쓰는 것보단 뒤처리가 쉽거든. 습격을 사고로 위장하고, 안드로이드는 로봇 3원칙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대충 폐기처리라도 하려고 했겠지.”

“……정희원이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 정비업도 한다고 했지. 그래서 알고 있는 건가.”

김독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은 정희원이 아니라, 오래전에 그의 어머니 이수경 덕분에 알게 된 정보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이 정도는 오해하게 둬도 괜찮겠지.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유중혁이 입가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김독자는 그가 결론을 내놓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곧, 유중혁의 입꼬리가 느릿하게 위로 움직였다.

“김독자.”

“……응?”

“믿어보겠다. 나를 도울 수 있다고 말했지. 한 번 뱉은 말은 지켜라.”

김독자는 얼떨떨한 심정이 되어 눈을 깜빡거렸다. 이렇게 쉽게 믿는다고? 그 유중혁이? 그가 추궁할 때를 시뮬레이션하며 응대할 말을 수십 가지나 준비해 두었는데. 그런 의문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유중혁이 손을 뻗어왔다. 뺨과 관자놀이를 향해 다가온 손은 김독자의 귓가에 걸려 있던 안경을 손쉽게 벗겨냈다. 살갗에 짧게 닿았던 손가락이 뜨거웠다. 김독자는 호흡을 멈춘 채 제 안경이 유중혁의 얼굴에 걸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도 재수 없도록 잘생긴 얼굴로 유중혁이 웃었다.

“요즘 세상에 도수 있는 안경 같은 걸 쓰는 사람은 없다. 안경은 이미 패션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

“…….”

맞는 말이었다. 시력 교정술은 물론이요, 인공 안구로 교체까지 자유로운 세상에서 누가 불편하게 안경 따위를 쓴단 말인가. 김독자는 허를 찔린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달고 살던 안경 때문에 속내를 들키게 될 줄이야.

“네가 만약 나를 해치는 데 가담하려고 했다면, 나를 그 상태로 죽게 내버려 두거나 손상 부위를 인공 장기로 교체하려 했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니까. 너는 내 팬이라고 했고, 또 이 안경으로 봐서…… 기계화에 긍정적인 입장인 것 같지도 않군. 그렇다면 앞뒤가 맞는다.”

다시 안경을 벗어낸 유중혁이 안경다리를 접어 김독자의 가운 앞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문 앞에 서자 센서가 깜빡이며 스르르 문이 열렸다. 흘긋 김독자를 돌아본 유중혁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지금껏 본 어느 얼굴보다도 환히 웃고 있었다.

“조만간 연락하지. 기다리고 있어라.”

검은 코트 자락이 닫히는 문 틈새로 사라지기 직전, 김독자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외쳤다. 너무 늦게 연락하지 마. 너 위험하니까. 대답은 없었지만, 어쩐지 유중혁이 웃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닫힌 문이 소리를 차단했다. 고요하게 비어버린 1인실 병실의 공기를 더듬다가 김독자는 비틀비틀 침대로 걸어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뒤늦게 긴장이 풀리며 몰려온 피로와 묘한 흥분 탓에 몸에 힘이 풀렸다. 무너지듯 침대에 쓰러지자 손아귀에 부드러운 옷자락이 잡혔다. 유중혁이 개켜둔 환자복이었다.

유중혁.

잇새로 비싯,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웃을 때냐, 김독자?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너도 같이 위험해질 거야. 물론…… 다 알고서도 한 일이지만. 하, 하……. 한숨 같은 웃음을 풀어놓으며 몸을 뒤집었다. 둥글게 뚫린 천장의 창으로부터 아침 햇살이 흘러내렸다. 김독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 리 없었다. 유중혁을 도울 수 있는 게 자신 뿐이라면. 당연하지 않은가.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앞으로 조금 바빠질 것 같았으므로, 김독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것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 * *

 

 

유중혁은 눈앞의 새하얀 남자를 바라보았다. 새하얗다는 말 외에 그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얀 얼굴, 하얀 목덜미, 하얀 셔츠, 하얀 가운. 햇살이라도 내리쬐면 그야말로 빛살에 묻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선이 가는 인상이다. 기계를 이리저리 조작하던 김독자가 작업을 마쳤는지 손을 떼고선 고개를 돌렸다.

“다 됐어. 옷 입어도 돼.”

유중혁은 몸을 일으켜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검은 목폴라를 집어 들었다. 소매에 팔을 꿰어 넣고 있는 사이 김독자가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았다. 결과는 빠르면 내일쯤 나올 거야. 아마 별 이상은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리 말하더니 오늘 한 검사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주절주절 설명한다. 기억해둬야 할 정보 외에는 적당히 흘려들으며 옷을 다 입은 유중혁이 쳐다보자 눈이 딱 마주친 그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야, 근데 내가 스물여덟 먹도록 너만큼 건강한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진짜 특이 케이스인 거 아냐?”

“말은 똑바로 해라. 의사가 된 지 몇 년이나 됐지?”

“올해로 5년.”

“그럼 5년 만에 처음 보는 건강한 환자라고 말해야 맞겠지.”

투덜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소한 걸로 시비야. 이내 말을 끊은 김독자는 가라앉은 눈을 했다. 유중혁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일지 알아차렸다.

“심장 검사도…… 해보는 게 어때.”

“정희원에게?”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는 없잖아.”

“그 여자에게는 맡겨도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야. 날 믿겠다며. 희원 씨도 믿어주면 안 되냐.”

생각은 해 보지. 유중혁은 짧게 대꾸하며 검사실 밖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뒤를 따라오는 기척이 조금 성가신 듯도 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김독자에게 본격적인 주치의 자리를 맡긴 지 고작 2주였다. 유중혁은 아직 그를 완전히 신용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김독자라는 인간에 대해 이런저런 조사를 하며 약점을 잡아두려던 참이었다. 비겁한 수라고 욕한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파고들지도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드러나 버린 그의 치부에 유중혁은 침음했다. 김독자. 28세. 의사. 전과자 이수경의 아들.

이수경이라면 그도 이름 정도는 들어 알고 있었다. 심리학 분야에서 유명한 저서를 여럿 남긴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그는 특이하게도 인간 심리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안드로이드 심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였다. 그런 이수경이 ‘안드로이드 살해죄’라는 죄목으로 붙잡혀 재판을 받은 사건은 세간을 제법 떠들썩하게 만들었었다.

그 이수경의 아들이었다니. 쥐고 흔들 약점으로는 너무 부피가 크지 않은가. 그래서 유중혁은 김독자를 협박하려던 것을 잠시 보류했다. 당장은 이상한 낌새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뒤따라오던 김독자의 목소리에 유중혁은 잠시 멈춰 섰다.

“건강검진 몇 년 만에 받아보는 거라고?”

“모르겠군. 이렇게 된 뒤로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최소한 10년 정도는 됐단 소리네.”

김독자가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생각할수록 미스터리네. 근데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지? 말이 안 되는데. 유중혁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을 습관화해라. 건강의 비결이다. 김독자가 질색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오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

“뭐…… 그렇긴 하지. 어쨌든 난 영원히 사는 건 사양이라서.”

“다른 건 몰라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

김독자가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한 복도를 걸어 텅 빈 환자대기실로 나오자 붉은 저녁놀이 공간을 온통 메우고 있었다. 유중혁은 천장에 뚫린 둥근 창을 가리켰다. 저 인테리어는 네 취향인가? 그렇게 묻자 김독자가 끄덕거렸다. 희한한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햇빛을 받는 일이 건강상 중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하늘을 관상용으로 쓰기에는…… 삭막하게 늘어선 공중 철로를 달리는 열차나 비행차량들만이 보일 뿐인데. 유중혁과 김독자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창을 올려다봤다. 이 창이 뚫린 위치도 예외는 아닌지 이따금 열차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걷혔다.

반대편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유중혁은 몸을 뒤로 돌려 얼굴을 숨겼다. 이상하군. 오늘은 병원 휴일이라고 했을 텐데. 김독자가 가리듯 그의 앞을 막아섰다. 체구 차이 때문에 별로 효과는 없을 터였지만.

“아. 희원 씨.”

안도하는 김독자의 목소리에 유중혁은 다시 몸을 돌렸다. 막 작업을 마친 것인지 정비사 복장을 한 정희원과 이현성이 가까이 걸어오고 있었다. 김독자와 유중혁을 번갈아 바라본 정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둘이 또 몰래 만났나보죠?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아요? 섭하네.”

“비밀은요. 수술 후처리나 하러 온 거죠.”

능청스레 답한 김독자가 씩 웃고선 유중혁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을 되받아 간단히 목례를 건네자 정희원과 이현성도 응해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퇴원한 지 2주 정도 되셨던가요?”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멀쩡하다, 그렇게 답하자 이현성은 회복이 빠르다며 감탄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김독자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유중혁, 너 현성 씨 언제 봤다고 막 반말하냐?”

“문제 있나?”

“어. 너 나한테도 초면에 멋대로 반말했잖아. 유중혁 인성 논란, 뭐 이런 거 안 뜨나?”

“너도 이제 나한테 반말을 하고 있으니 상관없지 않나?”

“뭔 소리야? 네가 먼저 말 놔서 나도 깐 거잖아.”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지셨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던 정희원이 키득거렸다. 팔꿈치로 이현성을 쿡 찌르며 뭐라고 속닥거리는 것이 어째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아 인상을 쓰자 모른 척 눈을 돌린다. 웃기는군.

“어쨌든, 금방 나아서 다행이에요. 그날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폐를 끼쳤군.”

“무슨 소리예요. 사람 목숨이 위험한데 당연히 구해야죠.”

그래도 장난 아니긴 했죠, 그날. 비가 막 오기 시작하는데 전봇대 기둥 아래 웬 시커먼 남자가 기대앉아선……. 처음엔 취객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냥 지나쳤으면 큰일 날 뻔했죠. 저체온증으로 금방 골로 갔을지도 모르고. 덩달아 고개를 끄덕인 김독자는 곧 정희원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금방 다른 화제로 길이 빠졌다.

“독자 씨. 저녁은요?”

“집 가서 먹을 겁니다.”

“또 대충 때우려는 거 아니에요? 식단 찍어서 보내세요.”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독자 씨. 제대로 안 먹으면 거기서 더 마를 겁니다.”

김독자를 향해 쏟아지는 정희원과 이현성의 잔소리에 유중혁은 팔짱 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어째 영 흐느적거린다 싶었더니 식사를 대충 하는 모양이지.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그럼 이만 가보겠다, 라고 운을 떼며 자리를 벗어나려는 찰나 정희원의 화살이 유중혁에게 돌아왔다.

“중혁 씨. 스케줄 없으면 독자 씨 데리고 가서 밥 좀 같이 먹어주세요.”

“……?”

어이가 없어 눈을 가늘게 떴으나 제 옆의 김독자는 저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째 이게 더 불쾌하군. 가만 바라보자니 김독자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저랑 왜 밥을 먹어요. 됐습니다. 식단 찍어서 보낼게요.”

“아, 못 믿어요. 사진 조작한 게 한두 번인가. 중혁 씨, 바빠요?”

“중혁 씨도 식사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시간도 됐고 한데 같이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들은 유중혁이 거리에 나가면 열 명 중 열 명이 알아보는 유명인이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제법 신선한 반응이라서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당신들이 데리고 가서 먹는 게 어떠냐 물으니 이들은 따로 약속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귀찮군. 유중혁은 밖에서 먹는 음식에 전혀 흥미가 없었으므로 딱 잘라 거절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 순간 김독자와 눈이 마주치지만 않았으면 단박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검은 눈동자가 애매하게 곤란한 미소와 함께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묘하게 반짝이는 눈이다. 뭐지? 이 녀석, 설마 나와 식사를 같이 하고 싶은 건가. 난처한 듯한 표정을 봤을 때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팬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더더욱 거절해야 옳았다. 어차피 비즈니스적인 관계고, 여차하면 유중혁은 김독자의 약점을 붙잡아 흔들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바깥 음식점에 가기 곤란하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 그건 그렇겠네요.”

“집에서 먹는 걸로 괜찮다면 동행하도록 하지.”

김독자가 황당한 표정을 하곤 유중혁을 돌아봤다. 야, 갑자기 왜 이래? 너 한가해? 촬영 같은 거 없어?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은 채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선글라스와 모자를 눌러썼다. 차키를 손에 들자 김독자가 옆으로 따라붙었다.

“너…… 진짜 같이 갈 거야? 우리 집에?”

“그럼 내 집으로 오겠다는 건가?”

“아니 시발. 그게 아니고.”

무엇이 문제인지 한숨을 푹푹 쉬던 김독자가 정희원과 이현성을 돌아보았다. 이내 포기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고선 등을 떠민다. 갈 거면 얼른 가자. 나 더 혼나기 전에. 근데 차키는 안 꺼내도 돼. 김독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중혁은 등에 닿은 손길이 어째서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유중혁은, 김독자의 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차키는 필요 없다는 말대로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김독자의 집은 그의 병원에 부속 건물처럼 붙어 있었으니까. 뭐가 그리 불만인지 몇 걸음 걸어가는 내내 연신 투덜거리던 김독자는 유중혁을 문 앞에 세워두고선 먼저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맑은 방울 소리가 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내민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나 지난 후였다.

“들어와.”

좀 어수선해도 이해해라. 그렇게 말한 것과는 달리 집은 그다지 어질러져 있지는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에 빗대어서일 뿐, 유중혁의 기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청소 로봇은 쓰지 않는 건가? 수입이 적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물었지만 김독자는 그저 웃기만 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집이었다. 작은 방이 두 개, 욕실이 하나. 사람 두 명이 서면 비좁을 듯한 주방과 거실. 혼자서 살기에는 좀 크다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김독자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을 고려하면 좁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의 예측과 달리 의사는 여전히 현역으로 높은 수입을 거둬들이는 직종이었으므로. 심지어 김독자의 병원은 안드로이드 정비사와 협업을 하고 있어 상당히 잘 되는 편이었다.

유중혁은 김독자가 말리기도 전에 주방으로 향했다. 손끝으로 싱크대 주변을 쓸자 미미한 먼지가 묻어 나왔다. 집에서 요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정희원이나 이현성이 잔소리를 할 만도 하군. 흘끗 시선을 보내자 김독자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요리엔 소질이 없어서.”

“그럼 도대체 평소엔 뭘 먹고 살지?”

“간편식.”

그렇겠지. 요즘 간편식은 영양소도 골고루 갖춰져 있다던가. 알고는 있지만…… 영 불쾌했다. 사람이 어떻게 간편식만 먹고 산단 말인가. 그건 그냥 생존을 위해 몸에 열량을 채워 넣는 수준 아닌가. 미식가에 가까운 유중혁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유중혁은 간편식 따위를 먹을 생각은 없었으므로 냉장고를 살폈다. 예상한 대로 텅 비어있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지만.

“…….”

“냉장고는 인테리어용 장식인가?”

“야, 무슨 말을 그렇게……”

“변명은 됐다. 방해하지 말고 앉아있기나 해라.”

뭔 소리야? 그렇게 말하며 알짱대는 것을 쫓아내고선 냉장고 패널을 두드려 재료를 배달시켰다. 저 허여멀겋고 흐느적거리는 놈에게 진짜 맛있는 요리가 뭔지 보여줘야겠다는 오기 같은 것이 일었다. 답지 않게도.

 

 

 * * *

 

식사를 마치고 김독자의 손에 커피까지 쥐여줬을 때는 이미 저녁이 무르익은 시간이었다. 곧 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시각을 띄운 시계를 바라보며 유중혁은 집 내부를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보았다. 과연 김독자의 취향은 한결같았다. 채광이 잘 되도록 거실 한 면을 크게 뚫어놓은 전면유리는 해가 떠 있을 때라면 내부를 따뜻하게 밝힐 것 같았다. 정작 그렇게 해가 드는 시간에 김독자는 이 집이 아니라 병원에 있을 터였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거실은 단출했다. 워커홀릭이라도 되는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잡스러운 가구가 거의 없었다. 자칫하면 살풍경하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저 창 덕분인가. 인테리어에 있어 조명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하며 유중혁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지 않은 모양이군.”

그리 말하자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손을 얹어두고 있던 김독자가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되묻기에, 유중혁은 가구들이 지나치게 손을 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얀 얼굴에 영문 모를 미소가 떠올랐다. 쓸데없이 잘 웃는 놈이군. 김독자는 불쑥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유중혁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봐, 유중혁. 유중혁은 짧게 고민하다가 컵을 내려두고 그의 뒤를 따랐다.

김독자가 열어젖힌 것은 안쪽의 작은 방문이었다. 암실처럼 캄캄했던 내부가 문이 열리면서 어둑한 빛으로 밝혀졌다. 유중혁은 문 앞에 그대로 멈춰 섰다. 이건……. 익숙한 걸음으로 방에 들어선 김독자가 씩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어때? 여긴 좀 사람 손 탄 것처럼 보여?”

확실히, 그랬다. 유중혁은 내심 감탄하며 방의 네 면 중 두 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영화 타이틀들과 커다란 스크린, 그리고 음향장치를 바라보았다. 책장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꽂혀 있는 타이틀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옅은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구시대적인 보관 방식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실물로 된 타이틀을 소장한단 말인가. 십여 년 전에 사라진 문화였다. 이제는 웬만한 수집가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을 쌓아두지는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손에 잡히는 것을 하나 꺼내 보았다. 낡은 플라스틱 케이스의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 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타이틀들을 훑었다. <가타카>.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메트로폴리스>.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는 거 있어?”

은근하게 다가와 묻는 김독자에게 유중혁은 담담히 대답했다. 전부 아는 작품들이다. 김독자의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다 안다고? 진짜? 케이스를 다시 원래 자리에 밀어 넣고선 그를 돌아보았다.

“SF영화가 취향인가?”

“뭐…… 제법 좋아하지. 다른 것도 골고루 보긴 하는데.”

판타지도 좋아해. 너 <반지의 제왕>이라고 아냐? 이게 또 명작인데, 영화도 잘 만들었지만 책은……. 조금 들뜬 듯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김독자를 바라보며 유중혁은 짧은 상념에 잠겼다. SF와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고전영화 타이틀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숱하게 많은 이들의 몸을 기계로 갈아치워 주면서도 자신의 몸은 그렇게 하지 않는, 묘하게 흐릿한 인상의 남자. 제가 인공 심장을 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숨겨주고, 그럼 지금까지 네 연기는 다 가짜였던 거냐, 연기를 할 때도 네 심장은 정해진 것처럼 120/80mmHg의 혈압과 65bpm의 심박수를 유지하느냐, 그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는 녀석. 마치 그 질문이 그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 넣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김독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유중혁은 걸음을 조금 더 옮겼다. SF 영화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던 책장 옆에는 투명한 유리문이 달린 선반이 있었다. 안을 살펴보려 했더니 김독자가 팔을 턱 붙잡았다.

“아…… 그건.”

문제라도? 그런 눈으로 쳐다보자 슬그머니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가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다. 맘대로 해라. 그래서 유중혁은 그렇게 했다. 사실 유리문을 열어볼 것까지도 없었다. 선반 안쪽을 짧게 훑어본 것만으로도 유중혁은 이것이 무슨 컬렉션인지를 알아차렸다. 말하자면…… ‘배우 유중혁 필모그래피 존’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찍은 것부터 가장 최근 것까지, 그가 출연한 거의 모든 작품이 시간 순서대로 정렬되어 꽂혀 있었다. 간혹 같은 타이틀이 여럿 꽂혀 있기도 했는데 보아하니 한정판 비슷한 것인 듯했다. 유중혁은 조금 말문이 막힌 채 김독자를 돌아봤다. 그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말했잖아…… 팬이라고.”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유중혁은 어쩐지 묘한 기분이 되어 선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달칵, 유리문을 눌러 열고 안에 든 타이틀 껍데기를 하나 꺼내 보려 했더니 김독자가 조금 전과는 달리 강하게 뜯어말렸다.

“왜 그러는 거지?”

“아니, 뭘 그렇게 자세히 보려고 해. 그냥 네 필모 다 모아놨다, 그것만 확인하면 되는 거 아냐?”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하니 내가 그 ‘팬’이라는 소리가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이러는 줄 아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유중혁은 손을 멈췄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왜 굳이 이걸 확인하려 하고 있는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유를 금방 찾아낼 수 있었으므로. 유중혁은 이 껍데기 안에 혹시나 김독자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이 껍데기들 하나하나에 김독자의 지문이 묻어 있을지. 속에 든 CD가 정말로 플레이어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던 것일지. 정말로 내가 나온 영화를 다 봤는지. 전부 다 봤다면, 감상은 어땠는지. 재밌었는지, 볼만했는지, 혹여나 연기가 어색하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이 궁금했다.

쓸데없는 짓이군. 시간 낭비다. 손을 거두자 김독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 선반을 넘어 다른 책장을 살폈더니 제법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보였다. 김독자는 의외로 상당한 수집광인 모양이었다. 매니악한 작품들도 심심찮게 보였고……. 유중혁이 흥미를 보인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챈 김독자가 다시 여유를 찾고선 빙긋 웃었다.

“보고 싶으면 빌려줄게.”

“애석하게도 내 집에는 구형 CD 플레이어가 없다.”

혀를 찬 김독자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그럼 보고 가든가. 유중혁이 눈을 까딱여 보였지만 그는 그저 미소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경계심도 없는 것인지……. 아니, 경계심이 부족한 건 유중혁 자신 쪽일 것이다. 김독자라는 녀석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홀랑 집까지 들어와 버린 꼴이라니.

“다음에 내키면 고려해보겠다.”

“그래. 그러든가.”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도 김독자는 여상히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그에게 볼일이 없어진 유중혁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하고선 방을 빠져나왔다. 건강검진 결과는 어떻게 확인할래? 파일로 보내줄까? 등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중혁은 구두를 고쳐 신는 동안 결정을 내렸다. 몸을 돌려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하얀 인공 조명 아래서 반짝거리는 눈동자.

“확인하러 찾아오겠다. 다음 주 휴일에.”

“알겠어. 시간 비워둘게.”

2주 연속 휴일을 그에게 온전히 내어줘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평 한마디 없는 녀석이다. 선선히 끄덕여지는 고개를 바라보며 유중혁은 김독자라는 인간의 머릿속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작 팬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호의적일 수 있는 것인가. 오랜 시간 자신이 아닌 타인의 감정에 몰입하고 공감하고 연기를 하며 살아왔건만 아직도 난제는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현관을 나서면서 유중혁은, 다음 휴일까지 남은 시간을 재어보는 제 모습에 흠칫 놀랐다.

 

 

 * * *

 

김독자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굳이 따져보자면 내어놓는 것과 흡수하는 것 중에선 후자를 더 좋아하는 듯했으나, 그는 전자에도 제법 소질이 있었다. 적어도 평소 말수가 많지 않은 편인 유중혁보다는 그랬다. 유중혁은 여느 때처럼 김독자의 병원 휴무일에 들러서 건강 상태 체크를 받은 뒤 그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게 매주 주과처럼 되어버렸을까.

몇 달간 김독자에게 제법 익숙해진 유중혁은 그의 말을 받아들여 정희원에게 인공 심장 정비도 받기 시작했다. 처음 그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정희원은 아주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금방 짓궂게 웃었다. 그랬구나. 그럼 내가 유중혁 씨의 개인 정비사가 되는 건가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연기 잘 보고 있어요.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그런 소리를 하기에 유중혁은 침음했다.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군. 어느새 편해진 말투로 말하자 정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놀랄 게 뭐가 있어요. 내 직업이 뭔지 몰라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알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은 이현성의 넓은 어깨를 매만지고 있었다. 잠시 이현성과 시선을 교차한 정희원이 손을 내밀어왔다. 그럼 잘 부탁해요. 맞잡은 그의 손은 마치 오랫동안 검을 쥔 사람의 것처럼 심지가 굳었고 단단했다.

“오늘 저녁은 뭐로 할 거야?”

무어라 주절거리던 김독자가 불쑥 물어왔다. 이놈은 뭘 또 당당하게 이런 걸 묻고 있는지. 유중혁은 현관의 잠금을 해제하는 김독자의 뒤통수에 대고 적당히 대꾸했다.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 고개가 살래살래 흔들려 가는 머리칼이 허공을 부유했다.

“토마토 들어간 것만 아니면 돼.”

“그런 것치곤 케첩은 먹지 않나?”

“그거랑 토마토랑은 다르지.”

식성이 이상한 놈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중혁은 착실히 저녁 메뉴를 구상했다. 지난주에는 닭고기 베이스 요리를 했으니 오늘은 돼지고기를……. 신발을 벗어낸 김독자가 물었다. 너 요리할 동안 나 먼저 씻고 와도 되냐? 마음대로 해라. 이내 욕실로 쏙 사라져버리는 김독자의 뒷모습을 일별하고 유중혁은 주방에서 손을 씻었다. 유중혁의 수술비와 입원비를 한 푼도 받지 않은 김독자는 그 사후 처리와 주기적인 건강 상태 체크 비용도 일절 받지 않겠다 선언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도대체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털어놓으라 윽박질러보기도 했으나 김독자는 태연자약했다. 그냥 너한테 개인적으로 빚이 좀 있어. 그거 갚는다고 생각하는 중이니까 너도 그렇게 여겼으면 좋겠네. 납득할 수 없었으나 그는 몹시도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싫어? 그럼 나도 네 비밀 맘대로 언론에 불어버린다. 그래도 되냐? 그따위 역협박까지 하기에 유중혁은 그냥 말하기를 관뒀다. 미친놈이었군.

문제는, 김독자가 유중혁에게 제공하는 것이 의료 서비스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독자는 어디서 알아 오는 건지 정부가 안드로이드를 움직여 행하는 일들의 동향을 기가 막히게 파악해 유중혁에게 전달해주곤 했다. 한 번 신변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는 유중혁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다행히도 저번 실패 이후로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인지 특별히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리고, 제 안위의 대부분을 김독자에게 맡긴 꼴이 된 유중혁은 그 비용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대신 이따금 이렇게 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김독자가 받아도 좋다 수락한 것은 이것뿐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김독자는 입이 짧았지만 음식을 크게 가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중혁은 별문제 없이 자신의 요리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동생인 유미아를 제외하면 직접 만든 음식을 타인에게 대접해 본 적이 거의 없어 생경했지만, 누군가가 제 요리를 먹고 기쁜 얼굴을 하는 것을 보는 게 의외로 기분이 썩 괜찮았다. 비록 김독자는 잘 먹인 보람도 없이 여전히 비쩍 곯은 모양새였지만.

오늘도 지난주와 비슷했다. 유중혁과 함께 저녁을 먹은 김독자는 목욕을 한 기운이 남아 노곤한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흰 얼굴에 떠오른 만족스러운 표정을 흘끗 확인하며 유중혁은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살짝 물기가 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털어낸 김독자가 문득 유중혁을 돌아보았다.

“유중혁.”

“왜.”

“영화 보고 안 갈래?”

엊그제 새로 구했어. 계속 찾고는 있었는데 매물이 없어서 좀 오래 걸렸네. 그리 말하며 김독자가 꺼낸 영화의 제목은 얼마 전 유중혁이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고전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평론가들에게 신선하다는 평을 들었던 영화. 유중혁은 새삼스럽게 김독자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답지 않게 수완 좋은 놈.

“내일 스케줄 있어?”

“……없다. 당분간은 비어 있어.”

“그랬지 참. 아무튼…… 어떡할래?”

김독자가 씩 웃으며 홈시어터로 꾸려진 방 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유중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곧 어둑한 방 안에 자리 잡은 푹신한 소파 위에 몸을 묻게 되었다. 재생장치를 세팅한 김독자가 그 옆에 놓여있던 안경을 집어 들어 쓰고선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라서 그만 어깨가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아. 미안.”

건조하게 사과를 건넨 김독자는 그 무심함과는 달리 한껏 거리를 벌렸다. 거의 소파 끄트머리에만 걸치고 앉을 기세이기에 유중혁은 쯧, 혀를 차고선 그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맥없이 끌려온 김독자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유중혁을 올려다봤다.

“됐으니까 그냥 있어라. 그게 더 신경 쓰이니까.”

어둠 속에서 깜빡거리던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래, 그럼. 유중혁은 스크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편에 조심스럽게 닿아오는 어깨와 팔이 옅게 간질거리는 듯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곧 그런 생각은 날아갔다. 유중혁은 순식간에 영화에 빠져들었다. 기대했던 작품은 되려 실망하기 쉽건만 이건…… 수작이군. 어느새 필름의 끝에 도달해 올라가는 크레딧까지 주목해서 보고선 시선을 떼어놓자 저를 바라보고 있던 김독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빙긋 미소지은 그가 말했다.

“어땠어?”

“괜찮군. 참고가 됐다.”

“감상이 딱딱한데.”

“그럼 이 이상 뭘 바랐지?”

김독자가 흠, 하는 소리를 내더니 팔짱을 꼈다.

“이 영화 왜 보고 싶어 했던 건데?”

“평소에 관심 있게 보고 있던 감독이다.”

“그래? 그럼 연출이나 각본, 특수효과, 뭐 그런 거 수준 보려고 한 거야? 내용은?”

“너는 대체 날 뭐로 보고 있는 거지. 내용을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게 당연하지 않나.”

“다행이네. 아니, 나는 너 배우니까 무슨 직업병 같은 거 있을 줄 알았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전부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본 영화가 아니었으므로. 유중혁은 배우이기 이전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배우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는 손가락으로 입가를 두드리던 김독자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 좋아하냐?”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용은 알지만.”

“그럼, 이 영화 제목이 무슨 의미로 지어졌는지는 알고 있었어?”

유중혁은 옆 테이블에 놓여 있던 영화 타이틀 껍데기를 집어 들었다. <테세우스 패러독스>. 테세우스는 크레타섬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이다. 유중혁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김독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돌아올 때 타고 온 배가 후대까지 오랫동안 보존됐다더라. 배니까 바닷물을 먹어서 판자가 썩기도 했는지, 썩으면 그걸 뜯어내고 새 판자로 갈아치우고. 그런 식으로 온전한 모양새로 보존했대.”

거기서 철학자들이 질문을 던졌다나. 배를 이루고 있던 판자를 교체하길 계속 반복한다면, 모든 판자가 새 걸로 갈아치워져 원래 조각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도 그건 테세우스의 배인가? 하고. 유중혁의 손에 들린 플라스틱 케이스를 가져간 김독자가 겉면을 매만졌다. 매끈한 표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스크린의 빛을 반사했다. 숨이 턱 막혔다. 유중혁은 그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조금 전에 본 영화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유중혁. 너는 어떻게 생각해? 조용한 목소리가 팽팽히 당겨진 낚싯줄처럼 날카롭게 흘러들었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사람도, 신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조금씩 기계로 갈아치워 간다면……. 그건 언젠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되는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어느 시점부터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으므로. 그것은 유중혁이 아주 오랜 시간, 거의 평생에 걸쳐서 고민해 온 난제였다. 테세우스의 배 난제. 만약 몸을 기계로 바꿔 갈수록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거라면, 심장을 갈아치운 자신은…… 인간이라고 불러도 좋은가. 감정이라는 것이 뇌로부터 만들어져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때로는 느리게도 만든다면, 나는 이제 반쪽의 감정만이 진짜인 것인가. 답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그의 연기를 실감 난다며 칭찬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믿음이 부족했다. 나는 정말로 살아있는 게 맞는 건가. 그걸 확신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서늘한 손가락이 뺨에 닿았다. 한참이나 망설이다 뻗은 듯 한없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유중혁의 뺨을 두 손으로 붙잡은 김독자가 눈을 마주쳐왔다. 유중혁. 나를 봐.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자 김독자가 어둠을 가르듯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중혁. 누가 뭐라고 말해도, 너는 인간이야.”

“…….”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것은, 어쩌면 유중혁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옅은 불빛만으로도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 그 눈은 어떠한 믿음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너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고. 그걸 알려주고 싶다고. 유중혁은 김독자의 확신에 어떠한 근거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독자는 종종 유중혁 자신보다도 저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처음 느끼는 안정감이었다. 누군가가 나의 이해자가 되어 준다는 것. 아, 그런가. 어쩌면 나는 말만 번지르르한 명분 같은 게 아니라,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등을 맞대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인가.

유중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제 뺨에 닿아 서늘한 체온을 전해오는 김독자의 손가락을 붙잡으려는 찰나, 스피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0시 5분 전입니다.]

흠칫한 김독자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유중혁 또한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며 스피커 쪽을 일별했다. 방금 그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푸른 빛을 내던 기기가 알람을 울리듯 수차례 점멸하더니 이내 꺼졌다. 얕은 정적이 흘렀다. 유중혁은 천천히 김독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이내 귓가를 빨갛게 물들인 김독자의 당황한 얼굴과 마주했다. 그 순간 유중혁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꼭 맞물리는 것처럼 명쾌한 감각을 느꼈다.

“아, 그…… 이건. 그러니까……”

“김독자.”

몸을 조금 기울여 다가가자 김독자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유중혁은 더욱더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AI 목소리가 내 목소리군.”

“자…… 잠깐만. 그게,”

“내 팬이라고 말했었지.”

허둥대던 김독자가 움직임을 뚝 멈추더니 이내 체념한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래, 시발. 유중혁……. 이제 만족하냐, 그런 소리를 하기에 주먹 쥔 손을 감싸 붙잡았더니 입이 꾹 다물어졌다. 유중혁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까이했다. 갈 곳 잃은 시선에 눈까지 꼭 감겼다.

“나를 좋아하나?”

화들짝 놀라 다시 떠진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김독자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좋아하냐, 싫어하냐 중에서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쪽이지, 그렇다고 이상한 의미로 오해하지는 말고……. 확신에 차서 말할 땐 언제고 자신 없이 줄어든 목소리에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쿵. 쿵. 심장의 박동이 머리를 울렸다. 혈류가 빠르게 돌며 몸이 뜨거워졌다. 가슴 한가운데를 조여오는 달큰하고 저릿한 감각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유중혁은 당장 눈앞의 이 남자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입술을 맞대고 뺨을 부비며 허리를 끌어안고 싶었다. 착각일 리가 없었다. 김독자,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라고 말한 건 너였으니까.

손을 들어 김독자의 안경을 벗겨냈다. 달각거리는 소리를 낸 안경이 힘없이 소파 위로 떨어졌다. 김독자는 호흡을 멈춘 채 유중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중혁은 그와 이마를 맞댔다. 서늘했던 체온이 뜨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허리를 당겨 안자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런 상상은 해본 적 없나?”

“무슨……”

“단 한 번도?”

속삭이듯 낮게 말하며 콧잔등을 흰 뺨에 부드럽게 부볐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눈썹께를 간지럽혔다. 몸을 떤 김독자가 어깻자락을 꽉 쥐어왔다. 그는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았고, 유중혁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반짝 들어 올린 김독자가 다짜고짜 제 옷깃을 끌어당겨 입술을 부딪쳐 올 때까지. 잇새로 새어 나오는 열에 달뜬 숨소리가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유중혁은 기꺼이 그의 마른 몸을 품에 안았다.

 

 

* * *

 

 

“유중혁.”

잘그락거리며 차키를 꺼내 들고 문을 나서려는 찰나 김독자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김독자가 가라앉은 눈으로 유중혁을 바라봤다. 계절이 기울어 짧아진 해가 창틀을 슬금슬금 넘어와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붉은빛으로 흠뻑 적시고 있었다.

“오늘 꼭 나가야 돼?”

“보채지 않아도 금방 돌아온다.”

“아니, 시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적응 안 되네. 가볍게 얼굴을 붉힌 김독자가 이내 어이없다는 어조로 뱉은 말에 유중혁은 피식 웃었다. 언제까지 저렇게 낯설어 할 것인지. 애정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저벅저벅 걸어와 곁에 선 김독자는 유중혁을 올려다보며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 움직임이 좀 이상해. 원래 자리를 이탈한 개체가 하나 발견됐어.”

“……위치는?”

“모르겠어. 계속 이동 중이라서. 너 미팅 장소가 어디랬지?”

“충무로.”

김독자는 고민하는 듯 입가를 매만지며 눈을 흐렸다.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 눈치였다. 하지만 유중혁으로서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미팅이고, 아무리 유중혁이라도 멋대로 약속 장소를 바꾸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물인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다. 고심하는 유중혁의 표정을 확인한 김독자가 한숨을 푹 쉬고선 그의 어깨를 짚었다.

“내가 계속 상황 확인해볼게. 무슨 일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연락할 테니까 잘 확인하고 있어.”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김독자의 눈가에 가볍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간지럽다며 킥킥댄 그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유중혁은 문을 나섰다. 금방 돌아오겠다. 응. 조심해.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에 어쩐지 어깨가 묵직해졌다.

그리고, 김독자의 걱정은 기우가 되는 법이 없었다.

유중혁은 피가 흐르는 어깻죽지를 감싸 쥐며 놈을 노려보았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생긴 그것은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둥글고 뾰족한 드릴 같은 것을 달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완벽하게 사람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을 절대적인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산업용 굴착 로봇에나 달려 있을 법한 드릴을 끼우고 있는 건 외관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말이 되지 않는다. 명백한 위법 개조였다. 그뿐일까, 그것의 눈빛에는 지능이 있는 안드로이드라면 응당 가져야 할 이지(理智)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것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가.

우웅─. 드릴 소리가 좁은 골목을 위협적으로 울렸다. 유중혁은 흘끗 눈을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CCTV는? 순찰 로봇은? 찾아봤자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이렇게 직접 안드로이드를 보낼 정도라면 그런 것쯤 진작에 처리해 두었겠지. 몸을 피할 곳이 요원해 유중혁은 이를 갈았다. 김독자의 말대로 매니저를 먼저 돌려보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누가 같이 있기라도 했으면 일이 더 복잡해졌을 테니.

그때, 귓가에서 김독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중혁! 조금만 더 버텨. 금방……!

빠르게 쇄도해 들어오는 흉기의 날카로운 파열음 탓에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수신기를 통해 들려온 다급한 목소리를 상기하며 유중혁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고속회전하는 드릴의 칼날에 옷자락 일부가 빨려 들어가 잘게 조각났다. 저런 것에 닿았다간 옷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갈려 나갈 것이다. 위협적이기 짝이 없는 광경이건만 유중혁은 기묘하게도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위기감이 부족한 대치였다. 여기서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므로. 왜냐하면,

이 세계에는 이제 죽음이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즉사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지 않는 이상, 어떤 상처든 기계로 대체하여 수복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더 이상 죽지 않는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산다. 그리고 김독자를 만난 유중혁 또한…… 기계로 제 몸을 대체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신념을 꺾었다. 지금의 유중혁은 감히 영원불멸(永遠不滅)이라 말해도 좋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다치면 김독자 그놈이 슬퍼하겠지. 그건 유중혁 자신 또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유중혁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서 적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금세 다시 가까워져 오는 칼날 소리에 냉철한 이성과는 다르게 본능적으로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이건 완전히 피할 수 없다. 어떻게…….

“중혁 씨!”

아찔한 통증과 함께 콰드득, 하며 기계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유중혁은 눈가를 타고 흐르는 뜨뜻한 액체를 느끼며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현성과 정희원의 뒷모습이 반쪽짜리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콰득, 콰지직,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혀 끊임없이 갈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현성의 왼팔이 안드로이드의 드릴을 정면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다부진 그의 팔이 산산조각나며 그 아래 은빛 본체를 드러냈다.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안드로이드의 기계팔이었다.

유중혁은 잠시 현재 상황도 잊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깨달음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그렇군, 이현성은……. 그가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을 봉쇄한 사이 정희원이 재빨리 그것의 뒤로 돌아갔다. 퍼득거리는 목덜미를 분해해 열어젖히고서 무언가를 조작하자 움직임이 곧바로 멎었다. 헉, 헉……. 날카로운 기계음이 잦아들고 이내 숨을 몰아쉰 정희원이 유중혁을 돌아보았다. 무어라 말하려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그 얼굴에 시선을 주기도 잠시였다. 유중혁은 황급히 제 뺨을 붙잡는 차가운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날아오듯 나타난 김독자가 가뜩이나 흰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하고선 입술을 달싹거렸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어린 당황이 손끝의 떨림으로 전해졌다.

“유, 유중혁. 중혁아. 이거…… 아냐. 아니야. 얼른 병원으로 가자.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인공 안구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어찌나 당황했는지 시체처럼 싸늘하게 식은 손가락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상처 주변을 연신 매만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피를 보는 녀석이, 평소답지 않게 말까지 횡설수설하는군……. 이상하게도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왼눈을 긋고 지나간 상처가 제것같지 않았다. 일시적인 쇼크 상태인가. 유중혁은 손을 들어 그의 차가운 손 위에 겹쳐놓았다. 김독자. 그렇게 부르려는 찰나, 정희원과 이현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러왔다. 조심해요! 안 돼!

 

 

 * * *

 

시야가 온통 붉었다.

유중혁은 힘겹게 눈을 떴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붉게 깜빡이는 수술실 문 위의 불빛이었던 탓인지 여전히 눈앞이 붉었다. 점멸하는 시야에 정신이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떴다가, 크게 떴다가, 다시 가늘게 뜬 뒤에야 유중혁은 깨달았다. 아. 그 불빛 탓이 아니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햇살이 잘 드는 하얀 병실이었다. 멍한 머리를 가다듬으며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하얀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김독자가 보였다. 김독자. 유중혁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독자의 침상 옆에 붙어있는 바이탈 사인 패널을 확인하려다가 하마터면 제 팔에 매달려 있는 링거 바늘이 빠질 뻔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유중혁은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패널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김독자의 바이탈 사인은 오류가 난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었다. 115/68mmHg. 65bpm. 한참이나 그 숫자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것을 확인했다. 120/80mmHg. 65bpm.

“유중혁 씨? 벌써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와 간호사가 그를 다시 침대에 앉혔다. 안구 교체 수술은 후유증이 심하지는 않지만, 안압 체크가 필요해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을 멍하니 듣던 유중혁은 그중 누군가가 건네준 거울을 받아 들어 반사적으로 제 얼굴을 마주했다. 왼쪽 눈가를 세로로 길게 긋고 지나간 흉터. 그리고, 인공 안구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쪽같은 왼눈.

“아직 좀 어지러울 수 있어요. 명도와 채도, 색조 조정을 하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건 일단 안압이 안정되면 하도록 하고…….”

그때, 병실 문이 스르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 큰 키에 제복을 갖춰 입은 여성이 의료진에게 목례를 하고선 유중혁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걸음을 따라 파도를 가르듯 갈라진 사람들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자니 흰 얼굴에 빙긋 미소가 걸렸다.

“중혁 군. 잠깐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을까?”

유중혁은 그 미소가 누군가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 * *

 

그는 자신을 이수경이라 소개했다. 그 이름을 듣기도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유중혁은 그에게 김독자의 어머니가 맞느냐 묻지 않았다. 이수경 또한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빈 병실에 간이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한참이나 별다른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길게 이어지는 침묵을 먼저 끊어낸 것은 이수경이었다.

“……눈의 상처는 유감이구나. 인공 안구로 대체하지 않고선 방법이 없는 상처라고 들었어.”

“내 상처에 대해 당신이 유감일 이유는 없지 않나?”

“너는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데 반대한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틀렸니?”

“그랬었지. 한때는.”

한때는, 이라……. 이수경이 애매한 얼굴로 웃더니 입가를 매만졌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이 무색하게도 이수경은 한참이나 고민하듯 망설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인지. 유중혁은 여전히 색조가 조정되지 않아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시야를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긴 한숨을 내쉰 이수경이 두 손을 맞잡아 테이블에 올리며 눈을 꾹 감았다. 깊은 회한이 묻어나는 숨소리에 유중혁은 가만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중혁 군. 네 상처에는 나도 일부 책임이 있어.”

“……당신이?”

“나는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의 개발 작업 총괄직을 맡고 있거든. 너와…… 독자에게 상해를 입힌 안드로이드도, 내가 최종 검수를 해서 내보냈지.”

의외의 이야기에 유중혁은 눈썹을 까딱였다. 안드로이드 살해죄로 징역을 산 뒤 이수경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은 조사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정부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니. 인과 관계가 기묘한데…… 정부에게 협박이라도 당한 것인가.

“당신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행한 일에 책임까지 질 필요는 없지. 애초에 계획은 다른 놈이 했을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작게 웃은 이수경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며 유중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몹시도 복잡하고 어려운 시선이었다.

“중혁 군. 나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나를?”

“내 아들이 널 아주 많이 좋아했거든.”

유중혁은 잠시 말문이 막혀 그를 바라보았다. 김독자가? 반문하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이수경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 애가 어렸을 때 내가 죄를 짓고 잡혀 들어갔으니까…… 결국 그 애는 혼자 자란 것이나 다름이 없거든. 원래도 이야기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일이 그렇게 되고 난 뒤에는 네 삶을 읽는 걸 가장 좋아하게 된 것 같더구나. 나를 만나러 오면 늘 네 얘기를 했어.”

유중혁은 김독자가 왜 제 이야기를 읽어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유중혁은 어려서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 어쩌면 김독자는 그런 점을 자신과 비슷하다 여기고 위로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정부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형기를 마치고 어째서 김독자를 다시 찾지 않았지.”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던 모양이던데. 김독자는 당신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더군. 그렇게 말하자 이수경의 얼굴에 짧게 씁쓸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독자를 다시 볼 낯이 없었단다. 그 애는 안드로이드 개발에 착수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거든. 너도 알겠지만, 그 애는 기계화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입장이 아니야. 그리고 우습게도 그 이유의 팔 할 이상은 너란다.”

유중혁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지?”

“너는 오랫동안 독자의 버팀목이었어. 그런 네가 온몸으로 기계화에 반대하고 있으니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게지.”

유중혁은 할 말을 잃은 채 흰 테이블로 시선을 내렸다. 엉망진창이군. 정작 그 시기의 유중혁은 부모님을 잃은 그 사고 탓에 인공 심장을 달고 죽음의 위기로부터 간신히 벗어났다. 그런 진실을 숨긴 채 방황하고 있었다는 점이 우습다면 우스운 부분일 것이다. 그뿐인가. 유중혁은 제 삶의 방식이 다른 누군가의 가치관을 결정하고 버팀목이 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유중혁 군.”

이수경의 부름에 유중혁은 고개를 들었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나는 네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 왔단다.”

“……감사 인사?”

“그래.”

이수경이 조용히 웃었다.

“부모도 없이 홀로 외로웠을 독자를 이렇게 번듯하게 키워낸 건 내가 아닌 너겠지. 그 애는 네 등을 보며 자랐어.”

“…….”

“염치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우리 독자를 부탁해도 되겠니? 내가 이제 막 날개를 펼치려는 그 애에게 꼬리표로 남을 수는 없으니까.”

당신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그 꼬리표 말인가. 유중혁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유중혁의 침묵이 달가운 듯 이수경은 조용한 시선을 건넸다. 처음보다 훨씬 더 긴 고요함이 오랫동안 빈 공간을 울렸다.

유중혁을 병실 앞까지 배웅한 이수경은 김독자를 보고 가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 애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몸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유중혁은 충동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안드로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걸음을 멈춘 이수경이 유중혁을 돌아보고선 빙긋 웃었다.

“인류의 진짜 미래.”

 

* * *

 

유중혁의 회복은 김독자보다 훨씬 빨랐다. 회복력의 개인차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부상의 경중이 다른 탓이었다. 그날, 잠복해 있던 다른 안드로이드가 기습해오는 것을 몸을 던져 막아선 김독자는 심장께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정희원과 이현성의 빠른 대처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지만 인공 장기를 다는 것 외에는 치료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김독자의 퇴원일까지 제 퇴원일을 꿋꿋이 미룬 유중혁은 그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은 김독자의 얼굴을 살피며 유중혁은 머릿속으로 식단부터 구성했다. 당분간은 좀 바쁘게 먹여야 할 것 같군. 주차장으로 내려오자 정희원과 이현성이 손을 흔들었고, 차를 타고 김독자의 병원으로 돌아오자 그가 작게 웃었다. 병원에서 막 퇴원해서 기껏 돌아온 게 병원이라니. 정희원은 김독자의 등짝을 한 대 쳐주고 싶은 눈치였지만 몸 상태를 생각해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내가 못 살아. 언제까지 속 썩일 거예요? 진짜 죽고 싶어요?”

“아니.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몸이 먼저 멋대로 움직여서……”

“또, 또 헛소리한다. 또.”

그가 입술을 쭉 잡아 늘리자 김독자가 아야, 하며 엄살을 피웠다. 독자 씨 또 죽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요. 알겠어요? 그런 억지 협박에도 김독자는 무엇이 즐거운지 빙긋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정희원이 갑자기 열이 받는다는 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 잠깐만요. 생각할수록 어이없네. 이제 내가 독자 씨 심장 관리도 해줘야 해요? 현성 씨만으로도 벅찼는데 유중혁 씨도 끌고 오더니 기어이 본인까지?”

“음…… 그렇게 됐네요. 신세 좀 지겠습니다.”

“어떻게 갚을 건데요?”

“두 분 아이를 낳게 되면 심장 수술을 제가 맡는 거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인구 제한 정책 때문에 아이 가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거든요. 못살아 진짜.”

그렇게 말하며 정희원은 이현성과 눈을 맞췄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이현성을 바라보며 유중혁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팔은 수리한 건가?”

“아, 네. 희원 씨가 멋진 거로 다시 달아주셨죠.”

새 거라서 더 기운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온전히 사람의 모양새를 한 팔을 들어 올려 보여준다. 유중혁의 표정을 흘긋 본 김독자가 웃으며 말했다.

“유중혁. 너 현성 씨 안드로이드인 거 몰랐지?”

“…….”

“자, 희원 씨. 봤죠. 제가 이겼습니다.”

“중혁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눈썰미가 없네요.”

도대체 무슨 내기를 한 것인지.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보자니 김독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눈썰미로 알아챌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죠. 안드로이드 기술은.”

“그렇긴 하지만요. 특히나 현성 씨는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였으니까.”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들은 더 성능이 우수하거든요. 비결이 뭔지는 아직도 유출이 안 됐지만. 유중혁은 잠시 이수경의 얼굴을 떠올렸으나 말을 아꼈다. 곧 정희원은 이현성 덕분에 정부 소속 안드로이드의 강제 셧오프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몰랐으면 위험할 뻔했죠. 아무튼 다행이에요. 두 사람 다 이렇게 살아 있어서.”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유중혁이 가만히 그 말을 곱씹는 사이 정희원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함께 일어선 이현성이 자연스레 그의 어깨를 감싸며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내일 어차피 출근하면 또 뵙겠지만요.”

“몸조리 잘하세요.”

김독자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유중혁은 정희원의 이마에 다정스레 입을 맞추는 이현성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유중혁의 시선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 김독자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도 가자.

한낮의 햇살이 기분 좋게 들이치는 거실에 앉아 김독자는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집에 왔네. 유중혁은 그의 옆에 앉아 이제는 익숙해진 김독자의 집 거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제법 생활감이 묻어났다. 제 손을 거쳐 생겨난 가구들도 눈에 들어왔다. 가령, 저 액자라든가.

“유중혁.”

김독자의 부름에 유중혁은 눈길을 돌렸다. 씩 웃은 김독자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어왔다.

“어때? 이제 안드로이드가 인류의 진짜 미래라는 데 동의해?”

그의 눈은 언제나와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현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로군. 기계 0퍼센트의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기계 100퍼센트의 안드로이드. 유중혁은 이수경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 애는 네 등을 보면서 자랐어. 그랬던 김독자가 안드로이드를 인류의 미래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아마도 그건, 정희원과 이수경의 손길이 닿아 완성된 안드로이드 이현성 덕분일 것이다.

유중혁은 문득 어제 본 어떤 뉴스를 떠올렸다. 다음 중 컴퓨터가 그린 그림을 고르시오, 라는 유명한 사지선다 질문의 정답률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그럴지도 모르겠군.”

조용히 답하자 김독자가 미소를 지었다.

“테세우스 패러독스에 대해서 나름의 답을 내렸구나.”

“그렇다.”

“나도 그래.”

흰 손이 천천히 뻗어왔다. 유중혁은 제 눈가의 흉터를 매만지는 김독자의 얼굴을, 그 표정을 가만히 두 눈에 담았다. 제 눈에 비치는 김독자의 얼굴은 눈을 교체하기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독자가 바라보는 내 얼굴은 어떨까.

“우리 중혁이는 얼굴에 흉터가 나도 잘생겼네.”

갑자기 웬 헛소리지. 다친 게 혹시 심장이 아니라 머리였냐고 핀잔을 주려는 찰나 흉터 위에 입술이 부드럽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먼저 애정 표현을 하는 경우가 드문 김독자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유중혁은 잠시 얼떨떨한 심정으로 눈꺼풀을 깜빡였다. 햇빛을 받은 귓가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것이 눈에 띄었다. 민망한 듯 시선을 떨군 김독자는 곧 이런저런 말을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아무튼…… 우리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근데 인공 안구도 자세히 보니까 티가 나긴 난다. 너 원래 햇빛 받으면 눈이 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는데, 이제 오른쪽만 그러네…… 엇.”

허리를 끌어안아 당겨 품에 넣자 김독자가 당황한 듯 몸을 움찔거렸다. 유중혁? 부르는 목소리에 답하는 대신 유중혁은 그의 목덜미에 지그시 입술을 내리눌렀다. 흰 목에 붉은 자국을 내고선 고개를 들자 김독자가 뺨을 붉히며 허둥거렸다.

“야, 대낮부터 무슨…….”

갑자기 말을 뚝 멈추고선 눈을 깜빡이기에 유중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지? 김독자는 천천히 손을 들어 제 가슴에 얹었다. 두근. 두근. 평소보다 빠른 심장의 박동을 따라 판판한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렸다.

“나…… 심장이 빨리 뛰네.”

유중혁은 피식 웃었다. 이유를 몰라서 하는 소린가? 눈가에 키스하며 놀리듯 묻자 김독자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억울해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론은 알고 있어도 직접 겪는 건 처음이니까 그렇지.”

“거기에 대해선 내가 최소한 20년은 선배겠군.”

아, 예. 그러시겠죠. 투덜거리는 입매를 매만지자 입술이 벌어졌다. 그 위로 자연스럽게 입술을 겹치며 유중혁은 사유했다. 심장을 갈아치워도 사랑은 지속될까. 그 이후에 네가 나를 봤을 때, 동공이 확장된다면, 호흡이 가빠진다면, 여전히 심장이 빨리 뛴다면.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혹은 누적된 습관일까. 물론,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의 심장 소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으므로.

입술을 떼고 달아오른 숨을 뱉어냈다. 하아, 숨을 몰아쉬는 김독자의 뺨을 매만지며 유중혁은 다른 질문을 했다.

“김독자.”

“응?”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지?”

김독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유중혁 무드 없네. 빤히 쳐다보자 그 말은 본인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잘 아는지 김독자가 잠시 딴청을 피웠다.

“몸을 계속해서 갈아치워 가면 죽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증명되었지.”

“그래. 알아.”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히 산다. 그럼에도 유중혁은 지금껏 필멸하는 인간이기를 택하며 살아왔다. 기계로서 영원할 육체 대신 인간으로서 불멸할 정신을 택했기 때문에. 유중혁은 지금껏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육체가 영원(永遠)히 산다면, 언젠가 정신은 영멸(永滅)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래서 유중혁은 후자가 되고자 했었다.

“유중혁.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

“어떤 생각?”

“이 땅에 해가 지지 않는 날이 오면, 죽어야겠다고.”

부연설명은 따라오지 않았지만 유중혁은 그가 말하는 바를 알아챘다. 언젠가 모든 인류가 정말로 불멸하는 날이 올 것이고, 그럼 그때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할까, 아니면 적당한 때에 삶을 끝내고 싶어 할까.

“영원히 계속되는 이야기도 좋지만, 끝나야만 완성되는 이야기도 있는 거야.”

“…….”

“나는 그렇게 생각해.”

유중혁, 너는? 유중혁은 가만히 김독자와 이마를 맞댔다. 네 말에 동의한다. 김독자가 작게 웃었다.

안 그래도 너랑 이 얘기도 해보고 싶었어. 내기할래? 나는 앞으로 3년 안에 인공 심장에 정지 타이머를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는 데 건다. 한심하군. 나는 반년에 걸겠다. 추가로, 타이머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생긴다에 걸지. 아, 잠깐만. 그럼 난 2년. 변경은 기각한다. 야, 유중혁! 김독자의 목소리를 귓가에 담으며 유중혁은 눈을 감았다. 그 언젠가는 필멸을 택할지라도, 적어도 지금은. 품 안에 감겨오는 이의 체온을, 심장 소리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고. 그런 것들을, 가슴에 영원히 새기고 싶다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원불멸일 테니.

나도 그래.

사랑하는 이가 대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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