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집(1부)

[중혁독자]경성기담집 2. 독갑방

에쏘휘핑 by 더블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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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京城奇談集

獨甲房

도깨비를 거느린 분이시여
높으신 권세를 누릴 것입니다
부귀와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이매망량魑魅魍魎이 그대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도깨비불인가.’

중혁은 어둠 속을 줄지어 떠다니는 작은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그를 이끄는 것처럼 도깨비불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작은 불이 모여 만들어낸 빛무리의 한가운데에 그 남자가 있었다. 희무끄레한 빛에 둘러싸인 청년을, 도깨비인가,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저렇게 비실비실한 모습으로 둔갑하는 도깨비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저에게로 몰려드는 도깨비불을 가만히 바라보는 청년의 뺨은 희었다. 백자의 표면처럼 하얗고 무기질적인 얼굴 위로 도깨비불이 기이한 음영을 만들어냈다.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청년이 문득 이쪽을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 무표정하던 때와는 달리, 눈송이가 녹아들듯 사르르 풀어진 얼굴에서는 청량하고 산뜻한 향이 풍길 것 같았다.

“…너는….”

중혁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위압감과는 달랐다. 산소 대신 다른 것을 폐부로 들이마신 듯한 기분에 머리가 핑 돌았다. 전신에 새하얀 빛무리를 두른 청년이 천천히 몸을 돌려 중혁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의 뒤에 펼쳐진 새카만 밤하늘과, 점점이 빛나는 별들이 합쳐져 한 폭의 회화繪畵를 만들어낸다.

“기다렸어.”

남자가 살풋 웃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중혁의 옆머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오늘 장사는 텄나 봐. 우리 접고 놀자.”

온종일 벽지의 무늬 수나 세며 뒹굴거리던 김독자가 마침내 두 팔을 쭉 뻗으며 일어났다. 그가 손님용 소파 위로 미끄러지듯 엎어졌다. 감상에 젖은 얼굴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던 중혁이 미간을 찡그린 채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예전, 처음 보았을 때 김독자는 꽤나 신비로운 면이 있는 청년이었다. 요즘은 그때 그 모습이 뭐에 홀려서 본 환영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저 모양이다. 중혁의 속을 모르는 김독자는 다 풀어진 오징어처럼 손님용 소파에 늘어져 버둥댔다.

“중혁아아아.”

“시끄럽다. 한심한 짓 하지 말고 똑바로 일어나 앉아라.”

중혁이 긴 다리를 들더니 김독자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힘을 조금도 싣지 않은 발길질임에도 김독자는 아프다며 법석이었다. 구겨지듯 몸을 웅크렸다가 꾸물꾸물 일어나 앉는 모양새에는 어지간히도 의욕이 없어 보였다. 정말 어쩌다 이런 놈하고 동업을 하게 되었는지. 유중혁은 한숨을 탁 내쉬었다. 그가 다시 잔소리를 하려는 찰나 벌컥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저씨! 사부! 유승이가 또 열나.”

말총머리를 올려 묶은 십 대 소녀가 열린 문으로 들이닥쳤다. 등에는 척 봐도 안색이 나쁜 어린 소녀를 업었다. 멜빵바지를 입고 빵모자를 쓴 소년이 말총머리 소녀의 옆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손님용 소파에 게으르게 몸을 묻고 있던 김독자가 벌떡 일어났다. 구겨진 바짓단을 탁탁 털어낸 김독자가 따라 들어오란 손짓과 함께 안쪽 방문을 열었다. 바닥에 깔린 이불에 창백한 안색의 신유승을 뉘어 놓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파란 도깨비불 같은 것이 독자의 손이 스친 자리에 훅훅 떠오른다. 빙글빙글 돌던 도깨비불은 누워있는 소녀, 신유승의 머리 위쪽에서 원을 이루었다. 가위눌린 사람처럼 끙끙 앓던 유승의 표정이 조금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짧게 정리한 연갈색 머리칼이 땀에 젖은 채 창백한 뺨에 들러붙어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이지혜가 유승의 이마에 밴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그가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유승인 괜찮은 거야? 애들은 원래 이렇게 자주 아픈가?”

“나이에 비해 신통력이 너무 강해서 귀신들이 노리는 거야.”

“아저씨….”

“응, 괜찮아. 푹 자고 일어나서 고기 먹자, 유승아.”

저도 아직 미성년이건만 도통 아파 본 적이 없는 이지혜는 주변 사람이 아플 때마다 난리였다. 김독자는 열이 올라 웅얼대는 유승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 올려 아이의 목 아래까지 꼭꼭 닫아 덮어 주었다. 열에 취해 웅얼거리던 어린 소녀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던 김독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안채로 들어가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던 중혁의 목소리가 계단 위쪽에서 들려왔다.

“온 김에 밥 먹고 가라.”

아이들이 쪼르르 식당으로 올라가고 잠시 뒤 중혁이 내려왔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가벼운 도복 차림이었다. 그가 김독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확히 어떤 거지? 신유승의 상태는.”

김독자는 벌써 서재의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삽시간에 난장판이 된 방을 확인한 중혁은 짜증이 나는 것을 꾹 눌렀다. 지금 당장이야 정리를 해봤자 곧 다시 어지를 것이 뻔했다. 정리에 소질이 없는 김독자 탓에 보나 마나 이 개판을 정리하는 건 또다시 자신일 것이다. 독자는 이마를 짚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영력이 너무 강해서 잡신이 잘 들려서 그래. 좀 더 나이를 먹어서 잡신을 이겨낼 정신력이 생기면 괜찮은데…. 그때까진 주기적으로 잡귀를 쫓아내 줄 수밖에.”

“아니면 아예 내림굿을 받는 방법도 있지 않나.”

“내림굿을 받으면 평생 무당으로 살아야 하잖아. 아직 너무 어려, 유승이는.”

“나는 네녀석이 그 아이의 신부모神父母가 되려는 걸로 생각했는데.”

“될 거면 몸주신이지. 잡귀 놈을 뭘 믿고 유승일 맡겨?”

김독자는 이마를 찌푸리며 턱을 괴었다. 그가 손대지 않은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탁하고 펼쳐졌다.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책장을 바라보는 김독자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책의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김독자는 어떤 책이든 한 번 읽으면 외워 버렸기에, 지금 이 독서는 그저 검토만 하는 것에 가까웠다.

“신유승이 무당이 되지 않길 바라나?”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업 삼지 않길 바라.”

“그렇군.”

김독자는 열린 문 틈으로 아직 잠들어 있는 신유승을 바라보았다. 김독자의 시선을 좇은 중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에게 그 정도 선택은 하게 해 주어야겠지.”

 

 

 

 

반가班家의 영애로 태어났다 하여 모두가 남부럽잖게 사는 것은 아니다. 여식이란 그저 세도가에서는 세도가대로 명가에 시집보내 부와 권력을 얻을 수단이요, 기울어가는 가문에서는 가문대로 어디든 팔아넘길 돈벌이 수단이었다. 족보나 따지기 좋아하던 신유승의 아비는 고운 선을 가지고 태어난 딸아이가 열 살이 되자마자 기생집에 팔아넘겼다. 아이는 허드렛일을 하고 노래와 춤을 배우며 자랐다. 미래는 아이의 바람과 상관없이 결정되었다. 만일 김독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러했을 것이다.

소녀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었다. 거울 속의 망량魍魎, 밤중의 어둑시니 같은 이들이 외로운 소녀의 말동무가 되었다. 이름들은 모두 나중에 김독자에게 배운 것이고, 당시의 소녀에게는, 그들은 모두 저에게만 보이는 친구들이었다. 가령 뒤뜰 구석의 이 알도 그랬다. 분명 알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혼자 그 알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 유승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그 알 나한테 팔래?”

그 날도 알을 쓰다듬던 유승은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검정 양복 위에 흰 도포를 두른 호리호리한 남자가 담벼락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은 청년은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무게가 없는 사람처럼 가벼운 동작이었다.

‘사람?’

소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사람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기운이 함께 느껴졌다. 가끔 소녀에게만 보이는, 기이하게 생긴 친구들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동시에 훨씬 더 사람에 가까운 기색이다. 어리둥절하게 자신을 보는 소녀를 향해 그가 웃어 보였다.

“그래. 원하는 걸 줄 테니 내게 팔아. 네가 가지고 있어도 부화하지 않을 거야.”

“팔다뇨, 제 게 아닌걸요.”

“네가 가장 먼저 이 알에 온기를 줬지?”

“어….”

“쓰다듬은 거 말하는 거야.”

“…….”

“처음 알을 만진 자가 주인이야. 이 알에는 네 영혼도 조금 깃들어 있거든.”

청년은 다가와 유승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바라본 까만 눈동자는 묘하게 반짝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의 흐릿한 인상과 달리 세필로 섬세하게 그려넣은 듯한 생김새였다. 유승은 이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게 내가 어려서일까, 고민했다. 청년은 아무 설명도 해 주지 않고 제 할 말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커다란 눈만 깜박거리고 있으려니 그가 훌쩍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승의 머리는 그의 허리께에 겨우 닿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팔 생각이 없으면 나중에 그럴 생각이 들었을 때 말해도 돼.”

“저기….”

“또 봐.”

그는 도무지 설명을 해주지 않았고, 신유승은 뭘 물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문득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알아챈 유승이 고개를 들었을 때, 청년은 그 자리에 없었다.

 

 

 

 

등불 대신 도깨비불이 경성의 밤을 밝혀 놓은 것은 무두귀 소동이 있고 수개월 뒤의 일이었다. 마치 낮은 곳에 뜬 별처럼 넘쳐나는 도깨비불이 거리를 떠도는 광경은 모르는 이의 눈에는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더러는 그때 죽은 원귀의 소행이라 하였고 더러는 장차 닥쳐올 환난의 조짐이라 하여 불길히 여겼다. 어느날, 한 사내가 나타나서는 종로 부근의 도깨비불을 일야一夜에 제령했다. 흰 도포를 두른 그 남자는 자신이 바로 패왕 유중혁이라 말했다.

“웃기는군.”

중혁은 신경질적으로 편지를 찢어버렸다. 벌써 세 번째로 같은 내용이었다. 무두귀들을 베어내며 유명해진 패왕을 찾아오는 사람은 많았다. 기자, 작가, 심지어는 영화감독까지도 그를 찾았다. 처음 중혁이 이름을 떨친 것이야 귀신을 퇴치하는 능력 때문이었지만 다음으로는 수려한 외모가 화제가 되었다.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이며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당연하지만 유중혁은 그런 것들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다. 대부분의 제의나 문의에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건 경우가 달랐다. 중혁은 종로의 도깨비불을 하룻밤에 없앤 사내가 정말 당신이냐는 물음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리둥절했고 두 번째부터는 부아가 치밀었다.

‘감히 날 사칭한단 말이지.’

짜증 가득한 사내의 손아귀에서 연필이 반으로 부러졌다. 어떤 놈인진 몰라도 사례비까지 옴팡 받아내는 모양이다. 유중혁을 사칭하고 돌아다닌 까닭에 귀찮은 뒤처리는 전부 중혁의 몫이고 문제의 남자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찾아내는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깨비불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그였으나 사칭범을 찾아 모가지를 비틀기 전에는 화가 가라앉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만나서 반드시 배에 주먹이라도 한 번 꽂아주리라 다짐했다.

유중혁 사칭범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진짜 유중혁과는 달리 그 남자는 기자인 척 말을 풀고 기다린 것만으로도 덥석 떡밥을 물고 나타났던 것이다. 약속한 끽다점喫茶店의 별실에 들어섰을 때 유중혁은 한 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전혀 모르는 사기꾼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남자는 구면이었다. 자신보다 한발 앞서 무두귀 소동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김남운을 찾아냈던 흰 도포의 청년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자아를 잃고 악령화하려던 김남운의 영을 거의 본 상태에 가깝게 돌려놓은 청년은, 이제 무두귀 소동은 없을 거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시 나타나다니.

호리호리한 사내는 양복 위에 도포를 걸친 기이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중혁은 뻔뻔하게 싱긋 웃으며 손을 내미는 남자를 빤히 쏘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에 보이지 않을 빠른 속도로 검을 뽑았다. 자신을 향해 끼쳐 오는 풍압에도 흰 얼굴의 사내는 유들유들하게 웃기만 했다. 섬뜩한 금속이 코앞에 겨누어져도 김독자의 표정에는 위축된 기색 하나 없었다. 고압적인 시선으로 청년을 내려다보며, 유중혁이 입을 떼었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번쩍였다.

“네놈은 누구지? 왜 내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거냐.”

그 목소리에 김독자가 입꼬리를 조금 더 끌어올렸다. 그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에게 겨누어진 검을 쥐고 밀어냈다. 흰 손에서 흐른 핏줄기가 칼날을 붉게 물들였다. 중혁의 짙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의아함과 의심을 담은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칼을 쥐지 않은 왼쪽 손이 쑥 튀어나와 멱살을 잡았다. 성인 남성의 체구가 너무도 쉽게 쑥 딸려올라갔다. 마른 건 사실이지만 체격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몸이었다. 중혁이 이마를 찡그렸다.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김독자야. 김독자 사무소 소장을 맡고 있지.”

“…이상한 이름이군.”

“그런 말 많이 들어.”

김독자는 그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웃었다. 자연스럽게 말을 놓아버렸음에 중혁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으나 조금도 기가 눌리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 김독자가 한 손을 내밀었다. 멱살을 잡힌 것도, 한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는 당당했다. 무슨 꿍꿍이일까, 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눈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눈으로도 온전히 정체를 꿰뚫어 볼 수는 없는 상대는 오랜만이었다. 김독자는 촌평 따위를 찾아다니는 기자 나부랭이는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유중혁의 숭배자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중혁의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사칭하고 다닌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웃긴 노릇이지만.

“나와 동업하자, 유중혁.”

“네놈은 동업자 삼고 싶은 인간을 사칭하나 보지?”

“그냥 찾아갔으면 안 만나 줬을 거잖아.”

김독자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의 제안이었다. 중혁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멱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김독자는 허공에 두 발이 들린 채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기만 했다. 칼을 밀어냈던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나 아픔을 못 느끼는 것처럼 태연했다.

“나를 잘 안다는 말투로군.”

유중혁이 빈정거렸다. 그는 살짝 턱을 들어 올려 김독자를 보았다. 멱살을 잡혀 들어 올려진 만큼 올려다보이는 자세였음에도 묘하게 내려다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짙은 눈썹을 한쪽만 치켜올리고 김독자를 쏘아보는 눈빛이 형형했다. 그래도 김독자는 조금도 겁먹은 기색 없이 혀를 놀렸다. 물에 빠져도 입으로 헤엄쳐서 나올 위인임이 틀림없다.

“요즘 경성 바닥에 유중혁 모르는 사람도 있나?”

“계속 장난할 거라면 베겠다.”

중혁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가 험악한 얼굴로 김독자를 쏘아보았다. 멱살을 잡을 때 바닥 쪽으로 향하게 두었던 검날이 위협적으로 번쩍인다. 김독자는 느릿하게 혀로 입술을 쓸었다. 허세를 부리느라 칼날을 쥐었던 왼손이 욱신거렸다. 귀신을 벨 수 있는 검은 김독자에게도 나름 위험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아픈 것을 티낼 수는 없었다. 지금의 유중혁은 위험하니까.

“어차피 이 멸망은 너 혼자서 막지 못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다.”

“…네놈, 뭘 알고 있지?”

“너만 정보를 안다 생각하는 게 오만 아닌가?”

중혁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왼쪽 눈썹을 꿈틀하며 김독자를 노려보았다. 오만함을 실은 눈동자가 번득인다. 김독자는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멱살을 잡혀서 이런 생각을 하기는 그렇지만, 참 잘 생긴 얼굴이었다. 중혁이 사진 찍히기를 거부해 그에 관한 기사에는 모두 삽화가 실렸는데 삽화들은 실제 유중혁의 수려함을 절반도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사마다 그의 외모를 찬양하는 글이 넘쳤지만 누구의 표현력도 유중혁의 미모에 실제로 닿지는 못했다. 누구처럼, 무엇처럼 아름답다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외모였다.

“미래라도 보는 모양이지?”

“비슷한 건 할 수 있지.”

“그래?”

유중혁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비웃음 가득한 안광이 번득인다. 그가 멱살을 잡았던 손을 확 놓으며 김독자를 내던졌다. 갑자기 목이 자유로워진 김독자가 휘청였다. 그가 넘어지지 않게 벽을 짚고 한참 기침을 했다. 그리곤 눈물을 닦아내며 유중혁을 쏘아보았다. 김독자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며 지켜보던 중혁이 조소했다.

“그럼 지금 내가 어떻게 나올지도 알겠군.”

김독자는 천천히 한쪽 입꼬리만을 끌어올리며 유중혁을 쏘아보았다. 흰 얼굴에서도 유독 광채를 내는, 밤하늘을 떼어내 박아둔 듯한 그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서슬이 어렸다. 그의 얇은 입술이 달싹인다. 아까보다도 훨씬 가라앉고, 훨씬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해 봐, 이 빌어먹을 새끼야.”

중혁이 웃었다. 수려한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는 그가 내뱉는 차가운 말씨와는 달리 별의 조각이라도 흩뿌린 것처럼 스스로 광채를 내고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뽑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지만, 휘두르는 동작 또한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랐다. 새카만 검신이 만들어낸 궤적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고도 간결했다. 그러나 중혁의 칼이 내려쳐진 자리에 김독자는 없었다. 중혁은 놀란 기색도 없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미래를 볼 수 있단 게 진짜인 모양이군.”

[개자식.]

“동업은 생각해 보기로 하지.”

머릿속에 울리는 욕설을 끝으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반으로 찢긴 종잇조각만이 허공을 하늘하늘 흩날려 떨어졌다.

 

 

 

 

도깨비불이란 것은 사체에서 나온, 인이라고 하는 성분이 타는 것으로 보통은 무덤 근처에서 보이게 마련이다. 수입된 책에 따르면 그러했다. 김독자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죽은 혼이 불빛처럼 떠다니는 것이 도깨비불이다. 조선에서야 기묘한 것에는 모두 도깨비란 이름을 붙였으니 도깨비 자가 붙은 것 중에는 산 것도 있고 죽은 것도 있었다. 아무튼 도깨비불은 묘지 근처에서 자주 보여야 하는 현상이다. 땅값이 비싼 경성에는 옛 임금들도 묘를 쓰지 않았다.

‘…자, 그러면 왜, 여기는 묘지도 아니건만 이렇게 많은 도깨비불이 모였을까.’

김독자는 경성에서 제일간다는 기루, 명월루明月樓의 지붕 꼭대기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박이는 붉은 등, 등불 아래를 움직이는 화려한 비단옷, 그 옷자락을 좇아 희롱하는 흰옷들이 전부 그의 시야 안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하얀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제 곁으로 모여든 도깨비불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저런 걸 참 좋아한단 말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영靈들은, 대부분 자아가 희박했다. 대개는 저 상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떠돌다 저승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러나 생전의 원념이나 집착으로 악귀나 지박령이 되어 지상에 남는 귀신도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도 도깨비불이 보이면 보통 그런 일이 생겼다. …아니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혼령도 쉽게 원귀가 되어 구천을 떠돈다. 김독자는 제 주변을 부유하는 도깨비불들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 번화가에 나타난 혼령 대부분을 제령했는데도 이 도깨비불들은 저승으로 가지 않고 남았다. 고작 어제 생겨난 것부터 몇 달을 묵은 것까지 다양했다.

의식이 없는 도깨비불들은 강한 영력이나 요기에 모여드는 습성이 있었다. 대부분은 김독자의 주변을 날아다녔지만, 기루의 손님 곁을 맴도는 도깨비불도 있었다. 하긴 명월루에 드나드는 이는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괴물이나 도깨비 중에도 인간의 유흥을 즐기는 자가 있으니까.

[거기서 관음하지 말고 내려와 어울리지 그래?]

“…….”

[아니면 관음이 더 즐거운가?]

누군가 김독자의 기척을 읽은 모양이었다.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고, 김독자는 몸을 일으켰다. 상대는 더 짓궂게 웃으며 김독자의 귀에 소리를 흘려보냈다. 젊은 여성의 비명이 골을 울렸다. 김독자가 짜증을 섞어 고개를 흔들자, 차단막 같은 것이 그의 주변에 둘러지며 소리가 제거되었다.

그는 아주 낮은 턱을 넘는 사람처럼 가볍게 지붕에서 뛰어내려, 단번에 기루의 바깥 담장으로 내려섰다. 도깨비불들이 그를 따라 빙그르르 날다가는 다시 기루의 꼭대기로 가 맴돌았다. 푸르스름하던 불꽃은 김독자의 곁을 떠나자 빨갛게 빛났다. 그는 조용히 그 불꽃들을 지켜보았다. 잘못 센 게 아니라면 간밤에만 불꽃은 세 개가 더 늘었다.

곧, 재앙이 있을 것이다.

 

 

 

 

“사부 요즘 즐거워 보인다? 무슨 일 있어?”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훌훌 떠먹던 이지혜가 입을 열었다. 중혁이 이마를 찡그린 채 이지혜를 바라보았다. 무슨 헛소리냐, 그렇게 되묻는 검은 눈동자 앞에서 이지혜는 딴청을 부렸다. 며칠 전 대련을 하다 긁힌 상처 때문에 뺨에는 여전히 반창고가 붙어 있다.

“넌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검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좋겠군.”

사부가 괴물같이 센 거야. 매몰찬 말씨에 지혜가 입을 댓발 내민다. 중혁은 지혜의 표정은 본체만체하고 식사를 계속했다. 즐겁다니, 그저 며칠 전의 일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가게를 나와 한참 주변에 숨어 있었으나 김독자가 나오는 기색은 없었다. 그야 주술을 부리는 자라면 굳이 문을 통해 다닐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이 남긴 종이 쪼가리에선 희미하지만 여우의 요기가 풍겼는데.

‘여우라.’

중혁은 제 오른쪽 눈으로 꿰뚫어 보았던 김독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의 눈으로도 그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주술을 좀 다루는 청년이었으나 결코 그게 끝이 아닐 것이다. 일단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을 때의 무게가 절대 인간의 체중이 아니었다. 중혁의 현자의 눈[賢者之眼]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 자체도 얼마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인간이 아닌가 하면 분명 인간의 기척은 있었다. 본인 말대로 예언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라. 오늘은 자율 훈련이다.”

“어, 대련하는 날 아니었어?”

“……가볼 곳이 있다.”

지난 며칠간 그는 도깨비불들을 쫓고 있었다. 김독자 때문에 경성 시내의 도깨비불은 대부분 제령이 되었음에도 아직 승천하지 못한 혼 몇 개는 계속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흑천마도로 귀신을 베어 강제로 승천시키는 것이야 간단했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건의 원인을 파헤지기가 어려웠다. 묘소가 없는 경성에 도깨비불이 많이 떠다니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고 분명 배후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김독자도 그 배후를 쫓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소매 안으로 손을 넣어, 아침에 잘라 둔 신문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김독자 사무소. 퇴마 전문. 싸구려 사기 광고 같은 작은 광고는 신문의 구석진 곳에 실려있었다.

 

 

 

 

‘나 참.’

김독자는 건성으로 종잇조각을 구겼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잿더미가 된 그것을 휴지통으로 던져버렸다. 요즘은 부쩍 퇴마를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 장사가 안되는 정도를 넘어서 툭하면 사무실로 이상한 편지가 날아오고는 했다. 하여튼 할 일 없는 인간은 많았다. 오늘도 장사가 튼 것 같아 실컷 낮잠을 자고 일어난 참이었다. 이상한 욕설 편지만 아니었어도 기분이 안 나빴을 텐데. 의뢰인가 싶어 읽어 볼 수밖에 없으니 더 짜증 나는 일이다. 김독자는 자리를 툭툭 털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거리로 나섰다. 낮에 너무 자서 잠도 안 오는 김에 밤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다.

“살려주세요.”

정처 없이 휘적휘적 걷던 청년의 옷 안으로 키가 작은 아이 한 명이 폭 감겨들었다. 독자의 허리춤에 겨우 닿을 정도의 키였다. 김독자는 조금 놀란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짓누르는 장식을 쓴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화장 때문에 낯설었지만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분명 도깨비 알의 주인이었지. 무언가를 찾는 목소리가 어두운 골목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아이는 도포 자락을 쥐고 오들오들 떨었다. 사내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등불 하나가 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김독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도포를 벗어 아이에게 둘러주었다. 옷자락이 크게 펄럭이더니 아이에게 맞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가 천천히 작은 소녀를 끌어안았다. 등을 쥔 사내는 김독자와 소녀가 있는 골목을 비춰 보더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처럼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소녀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줄어든 도포도 어린아이에게는 커서 소매가 남았다. 짧은 머리칼의 소녀는 흐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표정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름이 뭐니?”

“…신유승…이에요.”

숨이 넘어갈 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를, 청년은 가볍게 안아 들었다. 김독자가 무심한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잘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달려들면 위험해.”

“구해주실 줄 알았어요. 나한테 사야 할 게 있잖아요.”

“나도 믿지 않는 게 좋아.”

아이는 겁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는 듯 또박또박 말했지만 몸이 떨리는 걸 어쩔 수는 없었다. 말하는 것과는 달리 김독자는 아이를 내려놓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김독자는 자연스럽게 등불을 든 남자들 옆을 지나쳤다. 유승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들은 김독자와 신유승을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아이는 독자의 옷깃을 꽉 쥐었다. 좋아 보이는 옷감이 구겨졌지만 청년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아저씨.”

“응.”

“알을 팔게요.”

“뭘 받고 팔지는 생각했어?”

“자유를 갖고 싶어요.”

김독자가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소녀의 갈색 눈동자는 차분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빙그레 웃었다.

“좋아.”

김독자가 훌쩍, 아이를 안은 채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동작이 날듯이 가벼웠다. 그는 산책하듯 걸어서 어린 소녀와 처음 만났던 기루의 뒤뜰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김독자를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김독자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선객이 있었네.”

걸음을 멈춘 김독자가 입을 꾹 닫으며 웃었다. 알의 앞에 검은 옷을 두른 장신의 사내가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눈에는 김독자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김독자를 발견한 유중혁은, 칼을 움켜쥐고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김독자가 품에 안은 어린아이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가 칼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물음을 던졌다.

“알의 주인인가?”

“그래. 방금 내가 사기로 했어.”

“…….”

중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독자는 웃는 얼굴로 그를 지나쳐 유승을 알의 곁에 내려놓았다. 아이가 그 알을 안아 들었다. 김독자가 내민 손바닥에 알을 올려놓자, 알은 한 번 흔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집채만 한 몸집의, 새카만 옷을 둘둘 감은 청년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알이 대체 뭔데요?”

“도깨비 알이야.”

김독자가 알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도깨비는 알에서 태어나고, 어느 정도 힘이 강해지면 낡은 물건에 들러붙는다. 주로 도깨비가 자주 붙는 건 부지깽이나 빗자루였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물건에 빙의하면서부터 도깨비는 사람으로 둔갑하는 힘이 생겨난다. 태어나기 전의 도깨비 알을 소유하면 도개비를 부리는 자[獨甲房]가 될수 있었지만 알을 손에 넣는 방법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설명 없이 내가 가져버려서 미안해. 하지만 네 영력만으로는 부화시킬 수 없어.”

“괜찮아요.”

“그런데 유중혁 넌 무슨 일이지? 너에겐 도깨비가 필요치 않을텐데.”

“도깨비불이 모인 곳을 추적해 왔을 뿐이다. 네놈이야말로 무슨 꿍꿍이로 독갑방이 되려는 건가?”

“왜? 도깨비불 문제엔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중혁이 매서운 눈빛으로 김독자를 보았다. 그의 입이 일자로 꾹 닫혀 있었다. 김독자가 그를 마주 바라보며 의뭉스레 웃었다. 멸망 이야기를 해서 관심이 생긴 것일까? 침묵하는 유중혁의 얼굴은 난해한 철학책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여기다!”

들려온 목소리에, 유승이 깜짝 놀라며 김독자의 다리에 매달렸다. 김독자는 말없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맨 앞에 선 남자의 몸에서 음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어리바리하게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조무래기들과 달리, 그는 정확히 김독자를 바라보며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영력이 좀 있는 인간인 모양이군.”

“무슨 요술을 부려서 애를 빼내려던 건지 모르지만 그 아이는 이 명월루에 속해 있다. 돌려주는 게 좋을걸.”

중혁이 말없이 칼을 고쳐 쥐었다. 그의 검은 눈이 분노와 혐오로 무겁게 끓고 있었다. 그를 막아선 이는 김독자였다. 그가 몰려든 남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누주樓主를 만나러 왔는데. 안내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누주님이 느 집 개 이름인 줄 알어?”

중혁의 눈썹이 꿈틀했고, 거대한 근육질의 남자가 험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뭘 멋대로 끼워 넣느냐는 듯 반문하는 유중혁에게 김독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달려오는 남자의 검격을 그가 한 손으로 막았다. 이번에는 맨손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나타난 검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빛무리에 휩싸인 검신을 타고, 새하얀 전격 같은 것이 지직거리며 흘러나온다. 날붙이를 통해 전해진 전격이 순식간에 남자를 휘어감았다.

“크…, 크아악!”

김독자가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에게는 꽤 무거워 보이는 검이 장난감 칼처럼 휘둘러졌다. 그러나 그 움직임만으로 우락부락한 사내가 단번에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남자의 뒤를 따라온 떨거지같은 인간들이 어쩔 줄 모르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싱거운 인간들이군. 김독자는 칼을 쥔 팔을 늘어뜨리고 그들을 보았다. 비스듬히 꺾은 고개를 따라 머리카락이 쓸려내려왔다. 마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위압감이 그에게서 풍겨나왔다.

“더 안 덤빌 거면 비키시죠?”

김독자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주춤거리며 나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남자들과 대치한 지 반 식경쯤 되었을까, 누군가 서둘러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깡마른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누주께서 귀하들을 뵙기를 청하십니다.”

“너도 부른 것 같은데. 갈래?”

김독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유중혁은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관심이 가신 모양이지요.”

천호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기분 나쁜 얼굴로 웃었다. 김독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더 무표정해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유중혁은 아까부터 검 손잡이를 한손에 쥐고 있는것이 언제라도 수틀리면 발도拔刀할 기세였다.

“본디 오늘 귀한 교육이 예정되어 있던 아이입니다만, 저희 명월루에서는 당연히 독특하신 취향을 가진 손님들도….”

천호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중혁의 칼이 뽑혀 나왔다. 무시무시한 검광이 허공을 갈라낸다. 그 서슬에 천호진이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호위들이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 칼을 막아낸 것은 김독자가 뽑아 들고 있던 검이었다.

“이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건가?”

“너야말로 일단 베려고 들지 말고 좀 기다려 봐.”

“하하, 이, 이것 참…, 말이 통하는 분이 계셔서 다행이군요.”

[아뇨.]

진땀을 닦아내기 무섭게 천호진은 다시 세 치 혀를 놀리려 들었다. 싸늘한 목소리로 그를 저지한 것은 김독자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기이한 광채가 맴돌았다. 입을 열지 않았건만,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걸듯 목소리가 전해졌다. 천호진이 겁에 질린 얼굴로 김독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사지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맹수의 앞발에 짓눌린 피식자처럼 사지를 버르적거렸다.

[저는 당신과 대화하러 온 게 아닙니다.]

“예…, 예? 크, 허억….”

[의뢰받은 일을 하러 왔죠.]

목소리에는 서늘함이 감돌았다. 갑작스럽게 김독자에게서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혁의 표정이 꿈틀 움직였다. 그의 발치에서부터 검은 빛깔의 암무暗霧가 스며 나왔다. 스산한 온도의 안개가 다가오자 중혁이 신유승의 옆에 제 칼을 꽂아 세웠다. 칼을 중심으로 우회한 안개는 어린 소녀의 주변을 제외하고 방 안을 꽉 채워버렸다. 천호진의 호위 역할이었을 남자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천호진 또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더듬더듬 뒤로 물러났다.

“역시 매구였군.”

“백호白狐라고 불러 줄래?”

중혁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독자가 웃었다. 그의 머리 위로는 희고 뾰족한 귀가 솟고, 복슬한 꼬리가 다리 아래까지 자라 살랑거렸다. 그 털이 보드라워 보여서, 유승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귀와 꼬리를 만져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 여우신 님, 고정하십시오.”

천호진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김독자는 심드렁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열린 창문으로 도깨비불들이 날아들었다. 김독자가 발산하는 요기에 꼬여 든 것이다. 그는 제 머리 위를 맴도는 파란 불꽃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파란 빛을 띠던 그것들이 빨갛게 변해 깜박거렸다. 그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도깨비불들은 원령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부탁하더군요.”

그가 허공에 손을 뻗자 도깨비불 하나가 그 흰 손 주변을 맴돌았다. 푸른 광원에서 나온 빛을 받은 김독자의 얼굴은 더 예민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그의 눈동자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짐승의 것처럼 날카롭게 동공이 일어난 눈동자에서 형형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중혁이 미간을 좁혔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광경이었다.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김독자의 눈동자가 비스듬히 천호진을 응시했다.

“복수해달라고.”

“제, 제발…용서…….”

“저에게 용서 빌지 마십시오.”

남자가 납작 엎드렸다. 김독자의 냉막한 시선이 그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니까.”

그의 시선은 남자를 향해 있지 않았다. 허공의 도깨비불들이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유중혁의 칼 뒤로 숨어 있던 여자아이가 어느새 김독자의 김독자의 옆에 다가와 서 있었다. 김독자의 머리위에 있던 도깨비불들이 유승의 머리 위로 옮아갔다. 아이는 놀란 눈만 깜박거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네가 바라는 걸 말하면 돼.”

“하지만…….”

“그게 영들의 바람이야.”

김독자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의 감정 상태를 추측할 수 있었다. 독자의 도포자락을 쥐었다 놓았다 하던 신유승이 작게 말했다.

“나같은 아이가 더는 없으면 좋겠어요.”

“그래.”

아이는 결연했다. 순간, 그의 두 발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이어 도깨비불의 기세가 더 강해졌다. 아이의 머리 위를 빠르게 돌던 도깨비불은 점점 커지더니 주변의 기물에 옮겨 붙었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 했지만 마치 뱀처럼 번진 그것이 다리를 휘감았다. 김독자가 유승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귀를 막았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가야겠군.”

중혁이 창문을 깨뜨렸다. 김독자가 유승을 안고, 먼저 창틀을 밟고 뛰어내렸다. 불을 피해 달아나는 발소리로 이미 기루는 아수라장이었다. 그의 옆에 유중혁이 내려섰다. 그들은 인파 속에 섞여 안전한 위치까지 이동했다. 불타는 명월루를 보며 아이는 목놓아 울었다. 끝내 걸식을 하던 아비가 죽어 나자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서러울 것도 없고 억울할 일도 아니건만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김독자는 유승을 다독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언니들은….”

“저 불은 원한이 없는 것은 삼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설명도 해주고 다정한데?”

“쓸데없는 말 좀 그만 지껄여라, 김독자.”

김독자가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그의 귀와 꼬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그라들 줄 모르는 불꽃이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넘실거렸다. 생각 외로 대피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불꽃이 모든 사람들을 덮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현장을 빠져나왔을 때, 허공을 춤추던 푸른색의 도깨비불들이 김독자가 안고 있는 알로 빨려들어갔다. 알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더니 곧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김독자가 돌아섰다. 더는 관심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삐뚜름히 서서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던 유중혁도 몸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유중혁이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놀랍다는 듯, 김독자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같이 가는 거야?”

“네놈과 같이 행동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뿐이다.”

“그럼 동업하는 거지?”

“부하로 받아주는 건 생각해 보지.”

“난 부하는 할 생각 없는데. 동료라면 모를까.”

김독자가 하하 웃었다. 실없는 목소리였다. 유중혁이 김독자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그가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정확하게 배로 날아와 꽂혔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방어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김독자가 빽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아! 무슨 짓이야!”

“네놈을 보면 한 대 때리려고 했던 게 지금 생각났다.”

“알 들고 있으면 안 때릴 줄 알았는데… 무자비한 자식….”

“그 정도로 깨지는 알이 아닌 건 알고 있다.”

중혁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김독자를 바라보다가, 그를 지나쳐 척척 걸어갔다. 투덜거리던 김독자가 후다닥 알을 주워 잰걸음으로 뒤를 쫓았다. 두 청년의 그림자를 작은 소녀의 그림자가 따라 걸었다.

명월루의 화재는 꼬박 하룻밤 동안 지속되었다.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는 불꽃 속에서 온갖 금은보화와 이름난 호사가의 목숨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명월루의 주인이었던 사내 천호진도, 불길 속에서 타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것만 불타 버린 것은 아니었다. 두께가 여느 사전만 하다던 명월루의 그 많은 기생 명부도 하루아침에 재가 되었다. 누에 남은 기생의 수는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머지는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는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멀쩡하게 살 거란 기대는 없었다만 그래도 배필을 데려오기 전에 아이부터 맡길 줄은 몰랐구나. 오랜만에 연락을 한다 했더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말은 매섭게 하면서도, 여성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수경의 얼굴을 본 유승이 크게 딸꾹질을 했다. 김독자와 닮은 듯 닮지 않은 백발의 여성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아이가 수경의 손을 꼭 쥐었다. 유승의 머리칼을 넘겨 주며 그가 미소지었다.

“그래. 얘야, 나와 함께 가자꾸나.”

“하지만….”

“마침 돌보는 아이 중에 네 또래도 있으니 외롭지 않을 거란다. 독자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저 애는 육아를 할 능력은 안 되거든.”

수경의 신랄한 말에 김독자는 쓰게 웃기만 했다. 이수경이 유승의 손을 잡았고, 김독자는 돌아서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 보마.”

“유승이를 잘 부탁합니다.”

“네 걱정이나 하렴. 그리고 잘생긴 것도 좋다만 너도 나이가 들었으면 철 좀 들어서 얼굴 말고 다른 면도 봤으면 하는구나.”

이수경은 명백하게 유중혁을 보고 있었다. 김독자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댔다. 그러나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수경은 유승을 안아 들더니 그대로 허공에 만들어낸 주술 통로 속으로 사라졌다. 빈 공간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김독자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 어머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군.”

“너까지 거들지 마.”

김독자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유중혁은 팔짱을 낀 채 딴청을 피웠다. 김독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경이 마련해 온 반찬들을 빤히 바라보던 중혁이 병에 담긴 반찬을 하나 열더니 천천히 음미했다.

“어머님 솜씨가 괜찮으신 편이군.”

“…뭐 하냐?”

“나는 만두를 좋아한다고 전해드려라.”

김독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중혁은 이미 병조림 된 반찬들을 부엌 찬장에 올려놓고 있었다. 야, 유중혁. 너 아주 여기 살려고?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애초에 자연스럽게 부엌을 드나들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사건 뒤처리와 동업에 관련된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같이 있는 거라고 마음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동업하자고 한 건 네놈이다.”

“동거하자고는 안 했어.”

“네놈 어머님이 삼각산에 계시다 했던가? 나에게 제자가 하나 있는데 같이 보내도 좋겠군.”

“아니, 누구 맘대로….”

“안 되나?”

중혁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순간 김독자는 하려던 말을 잊고 입을 빠끔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 얼굴은 규정 위반 아닌가? 김독자가 말문이 막힌 사이 유중혁은 이미 창가로 눈을 돌렸다.

“저건 언제쯤 태어나지?”

“글쎄. 태어날 때가 되기는 했는데.”

도깨비의 알은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여 있었다. 중혁도 도깨비 알을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꽤 신기한 기색이었다. 다음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알에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바앗!]

작은 뿔이 달린 솜덩이 같은 것이 알에서 튀어나온다. 김독자의 주먹 쥔 손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것이 김독자를 보더니 방방 뛰었다. 그는 제 곁을 맴도는 그 솜 덩어리를 벅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름은 생각해 뒀나?”

김독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혁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방방 뛰며 돌아다니던 아기 도깨비가 허공에 뚝 멈췄다. 그리고는 김독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과 지그시 눈을 맞추며,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비유.”

[바아앗!]

“잘 부탁해, 비유야.”

[바앗!]

이름이 마음에 든 것인지 작은 도깨비는 허공을 붕붕 날아 움직이다가, 김독자가 뻗은 손아귀 안으로 쏙 들어왔다. 보드라운 솜털을 만지작거리던 김독자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유승이가 선택할 때까지는 내가 잡귀를 쫓아 줄 생각이야.”

“그런가.”

“요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요괴 조련에 관심이 많은가봐.”

“신유승은 좋은 조련사가 될 거다.”

중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치? 김독자가 그를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띄우고 탁자에서 데운 우유를 집어 홀짝였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누워 있는 유승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비유가 유승의 머리 위를 바쁘게 날아다녔다.

[바앗!]

“그래. 유승이는 괜찮을 거야. 강한 애거든.”

[바아앗! 바앗!]

김독자는 몸을 일으켜 다시 유승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유승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도는 비유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보드라운 솜털이 그의 손바닥을 미끄러졌다. 비유가 김독자의 머리 위에 폭 올라앉았다. 어느새 중혁이 그의 뒤에 다가와 서 있었다. 그가 여상히 말했다.

“그러면 이제 정리를 해야겠군.”

“어?”

“네놈이 어지른 서재 말이다.”

“아….”

“아…. 가 아니다. 일어나서 거들어라. 애초에 네녀석이 어지르지 않았나.”

중혁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허리에 얹고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김독자가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중혁은 김독자의 손을 잡아채더니 서재 쪽으로 끌고 나갔다. 그가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비척비척 중혁의 뒤를 따라 별실을 나섰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서재를 본 김독자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부턴 좀 덜 어지르면서 봐야겠어.”

“제발 그랬으면 하는군.”

책을 잔뜩 그러모아 탁자 위로 올려놓으며 중혁이 대꾸했다. 김독자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종류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조용한 방 안을 가득 채울 때까지 정리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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