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집(1부)

[중혁독자]경성기담집 1. 무두귀

에쏘휘핑 by 더블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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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城奇談集

無頭鬼

나에게는 머리가 없소.
간밤에 누군가 나의 머리를 베어 취해 갔다오.
그가 나의 머리를 베어다 가루를 내어 묻기 전에
머리를 찾아주시오.
내 머리를 찾아주시오
찾아주지 아니하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오.

그해 경성은 퍽 소란하였다.

머리통이 없는 귀신이 그래 밤마다 즐비하기란 개국 이래 처음이라 했다. 잘린 머리를 찾아 떠도는 무두귀無頭鬼에게 저주를 받으면 수일 내로 또 머리 없는 시체가 되어 나타난다고 하였다. 밤만 되면 사람들은 문을 꽁꽁 닫아걸어 저자에는 먼지만 날렸다. 밤 순찰을 하는 경찰들은 모두 겁에 떨었다. 기실 목 없는 시체가 되길 자주 한 것도 이들이었다. 가졌다는 이들은 대문을 닫고 용하다는 부적을 찾아다 바르기 바빴다. 더러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또 더러는 퇴마를 한다는 치들을 고용해 일신의 안위를 꾀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창, 밤에는 쥐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던 그 시기에, 그 사내가 경성에 나타났다. 검은 도포로 전신을 휘감은 장신의 남자는 또 꼭 그만치 검은 날의 장검을 사용하였는데 그 움직임이 날렵한 맹수와 같았다. 남자의 검은 형체 있는 것은 물론이요 없는 것도 벨 수 있는 귀검鬼劍이었다. 검에 베인 무두귀들이 연기처럼 스러지는 것이 장관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구경하는 자들도 있었다. 유씨 성을 사용하였으니 황손도 아닐 것이요 스스로 무엇이라 칭하지도 않았건만 사람들은 이 검은 도포의 사내를 경외하야 패왕覇王이라 칭했다. 지난 ■■년의 일이었다.

 

 

 

 

[바아앗!]

“그래, 그래, 우리 비유 잘한다.”

“김독자.”

[바앗! 바아앗!]

“…김독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도 아랑곳않고 김독자는 박수를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퐁퐁 솟아오르며 저만한 공을 가지고 노는 흰 공 같은 것에게 김독자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듯 보였다. 입이 헤 벌어져 벙싯벙싯 웃는 얼굴이 퍽 실없다. 그를 부르는 장신의 청년에게선 어둑한 짜증이 풍기었다.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으나 김독자는 여전히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김독자.”

[바아아…….]

꾹꾹 눌러서 뱉은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쾅 소리와 함께 김독자의 바로 옆에 검은 칼날이 심어졌다. 칼날의 주위로 빠직거리며 충격파가 튀었다. 반사적으로 날을 피한 김독자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비틀거렸다. 통통거리던 흰 공처럼 생긴 생명체가 울상이 되어 허공을 이리저리 부유했다. 얼른 손을 뻗어 그것을 품에 안고 달래던 김독자가 중혁을 향해 빽 화를 내었다.

“뭐 하는 거야! 우리 애가 놀라잖아!”

“내가 네놈을 몇 번 불렀는지는 아나?”

“지금 그게 중요해? 우리 비유가…….”

“밖에 손님 와 있다.”

으르릉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혁이 내뱉었다. 그제야 얼빠진 짓을 하던 김독자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비유라 불린 작은 도깨비의 머리 부분을 살살 쓰다듬어 주고 놓아준 김독자는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쭉 빼어 입은 양복 위로 흰 도포를 훅 뒤집어쓴다. 중혁이 눈가를 찡그렸다. 언제 보아도 제멋대로인 차림새였다.

“아이고 이거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김독자 사무소 소장 김독자입니다.”

우스꽝스러운 함자를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읊으며 청년이 응접실로 나섰다. 뱉은 말과는 달리 미안함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 무례한 사내와 달리 예의 바른 손님은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곳이 인사하고 다시 앉았을 뿐이었다. 김독자는 찬찬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 손님은 단정한 차림새를 한 양가의 규수였다. 내려 땋은 머리칼은 반도에 드문 엷은 갈색이다. 살짝 내려간 눈매가 기본적으로 웃는 상이었으나 지금은 긴장한 탓인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김독자는 특유의 맥아리 없는 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 단숨에 의뢰인의 앞까지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어떻게 찾아오셨나요?”

“머리 없는 귀신이 나옵니다.”

여인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였으나 목소리의 떨림마저 감추지는 못하였다. 머리가 없는 귀신 이야기에 독자의 가느다란 눈썹이 묘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독자의 뒤에 버티고 선 유중혁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유상아라 소개한 여성은 침착한, 그러나 긴장을 온전히 감추지는 못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년의 재난을 해결하신 분께서 이 사무소에 계신다 하여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년에 있었던 무두귀는.”

“그렇죠, 그 무두귀를 잡은 이가 바로 여기의 패왕 유중혁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잘 찾아오셨네요.”

“…….”

중혁의 말허리를 냉큼 자르고, 김독자가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중혁의 눈매가 찌푸려진다. 유상아의 얼굴에 의아함이 피어올랐다가 곧 가라앉았다. 채근하듯 경위를 묻는 독자의 말에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동안은 날렵하게 생긴 만년필과 작은 수첩을 꺼내어 받아적는 김독자의 손길만이 분주하였다. 자택의 창고에서 머리 없는 귀신을 보았다는 괴담 때문에 골치라는 이야기를 의뢰인은 한숨을 섞어 가며 털어놓았다. 휘갈긴 글씨를 노트에 적어 내려가던 김독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우선은 그 창고를 직접 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예? 지금 가나요?”

“당장 방문하는 게 곤란하시다면 추후 약속을 잡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유상아의 눈동자가 허공을 움직였다. 김독자는 묵묵히 그의 대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유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력거를 부르죠.”

“인력거는 괜찮고요. 걷는 거 좋아하시나요?”

“네? 네…, 나름대로….”

“그럼 걷죠.”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문을 열고 선다. 유상아는 어리둥절해져서 중혁과 독자를 번갈아 보았다. 삼 층에 위치한 사무소 계단을 내려가며 유상아와 김독자는 내내 입씨름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세 사람은 인력거를 부르지 않고 유상아의 집까지 걷기로 하였다. 김독자는 거침없이 걸으며 설명을 줄줄 늘어놓았다. 틀어둔 전축처럼 말이 끊이지 않았다.

“무두귀는 보통 머리 잘린 원한으로 귀신이 되는데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가는 전쟁통 뒤에 목격담이 많습니다. 하지만 근래 경성이야 큰 사건사고는 없는 편이라…, 전란이 아니걸랑 저주입니다만. 혹시 원한을 산 일이 있나요?”

“글쎄요….”

“꼭 유 선생님의 원한일 필요는 없습니다. 식솔이나, 사용인이 원한의 대상일 수도 있지요.”

사내는 말씨에 거침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훅훅 치고 들어오는 것에 유상아가 공격당한 사람처럼 표정을 찡그렸다. 반면 김독자는 끝없이 조잘대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마치 말을 하려고 사는 사람 같았다. 청년은 망설임 없이 대로를 척척 걸었다. 뒷짐이라도 지면 좀 점잖아 보이련만 팔을 휘휘 저어대는 걸음걸이는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양복에 도포를 두른 괴이쩍은 차림새까지 하여 더욱 수상했다. 유상아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김독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뒤로, 검은 도포를 펄럭이는 유중혁이 따라 걷고 있었다. 단단히 진 뒷짐도 그러하거니와 육 척은 넘을 장신 덕에 김독자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검은 도포는 한껏 멋드러져 보였다.

‘참 안 어울리는 한 쌍이네.’

유상아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마치 대가의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한 유중혁과, 복장부터 행색까지 어지간히도 대충대충인 김독자는 영 아귀가 맞지 않는 한 쌍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에 잠겨 돌아본 순간 김독자와 눈이 마주쳤다. 내심 화들짝 놀랐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김독자가 얇은 입술을 살짝 끌어 올려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잘 생겼지요? 우리 중혁이가.”

“예……예?”

“말씀하지 않으셔도 압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김독자.”

김독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기만 했다. 내심 중혁의 외모에 감탄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채고 흐뭇해하는 것인지, 유상아에게는 김독자가 몹시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긴 김독자의 이상한 점이 이뿐만은 아니다. 그는 언행에 조금의 거리낌도 내비치지 않는 것이 마치 세상을 혼자 사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유상아는 사무실에 달려 있던 문패를 떠올렸다. 특이하게도 홀로 독獨 자를 쓴 이름이었다. 본명이라면, 부모가 자식에게 지어 준 이름 치고는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혹, 집안에 아프신 분은 없으시고요.”

“그게, 큰 오라버니가 며칠 전에 앓아눕기는 했는데…. 의원 말로는 고뿔이라 했습니다.”

“고뿔이요.”

유상아의 말을 그대로 따라 읊으며, 갸름한 턱을 매만졌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유상아는 김독자의 하는 양을 다시 살폈다. 행색이나 행동거지가 자유분방하여 그렇지 거기에서 어떤 나쁜 의도가 보이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 인상은 대체로 김독자의 눈이 만드는 것이었는데 묘한 깊이감이 있는 눈을 바라보면 어째서인지 신뢰감이 드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사기라도 치려 든다면 겁나는 일이었다.

“그 외에 최근에 가까운 가족이나 사용인이 죽거나 다친 일은요. 아, 혹시 머리 없는 귀신의 행색을 기억하시는 분은 계십니까? 요즘 경성에서는 못 볼 차림새라거나.”

“보통 목이 없는 것에 다들 놀라서 다른 걸 자세히 본 사람은 드물지만…. 제 하녀가 가장 처음에 목격했는데 원하시면 만나게 해 드릴게요.”

“창고 먼저 확인한 뒤 부탁드리죠. 유 선생께서는 그걸 직접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네.”

“귀신이 뭔가 전하려 했다거나, 그런 목격담은 없던가요?”

“모르겠어요, 다들 너무 겁을 먹어서….”

“이것 참…….”

유상아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김독자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휙 돌아본다. 유상아가 의아한 얼굴로 김독자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유중혁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혁의 얼굴을 힐끗 본 김독자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까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걸음걸이였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뇨, 별일 아닙니다.”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였다. 유상아는 찜찜하다는 얼굴로 유중혁과 김독자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후 김독자는 뭔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말수가 줄어들었다. 김독자가 캐묻기를 멈추니 유상아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유중혁은 본디 입이 무거운 사내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쯤 걸었을까, 마침내 척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왔어요.”

“그럼 봅시다.”

김독자가 두 손을 마주쳐, 짝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쳤다. 유상아의 부름이 있고 얼마 후, 대궐 같은 저택의 문이 열렸다.

 

 

 

 

‘난리도 아니군.’

온갖 부적이 도배된 창고로 들어선 김독자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용하단 부적은 다 갖다 바른 것 같은데 귀신에게 통할 법한 것은 몇 없었다. 저도 이름을 아는 곳에서 나온 부적도 더러 보였다. 일부는 사기꾼이고 일부는 제대로 된 곳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잔뜩 해놨군.”

“정 없기는. 저이들에겐 절박한 일이었을 거야.”

“…이 부적을 쓴 놈도 어지간히 돌팔이로군.”

유중혁이 부적 하나를 훅 뜯어내 거침없이 찢어버리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뜯은 것은 재물부였다. 정말 부적이라면 아무거나 다 갖다 붙인 모양이었다. 꼭 보약이라면 무턱대고 먹는 것처럼. 김독자는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유상아를 밖에 두고 들어와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귀기에 약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을 귀신 중에서도 독기가 강한 무두귀가 나온다는 곳에 데리고 들어오긴 애매한 노릇이었다.

“어때?”

바닥에 쪼그린 김독자가 물었다. 창고바닥에 구멍이 하나 뚫리더니 두더지를 닮은 요괴가 머리를 쑤욱 내밀었다. 요괴가 김독자가 내민 과자를 냉큼 받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여긴 시체 묻힌 건 없는데.]

“그래?”

그가 턱 언저리를 긁적였다. 과자를 야금야금 씹은 요괴가 다시 땅속으로 사라졌다. 김독자가 먼지를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린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고 허리를 쭉 편다.

“일단 누가 저주를 건 건 아니군.”

삐뚜름한 자세로 서서 쪼그린 김독자를 보고 있던 유중혁이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김독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두귀는 저주에 쓰이는데 머리 잘린 시체를 묻어 원인불명의 병으로 일가를 몰살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굳이 유상아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아까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이야기다. 해주解呪는 주술가마다 다른 주술식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게 필요 없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가능성 하나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김독자는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귀신의 목적 말야.”

그가 거침없이 상자들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창고에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풀풀 날리는 먼지에 김독자가 인상을 쓰며 소매로 입과 코를 막았다. 맹맹해진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창고에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는 걸까?”

“글쎄.”

중혁이 독자가 하는 양을 따라 물건들을 뒤적거렸다. 먼지가 이는 상자 하나를 털어내며 그가 코를 찡그렸다. 한쪽 구석에서 상자를 뒤적거리던 김독자가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다. 훌쩍거리며 물러선 김독자가 소매를 팡팡 털어내고 눈물을 닦아냈다.

“…그래서 말인데 넌 혹시 아는 거 없냐?”

김독자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창고 구석에 유독 어두운 곳이 있었다. 시커먼 구름처럼 어두운 기운이 뭉친 방향을 향해 그가 턱을 들었다.

“김남운.”

[…하여간, 눈치는 ■나 빠르다니까.]

어둠 속에서 형형한 붉은 눈을 빛내는 남자가 걸어 나왔다. 소년의 모습을 했지만 머리는 하얗게 세었고 몸은 반쯤 투명하다. 영락없는 귀신의 형상이다. 그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김독자는 너일 줄 알았다는 듯 건조한 얼굴로 김남운을 보았다. 망상악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이 귀신은 경성 바닥의 귀신 중에서도 제일 머리가 돈 놈이었다. 마찬가지로 팔짱을 끼고 남운이 나타난 방향을 쏘아보고 있던 유중혁이 입을 열었다.

“네놈 짓이냐?”

[내가 일을 벌였으면 이렇게 허접하게는 안 하지. 왜, 궁금해? 보여줄까? 내가 힘의 절반만 내도 이까짓 창고는….]

“또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시발, 네놈들 진짜 마음에 안 들어.]

“네 짓 아니면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 저자에서부터 따라온 게 너지?”

[……그냥 엿듣다가 재밌어 보여서 따라온 거야.]

흰 머리의 귀신은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비죽이며 인상을 구겼다. 붉은 눈을 광기로 번득이면서도, 입으로만 구시렁댈 뿐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가 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귀신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어린 소년 같았다. 열다섯에 요절해 여즉 구천을 떠도는 이 악귀는 정신연령이 죽었을 때로 고정되어 성장하질 않았기에 미친놈처럼 굴지만 않으면 제 나이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년의 무두귀 소동은 바로 이 귀신의 소행인 까닭이다. 그해 경찰청장을 지내던 놈이, 남운이 들러붙어 있던 창고를 밀어 버리고 새집을 지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창고에 살던 들짐승들이 죄 갈 곳을 잃은 것이었다. 짐승들은 쫓겨나는 과정에서 더러는 다치거나 죽기도 했다. 기행을 일삼던 이 귀신은 제 터전에 깃든 동물 만큼은 제법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정든 짐승들이 다친 걸 보고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귀신을 불러내 부리며 소동을 피운 것이다. 그예 목이 달아난 몇은 특히나 동물 쫓아내기에 앞장섰던 무뢰한들이었다.

“결국은 다 뒤져야 하는 건가.”

김독자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창고를 쓱 둘러보았다. 저주가 아닌 거야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지도 않았다. 창고에는 여기저기 거미줄이 늘어지고 케케묵은 먼지가 쌓인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더 가관이었다. 그래 귀신이니 도깨비니 하는 것이 들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다. 독자의 눈에 띈 것만 해도, 귀신이 들린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잠들어 있거나 귀가가 약한 것들로 이번 사건을 일으킬 만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오며 들은 바에 따르면 애초 광이었던 것을 증축해서 창고로 쓰고 있는데, 고릿적 짐도 치우지 않아서 여기에 뭐가 있는지는 식구들도 잘 모른다 하였다. 그것참,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설명이었다. 귀신도 뭐 짐작 가는 게 있어야 찾든가 하지. 억지로 여기 잠든 귀신들을 다 깨워 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들쑤셨다가는 이 저택 전체가 귀신의 집이 되어 버릴지도 몰랐다.

“두 분 잠시 차라도 드셔요.”

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김독자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로 피가 몰렸는지 허우적대는 것을 중혁이 한팔로 툭 잡아 바로 세운다. 고마워, 헤죽 웃는 얼굴을 못마땅한 눈으로 빤히 쏘아보았다.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김독자를 상아가 걱정 어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중혁은 인상을 구긴 채 독자를 툭 밀었다. 어어, 몇 걸음 비틀거리던 독자는 겨우 중심을 찾아 걸었다.

“괜찮으신가요? 혹시 귀신을 보셨거나…….”

유상아가 걱정 어린 눈길을 던졌다. 아무리 보아도 퇴마사라기엔 영, 김독자는 기도 약하고 몸도 약해 보였다. 자신이 김독자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얼핏 들 정도였다. 직업이 퇴마사이니 설마 싶긴 하지만 귀신을 보고 겁을 먹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지간한 요괴나 귀신이 아니고선 낮엔 잘 안 돌아다니죠. 목격담도 전부 저녁 아닌가요? 그리고 이래 봬도 퇴마가 업인데 귀신을 무서워하진 않습니다.”

“그건 확실히 그렇지만….”

“그냥 넘어질 뻔한 것뿐이다.”

김독자는 애써 건강함을 보여주려는 사람처럼 팔을 붕붕 휘저었다. 그러나 그 행색이 오히려 더 사람을 부실해 보이게 만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건넨 유상아의 말을, 중혁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뚝 잘라냈다. 상아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김독자와 마찬가지로 청년의 몸에는 티끌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몇 걸음만 디뎌도 어깨에 먼지가 앉는 곳인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오.”

저택 입구에 들어선 김독자가 짧게 감탄사를 뱉어냈다. 들어설 때부터 대저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내부는 더 훌륭했다. 복도의 창가마다 화분이 놓여져 있었고 벽지는 고급스러웠으며 대리석이 깔린 바닥에서는 광이 났다. 응접실 식탁은 보기 드문 입식이었다. 장식장 안에는 각국의 희귀한 건축물이며 상징물들을 본딴 모형들이 들어 있었다. 영국에 있다는 시계탑부터 불란서의 철탑, 화란국의 풍차 등 김독자도 어깨너머로 들은 바가 있는 상징물의 축소 모형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조선 특유의 전통을 간직한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붉은 주둥이의 목각 원앙모형, 유려한 필체로 난이 그려진 족자봉 따위가 이국적인 물건들 사이에 묘한 균형을 이루며 진열되어 있었다.

“가족분 중에 여행을 즐기는 분이 계신 모양입니다.”

“아버님께서 여행을 좋아하셔요.”

“혹시 지금도?”

“사업 건도 있어서 지금은 아라비아 쪽에 가 계셔요.”

“그렇군요… 아, 혹시 아까 말씀하신 목격자분을 지금 뵐 수 있을까요”

유상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소심해 보이는 하녀 한 명이 다과를 들고 나타났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최초 목격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혁과 독자의 앞에 차와 과자를 내려놓은 하녀는 물러서지 않고 우물쭈물 서 있었다. 자리를 권하자 그제야 맞은편에 걸치듯 앉는다. 그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작게 웅얼거렸다.

“선생님, 전 이제 죽는 건가요……?”

“네?”

“머리 없는 귀신을 보면 저주받아서 죽는다고 했단 말이에요…. 전, 저는 아직 못 먹어 본 음식도 많고……. 그, 그, 바다란 것도 본 적 없고……. 흐어어엉….”

“아, 저기, 그. 진정 좀 하시고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 어린 하녀 앞에서, 김독자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본디 형제 없이 자란 김독자는 이런 사람에게 몹시 약했다. 좀 도와달라는 듯 곁눈질로 유중혁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본체만체였다. 하아아, 또 괜히 상대를 위축시킬까 속으로만 한숨을 쉬며 김독자는 패닉에 빠진 하녀를 달랬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중혁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빠져 주는 게 대화하기 쉬울 것 같군.”

“뭐? 야, 유중혁, 잠깐…….”

독자가 한손을 들어 중혁을 잡으려 했으나, 유중혁은 미련 없이 열려 있는 응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저를 향해 원망 어린 눈길을 보내는 독자를, 그는 힐끔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방금 씩 웃지 않았나? 그러나 그걸 확인할 틈도 없이 중혁의 고개는 응접실 밖으로 넘어가 버렸다.

“기어이 저런 잡배까지 집에 들인 거냐?”

복도로 나서던 걸음을 멈췄다. 그는 묵묵히 눈만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안색이 좋지 않은 사내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중혁의 귀에 들릴 정도는 되었다. 유상아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꾹 쥐고 있었다.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나름대로 소리를 죽인다고 죽여서 야단을 치는 모양이었다.

“도둑이 들은 것도 부끄러운 판에 외간 사내와 거리를 활보하고 심지어 집으로 데리고 와?”

“오라버니. 이건 제가 결정한 일이에요.”

“너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버릇은 정말 못 고치는구나.”

유상아의 말씨에는 단호한 구석이 있었다. 중혁은 시선은 하녀와 독자에게 고정한 채로 조금 더 고개를 기울였다. 김독자는 아예 펑펑 울어 젖히기 시작한 하녀에게 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하녀는 거기다 대고 코를 팽 풀어 버렸다.

“창고를 통째로 없앨 수도 없잖아요? 혼례 전에 불길한 일이 계속된다고 갖은 걱정을 다 하던 건 오라버니예요.”

“그건 다 네 행실이 바르지 못해서 아니냐. 지금이라도 얌전히 신부수업도 받고 하거라. 창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지금까지 오라버니가 하란 대로 해서 해결된 게 없잖아요.”

“너 정말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로 이리 내게 대드는 거냐? 계집애를 공부시켜놨더니 머리만 굵어선….”

중혁은 잠시 고민했다. 듣기에 좋은 대화는 아니었다. 남이 들어도 괜찮은 대화도 아니다. 팔짱을 끼고 선 채, 그는 다시 김독자 쪽을 바라보았다. 어찌저찌 하녀를 진정시킨 했는지 두 사람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사과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 걸 보시고 겁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풀죽은 어깨를 푹 숙인 하녀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발개진 눈을 들어 독자의 눈치를 보던 하녀가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린 채 머뭇거렸다. 독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테이블의 물잔을 집어 그에게 건넸다. 입안 댔어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잔과 독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하녀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그것을 받아 한 모금을 꼴깍 마셨다. 김독자는 턱을 괴고 하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이 빨간 하녀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우물쭈물하였다. 그는 한참 만에야 참을성 있게 대답을 기다리던 청년을 잠시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상아 아가씨는 제 실수를 늘 너그럽게 봐주시는 분이라서…. 그래서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었는데…….”

“네.”

“그 날 창고에서 아가씨가 찾으시는 물건을… 아, 마님 유품이에요. 거기서 본 것 같아서 밤늦게 갔거든요. 찾아서 놀래켜 드리려고 그런 거였는데, 그, 그 머리 없는 게……. 어두운 데에 둥둥……. 처, 처, 처음엔 뭐 먼지 덩어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글쎄 파, 파, 파란 옷을 입은, 분명히 몸은 사람인데 머, 머리가 없는 거예요.

“머리가 없는 사람 모습인 걸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그, 그야 옷을 두르고 있고……. 소매도 펄럭거리고.”

“목을 달라고는 안 하던가요?”

“어어어어어어 어떻게 아셨어요? 머리도 없는 게 어떻게 말을하는지…… 아아 역시 저주 받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저주를 풀어 드리려고 저희가 온 거지 않습니까. 불안하시면 부적 하나 공짜로 드릴까요? 귀신 보셨다는 다른 분들 것도 써드릴게요.”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으리께서 사용인들한테까지는 부적을 못 해주신다고…….”

부적이란 말에 반색한 하녀가 복도 쪽을 힐끗 곁눈질하며 말을 흐렸다. 김독자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부적함을 꺼내더니 똑같이 생긴 부적 몇 장을 꺼내어 주었다. 귀신을 목격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라는 말을 덧붙이자 그제야 하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혹여 부적에 무슨 일 생기거든 꼭 연락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그, 그리고 저기 혹시….”

“네?”

“가, 같이 오신……멋진 남자분은…… 혹시…….”

하녀가 우물쭈물거리며 복도 쪽을 연신 곁눈질했다. 중혁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듯 팔짱을 낀 채 비스듬히 문가에 서 있었다. 다시 김독자를 돌아본 순간 하녀는 그의 눈이 번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단순한 착각이 아님을 알게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김독자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기분 나쁘게 히죽 웃었던 것이다. 즐겁다는 듯 그가 말했다.

“역시 그렇죠?”

“네…네?”

“하하, 우리 중혁이가 참…, 한 멋짐 하죠. 처음 보시고 반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해해요. 저 얼굴이야말로 조물주가 빚어낸 그, 뭐냐. 마스타-피스 아니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마라 김독자.”

마치 제가 칭찬받은 양 으쓱거리는 김독자를 중혁이 일갈했다. 부릅뜬 시선이 제법 무시무시했으나 김독자는 별로 상처받거나 신경 쓰는 기색도 전혀 없이 싱글벙글이었다. 우리 중혁이가 부끄럼을 탄다는둥 헛소리를 늘어놓던 김독자는 중혁이 말없이 칼집을 쥐고 손가락을 퉁겼을 때에야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유상아가 식사를 권하러 왔다. 식탁을 준비하기 위해 돌아서던 하녀는 하던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투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유상아의 둘째 오빠라는 유현우는 웃는 얼굴로 중혁과 독자를 맞았다. 융숭하게 차려 나온 식사를 김독자는 사양하는 법도 없이 야무지게도 먹어치웠다. 그런 김독자를 벌레 보듯 하는 시선이 유현우의 눈에 언뜻 스쳤으나 그걸 목격한 사람은 유중혁 정도 뿐이었다.

“중혁이 기가 강해서 웬만한 귀신은 가까이도 안 오거든요.”

한참 창고에 있다 나와, 귀신에 대한 질문을 받자마자 김독자가 꺼낸 첫마디였다. 그는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를 곰방대와 담뱃잎에 불을 당기곤, 비스듬하게 서서 연기를 날려 보냈다. 곰방대는 골동품이라 해도 믿을 만큼 낡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초煙草 냄새는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 있었다. 밤이니 한 번 더 살펴보겠다며,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신신당부만 남기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던 참이었다.

“우선 오늘 귀신이 나올 기미는 안 보여서 효과 떨어지는 부적 좀 정리하고 귀기를 누르는 부적들을 좀 붙여드렸습니다. 귀기가 느껴지는 물건은 제법 있는데 아무거나 건드렸다가는 더 큰 난리가 날 판이라서요.”

“네.”

“보름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그 사이 다시 방법을 찾아보죠. 그래도 어지간하면 이 창고엔 들어가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김독자는 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창고 문에 붙였다.

 

 

 

 

“저주도 아니고 원귀도 아니면 뭘까?”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포를 벗어 내던지며, 김독자가 물었다. 따라 들어온 중혁이 의자 위로 널브러진 도포를 보고 낯을 찡그렸지만, 뭐라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는 그것을 주워들어 한 번 구김을 털어낸 후 옷걸이에 걸어 놓으며 대꾸했다.

“그 집에서 도둑맞은 물건이 있다고 하던데.”

“아, 혹시 원앙 조각 말하는 거야?”

“대화를 들었나? 네게 들릴 거리가 아니었는데.”

“대화? 아니. 그건 아니고 응접실에 목각 원앙이 빨간 거 하나밖에 없더라고. 그거 원래 파란색 빨간색 두 마리가 한 쌍이잖아.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건데….”

김독자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중혁 역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독자가 고개를 들었고, 그를 바라보고 있던 중혁과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다.

“근데 중혁아. 보통 쌍으로 있는 걸 하나만 훔치지는 않지 않나? 가치가 떨어지잖아.”

“……그렇군.”

“원앙이라.”

“그러고 보니 그 집안에 혼례가 있을 모양이던데.”

“혼인?”

중혁은 복도 쪽에 서 있었을 때 들은 내용을 대강 전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김독자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사무실을 빙빙 돌았다. 세 바퀴쯤 돌았을 때 그가 걸음을 멈췄다. 허공에 손을 뻗자 사방에 꽂힌 책꽂이에서 책들이 날아와 펄럭펄럭 펼쳐진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이리저리 넘기며 살펴보던 독자가 중혁을 바라보며 느닷없는 말을 했다.

“좋은 축원에는 신령이 깃들잖아.”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축원이 쓸모없는 저주일 수도 있는 법이지.”

“역시 중혁이야.”

김독자는 활짝 웃으며 중혁을 칭찬했다. 중혁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눈썹을 움직였지만 화를 내거나 대꾸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 김독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까만 눈이 반짝거렸다. 저 놈이 무슨 사기를 치려고 준비중이군. 유중혁은 생각했다. 허공에서 차곡차곡 떨어지는 책들을 한 손으로 받아든 중혁이 그것을 제자리에 반듯이 꽂아 놓는 동안, 김독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다음날, 김독자는 아침부터 너저분하게 책을 늘어놓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쪽 팔로는 턱을 괴고, 한쪽 손으로는 만년필을 성의없이 빙글빙글 돌려댄다. 중혁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으나 딱히 말을 얹지는 않았다. 바앗! 자그만 야구공 크기의 털 뭉치가 독자가 돌리는 만년필을 따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한참 공책을 노려보던 그가 뭔가를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만년필이 더이상 돌지 않자, 비유가 독자의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김독자는 탁자에 놓인 낡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유상아 선생님 댁 맞습니까? 네네, 일전에 방문 드렸던 퇴마사 김독잡니다. 예. 예…, 부탁드립니다. 예.”

김독자는 한참 전화를 붙들고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분주히 사무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올 거라는 말에 중혁도 그를 도왔다. 상아가 오기 전, 김독자는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었다. 두 식경 쯤 뒤 유상아가 나타났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선생님의 혼례 이야기를 좀 여쭈어도 될까요? 혹시 원앙을 하나만 도둑맞은 것과도 상관이 있나요?”

“그게 이 무두귀 소동과 무슨 상관이죠?”

“상관을 짓고 싶어 하는 건 네놈 쪽 아닌가?”

김독자의 거두절미한 물음에 유상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는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존칭조차 붙지 않은 중혁의 말에 유상아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고민 끝에 풀어내기 시작한 이야기는 어쩌면 새로울 것도 없었다. 유산은 많이 물려받았지만 수완은 부족한 아버지, 일찍 가장 노릇을 한 큰 오라비, 큰 오라비의 그늘에서 자란 연년생 작은오라비, 그리고 그 아래로 또 대책 없이 많은 오라비들, 그리고 머리 위에 수없이 많은 오라비들을 이고 태어난 막내딸 유상아. 그는 반듯반듯한 길을 따라 걸으며 사랑받는 막내딸로 자라왔다. 남이 보기에는 그랬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유상아는 나름대로 가족과 함께 소박하고 행복하게 지내왔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던 그의 학업이, 갑작스럽게 유상아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혼 상대, 날짜, 혼수품, 그 모든 것을 정하는 데 유상아의 의견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원앙 조각은 하녀가 떨어뜨려서 목이 부러졌길래 제가 숨겼어요. 그러고보니 그 창고 어디에 숨긴 것 같네요.”

“그게 무두귀입니다.”

“네?”

김독자가 허공에 손을 휘젓자 종이 한 장이 그의 손아귀로 날아왔다. 상아가 놀라움을 표시할 새도 없이, 김독자는 그것을 유상아에게 내밀었다. 그가 싱긋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어딘지 악마 같은 구석이 보이는 미소였다.

“액막이 한번 합시다.”

“예? 잠시만요, 설명을 좀.”

“굿을 하자구요. 기왕 하는 거 아주 크게요.”

유상아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았다. 그리곤 시선을 내려 자신 쪽으로 내밀어진 종이를 보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유성아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가 김독자가 쓱 내민 손을 마주 잡아 악수했다.

 

 

 

 

“야, 김독자~ 한 건수 잡았다며~.”

껄렁한 걸음으로 들어오던 단발 머리 여자의 시선이, 문을 마주하고 앉은 유상아와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유상아가 눈을 크게 뜨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갑자기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렸다. 방금 전의 여성이 밝게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는 사뿐사뿐 걸어들어와 김독자의 옆에 앉았다. 괄괄하게 굴던 잠시 전과는 달리 아주 나긋한 몸짓이었다. 그가 얼른 김독자의 귀에 바싹 붙어 속삭였다.

‘이 새끼야. 이렇게 예쁘다는 말은 안 했잖아.’

‘그런가? 중혁이가 더 잘 생기지 않았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여자는 한숨을 탁 뱉으며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았다. 다소곳하게 모자까지 벗어 탁자에 올려놓는 것을 바라보는 유중혁과 김독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너 뭐 잘못 먹었어? 기어코 이죽거리던 김독자의 발을 단발머리 여자가 가차 없이 밟아버렸다. 유상아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깨에 닿지 않는 짧은 머리칼,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왼쪽 눈 아래의 눈물점이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내, 한 번 보면 잊어버리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여자는 신식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셔츠에 멜빵 바지 차림이었다.

“저, 선생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저는 작가를 하고 있는 한수영이라고 합니다.”

“어머! 혹시 특특특특특급 무한회귀자 작가 한수영 작가님이세요? 이번에 준비 중이신 신작도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여긴 웬일로…….”

“아하하, 아시는군요, 거참 이놈의 명성이……. 아니고 아무튼 감사합니다. 신작……. 그럼요 열심히 쓰고 있죠……. 하하하……. 아무튼 감사합니다.”

신작 이야기가 나온 순간 수영은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가 봐도 원고를 내팽개치고 놀러 나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공부하기 지겨울 때 가끔 읽어요. 신문 연재소설…….”

“그래봤자 흔한 무협 소설인데 참 좋아하시는군요.”

“말뽄새하고는. 내 소설은 재밌거든?”

마치 나쁜 짓을 고백하듯 유상아가 뺨을 붉혔다. 둘 사이에서 멀뚱한 표정을 짓던 김독자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그, 저희 일 이야기 하러 만났잖아요. 그제야 두 명 분의 시선이 김독자를 향했다. 굿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준비되는 거면 좋겠지만 날짜를 잡는 것부터 굿상의 규모, 제기, 음식 등 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계산서에는 상당한 액수가 찍혔지만 유상아는 눈 한 번 끔쩍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신기하다는 듯 한수영을 보았을 뿐이었다.

“선생님께서 창을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뭐, 일종의 이야기니까요.”

한수영이 묘한 표정으로 이마를 찡그렸다. 무명 시절, 떠돌이 이야기꾼 일을 했던 그는 이따금 김독자가 굿판을 벌일 때면 합세했다. 여전히 저자에 이야기꾼은 많았으나 김독자 눈에 찰 정도의 무가를 부를 만한 실력과 신통력이 있는 사람은 한수영 정도였다. 한수영은 사실 무가를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독자는, 이 백 년은 넘어 보이고 툭하면 파리가 날리는 사무소 어디서 그렇게 돈이 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석 달 치 고료를 한꺼번에 넣어주곤 했다.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액수였다.

“꽤 성대하게 준비하는군.”

손님이 모두 나가고, 발소리가 멀어진 걸 확인한 유중혁이 짧게 말했다. 그는 손님용 탁자에 놓여진 식기들을 쟁반 위에 깨지지 않도록 옮겨담았다. 그릇은 대부분 김독자가 아닌 유중혁의 취향으로 골라모아진 것으로 요즘은 구하기도 힘든 수수한 백자였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는 요즘 유행하는 장식 많은 식기며 가구에 질색을 했다. 김독자는 식기며 가구에는 영 무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무실에는 유중혁 취향의 물건들이 채워져 있었다.

“굿판이 커야 떨어지는 것도 많은 법이잖냐. 이번 일 끝나면 우리 소고기 먹자.”

김독자가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꾸밈없는 소년 같은 미소였다. 그 이면에 늘 악마 같은 꿍꿍이가 있었다는 걸, 물론 유중혁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경쾌하고 단순한 박자에 맞추어, 색색깔의 철릭이 펄럭거린다. 청년의 손에 쥐어진 기다란 천자락이 마치 하나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느리고 조용하게 시작된 움직임은 불과 수 분 만에 휘몰아치는 타악기와 방울 소리를 따라 빨라지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흰 천을 목에 둘렀다가, 두 손으로 받들었다가, 다시 한 손으로 휘감으며, 때로는 절도있게, 때로는 경쾌하게 움직였다. 평소의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다 눈속임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그는 부드러운 춤사위를 계속해 나갔다.

그의 앞에는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어울리도록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어디서 불러왔는지 모를 악사들이 굿판의 흥을 돋우었다. 악사들의 옆에서 짧은 머리에 무복을 입은 여자가 방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 큰 굿은 경성에도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 자연 구경꾼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중혁은 깔아놓은 상 끄트머리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그가 풍기는 분위기 탓인지 아무도 그 앞으로는 들어서려 하지 않았다. 입에서 입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그의 귀로 전해져 들어왔다.

- 뭔 일로 이리 큰 굿을 한 대?

- 저 창고에 귀신이 든 거 아냐?

- 이 집 막내 아가씨가 벌인 굿이라는데?

- 어디 사이비한테 잘못 걸린 것 아냐?

- 사이비라니, 어허! 저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 유명한 패왕 아닌가!

- 정말? 아이고 실물은 처음 보는데 아주 인물이 훤~하구먼.

- 그래서 여기서 굿을 하는 이유가 뭐라고?

- 귀신이 나왔다잖어!

- 어이구! 왜 귀신이 나왔대? 이 집에 곧 혼사도 있을 예정인데 거 부정 타겠구먼.

- 혼사에 뭐 문제가 있는 것 아니여?

말에 말이 보태지는 속도는 아주 빨랐다. 요란한 무악을 배경으로 입방아도 끊일 줄을 몰랐다. 날은 맑았고 하늘은 높아 굿에는 제격이었다. 날씨가 좋으니 구경꾼들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굿판에 기웃거렸다. 그저 유현우가 약속이 있는 날을 골랐을 뿐인데 이렇게 날이 좋다니 분명 하늘도 우리 편인 거지. 김독자는 아침부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이게 다 무슨 짓거리야!”

마른 남자가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굿판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이었다. 남자는 핏발이 선 눈으로 유중혁과 김독자를 노려보았다. 무악이 뚝 멎고 정적이 찾아왔다. 김독자는 그렇게 움직이고도 땀이 흐른 기색 하나 없이 말간 얼굴을 하고 그를 보고 있었다. 유상아는 김독자의 얼굴이 몹시도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는, 역시나 상황에 맞지 않게 태평한 생각을 잠시 했다.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이런 식으로 망신을 줘?”

“어허, 굿판에 이런 식으로 들어오시다니요. 천지신명이 노하십니다.”

“치우지 못해! 이 사기꾼 놈!”

김독자가 눈도 꿈쩍 않고 말했다. 남자가 손에 닿는 대로 그릇을 쥐어 김독자에게로 던졌다. 김독자는 저에게로 날아드는 그릇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휘둘러진 검이, 아슬아슬하게 김독자의 앞을 지나 그릇을 쳐서 부숴 버렸다. 중혁의 매서운 눈이 안경 낀 남자를 노려본다 싶더니, 순식간에 움직여 남자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집채만 한 남자의 손아귀에 마른 몸을 붙들린 채 버르적거리는 꼬라지가 꽤 우스워 구경꾼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잠시 남자를 쏘아보던 중혁이 구경꾼들 쪽으로 그를 휙 던졌다. 사람들이 물러선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다시 유상아 쪽으로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유상아! 너 이래가지고 시집을 어떻게 가려고 그래!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여기에서 굿판을 벌여? 네가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알면 한 선생님 댁에서 뭐라고 생각하겠어! 이대로 혼사도 엎어지고 시집도 못 간 노처녀로 인생 조지고 싶……!”

촤악, 물소리가 났다. 물을 맞은 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제는 웅성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아 완벽하게 정적이었다. 빈 물잔을 든 유상아의 표정은 당당했다. 물을 맞은 유현우만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상아가 눈썹 하나 꿈쩍 않고 입을 떼었다.

“그리 잘난 사돈이 갖고 싶으시거든 오라버니께서 새 장가를 드세요.”

“무, 무, 뭐!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애써 가르쳐 놓았더니 헛바람이란 헛바람은 다 들이마신 게지!”

“제가 잘나 대학을 나온 게 오라버니와 무슨 상관인가요?”

그러나 펄펄 뛰는 제 오라비에게 유상아는 요만큼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여전히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한 사람만이 유쾌해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방울을 흔들며 노래하던 짧은 머리 여자였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깔깔대던 그가 상아의 옆으로 걸어와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키는 작을지언정 이상하게 위압감이 드는 태도로 그가 이죽거렸다.

“말 잘하네 아가씨. 그러게, 그렇게 좋은 집안이면 유현우 씨가 새장가를 들면 되겠네! 당신말야, 당사자가 원치 않는 혼사를 추진하는 이유가 대체 뭔데? 역시 막냇동생을 팔아서라도 부자 노릇을 계속하고 싶은 게 목적 아니야?”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조용한 마당을 울리고도 남았다. 군중의 끄트머리에 선 사람에게도 들릴 정도로 높고 경쾌한 음성이었다. 경직된, 그리고 적대적인 시선 수백 개가 유현우를 향해 날아와 꽂혔다. 유현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뻐끔거렸다. 창백하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제법 보는 재미가 있어 한수영은 또 실컷 그를 놀려먹었다. 무복 차림인 김독자가 성큼 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걸음을 따라, 둥, 둥, 북이 울렸다. 체격이 좋은 사내가 경쾌한 박자로 북을 두들겼다.

“악귀로군요. 그것도 아주 고약한 놈이에요.”

그가 무심한 얼굴로 부채를 들어 유현우를 가리켰다. 평소 실없이 웃을 때완 다르게, 입을 닫고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김독자의 얼굴에는 서늘함마저 감돌았다. 싸늘하게 식어 있는 그 시선이 김독자가 더 화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척척 걸어오는 서슬에 놀란 남자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의 걸음에 맞춰 울리는 북소리가 긴장감을 더했다. 김독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조용한 듯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악귀가 별것입니까? 동생을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려 파렴치한 혼사를 주관하는 자가 사람 탈을 쓴 악귀가 아니면 무엇이죠? 어찌나 불길했으면, 금슬을 상징하는 원앙 조각이 놀라 도망을 다 쳤겠습니까. 보십시오!”

김독자가 창고를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동시에 닫힌 문 사이에서 머리 없는 귀신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처음에는 창백한 손이 부적 하나를 가르더니 머리가 없는 몸통이 쑥 튀어나오고, 이어 반투명의 신체가 나타났다. 파르스름한 옷을 두른 그것에게서는 기괴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그것은 수박 정도 크기의 둥그런 뭔가를 소중히 껴안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사람 머리통이었다.

[이보시오… 내 머리 좀 고쳐 주시오….]

사방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대낮에 유령을 본 사람들이 혼비백산 뒤로 물러났다. 유령은 비틀거리며 김독자가 서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유령의 다른 쪽 손 위에는 목이 부러진 원앙 조각이 둥둥 떠 있었다. 김독자가 손짓하자, 원앙 조각은 허공에서 그에게로 둥실둥실 날아왔다. 독자가 원앙 조각을 받아든 순간 귀신의 형상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이 원앙 상은 불길한 기운을 견디다 못해 머리가 부러진 채로 창고까지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치다가 떨어진 머리를 찾지 못해 거기에서 맴을 돌았던 것이지요! 부정합니다! 얼렁뚱땅 돈으로 사람을 주고받으려던 이 사내들의 부정함에 신성한 부부의 연을 수호하시는 신명께서 노하셨습니다!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엎드려 죄를 비십시오!”

“이…, 이…, 이 사기꾼 새끼가흐아아으악!!!”

김독자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기다렸다는 듯 장구며 징, 꽹과리, 그리고 방울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김독자에게 달려들던 남자는, 그러나 채 그에게 닿기도 전에 기절하고 말핬다. 눈은 핑핑 돌고 입에는 거품을 문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사지를 움찔거리는 남자에게서 몸을 돌린 김독자가 차갑게 말했다.

“거 벌을 받을 거라지 않았소.”

쓰러진 작은 주인을 돌보기 위해 하인들이 달려오는 것을 뒤로하고, 김독자는 망설임 없이 안채로 걸어들어가 버렸다.

 

 

 

 

[야, 내 연기 어땠냐? 죽이지? 넌 연기 못 하더라.]

“귀기만 빌려주면 된다니까 왜 직접 나왔어?”

[이런 재밌는 장난에 어떻게 빠져? 역시 널 따라다니면 재밌는 일이 많다니까.]

김남운이 킬킬거리며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유상아는 그 광경을 보며, 하인을 전부 물리길 다행이라 생각했다. 반투명한 귀신이 머리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은 결코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 몫의 차도 내놓으라 성화를 부려, 빈 의자 앞에 찻물을 떠 놓으니 남운은 그 앞으로 내려와선 소파에 다리를 떡 벌리고 앉았다. 귀신이 어떻게 소파에 앉은 것인지 궁금했지만 애써 묻지 않았다.

“아까 하셨던 이야기는….”

“머리 부러진 원앙 조각에 생령 같은 게 들어있던 건 진짜야. 나머진 다 쇼지만.”

“원앙 조각 자체는 정말 좋은 물건이었거든요. 축원이 깃들어 있어요. 오래 된 물건이다 보니 거기에 깃든 축원이 일종의 생령이 된 거죠. 영력이 강한 사용인들에게 목격이 된 것 같은데 낮에 실체화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귀신 힘을 빌렸습니다.”

“그래봤자 이젠 그냥 나뭇조각이다.”

한수영은 이 모든 난장판이 익숙하다는 얼굴로 레몬 쿠키를 씹고 씹었다. 중혁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독자의 말을 받았다. 향을 음미하는 듯이 눈썹이 움직였다. 차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김독자는 차를 마시지는 않고 턱으로 연기만 쪼이며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의식이란 게 다 쇼지요.”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유상아는 그것이 무당이 할 만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속이 시원한 기분에 하하 소리내 웃었다.

 

 

 

 

유상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경성 시내를 걸었다. 무릎을 덮도록 거추장스럽던 치마를 조금 짧은 것으로 바꾸고 내려 묶은 머리는 땋지 않고 한 갈래로 단정히 정리했다. 조선에 돌아온 뒤 신지 못했던 구두를 꺼내어 신은 것만으로도 콧노래가 나올 만큼 기분이 좋았다.

“어서 와요.”

처음 왔던 날처럼, 김독자는 유중혁이 부르러 들어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평소에 입는 듯한 검정 셔츠에 바지만 입은 편한 차림이었다. 의뢰비까지 이미 정산을 마쳤으니, 더는 고객을 맞이할 차림이 아니어도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유상아는 이쪽이 그 우스꽝스러운 차림보다 낫다 생각했다.

“지금은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어요. 작은 오라버니가 저만 보면 뒤로 넘어가셔서….”

산뜻하게 웃으며 말하는 것치고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그런 난리가 있었으니 결혼이고 뭐고 파투가 났음은 당연했다. 요즘 경성 바닥엔 유 씨 집안 파혼담을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정작 소문의 중심에 선 유상아는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그가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참, 저 신문사에 들어가기로 했답니다.”

“유 선생님이라면 무슨 일이든 잘하실 것 같아요.”

“이제 의뢰인도 아닌걸요. 상아 씨라고 불러요. 저도 독자 씨라고 부를게요.”

은은한 차 향기를 맡으며 유상아가 싱긋 웃었다. 김독자는 뜻밖의 호칭에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잔잔히 미소지었다. 하얀 얼굴에 핀 미소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무심한 표정일 때나 음모를 꾸밀 때와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이번에도 김독자는 차를 마시지는 않고 턱에 대고 김만 쪼이고 있었다. 뜨거운 걸 못 마시나?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유상아의 머리를 스쳤다.

“유상아 씨 생각보다도 성격이 있으시더라고요.”

“제가 그날 좀 심했나요?”

“아뇨, 그날은 시원해서 좋았습니다. 제 말은…, 그런 고급 원목은 그냥 떨어뜨려서는 안 부러지거든요.”

“어머.”

유상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잔잔하게 미소지었다. 가만히 내려깐 시선으로 일렁이는 차의 수색을 빤히 들여다보던 유상아가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유학하면서 공수도를 좀 배웠어요. 둘째 오라버니도 참 저를 모르죠.”

“그렇네요. 다음엔 그냥 봐주지 마세요.”

“생각해 볼게요.”

“참, 가끔 놀러와도 괜찮은가요? 친구로서.”

“물론이죠.”

특히나 신경질적이던 유현우의 마른 몸을 떠올리며 김독자는 웃었다. 물론 김독자는 며칠 전에 유상아가 자신을 보며 한 생각 같은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 있었나? 먹고 가라.”

쟁반에 쿠키를 담아 가지고 나오던 중혁이 힐끗 유상아를 보더니 말했다. 유상아는 사양하지 않고 쿠키를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녹차 반죽을 사용한 쿠키는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쌉싸래한 향을 풍겨 계속 당기는 맛이 있었다. 김독자는 연신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유중혁은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무표정하게 제가 만든 과자에 차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유중혁과 김독자는, 서로 다른 화풍의 화가가 그려 놓은 그림처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같이 있는 모습이 서로 편안하게 어울리기도 했다. 갑자기 어떤 궁금증이 유상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 둘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결을 가진 의문이었다.

‘정말 어쩌다 이 두 사람이 동업을 하게 된 걸까?’

물어봐도 괜찮을까. 유상아는 김이 오르는 찻잔을 매만졌다. 습관적으로 그는 타인과의 거리를 가늠하고는 했다. 지금도 그는 제 앞에 있는 것이 넘어도 되는 선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뭐 물어보실 거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의외로 기민한 김독자가 말없이 고민에 잠긴 유상아를 눈치챘는지 물음을 던졌다. 의아함을 싣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를 향해 유상아는 빙그레 웃었다. 앞으로 물어볼 시간은 많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도 있었다. 무례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속으로 삼키고 그는 탁자에 놓인 과자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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