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 다시 여기 바닷가
제천독자
시선을 먼 곳으로 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광활한 바다의 평화로운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 봄이 오기 직전, 이월의 바다는 무척이나 쌀쌀해서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도 온몸 구석구석 찬 기운이 느껴졌다. 빳빳한 두께를 자랑하는 코트를 단단히 여민다. 품에 꼭 알맞게 들어차던 온기가 지독하게 그리웠다.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든다. 굽이치는 파도가 아름다웠다. 셔터음과 파도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음도 없는 적막한 백사장에서 제천은 아주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이지만 밤을 꼴딱 새우고 이른 아침부터 나와 있었던지라 여전히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살이 에일 듯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따가운 햇살이 눈을 찌른다.
“김독자, 보고 있지?”
하늘이 푸르렀다.
너를 보내주었고, 또 너의 여행이 시작됐던 그 날처럼.
뽀얀 숨이 파란 하늘 위로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다 이내 흩어진다.
기다릴게.
***
팔월이 끝나고 구월이 시작되던 날 김독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삼 일간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끝낼 때까지 손제천은 남들이 우는 만큼은 울었으나 그보다 더 울지는 않았다. 배 위에서 절을 하느라 엎드리고 나서 한동안 수그렸던 몸을 펴지 못했지만, 들어 올린 얼굴은 깨끗했다. 차가운 바다에 하얀 뼛가루를 조심히 뿌리며 많은 말을 삼켰다. 육지에서 먼바다로 나아가고, 김독자의 여행을 배웅하고, 먼바다로부터 다시 육지로 돌아올 때까지 그는 말이 없었다. 장례 내내 실신하고 탈진하기를 반복하다 결국 배 위에서 큰일을 치를 뻔한 이수경과 한수영을 달래서 돌려보냈다. 끝내 다리를 휘청이는 유중혁에게는 어깨를 빌려주었다. 하늘이 맑아서 그런가, 아니면 네 마지막을 독차지해서일까, 오히려 김독자가 살아있을 때보다 눈물이 더 나질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손제천은 참 강한 사람이라고.
모든 게 끝나고 나서 김독자와의 추억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했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담담한 모습으로 하루를 살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장을 봤다. 밥을 하는데 저도 모르게 수저를 두 벌 놓고는 아무도 앉지 않는, 아무도 앉을 수 없는 빈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냥 그대로 두었다. 제 몫의 식사를 모두 마치고 야무지게 곧장 설거지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어 소파에 앉았다. 치우지 못한 수저 한 벌이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문득 토기가 치밀었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모든 걸 게워냈다. 심장까지도 토해낼 뻔한 건지 목 언저리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더는 게워낼 수 있는 게 없어 쓰디쓴 위산이 역류해 목을 따갑게 긁는데도, 들이마시는 숨조차 거부하는 몸뚱어리 덕분에 한참이나 변기를 부여잡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생리적으로 터진 눈물은 세수를 해도 그치질 않았다. 결국엔 온 바닥을 눈물로 적셨다.
손제천은 강한 게 아니었다. 단지 실감이 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매일매일을 함께 했으니까. 눈빛만 봐도 다 알 정도로 매일 숨을 섞었으니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던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꺽꺽대면서 고통스럽게 바닥을 기었다. 독자야, 독자야. 대답 하나 돌아오지 않는 그 무정한 이름을 불러대며 비참한 모습으로 빌었다. 돌아와달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며 미친 사람처럼 빌고 울다 탈진해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매일을 살다 보니 정신이 지독하게 몽롱했다. 한 날은 이러다 정말 죽을까 봐 간단한 죽이라도 사기 위해 겨우 밖을 나왔다. 살아야 할 이유는 잘 몰랐지만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살아가는 편이 좋았다. 볕이 좋아 잠깐 자리에 서 있는데 저 멀리에서 환히 웃는 김독자를 봤다. 야속하게도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고 있었다. 붙잡으려 미친 듯이 뛰는데 누군가 갑자기 어깨를 세게 붙잡는 바람에 크게 나동그라졌다. 동시에 귓구멍이 찢어지는 것처럼 큰 소리가 들렸다. 잔뜩 화를 내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손제천은 꼭 미친 사람처럼 제 눈앞에서 멀어지는 김독자만 바라봤다. 애타게 불렀다. 그런데도 점차 사라져갔다. 이윽고 눈앞이 하얀빛으로 물들더니 혼절하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유중혁이 무섭게 표정을 굳히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펴보니 당연하게도 병원이었다. 익숙한 하얀 공간에서 손제천은 헛웃음을 흘렸다. 미루어보건대 죽을 뻔했던 게 틀림없었다. 아마 유중혁이 본인을 구한 듯했다. 그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중혁이 오랜만이네.”
당연히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유중혁은 당장이라도 화내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것처럼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손제천. 죽고 싶어서 환장이라도 한 건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야, 죽으려던 건 아니었어. 애초에 살려고 나왔던 거야.”
“말은 잘하는군. 그때 내가 널 보지 못했더라면…!”
“그래, 미안해.”
유중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차라리 때려. 잘못했으면 맞아도 싸지. 손제천이 눈을 감고 편안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유중혁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고 단호히 말했다.
“그딴 모습으로 죽어서 김독자를 만나면, 퍽이나 반갑다고 하겠군. 네 꼴같잖은 자기연민에 우리를 이용하지 마라.”
그리고는 가버렸다. 제천은 유중혁이 사라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을 울었다. 기껏 자신을 구해주었던 유중혁에게 죄책감을 떠넘기려던 게 미안해서 울었고 이제는 볼 수 없는 김독자가 보고 싶어 울었고 아무리 자신을 괴롭힌다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덜컥 깨닫게 되어 울었다.
저는 언제나 살고 싶었던걸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눈부시게 빛났던 그의 여름이 떠올랐다. 그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맴도는데, 왜 자신은 이토록 한심하게 굴었던 걸까. 모두가 그러더라도 자신만큼은 그래선 안 됐다. 바보처럼 착해 빠져서는, 그렇게나 아픈 와중에도 홀로 남겨질 제천이 걱정 돼 눈물 하나 제대로 흘리지 못했던 바보를 사랑해놓고 어떻게, 어떻게 자신이……
귀 안이 멍멍해질 때까지 펑펑 울고, 지쳐서 까무룩 잠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사흘 밤이 지나있었다. 이래서 독자가 눈을 감는 걸 무서워했던 걸까. 씁쓸한 생각을 잠깐 했다. 이마를 쓸어넘기려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리기만 하고 팔이 도통 들리질 않았다. 누워만 있느라 온몸에 힘이 다 빠진 감각이 제법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간신히 너스콜을 누르고, 잠시 후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에게 손제천이 깨기 전까지 하루에 한 번 유중혁이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꼭 직접 사과해야지.
간호사는 수액을 갈아주며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내고 나갔다. 제천은 주렁주렁 풍선처럼 매달린 수액을 바라보다 문득 왼쪽 손에 끼고 있던 반지가 관절에 매달려 빠져나오기 직전인 걸 깨달았다. 다시금 울음이 터져 나왔다. 빨갛게 자국이 날 때까지, 약지와 연결된 부분들이 찢어질 정도로 손가락 저 끝 편으로 세게 박아 넣곤 손을 감싸 쥔 채 엉엉 울었다. 독자와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어영부영 정신을 차리고 나니 떠나지 못했던 신혼여행을 챙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퇴원 절차를 밟았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냥 택시를 잡아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냉장고를 여는데 반찬들에서 죄 쉰내가 났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름도 다 지났는데 음식이 쉬네, 이게 되네. 지구야 미안해를 열 번 복창하고 배달 어플을 켰다. 독자였다면 쌍수 들고 환영했을 텐데. 문득 스미는 추억에 가슴 깊숙한 곳이 욱신거렸지만, 장난기 넘치던 그 웃음을 떠올리니 이내 그리움이었다. 남이 만든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그나마 기운이 났다.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치우고, 비우고, 쓸고, 닦았다. 언젠가는 누군가 돌아오길 기원하며 짬이 나는 대로 집을 치웠는데,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이를 그리워하며 남은 평생을 의탁하기 위해 집을 치워야만 했다. 제 손에 헐렁하게 끼워져 있는 은테의 링이 마지막 추억이라면, 이 집은 함께 쌓아 올린 최초의, 그리고 영원할 추억이었다.
“…”
마지막으로 남은 구역 앞에서, 그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멀거니 섰다. 독자의 서재. 김독자만의 오롯한 구역. 머뭇거리기를 한참, 결국 문고리를 돌렸다. 오랜만에 사람을 들인 방은 꼭 저 멀리 동화 속 세계처럼 신비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크다란 창문으로 한가득 오후의 햇빛이 들어오면 그를 따라 작은 먼지들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숨 한 자락 내쉬기 힘든 공간이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버겁고 아팠다. 시선을 어디에 둬도 김독자가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핏줄이 퍼렇게 돋도록 세게 쥐었다. 팔이 다 덜덜 떨릴 정도였다.
“…김독자.”
그는 혹시라도 놀라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대체 상상 속의 김독자가 무슨 수로 도망을 간다고. 그는 피가 통하지 않는 손을 천천히 펴고 주물럭거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김독자는 없다. 천천히 청소를 시작해나갔다. 김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저분하게 먼지가 쌓이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환기했다. 생전 주인의 손때가 가득 묻은 책 위로 낙낙히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먼지 덩이들을 쓸어냈다.
먼지를 툭툭 털고 한 권 한 권을 소중히 닦는데, 제목들이 제법 눈에 익었다.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처럼 그는 김독자와 연애를 시작하고 담을 쌓고 지내던 책과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함께한 오 년간 새삼 많은 책을 읽었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몸을 돌리다가 책장을 잘못 건든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꽂혀있었던 책 한 권이 떨어졌다. 귀한 보물이라도 된 것처럼 깜짝 놀라 잽싸게 주워들었다.
산사나무 아래.
중고로 구매한 책이었는데 이전 주인이 자주 읽었던 것인지 이미 손때가 가득 묻어있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의 추억을 고스란히 머금느라 누렇게 뜬 부분이 군데군데 있을 만큼 낡게 변했다. 제천은 책 표지를 더듬으며 감상에 잠겼다. 다시 읽을까 고민하는 사이 조금 틈이 벌어져 있던 곳으로 알아서 펼쳐졌다. 종이가 살짝 일어날 만큼 매만지고 또 만졌던 페이지다. 가장 추억이 짙은 문장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찬란하게 들어오는 햇빛이 제천을 감쌌다.
김독자는 소설을 좋아했지만, 로맨스 소설만큼은 사서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유의 분위기나 감성이 부끄러워서 본인과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로맨스 위주의 가벼운 소설만 읽는 제천과 반대되는 취향이었다. 그러던 김독자가 어느 날 눈이 퉁퉁 부어서 제천의 품에 폭닥 안겼다.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럽게 묻자 한참을 쿨쩍대더니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줬다. 책 때문이었구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며 이마에 가볍게 뽀뽀했다. 김독자는 꽉 잠긴 목소리로 너도 꼭 읽어봐. 하고 제천의 손에 책을 꼭 쥐여줬다. 너무 울어 머리가 아프다며 일찍 잠자리에 든 독자에게 이불을 덮어주다가 책을 펼쳤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제천도 눈이 퉁퉁 부은 채로 김독자를 마주했다.
복어처럼 부은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하고 깔깔 웃었다. 그러다 김독자가 눈가를 꾹꾹 누르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슬프지. 응.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계속 나는 거야. 근데 도저히 놓을 수가 없어서 그냥 울면서 봤어. 그랬구나, 근데 왜 안 사고 빌려 온 거야? 절판된 책이라서 이제는 못 구해. 아쉽다. 그치, 중고장터라도 뒤져 봐야 할까 봐. 잔뜩 시무룩해진 모습에 제천은 그날 밤부터 눈에 불을 켜고 중고장터를 뒤져 결국 책을 구했다. 반납일에 맞춰 배송이 온 책을 김독자에게 전해줬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던 모습이 참 귀여웠는데. 그 주 금요일, 퇴근하고 온 김독자를 품에 두고 나란히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읽었다. 제천아, 다 읽었어? 아니, 아직. 페이지가 사락사락 넘어갔다. …여기, 여기는 네가 읽어주라. 어느새 목소리가 잠긴 김독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 페이지 전부? 아니, 여기만. 제천은 김독자의 가느다랗고 흰 손끝이 가리키는 부분을 빠르게 두어 번 곱씹어 읽고, 목을 가다듬었다.
…‘기다림’과 ‘사랑’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기다림’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다는 뜻도 담겨 있다. 어쩌면 ‘기다림’은 ‘볼 수 없어도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책은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김독자는 그 부분을 제천에게 몇 번 더 읽어달라고 조르다가 결국 너른 품에 파묻혀 소리 없이 울었다. 그때는 두 사람이 이별할 일 따위는 한 조각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때였는데도 그렇게나 슬펐다.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그 모든 주인공의 태도와 생각, 그리고 그만의 기다림의 정의가.
그는 속절없이 커다란 몸을 무너뜨렸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책을 품에 끌어안고 통곡했다. 그러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먼 길을 떠난 사람에게 끊임없이 용서를 구걸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빌고 또 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괴롭고, 비참하고, 서럽고, 슬퍼도. 사랑하던 이는 이제 죽었다는 것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을, 앞으로를 계속해서 살아가야만 했다.
한참을 울고 난 다음 고개를 들자 여전히 눈이 부신 햇살이 방향을 조금 바꾸었을 뿐 온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그리웠다. 그는 소중하게 책을 안아 들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꽂힌 책이 떨어지는 바람에 덩그러니 비어있게 된 공간에다가 차곡차곡 잘 꽂아 넣고는 책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기다릴게. 미련이 남은 눈길로 몇 번이고 책을 계속 훑다가, 뺨을 찰싹찰싹 치고는 금세 청소를 마무리했다. 방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책장 쪽을 봤다. 천천히 문을 닫는다. 누군가 다시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열 일 없는 방에 두 사람의 추억이 따스한 빛을 받고 다시 잠들었다.
***
그는 그날 이후 밥도 잘 챙겨 먹고 원래 하던 것처럼 아침 운동도 다녔다. 안타깝게도 서재는 다시 들어가지 못했지만 어쨌든 반가울 만한 변화임이 틀림없었다. 헐렁하던 반지가 다시 꼭 맞을 무렵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닫아 두는 바람에 먼지가 꽉 끼고 날벌레가 윙윙 날아다니는 가게를 청소하고 영업을 재개했다. 단골들이 와서 왜 이렇게 말랐느냐 물어보면 사랑싸움 한번 거하게 해서 그렇다고 웃었다. 간만의 활력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새 단골이 되어버린 연예인 덕분에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제법 바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장례식 이후 석 달이 좀 지난 어느 날, 그는 멀끔한 얼굴로 이수경과 한수영과 유중혁을 만났다. 핑계는 한수영의 집들이였다. 적당히 선물을 사 들고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함께했다. 후식을 먹기 전에, 소파에서 쉬고 있는 유중혁의 곁으로 슬쩍 가서 쑥스러운 듯이 진심으로 사과와 감사를 전했다. 유중혁은 머쓱하게 음. 하고 손제천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한수영이 구역질했다.
그리고 디저트를 먹으며 내뱉은 말이 신혼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한수영은 마시던 음료를 그대로 뿜어냈고, 유중혁은 침착하게 얼굴을 닦았다. 이수경은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컵을 깨트렸다. 그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놀랄 만도 한가?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몰랐어? 나 독자랑 결혼했는데.”
한수영이 뒷목을 잡았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말이 안 나왔다. 세 사람은 그제야 김독자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의 실체를 알게 됐다. 단순한 커플링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외에도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다. 하지만 결국 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조심해서 다녀와.’가 끝이었다. 그렇게 통보 아닌 통보를 하고 곧장 집에 틀어박혀 집안을 죄다 엎었다. 대학생 때 이후로 이렇게나 먼 곳을 혼자 여행 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로 챙겨야 할지를 몰라 꼬박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더 고심해서 짐을 꾸렸다. 캐리어 두 개를 꽉꽉 채우고 휴대용으로 들고 다닐 여행용 가방도 야무지게 쌌다.
십일월의 중순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한국 땅을 떠나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은 그리스였다. 보기만 해도 숨이 탁 트이는 청명한 바다를 본 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하와이까지 각 나라의 작고 크고 유명하고 숨겨져 있는 바다를 잔뜩 구경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해가 바뀐 일월 중순이었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차를 하나 빌려서 한국에 있는 바다를 천천히 둘러봤다. 개중에는 김독자와 함께 다녀온 바다도 있었고, 함께 다녀오진 않았어도 선물로 주기 위해서 홀로 열심히 돌아다녔던 바다도 있었다.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눈물이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땅의 익숙한 숙소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 한밤중이면 종종 심장 한켠이 쓰리고 욱신거렸다. 그럴 때면 바깥으로 나와 모래사장에 앉아서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하필이면 별이 밝게 빛나는 밤이었다.
제천아, 하늘 봐. 별 많이 떴어.
그러게, 엄청 반짝거린다.
확실히 서울보다는 공기가 좋나 봐.
독자야, 너 저게 무슨 별자리인 줄 알아?
몰라.
흠, 나도 모르는데……
아는 것처럼 말했으면서 뭐하냐, 너? 장난해?
그러면서 담요 하나를 사이좋게 나눠 덮고 키득댔던 기억이 선연했다. 그때와는 달리 텅 빈 옆자리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그런데도 어디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이었기에 고통스러운 밤을 홀로 지새울 수 있었다.
동이 트는 걸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토록 반짝이던 별들이 빨간 햇살에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고, 검푸르던 바다가 보랏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제천아, 우리는 계속 행복할 거야. 김독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종종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 다짐과도 같은 혼잣말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답해본 적은 없었다. 눈을 감았다. 응. 우리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거야. 이제야 뒤늦은 대답을 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홀로 구석구석 모래를 털고 있자니 묘하게 서러웠다. 독자 미워. 삐죽대듯 말했다. 코를 한 번 훌쩍였다. 그러자 돌풍이 훅, 몰아쳤다. 매서운 바람에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바다 너머를 쳐다봤다. 도도도도독자야? 거짓말인 거 알지? 추위에 빨갛게 익은 손으로 싹싹 빌었다.
따뜻한 햇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데도 여전히 공기가 찼다. 오소소 돋는 소름에 팔을 쓱쓱 쓸었다. 카메라 가지고 나와야겠다.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지금 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아쉬운 얼굴로 아름다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다가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참 많은 바다를 돌아다녔다. 이제 그에게 남은 바다는 하나뿐이었다.
***
‘네, 가. 뭐, 뭘 알아. 아, 아, 알기나…해? 내가, 내, 내가…얼마나 무, 무, 무서웠는, 지…, 아, 알아?’
‘누, 눈만 감, 았다가 떠, 떴는데, 하, 하, 한 달이나 지, 났대. 나, 나아진, 것도, 모, 모르겠어. 혀, 혓바닥은 더 두, 둔해지고 벼, 벼, 병신처럼 마, 말이나 계, 속, 더듬고…’
‘내, 내가 헤, 어지자고, 해, 했잖아. 왜!!!’
‘왜, 왜…, 기, 기다리, 고 지, 지랄이야. 어, 어차, 피 주, 주, 죽을…건데, 왜, 같이 겨, 겨, 견뎌 준다고, 씨발……’
대꼬챙이처럼 말라붙은 팔에서 주삿바늘이 빠져나간다. 몽글몽글 솟던 피가 멈추질 않는다. 바닥이 전부 붉은 액체로 가득 채워진다. 시야가 새까맣게 물든다. 울음기 가득한, 사랑스런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나만 생각하고 싶어, 제천아. 너랑 헤어질 걸 그랬어. 나 혼자만 아프고 싶어. 제천아, 제천아, 손제천. 그리고 다시 시야가 트이면 너는 커다란 눈에 한가득 눈물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이내 온몸을 기이하게 비틀면서 소리를 지르고 발작한다. 당장 달려가 너를 안고 입 맞추고 달래주고 싶은데, 멍청한 몸뚱아리는 꿈속에서조차 말을 듣질 않았다. 그때처럼 온몸이 굳어 있었다. 제발, 독자야. 제발 아프지 마.
김독자는 죽은 이후로 제천의 꿈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씩 나온다고 해도 지나치게 아픈 모습뿐이었다. 도통 건강하지를 못했다. 우리가 함께했던 오 년 동안 네가 아팠던 적은 고작 반년뿐이었는데도, 항상 김독자는 마르고 앙상하고 가냘프고 슬픈 모습으로 제천을 찾아왔다.
제천의 등을 밀치고 의료진들이 달려 나간다. 급하게 호흡기를 매달고 수십 명의 사람이 에워싸느라 더는 김독자가 시야에 보이질 않는다. 그제야 몸이 움직인다. 독자야! 김독자! 미친 듯이 하얀 사람들을 헤집고 간신히 마주한 것은 관에 누워 편안하게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는 김독자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다시 사위가 새카매진다. 저는 언제나 살고 싶었던걸요. 저는 언제나, 저는…… 귓가에 쿵쿵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독자야, 사랑하는 나의 독자야. 제발, 제발. 캄캄한 허공에 손짓했다. 당장이라도 품에 김독자를 꼭 끌어안고 목이 쉬도록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눈을 꾹 감았다 뜬다. 그러자 시야 가득히 김독자가 웃고 있었다. 숨 한 조각 뱉기 어려울 만큼 눈부시게, 아름답게.
‘제, 천아. 나, 도…사, 사랑, 합니다.’
***
허억.
숨을 급히 들이마시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고 캄캄한 밤이었을 뿐이다. 독자야. 버릇처럼 읊조린다. 따라붙는 시선은 없다. 차분한 음색으로 답해주던 목소리도, 그 어느 것도…… 의미 없는 호흡을 이어나간다. 다소 시간이 지난 후에야 덜덜 떨리던 몸이 진정됐다. 입안으로 바다의 짠맛이 주룩주룩 흘러들었다. 여행을 떠난 이후로 꿈을 꾸지 않았는데. 꿈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을 끊임없이 복기한다. 차라리 완전한 원망으로 끝이 났더라면, 끔찍한 악몽으로 끝냈더라면 좋았을걸. 너는 왜 그렇게 착해빠져선…… 두 손에 축축한 얼굴을 묻는다. 소리 없이 오열했다.
손제천은 김독자보다 고작 세 살이 많았다. 김독자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손제천은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지는 고통을 무덤덤하게 견디기에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차라리 이전처럼 그저 침잠하고 싶었다. 겨우, 겨우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잘 쌓아 올린 모래성이 파도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아팠던 김독자를 다시 한번 떠올렸을 뿐인데 이제껏 어떻게 홀로 그 긴 시간을 견뎌왔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바깥은 여전히 캄캄하다. 별이 안 보여. 하지만 저 멀리 바닷소리가 방 안에 작게나마 밀려 들어왔다. 그는 무력한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멈추지 않는 눈물은 내버려 뒀다. 천천히 창가로 갔다. 창문을 열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 안으로 저 멀리 희미하게나마 파도가 몰려온다. 눈물은 여전히 볼을 타고 흘러내려 목줄기를 뜨끈하게 적시고 있었다. 문득 제천은 사랑이란 감정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에 그 무엇보다 흔한 소재로 자리 잡은 사랑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를……
천천히 눈을 감고 귀를 간지럽히는 작은 소리에 집중했다.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렸고, 텅 빈 해변을 사이좋게 거닐고 있을 사람들의 작은 속닥임도 섞여서 들려온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하고 짭짤한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눈물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독자야.
이름의 주인은 죽었다. 죽은 사람에게 하염없이 말을 걸어보았자 대답 따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간 몇 개월 동안 수도 없이 김독자의 이름을 부른 손제천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귓가로 다시금 시원한 파도가 밀려 들어온다. 그런데도 손제천이 김독자를 부르는 것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손제천은 김독자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짧지도, 그렇다고 해서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눈물이 마침내 멎어 있었다. 볼에 꼭 풀을 먹인 것처럼 얼굴이 빳빳하게 땅겼다. 동이 트는 것까지 지켜볼 여력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벌써 이틀째 밤을 새우는 거다. 손제천은 화장실로 가 얼굴을 찬물로 좀 식히고 난 다음 이불을 팡팡 털었다. 그나마 축축함이 가신 침대 위에 몸을 곧게 펴고 누웠다. 푹 자고 일어나자. 일어나면 밥을 먹고, 그리고……
***
얼굴은 퉁퉁 부었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정오를 맞이했다. 해가 중천에 뜬 걸 보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빌렸던 차를 반납 신청하고 몇 가지 짐을 집으로 부쳤다. 그리고 밥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속을 든든히 하고 싶어 콩나물국밥을 시켰는데 노른자가 두 개나 동동 떠 있었다. 쌍란인가? 생각하고 한술 뜨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슬그머니 다가와 총각, 힘들지? 라며 등을 두드려주고 갔다. 쌍란이 아니었구나. 뭐라도 말을 하려다가 그냥 애매하게 웃었다. 밥을 말아 야무지게 먹었다. 따뜻하게 속을 데우고 나니 한결 나았다.
짐을 전부 챙기고 나와서 남는 시간 동안 부른 배를 안고 바다를 좀 거닐었다. 눈과 코와 귀에 밀려드는 바다가 좋았다. 생전 김독자는 어딘가 홀로 갇혀있는 게 싫다고 했기에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시원함이 발끝에 닿았으면 좋겠다고, 이내 밀려온 물살이 종아리까지를 덮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던 연인은 기어코 바다 그 자체가 되었다. 제천이 선물로 주었던 바다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서. 그러니 제천은 이렇게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어떤 한 곳에서는 김독자의 한 조각과 함께 연안을 따라 걷게 될 거라고 믿는다.
어느덧 떠날 시간이 다 되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덜컹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마음에 안정을 준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사진, 정리하려고 했는데…… 수마가 밀려온다. 속절없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부산 역에 도착합니다. 두고 내리시는 물건은 없는지 미리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건조한 안내 멘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침은 흐르지 않았는지 본능적으로 입가를 훔치다 떠오른 추억에 속으로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야, 너 침 흘렸어.
어? 이쪽?
아니, 바보야. 이쪽.
그러고선 입가에 스치듯 입 맞춘 뒤 주위를 휙휙 둘러보던 네가 선명하다. 고작 기차 안에서조차, 너는 없지만 존재했다. 빈 옆자리를 그리운 눈으로 훑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내렸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주섬주섬 겉옷을 벗었다. 이쪽은 확실히 따뜻하구나. 두툼한 니트에 목도리에 코트까지 입었더니 등에서 땀이 주룩주룩 났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덜해서 망정이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덜컹이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겨우 세 번째인데 어느새 이 풍경이 익숙하기까지 했다.
부산역에서 내릴 때부터 날이 흐리다 싶더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폭우까진 아니었지만 빗줄기가 제법 거셌다. 그는 이유도 없이 지하철 출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 분 정도를 그러고 있다가 코트를 뒤집어쓰고 비를 맞으며 뛰었다.
***
“어우, 개운하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젖은 코트를 빤히 봤다. 꽤 비싼 건데, 이렇게 둬도 되는 걸까. 그는 부랴부랴 근처에 있는 세탁소를 검색했다. 거리가 제법 됐다.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옷을 꿰입고 1층으로 내려가 프론트에 있는 직원에게 바로 근처에 있는 세탁소는 없는지 물었다. 직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요 앞쪽으로 오 분 정도를 걸어가면 나오는 중국집 앞에 허름한 세탁소가 하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문이 닫혀 있으면 그냥 두드려보세요. 안에 계시는데도 문을 잠가 놓을 때가 많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숙소 로비와 연결된 편의점에 들러 삼단 우산을 하나 샀다. 앞으로는 잘 들고 다녀야겠다.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며 방에서 코트를 챙겨 서둘러 길을 나섰다.
도착한 세탁소는 정말 직원의 말대로였다. 닫힌 문을 두드리자 웬 과묵한 아주머니가 문을 끽 열고 틈새로 제천을 쳐다봤다. 당황한 그가 버벅거리자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문을 열고 다시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갔다. 들어가도 되겠지? 당황하며 조심스레 따라 들어갔다.
“뭐 맡길라고.”
“비가 내리는 바람에 코트가 다 젖어서… 이참에 깨끗하게 드라이클리닝 하려고요.”
“가 와 봐라.”
아주머니에게서 관록이 느껴졌다. 손제천은 잔뜩 쫄은 채로 공손히 코트를 내밀었다. 그는 건네받은 코트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바로 옷걸이를 가져와 행거에 가지런히 걸었다.
“억수로 중요한가베.”
“…예. 예?”
그러다 한마딜 툭 던졌다.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얼띠게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어이구,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 앉더니 긴 막대를 들어 옷을 툭툭 쳤다. 이 봐라. 뭘 보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막대기를 따라 흔들리는 코트에 열심히 집중했다.
“이거, 나온 지 몇 년은 됐을낀데. 딱 봐도 애지중지 아낀 티가 난다 안 하나.”
“아, 네. 선물로 받은 거라서…”
아주머니는 잠깐 제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글나. 하고 말했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내일 온나.”
“하루 만에도 되나요?”
손제천이 또 얼띤 얼굴로 말했다. 아주머니는 한심한 눈빛으로 제천을 바라보며 핀잔을 줬다.
“그럼 안 되는 걸 된다 캤을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 머쓱해졌다. 뒷머릴 긁적거리다 허리를 꾸벅 숙였다.
“잘 부탁드릴게요.”
아주머니는 무심하게 뒤돌아 문이나 닫고 가라며 마지막까지 볼멘소릴 했다. 팡 하고 우산을 펼치며 숙소로 걸어갈 때까지 계속 김독자 생각이 났다.
***
다음 날 비슷한 시각에 세탁소를 방문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자 아주머니는 왔나. 하고 짧게 말하더니 옷이 수북이 걸린 행거에서 제천의 코트를 꺼내 탁탁 털었다. 있어봐라. 함 다리고 주께. 엉거주춤 서 있는 제천에게 작은 의자를 발로 쓱 밀어주더니 펄펄 김이 나는 스팀기로 코트를 매만진다.
“앞으로도 이래 하믄 오래 갈끼다. 잘해놔가 할 것도 읎드라.”
제천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아주머니는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뚝뚝한 말에 담긴 다정함이 가슴에 와닿았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지만 아주머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참 담담한 말투였다.
“비 쫌 맞은 걸로 호들갑 떨지 말고, 앞으로는 기냥 물기만 툭툭 털고 말림 된다.”
“…네.”
“아나, 니 옷. 가가라.”
어느새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코트가 눈앞에 내밀어졌다. 제천은 어쩐지 코끝이 시큰하다고 느꼈다.
“저, 감사합니다.”
그가 입구에서 쭈뼛대며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손만 홰홰 저었다. 어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서 비식비식 웃음이 났다. 빗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품에 코트를 소중히 안았다. 따끈따끈했다. 다행이다. 나, 잘하고 있었구나. 걸어가는 그의 뒤로 서서히 빗줄기가 약해졌다.
***
비는 그쳤지만, 날이 계속 흐렸다. 바람도 세게 불었다. 덕분에 손제천은 숙박을 연장해야 했다. 눈을 뜨면 아침을 먹고 사진을 정리했다. 점심을 먹고 사진을 정리했고, 저녁을 먹고 이수경이나 한수영이나 유중혁과 연락한 후에 또 사진을 정리했다. 요 몇 달간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야 하늘이 눈부시게 맑았다. 그렇게나 비를 퍼부었던 게 다 거짓말인 것처럼 푸르렀다. 홀린 듯이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다.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바다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잡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뛰었다. 겨울이고 아침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다.
해안을 따라 쭉 걸었다.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신 쉬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추억이 깃든 장소가 코앞이었다. 몇 미터나 거리가 되는데도 어떤 돌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그 돌만 둘러싸고 빼쭉빼쭉 자라난 풀이 무성했다. 내가 그렇게 많이 뿌렸나? 생존력에 감탄이 나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 심했다. 깔끔히 깎아줘야 할 수준이었다.
“하, 하하.”
문득 웃음이 났다. 입을 가리고 조심스레 웃기 시작했다. 한 번 새 나온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허파에 바람이 든 사람처럼 계속계속 웃음이 났다. 입을 딱 닫고 참아 보려 했지만 결국 빵하고 터지듯이 마구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하하, 하하!”
으하하하…… 한바탕 웃고 나니 솨아아아, 하고 파도가 따라붙었다. 그럼 그도 질세라 다시 웃었다. 한동안 파도 소리와 웃음소리가 번갈아 가며 났다. 너른 돌 위로 벌러덩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이 예뻤다. 반짝반짝. 비가 와서 그런지 보란 듯이 맑게 개어 있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어?”
그는 바다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고 파도에게 물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믿고 있으니까. 반드시 언젠가는 함께 걸을 수 있을 테니까. 겨울 냄새 바다 냄새 모래 냄새 풀 냄새 돌 냄새… 눈을 감고 바람이 코끝으로 가져다주는 선물을 맡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김독자가 실컷 맡을 수 있는 냄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좋은 것들이라서 마음이 놓였다.
***
손제천은 그날 밤 꿈을 꿨다. 김독자가 해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살이 좀 오른 모습이었다. 맨둥하던 머리에는 삐쭉삐쭉 짧은 머리가 소복했다. 모래를 사방으로 튀기며 물로 뛰어들더니 푹 젖은 채로 깔깔 웃었다.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웃고 있을까? 아니면 울고 있을까. 망설이는 사이 김독자가 물을 확 뿌렸다. 그러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첨벙첨벙 물로 들어가 김독자를 꽉 끌어안았다. 김독자가 자신을 마주 안는다. 그리고 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랑해, 손제천.’
흰 손이 다가와 손제천의 뺨을 쓸어준다. 그래서 손제천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꼼꼼히 눈물을 닦아준 김독자가 환히 웃었다.
‘여름에 있을게. 그곳에서 항상 기다릴게.’
그리고 제천을 밀었다. 풍덩 물에 빠져 일어날 수 없었다. 공기 방울이 뽀골뽀골 소리를 내며 코와 입으로 흘러나왔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꿈에서 깼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가 깨달았다. 꿈이었구나. 하지만…… 제천이 홀린 듯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엉망으로 구겨 신느라 맨발이 쓸리고 있었다.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검은 바다에 달려들었다. 허벅지까지 물살이 쳤다. 그는 제 입가에 손을 모으고 소리 질렀다.
“독자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손제천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김독자가 저 멀리서 웃고 있었다. 병실에서의 모습 같은 건 온데간데없고, 혈색이 또렷한 그 모습으로. 김독자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나, 행복해질게!”
굳은 다짐을 내뱉었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절대적으로 그의 삶을 지배할 마음가짐이었다. 살아갈 거라면 행복한 쪽이 좋았다. 많이 웃고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제천은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훗날 만날 김독자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그렇게.
“그리고! 나도 기다릴 거야! 여름이 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릴게!!”
볼을 타고 별이 흐른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북북 눈물을 지우자 김독자가 없었다. 그래도 손제천은 외쳤다. 외쳐야만 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의 고백이 넘실거리는 물살을 타고 먼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갔다. 계속해서 흘러갔다. 어제보다 따뜻한 바람이 분다. 그의 머리카락을 훅 치고 지나갔다.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안온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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