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t, Pepper, Birds, and the Thought Police

소금과 후추와 새와 사상경찰 - 음악 프로젝트 그룹 '밀리(Mili)'의 곡

 평화로운 저녁, 검은 제복 차림의 남자들이 집 문을 박차고 몰려왔다. 당혹스러움에 닭 구이를 하다 말고 문가로 달려 나갔다. 

 그 날은 정말이지, 그 일만 제하면 너무나 완벽한 날이었다. 바구니가 달린 예쁜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레몬과 닭, 계란을 사오고, 휘파람을 불며 집에 돌아오는 길. 평화롭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이토록 완벽한 날이 따로 있을까 싶었다. 날도 맑아 빨래를 예쁘게 마당에 내걸고서 구이판에 기름칠을 했다. 할 일을 다하고는 잠시 쉬었다. 평화로운 날이었다. 저녁이나 푸짐하게 먹고 내일까지 푹 자면 정말 완벽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해질녁이 되어 타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을 하며 닭을 손질했다. '세상의 행복을 평생 맛보는 데에는 소금과 후추만 있으면 된단다.' 어머니가 해 주셨던 말을 노래 가사처럼 흥얼거리며 닭을 굽던 때에 사상경찰 한 무리가 집으로 몰려온 것이다. 달이 떠오르고 크림소스를 얹은 레몬 닭 구이가 오븐 속에서 구워져가던 무렵이었다. 

 불길한 일이 닥치고서야 다시 생각해 보자면, 너무나 평화로워서 위화감이 들 지경이었다. 원래는 길에서 한 번 쯤은 잡혀 검문도 당했었는데, 오늘은 그런 일도 없었으니.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근이 미소짓는 낯으로 말을 물었다. 나는 정말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자네는 제 617조 불순사상죄를 위반했다." 

 "…." 

 "자네를 체포하겠다." 

 짐작가는 죄는 단 한 가지 뿐이었다. 모국어로 글을 쓴 것, 단지 그 뿐. 그러나 나는 답을 안다. 어쩌면 우리 조국 모두가 알 진짜 답. 그것은 바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죄라는 것. 

 집에서 잡혀오고서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연신 증기를 내뿜어대는 화물열차에 실려 있었다. 열차에는 나와 비슷한 이들이 서로 부대껴 이동하고 있었다. 완전히 가축이나 짐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존재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으로 간다는 생각을 내심 지울 수가 없어 서러운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어머니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 열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마침내 눈물을 닦아낼 적엔 주변의 이들도 눈가가 축축해진 채였다. 우리의 혼에서 무엇도 앗아가지 못 한다 몇 번이고 되내이며 생각했다. 저 놈들은 이 말의 뜻을 알까, 우리의 심정을 이해할까.  

 날아드는 폭력에 억지로 숨을 삼킨다. 강제로 끌려왔는데 우리 말을 할 자유조차 없다니, 비극이었다. 말로는 자국민이니 어쩌니 하지만, 결국은 전부 의미 없는 헛소리일 뿐이라 타국의 언어를 입으로 뱉어낼수록 속이 쓰릴 뿐이었다.  

 나는 차가운 나뭇바닥에 가만 누워서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내 숨은 아직 붙어 있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멋진 일이다. 억압과 강요, 폭력 속에서도 모든 것들을 잃지 않았다는 방증이니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차갑게 얼어붙다 깨지는 숨결에 그 이름들을 하루에 몇 번이고 되새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않도록,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그러니 어디 마음껏 덤벼 봐라. 이 모든 시련과 고통은 우리의 강철같은 심장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테니.  

 그런 나날들이었다. 아침이 오고 가고, 사람들이 머물다 떠나고, 셀 수 없는 날이 지나 계절이 가늠조차 되지 않을 무렵이 되지 별빛이 자상하게 느껴지고 밖에서 다가오는 한 줌의 바람이 향기롭게 느껴졌다. 벽에 난 조그마한 틈 사이로는 매일 밤 달빛 아래 새들이 지저귀는 연극을 감상했다. 나름대로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새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이야기도 저렇게 훨훨 날아 어디론가 멀리 퍼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매일마다 새들에게 말을 걸었다. 햇빛을 산산히 부서트리는 날개짓이 손끝에 닿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새들은 날개를 펼쳤다. 우리의 억눌린 목소리와,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부르며, 미래의 모두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해 주었다.  

 여기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잊혀질 것이 분명한 목숨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휘발될 것이 분명하기에, 말하지 않으면 잊혀질 모든 이야기들을 새들에게 속삭였다. 이 작은 존재만이 내 말을 경청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자유에 잠시 몸을 기대어 쉬었다. 

 그러자 책을 쓰고픈 욕구가 느껴졌다. 이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것이야 언제건 하던 일이었고, 나의 삶은 점점 닳아가고 있었기에, 자유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마지막으로 글을 쓰자.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료했던 나날들에 의미가 가득차 아쉬울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렀다. 

 손끝에는 핏물이 맺혀 마를 날이 없었으니, 내게는 막대와 종이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하나 시를 써내려갔다. 선홍빝으로 물든 글자 위에 달빛은 춤을 추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로도 전해질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이야기에 희망을 걸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는 말을 잠시 뱉어내다 말았다. 이제는 확실히 숨이 멎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공기가 무거워 폐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달빛에 닿은 손끝엔 창살 사이로 들어온 제비가 잠시 앉았다. 잠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던가, 손 위엔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닿았다. 순간 공기가 가벼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에 열쇠를 꼭 쥐고선 고맙다 애정 어린 말을 뱉었다.  

 문을 열고선 밖으로 나갔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껍데기를 뒤로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는 집을 향해 달려갔다. 이곳이 천국인 것일까. 내가 삶에서 제일 행복하고 평화롭던 곳.  

 그 집에서 나는 평상에 앉아 문고본으로 출간된 나의 책을 읽고 있었다. 결국 이야기를 전했으니 의미가 없는 삶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제야 나는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문을 열어준 새는 여전히 내 어깨에 앉아 지저귀고 있고, 하늘은 맑고 높으니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언덕길로 간다. 

 너는 땀이 가득 찬 손을 꼭 쥐고 추모공원으로 걸어간다. 마침내 내려놓는 생생한 하얀국화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떨리는 손끝으로 꽃을 내려놓는 모양새에 고통받던 모든 시간이 자유로워졌다. 전직 사상경찰은 모자를 내렸고 아이들은 풀밭에 누워 내가 쓴 글을 읊고 있었다. 꽤나 신기한 느낌이었다.  

 잊혀질 것이라 생각했건만 끝내 잊혀지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이 살아남았다.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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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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