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티 썰 백업

개 같은 남친 #01

허티 썰북

3000_PPS by 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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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회 제출 원고

개 같은 남친

#01. 헤테로 연하 남친

 

 

 

헤게 허티로 밤비를 그저 챙겨 줘야 할 손 많이 가는 형, 은근히 마음 여린 형 정도로 생각하는 도은호와 그런 도은호 때문에 미치겠는 짝사랑 봉구로 허티 캠게물.

이제 막 대학교 들어간 새파랗게 어린 20살 도은호. 대학교 들어와서 친해진 사람 중 봉구가 제일 작고 여려 보이니 자기도 모르게 계속 챙겨 주게 됨. 그게 1년, 2년이 되니까 주변에선 도은호를 무슨 봉구 보호자처럼 여기고 있을 듯. 사실 말이 보호자고 남들이 보기엔 은호가 봉구 끌고 다니고 봉구가 낡고 지친 얼굴로 거기에 어울려 주는 거에 가깝긴 했음. 주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봉구가 혼자 있으면 도은호가 친구들 우르르 끌고 다니다가 ‘형!’하고 불러 세워서 함께 밥 먹으러 가는 식으로.

물론 내향인 봉구한테는 그런 시간이 무척 지옥 같았음. 체육학과인 은호 친구들은 다 말술인 데다 시끄럽고 활달해서 같이 있다 보면 실시간으로 기가 빨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됨. 처음에야 어어 반갑다, 그래 잘 지내지? 요즘은 뭐 하고 살아. 체육 쪽은 많이 힘들어? 물어보는데 나중 가면 창백해진 얼굴로 먼 산 바라보며 멍하게 앉아 있음. 그렇게 영혼 빠져 있으면 도은호가 형 물이요, 형 수저요, 형 티슈요 하며 이거저거 다 챙겨다 줌. 5성급 호텔 서비스도 이만큼 극진하진 않음.

제 친구의 알뜰살뜰하기 짝이 없는 1등(어쩌면 꼴등…) 신랑감 같은 모습을 본 도은호 친구들은 2년째 봐도 적응 안 되는 광경에 질색함. 봉구가 뭐 먹다가 옷에 떨어트리면 형 이리 와 봐요, 하고 벅벅 닦아주는데 같은 남자끼리 그러고 있는 거 보면 괜히 징그럽고 그렇잖아.

“야, 적당히 좀 해라. 니가 봉구 형 엄마냐?”

“그냥 챙겨 준 건데 뭘 또 엄마라고 해?”

“누가 남을 그렇게까지 챙기냐는 거지. 안 그래, 형님? 형님이 뭐라고 좀 해 봐요.”

“내가 말해도 안 들어.”

“에이, 얘 형님 말이면 끔뻑 죽어요. 전에 저희랑 승급전 하는데도 형이 부르니까 피시방에서 튀어 나갔잖아요. 그때 이 새끼 진짜 또라…. 왜 그렇게 쳐다보냐? 아무튼. 전 이 새끼 군대 가서도 형이 부르면 탈영해서 올까 봐 겁납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려는데 어쩐지 도은호라면 진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괜히 힐끔 쳐다봄. 그럼 도은호는 배신당한 눈으로 왜 그런 눈으로 보냐며 억울해함.

 

“형, 아무리 내가 형을 잘 챙겨도 그렇지 탈영까지 할 것 같아?”

“너라면 진짜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없어?”

 

없다고 해도 문제, 있다고 해도 문제라 못 들은 척하면 도은호가 봉구 어깨 잡고 막 흔들면서 자기 섭섭하게 왜 이러냐, 쟤들 보고 똑바로 정정해 달라. 아, 봉구 형. 채봉구! 막 물고 늘어짐. 봉구는 그런 은호 보면서 어딜 하늘 같은 형한테 반말하냐고 혀 차는데 속은 꽤 복잡함. 왜냐면 자기가 도은호 좋아하니까….

애들 말마따나 도은호가 자길 유별나게 챙기는 걸 알긴 하는데 그 감정이 대체 뭔지 모르겠음. 친구들과 종종 여자 취향 한 번씩 얘기하는 걸 봐선 게이는 아닌 것 같은데. 보통 동성끼리 이렇게까지 챙기나.

여러 고민 속에서 할 말을 고르다가 꺼낼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공연히 네가 그러니까 여친이 없는 거다, 한마디 함. 이왕 말 꺼낸 김에 너 그러다 노총각 되어 귀신이 잡아간다고 놀리려고 할 때였음.

 

“내가 여친을 왜 사귀어? 형이 있는데.”

 

뚱한 표정으로 이야기 듣던 도은호가 같이 술잔 기울이는 게이 형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극악무도한 헤테로 발언함. 채봉구 마시던 술이 목에 걸려서 컥컥거리고…. 목 부여잡고서 넌 말을 왜 그렇게 하냐? 지적하는데 도은호는 뭐가 문제인지 모를 거임.

 

“여친은 할 거 없는 애들, 외로운 애들이나 사귀는 거잖아. 형이랑 다니면 지루할 틈이 없는데 내가 여친을 왜 사귀어.”

“누가 보면 대학교 와서 여친 사귄 적 있는 줄 알겠다?”

“만날 거면 만나겠지. 난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안 사귀는 거잖아?”

“어어, 그래. 너 잘났다. 그렇게 잘나서 지금껏 동정이시고….”

“형 미쳤어? 여기서 그 이야기가 나와?”

 

서슴없는 수위 발언에 인상 팍 쓴 도은호 술 닦던 휴지로 형 입 막으려 듦. 채봉구 곧바로 기겁해서 치우라고 막 발버둥 치고 그런 둘을 은호 친구들은 피곤하게 바라봄.

저 둘 또 싸운다. 내버려둬라 저러고 2분 뒤에 쳐다보잖아? 서로 미안했다며 툭툭 건드리고 사과함. 유치원생들도 저것보단 오래 싸울걸. 나이 먹고 같이 유치하게 굴 사람 있는 건 부럽네 등. 한 살 어린놈들이 쏟아내는 말 들은 후에야 정신 차린 봉구가 먼저 알았으니 좀 앉아라, 하고 점잖게 굴면 도은호 같이 소란 피웠는데 왜 혼자 멀쩡한 척하냐 투덜거리면서도 도로 자리에 앉음. 다시 이어진 술자리에 봉구는 꼴깍꼴깍 소주만 마셨음. 도은호가 저렇게 말할 때마다 아닌 척 자꾸 오르는 심박수를 외면하려면 술을 더 들이붓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내가 여친을 왜 사귀어? 형이 있는데.’

 

조금 전 도은호가 한 말이 계속 봉구 머릿속을 울렸음. 무신경한 어조로, 무심한 얼굴로 얘기하는 말이 이렇게까지 뇌리에 맴돌 일인지 모르겠음. 쟤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 분명한데.

내가 어쩌다 헤테로를 좋아하게 돼서….

도은호가 반칙임. 게이도 아니면서 뭐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해? 채봉구는 고등학생 때부터 자기가 남자 좋아한다는 사실 인지했고, 성인이 된 후론 연인이랑 안 좋게 헤어지면서 그 사실을 꽁꽁 숨기고 살았음. 이전 연인과의 이별이 워낙 개판이었던지라 적어도 향후 1년간은 아무도 안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웬걸, 6개월 만에 도은호를 좋아하게 됨. 이게 다 제가 애인이랑 헤어졌던 날,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제 기분이 저조함을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술자리를 펼쳐서 위로해 준 도은호 탓임.

평소에는 깐죽거리던 놈이 그날따라 어쩔 줄 몰라 하며 제 눈치를 보고 위로랍시고 어깨를 끌어안고 괜찮을 거다 어설프게 다독이는데 그 다정이 뭐라고 마음이 흔들렸음. 한 번 흔들린 마음은 변함없는 다정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고작 6개월 만에 백기를 들고 도은호에게 절반 내주게 되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도은호를 좋아하고 있었음. 그러게 친동생도 아니면서 왜 매일같이 저를 찾아다니며 과보호하고, 게이도 아닌데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헝클이고 난리인 건지.

백 명 게이 친구한테 물어보면 백 명 다 도은호가 잘못했다고 할 게 분명했음. 그러나 채봉구는 물어볼 게이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서 혼자 분을 삭여야 했음. 술을 친구 삼아 속내 털어놓듯 마시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은호가 봉구 손목 탁 붙잡음.

 

“형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오늘 왜 이렇게 달려?”

“나? …나 평소에도 이렇게 마셨는데.”

“어이구. 평소 같은 소리 하네. 내가 형을 몰라?”

 

그 말엔 봉구도 멈칫했음. 하필이면 찔리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는데 괜히 자조적인 웃음이 나옴. 늘 저에 대해 다 안다고 자부하는 도은호지만, 정작 도은호는 그를 향한 봉구의 마음을 단 한 순간도 들여다보질 못했음. 제가 도은호를 좋아한 지가 벌써 몇 개월째야. 못해도 반년을 넘었는데 정말 단 한 순간도….

덕분에 안 들켜서 다행이긴 한데, 안 들켰기 때문에 오가는 말들이 한 번씩 힘겨웠음. 지금이 딱 그럼.

 

“모르는 것 같던데?”

“나도 모르면 형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긴 해?”

 

없지. 아무도 없지.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아는 사람도 없고, 가까운 사람 중에 내가 게이인 거 아는 사람도 없고…. 봉구 허탈하게 웃음.

 

“없어 보이더라.”

“…뭐 기분 나쁜 일 있어? 형 아까부터 표정이 묘하게 안 좋은데.”

“한 번씩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변명하며 술잔 기울였더니 은호가 그만 마시라고 말림. 봉구는 답지 않게 고집 한 번 피웠음.

 

“왜 이래?”

“형 지금 주량 넘겼어.”

“나 안 취했는데.”

“그거 취한 사람들이 말하는 단골 멘트인 건 알지?”

“은호야. 넌 예의가 없다.”

“봐. 취했잖아, 형.”

 

둘 분위기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으니 은호 친구들도 점점 눈치 보이기 시작함. 아무래도 더 있다간 소란에 휘말릴 듯해 주섬주섬 짐 챙겨 들고 오늘 이만 파하자고 하는 친구들. 도은호는 친구들 눈치에 고마워하며 고개 한 번 끄덕거림. 주정뱅이는 봉구뿐이었음.

 

“다 가게? 그럼 오늘은 나 혼자 마시지 뭐.”

 

기어코 가게에 더 남아 있겠다는 듯 굴면 은호가 한숨 내쉬며 친구들 보내고 봉구 부축해서 자기 자취방으로 데려감.

그렇게 마시고 싶으면 제 방에서 마시자며.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얼결에 취객이 되어 은호 집 가게 된 봉구는 낯선 집에 들어서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음. 그동안 은호랑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자취방 방문은 처음이었음. 에어컨을 틀어두고 간 건지, 아니면 방 자체가 시원한 건지 한 발 들어서자마자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훅 불어오는데, 덕분에 술이 좀 깸. 그랬더니 평소에는 귀소 본능이 강해 얼마나 취했든 집으로 돌아가겠다 했으면서 오늘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걸 깨달음. 자기도 모르게, 은연중에 은호한테 말려 주거나 너네 집 데려가거나 하라고 티를 낸 것에 가까운 행동이었음.

알고 나니 스스로 기겁하게 됨.

와, 채봉구 뭐 하자는 거냐?

생각할수록 소름 끼쳐 진저리 침. 뒤늦게야 정신줄 붙잡고 나 그냥 집에 가겠다고 말하려는데 쓸데없이 행동이 빠른 은호가 이미 냉장고에서 맥주 네 캔 꺼내왔음.

 

“형. 안주 뭐 먹을 거야? 찜닭?”

“넌 아까 술집에서 그렇게 먹고 안주가 더 들어가?”

“절반 찼어, 절반.”

“…할 거 없으면 먹방 해라. 돈 많이 벌겠네.”

“에이,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아니, 너 그 정도야…. 경탄을 삼킨 봉구는 고민하다가 쭈뼛쭈뼛 남의 집 원룸 거실에 앉음. 원래는 그냥 돌아가려 했는데 도은호가 그새 안주까지 시켜버려서 이젠 무를 수도 없게 됐음.

딱 술만 먹고 가자. 딱 술만. 허튼짓 하지 말고, 허튼 얘기도 하지 말고. 긴장 속에서 점점 술이 깨는 것 같아 멋쩍은 얼굴로 목덜미 쓸어내리고, 괜히 몸 이곳저곳 주무르고 있으면 도은호가 핸드폰 하다 말고 빵 터져 어이없어 함.

 

“뭘 그렇게 어색하게 굴어? 누가 보면 남친 집 들어온 줄 알겠네.”

“야, 넌 말을 좀….”

“좀?”

“…좀 골라서 해라.”

“충분히 고르고 있는 건데.”

 

뭘 충분히 골라? 니 앞에 게이 있다고 미친놈아. 채봉구 어깨만 으쓱이는 은호에게 버럭 호통치고 싶은 거 진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꾹 참았음. 그러나 화 안 내는 건 가능해도 좋아하는 사람 집에서 저런 소리 들으며 맨정신으로 버티는 건 불가능했음. 목이 바짝 타 안주도 오기 전에 맥주 한 캔 따 마시니 은호도 좀 당황함. 오늘따라 저 형 이상하다고 생각함.

평소보다 술도 많이 마셔, 헛소리도 많이 해, 느닷없이 어색한 척해. 저 형은 진짜 이상해지는 타이밍을 못 잡겠네. 왜 잘 가다가 한 번씩 울적해지고 한 번씩 조용해져?

속에 담긴 불만들을 나열하며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 보니 갑자기 서운해짐.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데 아직도 내가 불편한가 싶어서. 채봉구는 도은호가 불편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그의 자취방에서 단둘이 술 마시는 상황 자체가 불편한 것뿐이었는데 은호는 꿈에도 몰랐음.

 

“계속 혼자 마시게? 이따 안주 오면 먹지.”

“목말라서 그래.”

“술을 물처럼 마실 주량도 안 되면서 뭘 물 대신 술 마신대.”

 

투덜거리면서도 물 한 컵 떠다 주는 건 잊지 않았음. 봉구는 그런 배려에 또 설레고…. 이후 빤히 보는 은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더 급하게 술 마신 봉구는 결국 취해버림. 안주도 오기 전에 깡으로 맥주 한 캔 때려 넣더니 서서히 눈 반쯤 풀리는 봉구에 도은호는 황당해 죽을 것 같음.

이럴 거면 2차는 왜 오자 한 거야? 그냥 자기 혼자 마셔도 되겠구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봉구가 자기 혼자 술 마셨다 하면 서운했을 것 같아 제 속을 모르겠다며 한숨 쉬곤 배달 온 찜닭 받으러 가려 함. 그때 봉구가 은호 소매 붙잡음. 그에 은호도 고개 돌려서 봉구 바라봄. 눈짓으로 왜 그러냐 물으니 얼굴 벌게진 봉구가 머뭇거리다가 물음.

“너 진짜 여친 사귈 생각 없어?”

 

은호는 그 질문이 다소 뜬 금없다 생각함. 그래도 답은 해 줘야지 싶어 고개 끄덕인 순간이었음.

 

“왜 없어?”

“…뭐야. 형 진짜 취했어? 아까 얘기했잖아. 연인이 있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고.”

“나 때문에?”

“이걸 형 때문이라 하면 좀 그렇고. 그냥 형도 있고 애들도 있으니까 딱히 연애에 시간 내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어느 정도 나 때문이라는 거잖아.”

 

아, 저 주정뱅이 진짜 취했네. 졸린 눈꺼풀 느릿하게 끔뻑거리면서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는 봉구에 은호 천천히 제 소맷자락 붙잡은 봉구 손 떼어 놓음. 방에 침대 하나인데 형 어디서 재우지. 그래도 손님인데 바닥은 좀 그렇고 그냥 침대에서 재워야겠다. 아, 바닥에서 자면 허리 아픈데. 침대에서 같이 자면 형이 싫어하려나. 애초에 내 체구에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하긴 한가? 아, 아니다 형이 작아서 될 수도… 같은 생각의 너울 속에서 취한 봉구 달래려던 찰나였음.

 

“야 은호야. 너 그럼… 나랑 사귈래?”

“…뭐?”

 

봉구가 갑자기 역대급 헛소리를 함. 어이없던 도은호 반문하며 눈썹 들어 올림. 이 형이 술이 아니라 이상한 약을 마셨나. 그동안 봉구가 취한 모습을 종종 보긴 했지만 이런 소란을 피운 적은 처음이었음. 자기가 알던 형이 아닌 것 같아 얼이 빠져 있으면 봉구가 그 모습 보다가 픽 웃음.

 

“놀라긴. 농담이야, 인마.”

 

말은 그렇게 하는데 뭔가 이상하잖아. 괜히 찝찝하고, 분위기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고. 도은호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자리에 가만 굳어 있음. 채봉구는 그 모습 보고 바보 같다며 혼자 키득키득거리다가 갑자기 혼잣말함.

 

“그러고 있으니까 확실히 동정 티 난다.”

 

아무래도 만취가 분명했음.

이게 무슨 뜬금포 도발이야? 은호 입장에선 자다가 뺨 맞은 격이었음. 제가 뭘 했다고 동정 티가 난대? 기가 막히는데 동정이긴 해서 반박도 못함. 황당하고 분한 심정으로 입만 달싹거리고 있으면 그런 은호 표정 빤히 보던 봉구가 자기 어지럽다고 가까이 좀 와보라고 함. 도은호 밖에 찜닭 식는데… 같은 생각하면서도 일단 형이 시킨 대로 가까이 다가감.

 

“많이 어지러워? 숙취해소제 더 사 올까.”

 

오늘따라 답지 않은 헛소리도 해대는 게 진짜 많이 마시긴 많이 마셨구나 싶어 걱정한 찰나였음. 은호가 봉구 상태 확인한다고 흐트러져 내린 분홍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데 봉구가 불시에 은호 멱살 잡아채더니 그대로 입 맞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도은호 눈도 못 감고 입 살짝 벌어진 채로 봉구 쳐다봄. 자기가 무슨 짓을 당한 건지 인지 못 한 얼굴로.

반면에 아직 제정신이 아닌 봉구는 습관적으로 고개 틀고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 밀어 넣으려다가 느껴지는 숨결에 뒤늦게야 멈칫했음.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움찔거리고 정신이 확 들어서 제가 입 맞춰 놓고 도리어 놀라 눈 크게 뜨고 은호 바라볼 듯. 그렇게 어색한 공기 속에서 시선이 오가고 먼저 떨어진 건 봉구였음.

 

“…아, 이게….”

 

조금씩 정신이 들어 분홍색 입술이 파르르 떨렸음.

 

“…미안.”

충동적으로 한 짓에 경악해 겨우 내뱉은 사과에 은호는 대꾸도 못했음. 그냥 바보처럼, 그리고 석상처럼 굳어 있기만 했음. 봉구는 그게 자기 때문에 너무 충격받아서 그런가 보다 싶어서 너무 미안했고 씁쓸했음. 알긴 알았는데 진짜 헤테로구나 싶어서. 솔직히 아주 살짝은 기대했고 의심했거든. 도은호가 자기랑 같은 게이일지도 아니면 혹시라도 바이일지도 모른다고. 근데 아니었다는 걸 제 정신 나간 실수 덕에 알게 되어 속이 쓰렸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호모포비아가 아닌 게 어디야. 그랬다면 이미 밀쳐져선 엉덩방아나 찧고 있었을 텐데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런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려 해도 위안이 안 됐음. 오히려 더 속 시끄럽기만 할 뿐이었음.

 

“내가 많이 취했나 보다. …돌아갈게.”

 

이대로 더 있으면 야단나겠다 싶어서 자리 털고 일어나려는데 동영상 일시 정지시킨 것처럼 굳어 있던 은호가 뒤늦게서야 봉구 붙잡음. 채봉구는 기가 막혀서 은호 돌아봄. 이 상황에서 네가 날 붙잡으면 안 되는 거지 않냐는 표정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은호는 스스로도 무슨 표정인지 모른 채 횡설수설하듯 입을 열었음.

 

“…지금 가겠다고? 시간 늦었어.”

“택시 있잖아.”

“이 밤에? 요금 많이 나와.”

“돈 많아. 걱정 마.”

“데려다줄게.”

 

그 말이 봉구는 기가 찼음. 방금까지 저한테 키스당한 주제에 데려다준다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화가 났고, 또 자신의 입맞춤이 그렇게까지 별 파급력이 없었나 싶어 짜증이 났음. 무엇보다 도은호의 습관적인 다정함에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또다시 흔들리는 스스로가 싫증이 나서 말이 곱게 나가지 못함.

 

“넌 내가 여자인 줄 아냐?”

“…뭐?”

“너 게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날 여자 대하듯 하니까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너 게이야?”

“내가 왜 게이야?”

 

와중에 자기가 저를 여자 대하듯 했다는 말에는 부정을 안 함. 단순히 게이라는 단어에 꽂혀 신경 쓰지 못하고 넘어간 걸 수도 있겠지만, 봉구한테는 그 선택이 크게 다가왔음. 그래서 입술이 파르르 떨림.

 

“…그럼 은호야. 그러지 좀 마. 그러지 좀 말라고.”

“뭘 그러지 마.”

“착각하게끔 굴지 말라는 소리야.”

 

단호한 대꾸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은호는 표정을 구김. 지금 형이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고, 이 이야기에 왜 게이가 나오는지 모르겠고, 내가 뭘 착각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딱 그런 얼굴에 봉구는 뭘 덧붙이는 것도 우습게 느껴져 그냥 한숨만 삼킴. 됐다 싶어 그냥 돌아서 나가려는데 겨우 침잠한 마음에 도은호가 다시 파문을 일으킴.

 

“어디 가려고. 내가 뭘 착각하게 만들었는지 얘기하고 가. 형 지금 나 바보 취급해?”

 

기분 상했다는 투에 봉구 이성도 툭 끊겼음.

 

“말 똑바로 해. 네가 날 바보 취급하는 거 아니야?”

“뭐?”

“너 나 여자 취급하잖아.”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살면서 처음 들어본 소리에 은호도 답지 않게 말이 험악해지는데 봉구도 물러서지 않았음. 오히려 여태껏 꾹 눌러온 감정이 기폭제가 되듯 터져 나와 말문이 트였음. 문제가 있다면 그게 좋지 않은 방향이었다는 거지만.

 

“네가 나 여자 취급하고 있다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는 거잖아. 내가 언제 형을 여자 취급했어? 그리고, 여자랑 남자랑 다르게 대할 게 있어? 난 안 그래. 난 형을 그냥 형으로 대한 거야.”

“그 말이 모순된다는 생각은 안 하지. 여자 취급이라 해서 그래? 말 정정해 줘? 넌 필요에 따라 나 애인 취급해. 연애할 것도 아니면서, 너 내킬 때 그런다고.”

“내가 언… 하. 아니다. 그냥 가라, 형. 형 진짜 취한 것 같아.”

 

결국 은호가 대화를 포기함. 서로가 점점 언성을 높이고 흥분해 이성적인 대화를 못 하니 이대로 이야기하면 감정만 상할 게 뻔해서 돌려보내려는데 그게 봉구한테는 회피로 느껴졌음.

기껏 말 꺼냈더니 뭐?

뻗친 성질을 못 이기고 은호 멱살 붙잡음. 그대로 눈 치켜뜬 봉구가 은호 노려보며 참았던 말들 토했음. 정확히는 그간 알았으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며 삼켰던 깨달음들이었음.

 

“야. 네가 왜 여자 친구를 안 사귀는 줄 알아?”

“그 얘기가 여기서 또 왜 나와?”

“잔말 말고 들어. 듣고 판단해. 내 말이 맞는지 네 말이 맞는지.”

 

이 악물고서 경고하듯 지껄인 봉구는 그대로 말을 이었음.

“네가 여자 친구를 안 사귀는 건 네 말 따라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니 그러는 거야. 넌 그날그날 필요에 따라 날 친한 형으로, 친구로 대하고 그러다 네가 외로운 날이면 날 여자 친구 비슷한 것쯤으로 취급하거든. 그러니까 애인을 사귈 필요가 없지. 남친 행세하고 싶을 때마다 내 어깨에 팔 걸치고, 데려다준다고 하고, 밤늦게 통화하면서 네 욕구를 채우니까. 내 말이 틀려?”

 

사나운 물음에 은호는 넋이 나갔음. 실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도 잔뜩 일그러짐.

 

“…형은 지금 그걸 정답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야?”

“왜, 아니야?”

“하.”

“한숨 쉬지 말고 반박을 해.”

“어이가 없어서 그래. 어이가 없어서. 형 지금 고작 그거 때문에…. 와, 여태껏 진짜 아무런 말도 안 했으면서 이제 와서 고작 그런 거로 내가 형을 필요할 때마다 애인 취급한다고 얘기하는 거야?”

“너한테나 고작이겠지, 나한테는 고작이 아니야.”

“지금 나랑 장난해? 형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냥 형이 평소에 날 쓰레기로 봐서 그런 거겠지.”

“야, 내가 언제 널 쓰레기로 봤는데? 나는 그냥 니가 하는 행동이―.”

“봐! 형도 기분 나쁜 소릴 왜 나한테 해? 취했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것 같은데 정신 안 차려? 이러는 게 맞아?”

 

봉구가 격앙된 만큼 은호도 격앙됐음. 자기가 봉구 생각해서 한 모든 행동과 걱정이 부정당한 기분에 얼굴 벌게져서 말 끊으니, 봉구는 그 태도가 적반하장이라는 듯 웃음.

 

“그럼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그냥 형 챙긴 거잖아! 그게 싫었으면 진작 얘기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와서 이딴 식으로 얘기하면 챙겨 준 나 등신 만드는 것밖에 더 돼?”

“그러니까 왜 날 그렇게 챙기냐고! 게이 아니라며, 나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굴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드냐고!”

“…….”

 

버럭 소리 지르는 봉구에 은호 덜컥 겁먹은 듯 굳음. 자기가 봉구한테 이만큼 화낸 적도 처음이었지만, 봉구가 저한테 이렇게까지 화낸 적도 처음이었거든. 화가 나서 끝이 갈라지며 소리치는 목소리는 도무지 봉구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낯설어 혀가 굳었음. 숨도 죽이고 있으니 봉구가 머리카락 쓸어올리며 질린다는 눈으로 은호 바라봄.

 

“야, 너 다른 애들도 나처럼 챙겨? 장담컨대 아닐걸. 너 나한테만 그래. 나한테만. 좋아하는 것도, 게이도 아니면서 나한테만 그런다고. 니 친구들한테 나 과시하고 다니면서. 이래도 네가 날 그냥 형으로 취급해? 만만해서 한 번씩 건드려 보는 게 아니고?”

 

치미는 대로 뱉고 나니 심장에 무언가 쿵 떨어지는 듯했음. 도은호 상처 받으라고 심하게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게 자신한테도 상처 되는 말이었고 동시에 외면했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말이었거든.

도은호는 왜 이렇게 저를 챙길까. 게이도 아니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던 수많은 날들에 대한 답이 방금 제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니 도은호만큼 봉구도 제 말에 스스로 상처받았음. 자기가 왜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하냐며, 제겐 형이 있지 않냐 했던 도은호 말에 무작정 설레기보단 속이 복잡했던 게. 무언가 찝찝하고 불쾌했던 게. 짜증날 만큼 속이 상했던 게 이래서였던 거임. 자신은 알게 모르게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던 거였음.

서로가 충격받아서 아무런 말도 못 한 채로 시간만 흐름. 쥐 죽은 듯 고요한 자취방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 탁, 탁 들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 한숨 내쉰 봉구가 허탈한 심경에 비틀거림.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으려고 하니 은호가 반사적으로 봉구 잡기 위해 손을 뻗음. 봉구는 순간 소름끼치는 감각에 자기도 모르게 은호 손 내쳤음.

탁, 소리 나며 허공으로 날아간 손에 봉구도 놀라고 은호도 놀람. 서로가 바짝 긴장하고 굳은 채 시선을 교환하고 있음. 그 상태로 또 지옥 같은 침묵이 오갔다가 봉구가 먼저 정신 차림.

 

“…미안. 네 말대로 내가 취했나 보다.”

“형.”

“먼저 간다. 안 나와도 되니까 나오지 마.”

 

부탁이다. 시선을 내리깔고 덧붙인 말에 따라 나오려 했던 은호도 더 나오지 못하고 자리에 멈춰버림. 봉구는 한 번 더 미안하다 얘기하고 도망치듯 은호 집 빠져나옴. 온몸을 가득 잠식했던 취기는 차오른 열기에 휘발된 지 오래였음.

미친놈. 미친 새끼. 니가 이러고도 사람이냐. 등신같이.

봉구는 타닥, 길을 내달리면서 직전의 일을 복기했음. 생각할수록 제가 한 짓이 미친 짓 같고 도은호한테 못할 말 했다 싶어 뛰다 말고 머리카락 엄청 헝클였다가, 소리 질렀다가, 제 뺨 한 대 쳤다가 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다스리려 함. 그렇지만 요동치는 감정은 겨우 그런 거로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종국엔 치미는 수치심과 설움을 참지 못하고 길가에 쪼그려 앉았음. 나잇값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게 분하고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음.

진짜 좆같아. 진짜 좆같다고.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울 것 같은 감정을 씹어 삼키고 있으려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화들이 그걸 방해했음. 제가 뱉은 말들이 고스란히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상황이라 눈 질끈 감고 머리 쥐어뜯음. 제발 귓가에서 울리는 제 목소리가 멈췄으면 좋겠는데 메아리치는 자신의 음성은 악질 환청이 되어 뺨을 때려도 때려도 사라지질 않았음.

 

“미친 새끼야, 제발….”

 

괴로워할수록 자신이 도은호한테 멋대로 키스하고 당황한 이에게 적반하장으로 화내던 순간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음. 자격에도 없는 일갈을 날리고 도망치듯 뛰쳐나온 장면도.

생각해 보면 도은호가 그리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내 감정을 못 이겨서 무덤을 팠구나.

우울한 깨달음 속에서 지독하게 후회함. 진짜 술이 원수지. 이렇게까지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애초에 도은호의 집을 가면 안 됐어. 내가 왜 거길 가서…. 하씨, 도은호 성격에 엄청 놀랐을 텐데 또 뭐라고 하냐.

고통 가득한 후회하는데 돌연 도은호랑 입 맞춘 장면이 눈치도 없이 뇌내에서 선명히 재생됐음. 개판이었던 분위기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쁘지 않았음. 맞닿았던 입술의 촉감도 당연히….

봉구 조금 멍한 표정으로 제 입술 매만짐. 워낙 사고 치고 나온 탓에 짧긴 했지만, 도은호랑 입술 한 번은 비벼 봤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남. 이럴 줄 알았으면 미친 척 혀라도 넣어 볼걸.

미친 새끼.

개소리하는 제 뺨 한 대 내리치고 스스로의 손지껌에 붉어진 얼굴을 한 채로 다시 한숨 푹 쉼. 내일부터 도은호 얼굴 어떻게 보나 싶어서 핸드폰 꺼내 들고 ‘미안하다, 실수였다, 다 내 잘못이니까 잊어라, 내 말 신경 쓰지 말고 푹 자라.’ 그렇게 보내려다 너무 구질구질한 것 같고 괜히 문자로 증거를 남겨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듯해 고민하다 폰 전원 꺼버림.

 

“…모른 척할까.”

 

개새끼 같겠지만 술에 만취한 척, 그래서 필름 끊긴 척, 그런 척하면 안 되려나.

무책임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음. 모른 척하는 게 아니고서야 도은호를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깊은 고민 끝에 이렇게 된 거 그냥 죽어보자 싶어 집에 가는 길, 편의점 들러 소주 산 채봉구. 택시서 내려 집에 도착한 뒤로 밤새도록 술 마시다가 진짜 필름 끊겨서 잠들고 난 다음 날, 책상에 엎드려 잔 까닭에 끔찍한 허리통증과 함께 눈 떴다가 단번에 불행해졌음.

소원대로 필름이 끊기긴 끊겼는데 그게 집에 온 이후였거든. 정작 잊길 바랐던 도은호 집에서 있던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났음. 그걸 알게 되니 아, 내가 도은호 집에서 부린 행패는 취해서 한 게 아니라 그냥 취기를 빌려서 개수작 좀 부린 거였구나, 취기를 방패 삼아 불평하고 싶었던 거였구나, 자각함. 덕분에 채봉구는 스스로의 저열함에 치가 떨려 아침부터 술이 고파졌음.

그러나 자체 휴강하기엔 학점이 신경 쓰였으므로 꾸역꾸역 온갖 충동을 삼키고 씻은 뒤 강의 들으러 감. 그리고 점심때 어김없이 도은호와 마주치게 되는데 얼굴 보면 어제 왜 그랬냐고 뭐라 할 줄 알았던 도은호, 의외로 아무런 말도 안 함. 대신 평소와 다르게 굴긴 했음. 눈 마주치니까 굳은 채로 멈춰 서 입을 다무는 식으로.

그에 도은호 친구들이 오히려 당황함.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 팔꿈치로 툭툭 은호 건드리니 그제야 봉구 보면서 애매하게 웃고 형 점심 먹었냐고 물어보는 은호. 근데 그 문장이 ‘형 점심 먹었어요?’라서 봉구도 은호 눈치 볼 수밖에 없었음.

평소에는 그렇게 숨 쉬듯 반말하던 놈이 마치 선 긋는 것처럼 존댓말 하잖아. 아무래도 어제 일 기억하고 있다는 뜻임.

봉구는 망설이다가 표정 위로 드러나는 감정 싹 걷어내고 웃은 채 은호 친구들 따라 은호 어깨 툭툭 두드림.

 

“오늘은 웬일로 안 치근덕대냐? 맞다, 은호야. 어제 나 집에 네가 데려다 줬냐? 술집에서 필름 끊긴 후로 기억이 안 나던데.”

“헐. 형님 그때 필름 끊겼어요? 어쩐지 그날따라 과음하시더라니.”

 

채봉구의 연기는 어색했지만, 다행히도 눈치 없는 도은호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어찌저찌 필름 끊긴 척할 수 있었음. 도은호 반응 보려고 힐끔 눈동자 굴려 살피니 진짜 황당하다는 듯, 세상 충격받은 얼굴로 입 떡 벌리고 있던 도은호 한참 뒤에야 어버버 입을 엶.

 

“…필름 끊겼다고요?”

“어? …어. 왜 뭔 일 있었어?”

“어제 저희 집 왔던 거 기억 안 나요?”

“니네 집을 갔다고? 내가?”

“와, 형….”

 

철판 깔고 모른 척하니 도은호가 굳은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 했다가 결국 한숨 쉬고 관둠. 채봉구 양심 콕콕 찔려 눈물 날 지경이지만 애써 외면하고서 왜 그러냐, 제가 어제 실수했냐, 진짜 기억이 안 난다, 많이 잘못했냐? 미안하다, 뭔진 몰라도 내가 밥 사 주겠다 막 그럼. 봉구가 그러니까 은호 친구들도 덩달아서 봉구 편들어줌.

 

“야,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심각한 거 아니면 좀 풀어라. 형님이 저렇게 사과하는데.”

 

심각한 일이긴 했음. 그렇지만 제 편들어주는 게 고마워서 채봉구 눈짓으로 고맙다고 막 깜빡거림. 그걸 본 도은호 갑자기 얼굴 확 구겨지더니 떨어지라며 제게 달라붙은 친구들 쳐내고선 한숨 내쉼.

 

“진짜 기억 안 나요?”

“…어.”

“…그런 거면 말아요.”

“어?”

 

진짜 이렇게 넘어간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제 일이 그렇게 컸는데 겨우 기억 안 난다는 말 하나 믿고서? 혹시 나 손절당한 건가. 아닌데. 도은호 은근히 칼 같아서 손절하면 아는 척도 안 하는데….

생각할수록 이상함. 제가 한 수작질이긴 했지만 얘 너무 쉬운 녀석 아닌가 싶어졌음. 그래도 일단 좋은 게 좋은 거겠거니 싶어서 은호 눈치 보다가 지갑 꺼냄. 사과 받아준 기념으로 밥 사 주겠다고, 너랑 친구들 먹고 싶은 거 고르라 하니 은호 친구들 무슨 구세주 만난 것처럼 눈 빛내면서 봉구 찬양하고 난리 났음. 신이 난 무리 중 기분 나빠 보이는 건 은호뿐임.

 

“사과 받아준 건 전데 쟤네가 뭘 했다고 사줘요?”

“어?”

“괜히 이상한 데서 돈 자랑 하지 말고 저나 맛있는 거 사 줘요. 이 앞에 칼국수 집 하나 생긴 건 알아요? 우리 바지락 칼국수 먹으러 가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봉구 잡아끌고 감. 채봉구 손목 붙들린 채 어어? 하고 은호랑 은호 친구들 번갈아 보다가 질질 끌려감. 뿌리치려고 하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는 힘이긴 했는데 양심에 찔리는 구석이 너무 많아 도은호가 하는 행동에 반대하고 싶지 않았음. 애초에 도은호가 자길 배려해서 약하게 잡은 걸 알고 있기에 더 뿌리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고.

물론 도은호 친구들은 황당함에 뒤집어졌음. 어이없어하며 우르르 뛰어와 네가 뭔데 우리 봉구 형님 뺏어가냐고, 이기적인 새끼 니만 밥 얻어먹냐, 엄청 화냄. 친구 무리가 폭동 일으키듯 소리치며 달려오니 도은호는 혀 차고 진짜 이상한 놈들이라며 봉구한테 제 친구 흉봄. 꼭 동의라도 구하듯 안 그래요? 물어보는데 채봉구 뭐라 말하는 게 정답일지 몰라 대답 못 함. 혹시 여기다 대고 그러게, 했다가 형이 왜 제 친구 욕하냐고 화내면 어떡해? 가뜩이나 이것저것 죄지은 게 많은 형국이었으니 웬만하면 조용히 있고 싶었음. 도은호는 그런 봉구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눈살 찌푸림.

 

“저보다 쟤네가 더 좋아요?”

“뭐?”

“아닌 거면 뛰어요. 빨리.”

 

서운한 티 내며 그리 얘기한 은호가 갑자기 뜀박질의 속도를 높임. 운동하는 애가 엄청 빨리 뛰기 시작하니 손목 잡혀 있던 봉구도 덩달아 다급해졌음. 숨이 헉헉 차는데도 멈추지 않는 달리기에 협조해 도주하니 그런 봉구랑 은호를 도은호 친구 무리가 성이 나 추격함. 그럼 도은호는 속도를 더 높이고…. 이건 뭐 대학교 한복판에서 분노의 질주 한 편 찍음.

겨우 따돌리고 가게 앞 도착해 가쁜 숨 몰아쉼. 진짜 1분만 더 뛰었으면 심정지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지하게 얘기하니 도은호가 빵 터져 형 그런 거로 죽을 거였으면 세상 사람들 다 죽어서 귀신 천지일 거라 얘기함. 하필이면 예시가 또 귀신이라서 봉구는 넌 비유가 왜 그러냐 지적하고…. 그러다 눈이 마주쳐 서로를 바라봄. 아까의 어색한 분위기가 다 거짓이었던 것처럼 도은호가 눈꼬리 살짝 찢어 웃음.

 

“그래도 뛰니까 후련하네.”

 

괜히 사람 긴장시켰던 존댓말도 어느새 반말로 돌아와 있었음. 그제야 긴장 풀고 안도한 채봉구, 은호 따라 너털웃음 흘리며 반성함.

거봐. 이렇게 사이좋았는데 내가 괜히 욕심내고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이도 저도 아닌 관계가 될 뻔했잖아. 경솔하게 굴지 좀 말자.

봉구가 은호를 성애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은호 자체가 좋은 사람이긴 했음. 그를 제 생에서 배제하고 싶지 않아 전과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자 마음먹은 봉구가 은호 챙기고 가게 들어서려던 순간이었음.

 

“근데 형.”

 

불현듯 들려온 부름에 봉구 걸음이 멈춤. 영문을 묻듯 돌아보니 잠시 주저하던 은호가 목이 타는 건지, 마른 입술 혀로 축이다가 대뜸 물음.

 

“형 혹시 동성애 해요?”

 

하고. 봉구의 머릿속을 단숨에 새하얗게 만드는 물음이었음.

 

“…뭐?”

“아. 저 호모포비아 뭐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그냥… 그냥 형 게이인가 해서요.”

 

오해하지 말라며 덧붙인 은호가 다시 한 번 집요하게 물어봄. 채봉구 등에 식은땀 나는 거 느끼며 애써 황당한 표정 지음. 머릿속에선 비상벨 울리고 난리 났음.

간신히 태연한 척 아니라고 하는데 도은호는 별로 믿는 눈치가 아니었음. 채봉구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려다가 관둠. 왜 그렇게 생각하냐니. 나라도 알고 지내던 형이 갑자기 입술 비비더니 착각하게 만들지 말라 화내고 니가 나 애인 취급한다고 억울해하면 당연히 게이로 의심하겠다.

물었다간 제 무덤 파는 꼴이었음.

 

“진짜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속고만 살았나. 이럴 때는 또 왜 존댓말이야?”

“…예의 지키려고요.”

“얼씨구.”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려고 노력했지만 먹고 있는 바지락 칼국수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음. 체할 것 같아서 먹다 말고 먹다 말고 하자 도은호가 오늘 왜 이렇게 못 먹냐고 핀잔하더니 봉구 칼국수까지 다 먹어 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체한 봉구는 은호가 사준 소화제 입에 물게 됨. 봉구는 계산하고 있는 은호 등 바라보며 복잡한 머릿속 정리함.

정말 이대로 된 건가? 아, 괜히 게이 아니라고 했나. 하지만 게이라고 했다가 영원히 꺼지라고 하면 어떡해. 그게 제일 최악인데….

도은호가 의심하는 거 보니까 자꾸 불안해졌음. 폭풍 전야를 앞둔 기분이었고 초마다 피가 자글자글 끓는 것 같아서 가슴팍 콩콩 치고 있으면 도은호가 많이 체했냐며 마시는 소화제 한 병 더 손에 쥐여 줌.

 

“얼마 먹지도 않았으면서 체하네. 두 그릇 먹은 나는 멀쩡한데.”

“그건 네가 이상한 거야.”

“형이 너무 적게 먹는 거겠지. 아무튼 형, 진짜 아닌 거지?”

 

이제 그만 물어보는 건가 싶어 방심했더니 그 잠깐을 못 참고 또 물어봄. 봉구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음. 조금 울컥해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소리치니까 약국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봉구 쳐다봄. 집중된 시선에 부끄러워진 봉구는 고개 숙이고서 아니라고 몇 번 말하냐 앓듯이 부정함. 도은호도 자기가 너무 집요하게 굴었나 싶어서 사과함.

 

“미안. 내가 궁금한 걸 잘 못 참잖아. 그래서 계속 물어봤나 봐.”

멋쩍어하며 건넨 사과에 괜찮다 답하고 나면 그놈의 게이 질문도 끝나리라 생각했음. 순간적으로 망각했던 거지. 도은호가 한 번 뭔가에 꽂히면 자기 성이 풀릴 때까지 그걸 파헤쳐야 만족하는, 이상한 완벽주의 기질이 있다는걸.

도은호는 그날 이후로도 봉구한테 잊을 만하면 계속 게이냐고 물어봤음. 봉구는 아니라고 계속 부정했는데도 안 내켜서 그런 건지 뭔지 믿지 못함. 오죽했으면 에타에 아는 형이 게이인 것 같은데 자꾸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 떠봐야 하냐는 글까지 올렸다가 삭제함. 채봉구는 에타 이런 거 안 하는 편이라 그런 글 올라온 줄도 몰랐고 그냥 집요한 도은호에 지쳐 하루하루 기가 빨리는 중이었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게이라고 인정할걸.

도은호가 봉구한테 달라붙어 형 게이야? 물어본 지도 벌써 한 달째임. 이젠 잘 때조차 귓가에서 은호 목소리로 형 게이야? 하고 물어보는 게 들릴 지경이었음. 정신 나가기 딱 좋을 상태에 한 달 하고도 보름을 시달리던 봉구는 결국 솔직해지기로 결심함. 계속 거짓말하며 양심의 가책 1톤 끌어안고 불면 속에서 사는 것보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진지한 대화 나누는 게 나을 것 같았음.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뜻대로 굴러가는 건 아님. 아침부터 오늘이야말로 도은호한테 사실대로 얘기해서 양심의 가책에서도 해방되고, 밤잠 못 이루게 하는 형 게이야? 질문에서도 해방되리라 결심하며 집을 나선 날, 봉구에게 불청객이 찾아옴.

얼굴만 얕게 알았던 사람들이 야, 누가 너 찾던데? 같은 말 들어도 저 찾을 사람이 어딨나 싶어 신경 안 썼던 봉구는 은호 만나러 체육관 갔다가 불청객과 조우함. 오랜만에 보는 뜻밖의 얼굴에 봉구는 곧바로 창백해짐. 반면에 여기저기 봉구를 수소문하며 찾아다녔다가 체육관에 자주 출몰한다는 소식 듣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불청객은 반갑다며 사르르 웃음.

“봉구야.”

 

다정다감하게 부르며 다가오는 새끼는 봉구 전 남친이었음. 그것도 더럽게 헤어졌던. 헤어지게 된 이유가 전 애인이 바람 사실 때문이었는데 이 새끼는 남자랑 피워도 천인이 공노할 노릇인데 여자랑 피웠음. 헤테로 아니고 게이라고 했으면서. 봉구가 은호를 짝사랑하며 유달리 힘들었던 이유도 저 새끼 때문이었음. 게이도 여자랑 바람나는 판국에 헤테로라고 다르겠나 싶었거든. 그래서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실패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단 말임. 근데 저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든 놈이 당당하게 찾아오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음. 그런데 전 애인은 아닌가 봄.

 

“나 안 보고 싶었어?”

 

이딴 말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봐줄 만한 게 얼굴밖에 없어서 그런가. 웬 화려하게 생긴 사람이랑 봉구가 대화하고 있으니 다들 누구인지 궁금해서 주변을 기웃거림. 그게 너무 끔찍해서 표정 굳힌 봉구는 전 애인더러 당장 가라고 함.

 

“여길 어디라고 와? 미쳤어?”

“왜 연락 안 받아. 계속 연락했는데.”

“니 같으면 받겠냐?”

“그날 일은 내가 미안하다 했잖아. 봉구야, 나 너 못 잊겠어. 밤마다 계속 네 생각이 나.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 줄 순 없는 거야?”

 

바람은 자기가 피웠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어이없는 와중 쓸데없이 큰 목소리가 신경 쓰였음.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여 바로 인상 쓰고 조용히 하라 신호 주는데 전 애인은 동요도 안 하고 계속 얘기함. 일부러 그러는 거였음.

자기 입 닥치게 하고 싶으면 얌전히 자기 요구 들어달라는 아웃팅 협박 시위. 봉구도 그걸 알고 있었으니 마음이 고울 수 없었음.

내가 왜 이런 놈이랑 사귀었나 싶어서 20살 초반, 사람 보는 눈 더럽게 없던 자신을 혐오하게 됨. 그런데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음. 이런 새끼 좋아하다가 도은호를 좋아하게 된 건 진짜 큰 행운이었으니까. 비록 사귀진 못했어도 남자 보는 눈은 좀 생긴 거 아니야. 그런 생각에 피식 웃고서 전 애인한테 한 발 다가감. 그다음 전 애인 멱살 붙잡고서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겨서 눈 마주치고 목소리 낮췄음.

 

“입 안 닥치냐? 너 나 아웃팅 하려고 왔어?”

“우리 사귈 때 좋았잖아.”

“그래. 너 혼자 좋았지. 앞에선 나 만나고 뒤에선 여자 만나느라.”

 

짓이기듯 속삭였더니 전 애인이 대놓고 서운한 표정 지음.

 

“그땐 실수였다고 얘기했잖아. 나 봐, 봉구야. 나 이제 정말 너밖에 없어. 연락처도 다 정리했어.”

 

그러면서 핸드폰 화면 보여주는데 진짜 연락처 목록에 봉구 전화번호 딱 하나 있었음. 그게 조작된 거든 진심이든 봉구는 오히려 더 역겨웠음. 진짜 미친놈 같았으니까.

질린다는 얼굴로 질색하니 전 애인이 눈웃음 침. 한때는 저 웃음을 정말 좋아했는데 이젠 추잡하게만 보여 봉구 속 울렁거리는 거 꾹 참고서 전 애인 노려봄. 당장 안 꺼지냐고 욕하는데 전 애인은 오히려 기고만장함.

 

“나 이대로 보내도 괜찮겠어?”

“어.”

“내가 잡혀 주는 거 이게 마지막일 거야.”

“애초에 잡을 생각도 없었으니 지랄 그만하고 꺼져라, 좀.”

“그래? …이젠 다른 사람들한테 게이라는 거 들켜도 괜찮나 봐. 옛날엔 엄청 신경 쓰더니. 많이 달라졌다, 너.”

“…….”

 

협박성 짙은 속삭임에 으득 이가 갈림. 이제야 자기 이대로 보내도 괜찮겠냐는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음. 게이란 거 만천하에 밝혀지기 싫으면 잡혀 줄 때 잡으라는 얘기잖아. 거기에 제 감정은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음. 오직 강요만 있을 뿐이었지.

봉구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어 두 눈에 핏발이 바짝 섬. 더는 안 되겠음. 일단 패야 속이 풀릴 것 같아 주먹을 움켜쥔 찰나였음.

저 멀리서 누군가 엄청 급하게 달려오더라니 대뜸 봉구와 대치 중이던 전 애인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음. 그에 봉구 눈 커지고 전 애인은 갑작스러운 봉변에 정신 못 차리고 휘청거리다가 엎어짐. 그 한 방에 입술이 터졌는지 입술에 피도 묻어나 있었음.

 

“무슨….”

 

전 애인 놈은 살면서 이런 펀치는 처음 맞아본단 얼굴로 자기 때린 놈 쳐다봤음. 봉구도 덩달아 시선 올리는데 예상도 못 한 얼굴이 시선 끝에 놓여서 화들짝 놀람.

남들의 이목을 끄는 은발 머리, 붉은 눈동자, 훤칠한 키, 넓은 어깨…. 저거 다 도은호잖아!

경악해서 전 애인이고 뭐고 은호한테 달려가 그 팔뚝 낚아챔.

 

“야, 너 미쳤어?”

 

체육 한다는 애가 사람 때리면 어떡해. 물론 도은호가 무슨 선수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일로 도은호 인생에 불이익이 있을까 싶어 걱정됐음. 그런 봉구 속 아는지 모르는지 도은호는 열이 바짝 올라 계속 봉구 전 애인한테 달려들려 함. 봉구가 그 작은 몸으로 얼싸안고 막아야 겨우 말릴 수 있을 만큼 흥분한 상태였음.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호통치니 입 안쪽 볼살 물어뜯은 은호 시선이 한참 만에 봉구에게 떨어짐.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붉게 보이는 게 아직 진정한 건 아닌 것 같았음. 봉구는 은호 손목 꽉 잡아 눌렀음. 혹시라도 또 달려들어 팰까 싶어서. 이 와중에 전 애인 새끼는 하남자의 극치를 보여주려는 건지, 그새 튀어 저 멀리 도망치고 있었음.

와 저 쓰레기 새끼.

다리는 또 더럽게 빠름. 언제 저기까지 튀었나 싶어 기가 찬 눈으로 보고 있으니 봉구 따라 도망치는 남자 뒷모습 보던 은호가 으르렁거림.

 

“저 새끼 뭐야?”

“설명할 테니까 일단 진정부터 해라. 어? 너 지금 주먹 쥐었다. 그거로 사람 패면 살인 미수야, 인마!”

“됐고 저 새끼 뭐냐고. 뭐길래 형 이야기가 에타에 더럽게 올라와.”

“…뭐?”

“형 게이였어?”

“…….”

 

불쑥 치고 들어온 질문에 봉구 눈동자가 전 애인 만났을 때보다 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함. 아무리 자기가 에타를 안 하는 편이라 하더라도 저 말의 맥락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눈치 없진 않았음. 아무래도 에타에 자기랑 전 애인 이야기가 올라오면서 저를 게이라 칭한 놈들이 있는 것 같은데 도은호는 그걸 본 모양임. 거기까지 생각하니 반사적으로 입이 다물림. 지난 한 달 반 동안 은호한테 시달리면서 학습된 침묵이었음.

그러나 이번엔 침묵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 도은호도 더는 저 정적에, 봉구의 부정에 그런가 하고 눈 돌릴 생각이 없었음. 애초에 에타에 게이 치정 싸움 열린 것 같단 글 보고 달려온 순간부터 채봉구가 무어라 부정하든 믿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대신 은호는 실망감을 느껴 봉구 바라봄.

 

“내가 물어봤을 땐 아니라며.”

 

서운하다 못해 모멸감까지 느끼는 듯한 타박에 봉구는 할 말이 없었음. 은호가 저런 반응 보이는 게 자기가 그를 속여서인 것도 있지만 게이라서 기분 나쁜 탓도 있을 거라 미안하다고 사과하니 머리카락 쓸어 넘기면서 뭘 보냐는 듯 주위 사람 휙휙 노려봐 구경꾼들 쫓아낸 은호, 할 말이 많은 눈으로 분홍 형 내려다봄. 이때 은호 머릿속에선 온갖 과거 일이 떠오르고 있었음.

시작은 문제의 그날. 채봉구가 제 자취방에 와서 남의 입술 훔쳐 간 것이었고 그다음엔 그와 나눈 대화였으며, 어느 순간부턴 봉구가 나온 꿈으로 넘어갔음. 거기까지 떠오르니 은호 얼굴이 붉어짐. 봉구는 화 나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음.

 

“…그래서 형 진짜 게이라고?”

“…미안. 오늘 말해줄 생각이었어.”

 

정말이야. 나직하게 덧붙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은호 눈치 봄. 게이 형 싫으니까 꺼지라고 하면 오늘만큼은 순순히 꺼져 줘야겠다, 그런 생각이나 하던 때였음.

돌연 도은호가 눈물 뚝 떨어트림.

 

“어어?”

 

채봉구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어서 당황함. 제가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헛것을 보나 싶었는데 아니었음. 눈물 떨구다가 아씨 하며 손목으로 눈가 닦는 도은호는 봉구 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음. 환상이 아닌 실체로서.

게이라는 게 알려지고 나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수만 가지 정도 상상했으나 이런 장면은 정말로 단 한 순간도 해 본 적 없던 봉구는 뻣뻣하게 굳어버림. 울고 싶은 건 자신인데 도은호가 왜 우나 싶어 골이 울렸음. 근데 그런 상황과 감정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눈꺼풀만 끔뻑거리고 있으면 계속 짜증난다며 눈두덩이 비벼 닦던 은호가 벌게진 눈으로 봉구 보며 코 훌쩍임.

 

“왜 말 안 해줬어?”

“…뭘?”

“왜 게이 아니라고 속였냐고. 난 형이 하도 부정하길래 진짜 아닌 줄 알았다고. 그렇게까지 부정하면 보통 믿게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서 난 진짜인 줄 알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상당히 분한 얼굴로 말 더듬던 은호, 물에 젖어 축축한 얼굴 마구 쓸어내리더니 자리 좀 옮기자고 지쳐 죽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함. 도은호가 지친 건 처음 보는지라 사고가 정지된 봉구는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일단 은호 부탁 따라줬음. 그렇게 인적 드문 곳으로 자리 옮겨서 대화 나누는데 도은호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말들이 봉구한테는 뜻밖이었음.

 

“나 형 좋아해.”

“뭐?”

“내가 형 좋아한다고. 아씨. 난 형이 게이인 줄 몰랐고, 그냥 나 혼자 게이 된 줄 알고 진짜 심란했는데….”

“…….”

“매일 잠도 못 자고 고민했어. 그러다가 큰 결심 끝에 인정한 건데 형이 게이라고? 진짜 돌겠네. 누구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

“몰라. 아니, 사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갑자기 게이가 되는 건 이상하잖아. 분명 형이 꼬신 건데…. 근데 형은 게이가 아니라고 하니 난 내가 진짜 자연 게이인 줄 알고 그동안 얼마나….

 

혼잣말인지 대화인지 고해인지 모를 열거를 들으며 봉구는 멍했음. 뒤늦게야 시발 저게 뭔 소리야. 그럼 자연 게이 따로 있고 인공 게이 따로 있냐? 같은 대꾸가 떠오르고 그걸 입 밖으로 내뱉으려던 순간 은호 말이 이해됐음. 자신을 좋아한다는 그 말이.

그러니까 지금, 쟤가 울기까지 하며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그 대상이 나라고?

덕분에 머리 다시 굳음. 로봇처럼 삐걱대며 입술 달싹이기를 무한 반복하는데 불현듯 옆이 조용해졌음. 쉬지 않고 떠들던 목소리가 사라져 어색하게 고개 돌리자 은호가 봉구를 빤히 보고 있음. 놀란 봉구가 시선 피하는데 도은호는 그걸 봐줄 생각이 없었음.

 

“나 피하지 말고 똑바로 봐. 이제 보니 황당하고 수상하네. 형, 형 그날 필름 끊겼단 것도 거짓말이지.”

 

회피하지 못하게 말로 봉구를 속박시킨 은호는 제 버릇대로 끈질기게 물었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더 숨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봉구는 한참 만에 고개 끄덕임. 그러다가 조금은 억울해서 한마디 덧붙임.

 

“그래도 필름 끊겼다는 건 진짜야. 너희 집이 아니라 내 집에서 끊긴 거긴 하지만.”

“형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냥 그랬다고.”

 

공연히 한마디 해봤다가 본전도 못 찾았음. 도은호, 자기를 무려 한 달 반이나 속인 사기극에 어이없어하다가 눈 불만 가득하게 뜬 채로 자기 책임지라고 함. 마른 침마저 잘못 삼키게 하는 터무니없는 요구에 침으로 사레들린 봉구 혼자 엄청 콜록거림.

 

“쿨럭! 아 컥, 아니… 큼. 야, 뭐, 뭐라고?”

 

당황해서 되물었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음.

 

“나 책임지라고.”

“아니, 책임을 뭘 져. 내가 왜….”

“나 게이 된 거 형 때문이잖아.”

“야, 그게 왜 내 탓이야?”

“뽀뽀하면서 꼬셨잖아.”

“…….”

“키스도 하려 했잖아 나랑.”

“미수였거든?”

“아 어쨌든 혀 섞으려고 했잖아. 왜 자꾸 발뺌해? 그거 때문에 난 형이랑 키스하는 꿈까지 꿨다고!”

 

키스하는 꿈까지 꿨다고! 키스하는 꿈까지 꿨다고! 키스하는 꿈까지…. 메아리치는 소리에 봉구는 얼이 빠졌고 은호는 얼굴이 붉어짐. 아니 이게 왜 메아리치는 건데. 자기가 말해 놓고 부끄러워서 당황하는 연하, 목 매만지며 쑥스러워하더니 또 예의 그 불퉁한 표정하고 봉구 노려봄. 봉구는 또 뭐가 문제인가 싶었음.

궁금한데 묻고 싶진 않음. 도은호가 입만 열었다 하면 폭탄 발언이 터지는 중이었으니까…. 제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도 지금이 한계라 더 묻지 않으려 하는데 도은호가 누구임? 뭘 안 물어봐도 입이 간질거리는 걸 참지 못해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려는 말 많은 연하임. 결국 또 지옥의 주둥아리가 열리고 말았음.

 

“그래서 나 책임질 생각 없다 이거네?”

“꼭 없다는 건 아니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봉구가 즉시 대꾸했으나 소용없었음.

 

“형은 나 책임질 생각도 없으면서 키스한 거네. 원래 그렇게 아무나 붙잡고 키스해? 와… 채봉구 엄청 발랑 까졌네.”

“야!”

 

당치도 않은 모함에 언성이 높아진 봉구는 은호가 씩 웃는 거 보고서야 자기가 도발에 넘어갔다는 거 깨달았음. 진짜 어쩌다가 얠 좋아해선. 두통이 이는 머리에 관자놀이 꾹 누름. 진짜 골때린다 싶은데 백기를 흔드는 것 외엔 도은호의 오해를 막을 방도가 없었음. 사실상 오해가 아닌 당당한 왜곡이었지만 어쩌겠음? 원래 이런 건 죄가 많은 쪽이 맞춰 줘야 함.

 

“그래서, 뭐 어떻게 책임지면 되는데.”

 

생떼에 못 이겨 졌다는 듯 말하자 도은호가 말갛게 웃음. 그에 봉구는 도은호를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음. 사납게 생긴 듯해 양아치구나 싶어 거리를 두려 할 때 딱 저런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가 너무 순수하고 귀여워서 잊을 수 없었거든. 아, 얘가 나쁜 애는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고 도은호와 친해져도 괜찮겠단 판단이 들게 한 미소였음. 그때의 미소를 지금 와서 다시 보게 되니 기분이 이상함.

꼭 운명 같다는,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이 들었음. 이상하게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어색하게 굴고 있으니 도은호가 본론을 꺼냄.

 

“저랑 만나요, 형.”

“뭐?”

“연애하자고요, 나랑.”

“…….”

“설마 거절할 건 아니죠? 형 나 좋아하잖아.”

 

다른 때는 눈치 더럽게 없는 것처럼 굴었으면서 이럴 때는 또 눈치 백단이었음. 발뺌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입 꾹 닫아버리자, 도은호가 회심의 수를 꺼내 들었음. 자취방에서 있던 일을 얘기하는 거였는데 그날의 사건은 봉구에겐 끔찍했던 흑역사라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음. 결국 아아아악! 거리며 은호 입 틀어막은 봉구가 항복함.

 

“알겠어, 알겠어, 알겠다고! 너랑 사귈 테니 말 좀 그만해라. 어? 사귀자. 사귀자고. 연애해!”

 

버럭 성내며 얘기하는 것이 고백인지 결투 선언인지 모르겠는데 도은호는 그것마저 좋다고 헤실헤실 웃음. 그러곤 봉구 손 살짝 잡더니 사과함. 뜬금없는 사과에 왜 이러나 싶었는데 한 번 더 의외의 해명이 들렸음.

 

“그날 형이 그랬잖아. 내가 형 연인처럼 취급했다고.”

“…그거 그냥 내 말실수니까 좀 잊어라.”

“아니. 그거 말실수 아니야, 형. 그날 형 그렇게 가고 나서 고민해 봤는데 형 말 틀린 거 하나 없더라. 난 그냥, …그냥 잘 몰랐어. 남자가 남자 좋아하고 이런 게 되는 건지. 모르니까 내 나름대로 형을 대했던 건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형 좋아한 거였어.

“…뭐?”

“좋아해서 그랬나 봐, 그때부터.”

“…….”

“미안. 나 너무, 좀… 애 같아서 싫나?”

 

머뭇거리던 도은호가 조심스럽게 물어봄. 진짜 애 같아서 싫어하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훤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봉구 입장에선 황당할 일이었음. 아까까진 그렇게 사람 골려 놓고, 협박 아닌 협박하고 생떼 부려댔으면서 막상 어린 애 같아서 싫냐고 묻는 건 어른스러운 척을 하고 난 후라니. 어이없잖아.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 모습이 싫은 건 아니었음.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새삼 깨닫게 됨.

 

“이러니까 내가 널 좋아하게 된 거야.”

 

하고. 문제는 그걸 생각으로만 한다는 걸 그만 입 밖으로 뱉어버린 데 있었음.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어 다급히 은호 쳐다봤음. 아니라고, 말 잘못 나왔다고 정정하려는데 이미 늦음. 연하 애인 눈은 반짝거릴 대로 반짝거리고 있었음. 정말이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 뭔가 오해하는 것 같다. 그리 얘기하려 했지만 안 통함. 이미 ‘이러니까 내가 널 좋아하게 된 거야.’가 돌림 노래로 흘러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는 도은호는 실실 웃기 바빴음.

 

“아… 채봉구 나 너무 좋아하네. 하긴 그래. 내가 솔로로 살기엔 너무 매력적이긴 하지.”

“아니야.”

“근데 형은 내가 뭐 때문에 좋았던 거야? 아, 뭐 하나 콕 집어서 얘기하기엔 내가 너무 완벽한가?”

“아니라고.”

“아니긴. 아! 어제 찾아본 건데 애인이 너무 애처럼 굴면 오래 못 간대. 나 형이랑 사귀다가 결혼할 건데 일찍 헤어지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그냥 형이라 부르지 말고 이름 부를까? 채봉구. 봉구. 우리 봉구 이렇게. 아님 자기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라고! 어우. 그놈의 입, 입, 입!”

 

진짜 넌더리 나는 잘난 척이었음. 안 그래도 평소에 자기 잘난 맛에 열심히 사는 놈인데 얼결에 고백까지 해버렸으니 어깨가 하늘로 솟구친 지 오래임. 진짜 실언했다 싶어 낭패란 얼굴인 봉구, 결국 봉구는 그날 은호 옆에 종일 붙어 도은호의 잘난 척을 들어줘야만 했음.

그렇게 기고만장해진 연하 애인 온정일 끼고 다니며 기 다 뺏긴 채봉구, 너덜너덜해진 채로 귀가해 씻고 침대에 누움. 그 상태로 익숙한 천장 올려다보며 하루 일 복기해 보니 안 믿기는 것들이 너무 많았음.

일단 개 지랄맞은 전 애인이 학교에 찾아온 것도 그랬고, 그런 놈을 도은호가 대신 패줬다는 사실도 안 믿겼으며, 도은호가 저 좋다며 울었던 것도, 자신이 그에게 고백한 것도, 그러다 종내 사귀게 된 것까지 전부 믿어지지 않았음.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지금 제가 있는 곳이 현실이 맞는지 고민하는데 배 위에 얹어 두었던 핸드폰이 까톡 울리며 알람을 보냄. 슬그머니 폰 들어 확인해 봤더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은호 연락이었음. 피식 웃은 봉구가 연락 창 들어가 보니 은호가 보낸 까톡이 그대로 떠 있음.

 

-형ㅋㅋㅋ 우리 커플링 이거 맞출까요?

-(링크)

 

링크 아래에 미리보기 이미지가 떴는데 웬 해골 반지였음.

미친 새끼인가.

질린 얼굴로 핸드폰 창 응시하던 봉구, 설마 진심인가 싶어 고민하다가 해골 반지 디자인 자세히 확인함. 이리 보고 저리 살펴도 취향이 아니라 인상 찌푸리는데 별안간 현실감이 훅, 밀려와 웃음이 나왔음. 집에 오는 순간까지 도은호랑 사귄다는 사실이 실감 안 났는데 이런 괴상망측한 톡을 받고서야 현실감이 든다는 게 우스웠음.

내가 진짜 도은호랑 사귀긴 하나 보다. 이런 개 초딩 같은 연락도 받아보고.

은호가 들었다면 노발대발하며 펄쩍 뛸 속마음이었지만, 들을 사람도 없었으므로 마음껏 생각하기로 하며 후련하게 답장 보냄.

 

-존나 싫어

 

꽤 말랑해진 마음과 달리 카톡은 철벽같았음. 아무리 도은호가 좋아도 해골 반지 커플링은 진짜 아니었거든. 그러자 도은호한테 거의 1초 만에 답장이 옴. 왜 싫냐는 카톡과 함께 강아지가 우는 이모티콘 보내는 연하에 꾸준히 답장 보내면서 채봉구 자기도 모르게 계속 웃음. 입으로는 유치하다 어쩐다 말하면서도 답장 보내는 속도가 느려진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음. 그렇게 두 사람의 연락은 밤이 깊을 때까지 끊어지질 않고 결국 전화까지 하게 됨.

그로부터 한 달 뒤, 에타에 둘에 대한 글이 올라옴. ‘예쁘기로 유명한 그 선배 착한 줄 알았더니 도은호한테 날라차기 날리더라’ 같은 글로 두 사람이 잘 다니고 있다는 증거였음.

비록 만날 때마다 싸우고 대화만 나눴다 하면 서로 으르렁대는 바람에 사람들로부터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의견이 분분하긴 했지만, 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연인이고 앞으로도 오랜 연인으로 함께 지내게 될 거임. 어떨 때는 도은호가 허스키처럼 굴고, 어떨 때는 봉구가 말티즈처럼 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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