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클리어

퍼펙트클리어 1

SSS급 게이트 (1)

글에서 언급된 지역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네이버 지도 검색하면서 씀.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중학교 부근 게이트 B등급 측정되었습니다. 게이트 높이 3.2미터 그린 등급입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논현역 부근 게이트 S등급 측정되었으며 게이트 높이 23.4미터 레드 등급입니다. 규제에 따라 S급 전투 센티넬 1인 이상, A급 전투 센티넬 4인 이상, B급 강화계열과 치유계열 센티넬 각각 3인 이상 필수 구성입니다. 도심이니만큼 48시간 이내 투입 가능하도록⋯.

천안시 게이트 등급 측정 됐습니까?

아직입니다!

넓직한 스크린을 가득 채운 대한민국 지도 위로 빨간 점들이 점멸했다. 바쁘게 통화 중인 팀원들을 뒤로한 채 모니터 앞에 팔짱을 끼고 선 남자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이번 달에만 벌써 S급 게이트가 3개⋯.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남자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박주원 부장님 계십니까!!!"

다급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서류철을 품에 안고 달려오는 여성이 남성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무슨 일 있습니까?"

"허억, 천안, 천안시 게이트 말입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여성이 내민 서류철을 받아서 든 부장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이거, 측정 확실하게 된 겁니까?"

"헉, 네, 방금, 후우⋯ 방금 2차 측정까지 완료했습니다. 확실합니다."

어떡하죠...?

부장은 끼고 있던 안경을 벗고 손바닥으로 맨얼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피곤함에 찌든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제가 협회장님께 가보죠. 고생했습니다."

숨을 고르던 여성은 부장의 말에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빠르게 상황실을 나섰다. 모니터 앞에 우뚝 선 부장은 다시 안경을 쓰고 서류를 들여봤다.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게이트 SSS등급 측정 완료. 깊은 한숨을 내쉰 부장이 방금 전 여자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지나 상황실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 가장 꼭대기 층인 27층을 누른 부장은 표시등 속 높아지는 숫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세상이 망할 때가 되긴 했지⋯.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 부장의 속도 모르는 엘리베이터가 경쾌한 알림음을 냈다.

27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네, SSS급 게이트도 열리네요.

PERFECT CLEAR

01

천안시 게이트 활성화 D-5

27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앞에 앉아있던 비서가 벌떡 일어나 김민규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방긋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은 김민규가 물었다. 협회장님 계시죠? 네, 안에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아 돌린 김민규는 거대한 문을 쉽게 밀어 열었다.

"김민규 씨는 노크도 모릅니까?"

"에이, 우리 사이에 뭘."

익숙한 듯 집무실에 들어서 소파에 앉자 코웃음을 친 협회장이 보던 업무를 잠시 멈추곤 자리에서 일어나 김민규의 맞은 편 소파에 등을 기대 앉았다.

"일 할 때는 상사로 대해."

"엄마는 24시간 내내 시달리는 아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하나도 안 불쌍하네요."

이민정 협회장은 소파에 기댔던 몸을 숙여 탁자 위에 있는 컵을 들어 올렸다. 왜 그렇게 심통난 표정이야? 적당히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김민규의 얼굴을 살피자 안 그래도 구겨져 있던 표정이 더욱 구겨진다.

"나 가이드 안 데려가면 안 돼?"

"될 것 같니."

"아니, 어차피 다른 사람들 가이드도 갈 거고 방사도 충분할 텐데 굳이 데려가야 해?"

김민규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린 협회장이 컵을 내려놓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서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책장 앞에 선 협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가봤자 방해만 될 것 같다고. 안 그래도 힘들 텐데 걔 때문에 더,"

"한국에 최초로 등장한 47미터 높이의 SS등급 게이트. S급 센티넬 5명을 선두로 페어 가이드 5인을 포함해 총 43인이 게이트 클리어에 나섰다."

책장에서 파일철 하나를 뽑아 든 이민정이 그것을 펼쳐 김민규의 말을 끊고는 천천히 적힌 것을 읽어 내려갔다.

"S등급 게이트의 평균 클리어 인원은 12명. 터무니 없이 많은 인원이 배정되었지만 이견은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크기의 거대한 게이트가 주는 공포심이 승리한 것이다. "

차분한 목소리로 기사를 읽던 이민정이 말을 멈추곤 고개를 들어 김민규를 주시했다. 이 게이트에서 몇 명이 살아나왔을까? 김민규는 대답하지 못했다.

"26명."

"..."

"그 게이트 안에서만 17명이 죽었어."

김민규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민정은 고개를 가볍게 두어번 저어내고는 파일철을 닫아 제자리에 꽂아두곤 자리로 와 앉았다. 컵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탁자에 내려두고 김민규 쪽으로 몸을 숙인 이민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민규 센티넬은 게이트에 놀러 갑니까?"

"..."

"그때 대한민국에 S급 센티넬은 단 10명 뿐이었고, 그중에 3명을 잃었지. 게이트 안에서 전사한 사람은 한 명이었지만, 페어 가이드가 셋이나 죽는 바람에 매칭률 높은 가이드를 찾기도 전에 두 명이 폭주했거든."

말을 마친 이민정은 어두워진 김민규의 표정을 한 번 살핀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가이드를 어떻게 두고 가. 당장 네가 폭주해서 이성 잃고 아군 공격하기 시작하면 싹 전멸할 텐데. 모르는 거 아니지?"

"..."

"이번 게이트만 잘 해결해보자. 일단 살아서 돌아와야 가이드를 바꿔주든 할 거 아니야."

"알았어..."

"아들을 사지로 내몰고 싶은 엄마가 어디에 있겠어. 그렇지만 이게 우리의 직업이잖아."

상체를 기울인 이민정이 손을 뻗어 무릎 위에 올려진 김민규의 손등을 덮었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해낼 거라고 믿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강한 센티넬이잖아. 힘을 주어 손을 꽉 잡자 김민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훈련하러 가보십쇼. 투입 날 봅시다."

위풍당당했던 태도는 사라지고 기가 죽어 어깨가 축 처진 채 집무실을 나서는 김민규의 뒷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이민정은 김민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이 닫히고 나서야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어휴.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앉아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킨 이민정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협회장의 책상에 산처럼 쌓인 것은 모두 68년 전 SS 등급 게이트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는 서류들이었다.

천안시 게이트 활성화 D-2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초비상 사태였다. 68년 전 1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강원도 게이트보다 두려운 SSS등급 게이트의 등장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서 발생했던 8개의 SSS등급 게이트 중에서도 가장 큰 크기의 천안시 게이트는 그 높이만 무려 104미터로, 발생 일주일 만에 등급 측정에 성공한 유례없는 초대형 게이트였다.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기 이틀 전인 오늘, 최종 투입 명단이 발표되었다.

스크린 속 명단을 바라보는 이지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김민규와 나란히 적힌 제 이름 밑으로 수 많은 이름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천안시 게이트 로스터는 S급 센티넬 6인과 가이드 10인을 포함하여 총 62명으로 SSS등급 게이트에 맞지 않는 단출한 인원이었다. 강원도 게이트에 투입된 인원과 비교하여도 최대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S급 센티넬은 단 한 명 증원되었을 뿐이었다. 그게 김민규니까 다들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걔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지훈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지훈의 사적인 감상과는 달리 김민규는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능력이 출중한 센티넬이었다. 어디 출중하다 뿐이겠는가? 최연소 각성자, 역대급 천재, 괴물, 폭주 시 한국멸망 이 모든 게 김민규를 칭하는 말이었다. 얼음이라는 그의 능력은 한계가 분명했지만, 어린 나이부터 받아온 수준 높은 교육과 성장을 향한 노력이 그 천장을 더욱 높여주었다. 이런 역대급 괴물 센티넬, 대한민국의 기적이자 축복인 김민규를 이렇게까지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도 이지훈이 유일했다.

명단을 빤히 바라보던 이지훈은 딩동 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에는 훈련실로 향하는 센티넬과 가이드가 가득했다. 모두 천안시 게이트 클리어에 투입되는 사람들이었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입을 다물고 있던 이지훈은 지하 3층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훈련실은 평범한 방처럼 보였지만, 센티넬의 능력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밀실이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센티넬도 있다고 했던가⋯. 양옆으로 네모난 문이 가득한 좁은 복도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지훈은 문들이 빽빽한 이 복도를 지날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곳에 영영 갇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긴 복도를 지나 특수 훈련실이라고 적힌 문 앞에 도착한 이지훈은 긴 한숨을 쉬었다.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심사가 뒤틀렸다. 특수 훈련실 혼자서 처 쓰는 건 시발, 마음에 들래도 들지가 않네. 속으로 특수 훈련실을 혼자 사용하는 대상을 향해 다채로운 욕을 퍼붓고 나서야 흰 손이 문고리 위에 놓아졌다. 문을 벌컥 열자 빠르게 날아온 얼음조각 하나가 이지훈의 얼굴 바로 옆 벽에 꽂혔다.

"늦으셨네요."

"일부로 던졌습니까?"

"그럴 리가."

"김민규 씨의 컨트롤 능력이 처참한 수준이라고 언론에 제보라도 해야겠네요."

싸늘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서로 죽일 듯 쏘아보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둘 사이에 끼어있었다면 1초도 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을 살벌함이었다. 이 살 떨리는 기 싸움을 먼저 끝낸 건 의외로 이지훈이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듯 굳은 표정을 한 이지훈은 제복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곤 훈련실 안쪽으로 이어져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특수 훈련실은 방 안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존재했다. 벽을 절반으로 나누어 위쪽은 유리로 되어있었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조작이 가능한 장치들이 있었다. 작은 방에 들어선 이지훈은 익숙하다는 듯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통해 이지훈을 바라보던 김민규도 이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민규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얼음은 단단한 방패가 되기도, 기다란 창이 되기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이 되기도 했다. 전투 상대를 찾지 못해 공중에서 쪼개진 얼음들은 순식간에 파편이 되어 사라졌다.

차가워진 손을 감싸 쥐며 잠시 숨을 고른 김민규는 곧 공중으로 발을 내디뎠다. 빙계 능력은 바람이나 물에 비해 컨트롤이 어려운 편이었다. 원하는 형태로 구현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얼음의 강도도 약해져 손쉽게 깨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공중전이나 속도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김민규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 중인 방법 중 하나가 공기 중의 수증기를 순간적으로 끌어모아 얼음으로 된 발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

하지만 내디딘 발에 힘을 주자마자 부서져 버린 발판 탓에 휘청거리며 착지한 김민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만 제대로 성공하면 기동성이 확 올라갈 텐데, 집중력이 부족한 건지 원래 불가능한 건지 좀처럼 잘 되질 않았다. 근 한 달 동안 발판을 만드는 것에만 몰두했지만 딱히 나아지는 게 없어 김민규의 신경은 매우 날카로운 상태였다. 그렇게 86번째 발판이 부서졌을 때, 별안간 훈련실의 모든 조명이 꺼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조작실을 쳐다보자 방금까지 이지훈이 보였던 유리창도 어느새 새까맣게 가려져 있었다.

"파이팅 해보십쇼."

훈련실의 스피커와 이어진 마이크에 대고 말한 이지훈이 마이크의 전원을 끄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너 시발 진짜 뒤질래? 유리창 너머로 욕설을 내뱉는 김민규의 입 모양이 선명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지훈은 휴대폰을 들어 SNS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A급 몬스터 떼에 둘러싸여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김민규와 한가하게 웹서핑을 즐기고 있는 이지훈의 모습이 상반됐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차례차례 처치해나가던 김민규는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 이번 게이트 클리어만 성공하면, 꼭 이지훈을 제 손으로 죽이겠노라고.

천안시 게이트 활성화 30분 전

김민규 씨 인터뷰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이민정 협회장님! 이번 게이트 클리어 소요 시간 얼마나 예상하십니까?

김민규 센티넬의 페어 가이드는⋯.

"시발 게이트 놀러 왔나⋯."

차량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이지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거대한 게이트 앞으로 몰린 인파는 마치 시장통을 연상케 했다. 김민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사람이 붐볐다. 그곳이 설령 SSS등급 게이트 앞이라고 해도 말이다. 다리를 꼬고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지훈의 표정은 어쩐지 화가 난 듯 보였다.

게이트라는 건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었다. 당장 68년 전에만 해도 소중한 인재들을 잔뜩 잃어놓고, 무서운 줄 모르고 저 새까만 균열 앞에 서서 마이크를 들이미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이지훈에게는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자기들은 최후방이라는 거지. 죽어나는 건 센티넬이고. 삐딱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천안시 게이트 클리어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지만 이지훈의 컨디션은 가히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던 건지 자꾸만 악몽을 꾸는 바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설상가상으로 아침부터 김민규와 얼굴을 마주하고 먹은 밥이 그대로 얹혀 결국 먹은 것을 모조리 게워내야만 했다. 쓰레기 같은 몸 상태 덕분에 기자들의 마이크와 카메라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다지 이득은 아니었다. 이지훈은 당장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팔짱을 낀 팔을 풀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이지훈이 등을 쭉 펴고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새까맣고 거대한 게이트가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거나 살거나 둘 중에 하나. 사람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이니 설령 저 게이트 안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억울할 건 없었다. 거기까지 살 운명이었겠거니. 이토록 무덤덤한 이지훈에게도 딱 하나, 기피하고 싶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저 새끼 죽기 전엔 절대 안 죽는다."

김민규보다 먼저 죽는 것. 참으로 대단한 경쟁심이었다.

게이트 활성화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뒤로 물렸다. 센티넬과 가이드들은 열을 맞추어 서서 각자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죽으러 가는 듯 비장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앞열에서 김민규와 나란히 서게 된 이지훈은 철저하게 무표정이었고, 반대로 김민규는 긴장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은 듯 시종일관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하지만 김민규의 웃는 얼굴 뒤에는 큰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센티넬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할 만큼 강력한 능력을 가진 건 사실이었지만, 또 그 수식어 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김민규를 짓눌렀다. 내가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과 폭주라도 하게 되면 모두를 다치게 할 것 같다는 불안에 갇힌 나날을 지내왔기에 그 책임은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청심환이라도 먹을 걸 그랬나. 밥 먹듯 오가는 게 S등급 게이트건만, 막상 거대한 게이트 앞에 서니 그 경험들이 모두 쓸데없이 느껴졌다.

"야, 지랄하지 말고 손 떨지 마. 정신 사나우니까."

불안정한 김민규의 정신에 이지훈의 말이 깊게 꽂혔다.

"왜 시비야?"

"니 손 달달 떠는 것 때문에 나까지 집중력 떨어진다고."

"지랄도 가지가지 하네 진짜⋯."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던 이지훈이 눈동자만 굴려 김민규를 노려봤다. 분주하게 앞을 오가던 연구원 한 명이 게이트 앞에 서서 크게 소리쳤다. 게이트 활성화 10초 전입니다!

"저번처럼 컨디션 관리 개좆같이해서 손 잡아 달라고 징징대기만 해봐. 찢어 죽여버릴 거니까."

"너야말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방해나 되지 마."

5, 4⋯.

"방해는 무슨. 처맞고 골골대는 게 누군데."

"제발 좀 닥쳐."

3, 2⋯ 참, 둘이 무슨 사이라고 말 했던가.

"나 없으면 뒤지는 건 너야."

서로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김민규와 이지훈은.

"너 없어도 안 뒤져. 잘난 가이드 존나 많거든."

"그래라 그럼. 이번 게이트에서 방사도 안 할 테니까."

무려 매칭률 82%를 자랑하는.

"니 가이딩 받으나 마나 티도 안 나 어차피."

"알겠으니까. 알아서 해보라고."

협회 공식 페어 센티넬과 가이드였다.

"둘 중에 하나는 죽어서 나오자 그냥."

"자살도 존나 창의적으로 하네."

게이트 활성화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부터 게이트가 녹색으로 변하기 전까지 일반인 분들의 접근이 금지됩니다. 통행에 주의하여 주시고 게이트 입구는 위험하니 연구 관계자 외 이동을 삼가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립니다! 지금 이 시점부터 게이트가 녹색으로⋯.

천안시 게이트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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