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고 연상에게 꼬장부리는 연하
20231127
“혀어엉…… 그렇게 예쁘지 마요……”
얘가 술을 뇌로 마셨나. 지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 학과에서 회식이 있다 하여 지금부터 다섯 시간 전, 4지훈은 민규를 배웅한 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민규가 참여하는 회식은 늘 1차로만 끝나지 않았던 까닭에 오랜만에 일찍 자보려 10시쯤 침대에 누웠다.
머리맡에 충전기를 꼽아두었던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어대 깼더니, 화면에는 ‘밍구’ 딱 두 글자가 찍혀 있었다. 회식에서 아무리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고 적당히 끊던 민규였다. 본인이 늦으면 지훈이 일찍 잘 것을 알았다. 다시 지훈의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조용히 들어와 씻고 혼자 곤히 자는 지훈을 끌어안고 잠드는 게 일상이었을 텐데. 비몽사몽 하여 잔뜩 잠긴 목소리로 통화버튼을 누르니 스피커에서 누가 봐도 취한 듯한 민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혀엉!
─네가 받지 말고 나한테 달라고!
─뭐? 네가 뭔데 우리 지후니형이랑 통화하겠다는 거야!
스마트폰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같은 학과 동기라던 친구의 목소리와 민규의 목소리가 난잡하게 뒤섞였다. 뭐야? 지훈은 여전히 시간이 흘러가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자세를 바꿨다. 나한테 전화한 거 맞지? 싸한 기분이 금방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외치기에 침대 밖으로 나와 다시 귓가에 스피커를 댔다.
─아오…… 형, 죄송해요. 혹시 주무셨어요?
스피커 너머로 핸드폰을 내놓으라고 버럭 소리치는 민규를 애써 무시한 채 친구와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전자시계가 가리킨 시각은 새벽 2시. 지금까지 마신 걸 보면 오늘은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지훈은 잠에서 깨려 물 한잔 마신 후 느긋하게 옷장으로 발걸음 옮겼다.
“어, 아냐. 무슨 일인데.”
─지금 민규 데리러 오실 수 있어요? 민규가…… 아, 진짜 통화하잖아!
─혀엉, 그 새끼랑 대화하지 말고 나랑 대화해! 딴 남자랑 말 섞지 마!
개판이구먼. 지훈은 잠시 멀어진 소리에 한숨을 쉬며 옷장 문을 열었다. 어깨와 귀 사이에 스마트폰을 낀 채 적당히 두툼한 옷을 꺼내 팔을 꿰었다.
“주소 문자로 좀 보내줄래?”
─감사합니다. 금방 보내드릴게요!
들어가라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뚝 끊어진 전화에 지훈은 다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민규의 번호로 온 문자에는 상세한 주소가 찍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 택시를 타고 2차로 추정되는 회식 장소에 가보니, 인원 중 절반은 알코올에 절여진 모양이었다. 무의식으로 잔에 술을 채우고 채우기 무섭게 짠를 치고 그대로 입으로 술을 털어 넣는 모습은 정말이지 기이했다. 지훈은 쓰고 온 캡모자를 푹 눌러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성인 남녀 10명이 테이블 두 개를 길게 붙여 앉아 있었고, 남학생 무리 속에 익숙한 머리가 보였다.
“김민규.”
테이블로 다가가며 이름을 부르자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휙 돌렸던 민규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취한 걸음으로 지훈에게 다가온 민규는 그대로 지훈을 와락 끌어안았다.
“혀엉! 왜 이렇게 늦었어여…… 왜 아까 저 새끼랑만 대화한 거야. 형 애인은 난데에!”
“어우, 진짜. 얼마나 마신 거야.”
“쬐끔?”
입을 벌리고 헤헤 웃자 알코올 향이 진동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머리 하나는 작은 지훈에게 엉겨붙어 얼굴을 비비적대는 모습에 무사히 연락을 주었던 친구가 민규의 짐을 챙겨주었다.
집에서 타고 왔던 택시는 요금을 지급하고 금방 나오겠다 하여 잡아둔 채였다. 안 그래도 산만한 덩치가 술로 제정신이 아니게 되자, 지훈은 겨우겨우 민규를 가게에서 빼낼 수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민규를 택시 안으로 던지듯 밀어 넣고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했다. 평소에도 달라붙긴 하지만, 오늘은 알코올 탓에 자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쯤 하면 떨어져야겠지 라는 사고판단이 되지 않아 자기가 좋을 대로 들러붙고만 있으니 지훈에게 가해지는 중력이 두 배로 늘어나 버렸다. 무거우니까 떨어지라고 하면 세상을 잃은 것처럼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것 같은 얼굴로 혀엉…… 부르기에 지훈은 떼어두는 걸 포기해버렸다.
떨어지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건지 도어락을 꾹꾹 누를 때까지 민규는 1mm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벗자 익숙한 공간이라 그런지 금세 떨어져 옷걸이에 겉옷을 걸고 소파에 가방을 던져두고는 그대로 지훈의 침실로 들어갔다. 지훈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민규는 침대 위에 천장을 바라보며 대자로 뻗어있었다.
“그냥 눕지 말고 옷 갈아입고 씻어 임마.”
“으응.”
대답하는 건지 그냥 앓는 소리를 낸 건지 모르게 웅얼거리더니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침대에서 나와 씻으러 들어가지도, 다시 침대에 눕지도 않고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지훈은 퍽 당황했다. 쟤 왜 저래?
“형……너…………마……”
“뭐?”
“혀어엉……그렇게 예쁘지 마요……”
얼마나 취했나 싶었는데 정말 돌아버린 모양이었다. 지훈은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끔뻑이다가 “뭐?”하고 민규에게 다시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예뻐요…… 자꾸 예뻐져서 오니까 이상한 애들이 꼬이잖아요. 아까도 형 오니까 어, 다들 형 보고 있고…… 이런 모습 나만 봐야 하는데……”
예쁘기는 개뿔이. 지훈은 겨우 그 말을 삼켜낼 수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머리는 집에 굴러다니던 고무줄로 대충 하나로 묶었다. 발등을 아슬아슬하게 덮는 검은색 바지에 대충 꺼내입은 검은 반소매 티셔츠. 거기에 대충 걸친 후드집업과 대충 눌러쓴 검은색 볼캡. 누가 봐도 집에서 급하게 나온 모양새로 데리러 갔건만 헛소리도 자유분방했다. 게다가 다 같이 회식하는 자리에 누군가 찾아가면 당연히 그것으로 시선이 쏠릴 거 아닌가. 술에 취해서 당연한 걸 생각하지 못하는 건지 본심이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할 말이 헛소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이 갔다.
“형…… 집밖에 안 나오면 안돼요? 내가 다 할 테니까 나만 기다려줘요…… 나올 거면 그만 예쁘던가……”
“야, 저번에 제발 집구석에 있지만 말고 나가라 했던 게 너거든?”
“그건 형 건강이 걱정되니까. 아 왜 내 맘도 몰라주는데.”
1초 단위로 표정이 바뀌는 얼굴이 제법 재미있었다. 저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알코올 냄새 맡고 나도 취했나 보다.
“나 안 예쁘니까 얼른 씻고 자라. 내일 후회하지 말고.”
“누가 그래, 우리 형이 안 예쁘다고 그래?! 세상에서 형이 제일 예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지훈의 양 볼을 잡고 조물조물했다. 잔뜩 화가 난 기색으로 다가오더니 몇 번인가 말랑한 볼을 만지고 표정이 사르륵 풀어졌다. 그대로 말도 없이 지훈을 빤히 바라보다가 허리를 잔뜩 굽혀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짧은 순간이긴 했으나, 아직도 입안 가득한 알코올 향이 코를 찔러 지훈은 민규의 손을 잡고 떼려 애썼다.
“이것 좀 놔!”
“나랑 뽀뽀 안 해요? 이지훈, 이제 내가 싫어???”
“너 술냄새 난다고!”
“술냄새 안 나면 뽀뽀해주나?”
“그래, 그럴 테니까 좀 놔라.”
오늘따라 정신이 없다. 취할 거면 곱게 취하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게다가 이 흐름이면 분명 양치하고 와서 입술을 비벼댈 게 뻔했다.
“나 금방 갔다 올게.”
민규는 알겠다는 지훈의 허락 아닌 허락에 다시 한 번 입술에 입을 맞추고 흐느적대며 욕실로 들어갔다. 오늘 잠은 다 잤다. 지훈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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