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더게] 트위터 썰 백업(2018년~2019년)
1. 핸드폰
최윤 핸드폰 어쩌다 박살나서 길영이랑 화평이 '이때다!!!' 싶어서 그를 끌고 대리점 가서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고 바로 1번, 2번으로 번호 등록하는거 보고싶다. 화평이 1번, 길영이 2번. 그리고 카톡도 바로 깔아서 계정 만들고 단톡방 개설한다. 이럴 땐 죽이 잘 맞는 길영이랑 화평이도 좋아.
2. 기적
기적이 일어나서 그 날, 그 바다에서 아무도 죽지 않았고 박일도가 사라졌다면으로 시작하는 세 사람 이야기도 보고싶다. 모든 일의 진실은 길영만 알고 있는데 윤이랑 화평에겐 입도 벙긋 안 하지만 두 사람도 다른 무언가에 의해 살아남았단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그런 거 보고싶다.
3. 세 사람의 시간
길영, 윤, 화평 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같은 아파트에 같은 동, 같은 층인데 서로 옆 집이었으면 좋겠어. 길영은 혼자 살고, 윤이랑 화평이 같이 사는데 항상 밥을 윤이랑 화평 네에서 먹는 길영이라 그냥 잠만 자는 곳이고, 그래도 화평이나 윤이 길영 집도 청소해주고 해서 사람이 사는구나 생각은 들정도라 가끔 고형사 놀러오면 신기해하겠지. 그러다가 윤이 길영 집 치우고 있는거나 화평이 장 봐서 길영 냉장고 채워두는 거 어쩌다 보게 되고 그럼 그렇지 하게 되는 고형사.
세 사람 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걸 같이 하려고 주말이든 평일이든 시간이 맞으면 어디든 가는거 보고싶다. 셋 다 가보지 못 했거나, 해보지 못했던 일들, 먹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같이 해보는데 길영은 범죄는 주말에도 쉬지 않는 날이 많아서 주로 윤이랑 화평이 같이 다닐 거 같지만 그래도 셋이서 다니려고 했으면.
4. 아이돌 au
길영최윤화평 이렇게 셋이 혼성그룹으로 데뷔했는데 최윤화평최윤 연성 존잘님이 길영인거로 뭔가 보고싶다... :Q 사실 같은 느낌으로 유명인데 실화 기반인 게 많고....
셋이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는데 그 곳이 양신부가 하는 나눔의 집이었고 세 사람은 찰떡같이 붙어다니면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음. 양신부는 '애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지요, 허허' 하기만 해서 셋이서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다니겠지. 행동파 길영을 필두로 그를 따라 막 나가는 화평, 둘을 말릴거 같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최윤.
그렇게 셋이서 계속 지내다가 박홍주 눈에 띄는거지. 셋 다 반짝이는데 각자 매력도 있어서 어떻게 잘 꾸미면 될 것 같아서 양신부에게 자기에게 애들을 맡겨달라해. 헌데 바로 허락해줄줄 알았던 양신부가 의외로 애들에게 먼저 허락을 받으라하지. 그러면 허락하겠다고 그래서 박홍주 사람 구워삶는 건 자신이 있었기에 자신만만하게 애들에게 다가갔어.
허나 셋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떤 사탕발림으로 꼬드기려해도 묵묵부답, 저들끼리 이야기하는데 박홍주 속 터지지 눈앞에 원석이 있는데 못 쓰니까! 그러다 뜬금없이 화평이,
"셋이 계속 지낼 수 있음 생각해볼게요."
하는거야! 빛이 보이는 듯 했지! 그래서 박홍주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지금처럼 셋이 지낼 수 있게 해주겠다, 약속해. 그걸 어떻게 믿냐는 길영의 말에 바로 양신부 찾아가서 서약을 하지.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로 저를 보는 길영과 최윤 때문에 속이 타는데 화평이 셋이 계속 지낼 수 있다니까 하겠다 해. 그래서 자연스레 길영과 윤이랑도 하겠다 하겠지.
그렇게 길영최윤화평을 어떻게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홍주가 돌아가자 양신부가 아이들을 불러 앉히고 미안하단 듯 바라봐.
"미안하다. 내 힘이 있으면 너희들을 여기 더 붙잡아뒀을텐데."
말인즉슨 셋이 이제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떠나야했었거든. 그 중 길영이 나이가 더 많아 먼저 떠나야했는데 최윤이랑 화평이 자기들도 따라가겠다 길길이 날뛴거야. 양신부는 그런 셋을 최대한 더 품고자 했는데 나눔의 집 예산이 문제였어. 도움의 손길은 줄어드는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계속 늘어났으니까. 그래서 더 오래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 양신부는 미안한 마음이 컸어.
처음 아이들을 데려왔을 때 그의 다짐을 지키지 못 하게 된거니까. 셋을 그들의 부모 대신해 부모가 되어주고 세상에서 지켜줄 울타리가 되어주겠다 했었거든. 그런 양신부를 세 아이가 모를리가 없어. 그가 얼마나 그들을 위해 애써 주었고, 사랑을 주었고, 지켜주었는지. 그들은 다 기억하거든. 그래서 셋은 서로를 보다 씩 웃어.
"괜찮아요, 양신부님. 여긴 언제까지고 저희들의 집이니까요."
"맞아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우린 이제 몸이 커져서 잠시 집을 나가는거뿐이에요."
"미안해하지마세요, 신부님. 앞으로도 저희들 곁에 계실거잖아요."
세 아이들의 말에 양신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혀. 여즉 어리게만 봤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훌쩍 자란게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고갤 끄덕이며 고맙다, 고마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밖에 없었지.
5. 안예은 - 파아란
그 바다에 잠기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하는 화평. 하지만 지금 그는, 윤은, 길영은, 세 사람은 할 수 있는게 없었지. 화평은 박일도의 관이 되어 바닷 속에 가라앉을거고, 윤과 길영은 살아남아 화평을 찾겠지. 다시 한 번 더 시작한다고 해도.
6. 어떤 날
매운거 먹는 구마즈 보고싶다.. 셋 다 일진 안 좋아서 매운거 먹자고 해서 매운 거 먹으러 닭갈비 먹으러 가서 볶음밥까지 남김 없이 싹싹 먹고 윤이 단 게 먹고싶단 한 마디에 유명한 디저트 가게 찾아서 가서 디저트 종류 별로 하나씩 주문해서 쓸어버리는 거 보고싶다.
7. 안심
그게 성애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안심되는 최윤과 윤화평 보고싶다. 떨어질 때는 꼭 시간마다 뭐하고 있다 짧막하게 문자라도 남기는데 어쩌다 연락이 비어버리는 시간이면 서로가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걸 알게 된 길영이 어느 날 둘을 이끌고 작은 공방에 가. 거기에서 미아방지 목걸이를 만드는데 그걸 서로 반대로 주는거야.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이 기재된 팔찌는 길영이 가졌지. 그렇게 서로 나눠가지고 선 길영이 그래.
"이게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서로의 곁에 있는거야. 이걸 가지고 있는 한, 떨어져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해."
처음엔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했지만 그 후로 둘의 불안은 말도 안되게 줄어들었겠지. 그저 서로의 이름이 적혀진 목걸이일뿐인데, 그 하나로 정말 제 곁에 없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뒤로 단 한 순간도 목걸이 안 빼놓는 최윤과 윤화평 보고싶다.
그리고 나중에 둘이서만 그 공방에 가서 강길영 이름 적힌 펜던트만 하나 더 만들어서 같이 목걸이 줄에 걸어두었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같이 있다고 생각이 들게끔.
8. 그 날 밤
그 날 밤, 바다에서 돌아온 건 윤화평과 최윤이었다. 허나 윤화평은 최윤을 볼 수 있었으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강길영은 최윤을 볼 수 없었으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로 시작하는 무언가를 보고싶었다.
9. 아이와 신부님과 형사, 그리고
화평이 박일도를 받아들일 때 본래 화평이 신내림 받을 때 내려앉으려던 만신이 같이 들어가서 박일도가 되려 잡아먹혔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세 아이를 괴롭히던 악을 신이 없앴는데 그 여파로 화평이 어려졌다면?
미친듯이 뛰어온 최윤 앞에 6살 윤화평이 옷더미 안에 묻혀있어서 당황하겠지. 화평도 자기 안에 깃든 신의 존재를 아는데 그보다 박일도가 이 세상에서 아예 사라졌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어안이벙벙해있을거야. 그러다가
"윤화평씨?"
하고 자길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겠지. 그래서 최윤을 바라보는데 뭔가 시선이 평소보다 더 높아. 그리고 더 크게 느껴지지.
"최윤?"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아. 그리고 많이 여렸지. 그걸 최윤도 느꼈고, 화평도 느꼈어. 더 황망해진 기분에 제 두 손을 내려보니 조막만한 손이 보였어.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인가 싶어서 화평은 가만히 주저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다가온 최윤이 옷더미 채로 화평을 안아들었어.
화평을 마루에 올려두고 최윤은 다시 쓰러져있는 할아버지를 들어 어렵사리 화평 옆에 눕혔어.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그냥 기절한 듯 보였지. 안도하는 화평을 보며 최윤은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헐렁해진 티셔츠를 대충이라도 여며줬어.
"어떻게 된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
"아픈 곳은요?"
"없는데... 좀 이상해."
"뭐가요?"
"....혼자가 아닌 느낌?"
"박일도입니까?"
"아니. 그건 아냐. 좀 더 다른...."
조막만한 머리가 갸웃갸웃거리는 걸 가만히 올려다보던 최윤은 밤톨 머리를 저도 모르게 쓰다듬었어. 그에 댕그래진 화평의 눈을 보면서 그냥 설핏 웃었지.
"박일도가 아니면 됐습니다."
그 말에 뭔가 이상해져서 화평은 슬슬 시선을 피하면서 괜히 조막만한 손만 꾸물거렸어. 이제까지 화평이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으니까. 항상 화평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꼭 이제까지 모든 일들이 제 탓이 아니라 하는 것 같잖아. 꼭... 그렇게 말한게 아니래도 화평은 그렇게 느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강형사님 오면 할아버님과 같이 병원 가요."
"괜찮데두."
"그냥 기본 검사만이라도 해요."
단호한 최윤의 목소리에 속 언저리가 간질간질거려 화평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했어. 중얼거리는 답을 알아들은 최윤은 살풋 또 웃었어.
"어릴 때 옷 혹시 있습니까?"
"어... 글쎄? 할부지가 안 버렸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있을까?"
손자 사랑이 대단한 할아버지라도 있을리 없다며 화평은 회의적이었지만 최윤은 방 안을 뒤져 겨우 어린아이에게 맞을 반팔과 반바지를 찾았어. 오래 보관한 탓에 조금 쿰쿰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일단 그거라도 입고 있기로 했지.
곧 도착한 길영은 앉아있는 최윤이 꼭 안고있는 아이를 보고 할 말을 잃었어. 처음엔 왠 아이인가 했는데, 익숙한 얼굴인거야. 젖살이 붙어있어 통통한 얼굴이, 제 한 손에 다 쥐고도 한참 남을 것 같은 조막만한 손을 차례로 눈에 담던 길영은 결국 답을 줄 수 있는 최윤을 봤지.
"어떻게 된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윤화평씨말론 박일도를 자기 몸에 담았는데 그 후에 눈 떠보니 이렇게 되어있었다고 해요. 저도 막 도착했을 때 어린 모습인 채였구요."
"진짜... 윤화평이야?"
기다리다 지쳤는지 잠들어 있는 화평을 보며 길영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듯 최윤과 아이를 번갈아봐. 누가 봐도 쉽게 이해갈만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최윤도 길영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어. 저도 사실 처음 딱 마주쳤을 때 믿기지 않았으니까.
"박일도를 제 몸에 가두고 죽으려할 사람이 윤화평씨 말고 또 있겠습니까."
"....하긴."
최윤의 말에 길영은 조금 수긍한 듯 했어. 대청마루에 반쯤 걸터앉아 최윤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는 어린 화평을 보니 길영은 조금 심란해졌어. 미친 사람처럼 박일도 찾아야한다고 뛰어다니던 화평이 어린 모습이 되어서야 평안을 찾은게 너무 슬프고, 아이러니 하잖아. 최윤도 지금 길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서 더 말을 얹진 않았어. 누구라도, 화평을 알았던 누구라도 지금의 세상 모르게 잠든 화평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테니까. 안타깝고, 서글프고, 그리고 신이 원망스러워지는. 그런 생각들.
"할아버님도 기절하신 것 뿐이지만 일단 병원에 가봐야할 거 같습니다. 윤화평씨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보구요."
"어, 어. 그래. 지금 가자. 밖에 차 세워뒀으니까 윤화평 안고 가 있어. 내가 할아버님 모시고 갈게."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너까지 내가 끌고갈 순 없잖냐."
길영의 말에 조금 욱하긴 했지만 조금 전 쓰러진 할아버님을 끌다시피 마루로 혼자 옮긴 것도 힘들었기에 최윤은 얌전히 화평을 안고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갔어. 조심스레 잠들어 있는 화평을 조수석에 앉히려는데 화평이 칭얼거리며 최윤 품으로 파고들었어. 생각도 못한 반응에 잔뜩 얼어버린 최윤이 멈춰있는 사이 할아버님을 혼자서 모셔오던 길영이 그걸 보고 혀를 찼어.
"얘 하나도 제대로 차에 못 앉히냐?"
"그게 아니라..."
새까만 눈동자만 떼구르 소리가 들릴정도로 굴리는 최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길영은 할아버님을 뒷자석에 눕혀 자리를 잡은 뒤 문을 닫고 여전히 굳어있는 최윤을 봤어.
"뭐하냐?"
"그...게..."
눈에 띄게 얼어있는 최윤에 그제야 의아한 길영이 가까이 다가가자 최윤의 사제복을 고사리 손으로 꼭 쥔 채 얼굴을 최윤 품에 묻고서 색색거리며 잠든 어린 화평이 보였지. 그제야 석상마냥 굳어있던 최윤의 반응이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한심해보이는 건 동일했지.
"그냥 같이 앉아."
"그... 네..."
어쩔 줄 몰라하는 최윤을 뒤로 하고 운전석에 앉은 길영은 쭈볏쭈볏 조수석에 앉는 최윤을 보고 혀를 찼어. 겨우 잠든 화평이 깨지 않게 앉고 안전벨트까지 맨 최윤이 결연한 표정으로 '가요.' 라고 말을 하고 나서야 조심스레 차를 출발했어. 잠든 화평과 뒷자석에 있는 할아버님을 위해서였지.
뜻하지 않게 안전운전을 한 탓에 병원에는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어. 다행히도 검사는 할 수 있었지. 검사 결과 할아버님은 기력이 쇠한 것 외엔 문제가 없지만 하루, 이틀은 입원하는게 좋을 거 같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어. 화평은 6살 아이 치고 체중이 적다는 거 외엔 문제가 없고, 약한 영양실조 기미가 보이니까 잘 먹이라는 답변을 받고 나왔어. 길영과 최윤은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린 윤화평의 삶도 그리 좋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서 심란했지. 두 사람은 무슨 연유에서 어려졌든 화평을 알뜰살뜰하게 보살피기로 했어. 다만 문제는 셋 다 집이 멀다는 거였지.
"나 혼자서 지낼 수 있어!"
"네가 어른일 때나 가능한거지. 어린애로 어떻게 할아버지 돌보고 지내? 나랑 최윤이랑 상의해서 결정할거니까 넌 조용히 할아버지랑 있어."
"맞습니다. 지금 그 모습으론 절대 혼자 못 둡니다."
혼자서 할 수 있다 하자마자 불같이 화내는 길영과 의외로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는 최윤에 화평은 다들 왜 그러나 싶었어. 항상 혼자서 해결했어야 해서 두 사람의 반응이 무척이나 생소했고, 혼자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어디선가 안도감이 몰려와서 잠깐 우물거렸지. 그 사이 길영과 최윤은 어떤 결론을 내린 듯 그렇게 하자고 말을 마쳤어.
"어, 잠깐. 잠깐! 나 빼고 뭐해?"
"넌 지금 6살이야, 윤화평. 그것부터 직시하고, 난 일단 일 때문에 돌아가는데 일 있으면 불러. 그리고 되도록 최윤이랑 같이 있어. 알겠지? 나 간다."
제 할 말만 하고 병실을 나가는 길영을 멍하니 화평이 바라보는 사이 최윤이 마중해주고 돌아왔어.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는 표정의 화평을 보며 최윤은 시선을 맞춰 몸을 숙였어.
"윤화평씨."
"어?"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저희 마음도 이해해주세요. 지금 윤화평씨 몸은 6살이에요. 속은 어른이라 해도 어린 당신을 혼자 둘 순 없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제가 윤화평씨와 할아버지를 돌볼거에요."
"너... 성당은?"
"당분간 정직이라서 괜찮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윤화평씨 혼자 둘 생각 없으니까 또 혼자서 하겠다 하지마세요."
혼자 박일도를 끌어안고 죽으려 했다는 걸 안 뒤로 최윤은 더 화평을 혼자 둘 수가 없었어. 저 혼자 모든 걸 떠안으려는 화평이 이해가 안 가지만, 이해되기도 해서. 더더욱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서. 그래서 앞으로 또 혼자 끌어안고 제가 모르는 곳으로 가지 못 하도록.
"그리고... 제대로 사과드릴게요."
"뭘?"
정말 모르겠다는 듯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최윤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어.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까지 바보일 셈인가 싶어서. 꼬물거리는 작은 두 손을 조심스레 잡고 최윤은 어려져서 더 반짝이는 연갈색 눈동자를 마주바라봤어.
"당신을 의심했던거요.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았는데, 한순간에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뭘 그런 걸 이제와 사과하냐고 하려던 화평은 진지하게 사과해오는 최윤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새삼스럽게 무슨 사과냐고, 다 잊었다고 하고 싶은데 제가 더 상처받은 듯 바라보는 최윤의 시선에 화평은 그제야 제가 그냥 덮어두었던 상처가 보였어. 아닌 척 했지만, 박일도가 더 우선이라 생각해 잊은 척 했던 기억이 아프게 되새겨졌어. 속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통증에 화평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제 손을 꼭 잡고있는 최윤의 손을 꽉 움켜쥐었어. 너무 아파서. 제 편이라 생각한 사람이 제게 준 상처가, 배신이, 깨진 믿음이 너무너무 아파서.
최윤은 제 손을 꽉 움켜쥐는 화평의 여린 손에 되려 제 손에서 힘을 뺐어. 그러다 화평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서 놀라 저도 모르게 그를 끌어안았어. 제 품에 넘치도록 남아도는 작은 몸에 최윤은 제가 그를 다치게 할까봐 더 끌어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놔주지도 못한채 잠시 헤매다 찬찬히 등을 쓸어주었어. 어린 날의 제게 양신부님이 그러했듯이.
제 손바닥에 전해져오는 잔떨림을 다독이려 최윤이 더 다정히 쓸어줄수록 더 커졌고,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와 조용한 병실에 소리없이 쌓였어. 한참을 어린 화평을 다독이고 나서야 그친 울음소리에 최윤은 천천히 몸을 떼려했는데 되려 화평이 어린 손으로 최윤의 옷을 꼭 그러쥐었어.
최윤이 당황하는 사이 화평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지. 누구 앞에서 운 적도 없는데, 심지어 품에 안겨서 다독임까지 받았어. 울음을 쏟아내고 나자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화평은 제 얼굴을 최윤 가슴팍에 푹 파묻으며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사제복을 꽉 움켜쥐었어.
"...사과 받아줄게."
울고 난 후라 코막힌 소리와 잔뜩 쉰 목소리가 뒤섞여 쉬이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지만 최윤의 귀엔 그 어떤 말보다 더 또렷하게 들렸어. 쉽게 들을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화평은 정말이지 너무 물렀어. 그만큼 정에, 사람에 굶주려있던거겠지만.
"고맙습니다, 윤화평씨."
"알면 잘 해."
"그럴겁니다. 제가 잘못한만큼의 곱절로요."
"....그렇게까진 말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에 숨겨진 화평의 부끄러움을 이젠 좀 알 것 같아 최윤은 소리없이 웃으며 엉거주춤 안겨있는 화평을 다시 제대로 안아들었어. 자세가 편해졌어도 아직 얼굴은 보여주기 싫은지 화평이 얼굴을 어깨에 묻어 보진 못했지만 눈물 범벅이란 건 알겠어. 닿아있었던 곳이 눈물로 축축했으니까.
"배고프진 않습니까? 곧 저녁이라 뭔갈 먹어야할텐데요."
"그것보다 졸려."
"자기 전에 뭐라도 먹고 자요.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잖습니까."
괜찮다고 하려해도 최윤이 저를 안고 병실을 나가버려 화평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최윤의 어깨에 얼굴을 턱 하니 올렸어. 거 밥 좀 안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새삼 그러나 싶다가 흔들리는 짧은 다리에 깨닫지. 지금 제가 6살 어린 아이란걸.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너무 잘 알아서 화평은 투덜거리려다 말았어. 저라도 6살 아이에게 그리 대할테니까.
병원 밖으로 나가기 전 최윤은 우선 화장실에 가서 화평의 얼굴을 씻겼어. 곧 죽어도 안 보여주겠다는 걸 그대로 밥 먹으러 갈거냔 말에 겨우 씻겼지.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삐죽 튀어나온 입술에 최윤은 그저 소리없이 웃었어.
"뭐 먹고싶은거 없습니까?"
"....국수..."
"차라리 고길 먹죠."
"그럴거면 왜 물어본거야?"
"국수라고 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어린 아이가 얼마나 잘 먹어야하는지 구구절절 읊으려는 최윤에 화평은 조막만한 손으로 달싹거리는 입술을 찰싹 때렸어. 여전히 잔소리는 듣기 싫어하는 성미에 최윤은 피식 웃었지만.
병원 밖으로 나오니 고깃집은 없고, 닭갈비 가게가 있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어. 화평을 제 옆에 앉히고 주문을 하고 나니 화평이 다시 제 다리 위로 오려고 하길래 일단 다시 앉혔어.
"왜요?"
"너무 불편해."
성인에 맞춰진 높이 탓에 어린 화평에겐 꽤 높게 느껴질만해서 최윤은 수긍하며 고갤 끄덕였어.
"미쳐 생각을 못했네요."
"됐어."
"지금은 좀 괜찮습니까?"
"응. 딱 좋아!"
해맑게 웃는 화평에 최윤도 따라 웃으며 잔에 물을 반쯤 채워 양 손에 조심스레 쥐어주었어. 화평은 별걸 조심한다 생각했지만 막상 컵을 쥐니 좀 무거워서 하마터면 떨칠 뻔 해서 괜히 큼큼거렸지. 물을 다 비우자 최윤이 또 조심스레 컵을 가져가서 빤히 봐.
"왜요?"
"아니. 그냥. 익숙해보여서."
"가끔 성당에 오는 어린 분들을 돌봐드렸던 적이 있어서요."
"흐응-"
최윤에 관해 하나 더 아는 게 늘어나서 화평은 머리를 까딱였어. 뭔가 길영이나 최윤에 대해 아는 게 늘어날 수록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라 그게 제법 좋아서 차곡히 제 맘 속에 새겨두었어.
최윤은 제법 기분이 좋아보이는 화평에 역시 밥 먹으러 나오길 잘 했다 생각했어. 한껏 운 다음엔 든든하게 먹어둬야한다는 걸 제 어린 시절에 깨달은거지만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으니 좋은 경험이었다 되새길 수도 있었어서 어린 날의 일들이 이젠 그리 나쁘지 않게 생각됐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주문한 닭갈비가 나오자 최윤은 젓가락을 들려는 화평을 만류하고 제가 직접 고기를 식혀 쌈무에 싸서 화평에게 먹여주었어. 화평은 처음에 제가 한다 하려다 식기들이 죄 성인용이라 별 수 없이 최윤이 먹여주는 걸 얌전히 받아먹었어.
"천천히 먹어요."
"응. 너도 먹어."
배가 안 고프다는 말이 무색하게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마냥 넙죽넙죽 받아 먹는 화평에 최윤은 반찬들도 챙겨 주었어. 그 틈틈히 저도 먹긴했지만 화평에게 먹이는게 더 많았지. 그래도 화평이 잘 먹어서 최윤은 안 먹어도 기분상 배부른 거 같았어. 이게 부모들이 느낀다는 그 감정인가 싶지.
그렇게 볶음밥까지 싹싹 비우고 나서야 식당을 나왔어. 화평은 통통해진 배만큼이나 차오르는 포만감에 기분도 좋았고, 그만큼 졸음이 몰려와 최윤에게 얌전히 안겨있었어. 최윤은 조용해진 화평이 꼭 배부른 강아지와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왔어.
"졸리면 자요."
"우웅... 괜찮아..."
웅얼거리는 목소리 속에 잔뜩 묻어나있는 잠기운에 최윤은 나즈막히 웃었어. 그 웃음소리에 화평은 제 온몸이 울리는 걸 느꼈어. 그게 싫지 않아서 화평은 짧은 팔로 있는 힘껏 최윤을 끌어안았어.
"아, 아까 강형사님이 늦게라도 한 번 들린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했는데 있어요?"
"신발..?"
대롱대롱 흔들리는 짧은 다리엔 양말도, 신발도 없이 맨 발이었어. 옷은 그래도 있었지만 양말이나 신발은 아무래도 없었거든.
"그건 아무래도 사이즈를 봐야해서 내일 가서 사려구요."
"계속 안고 다니기 힘들잖아."
"윤화평씨 계속 들고다닌다고 힘들진 않습니다."
그런건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덧붙이는 말에 화평은 어떻게 신경 안 쓰냐 속으로 웅얼거리며 최윤의 어깨에 얼굴을 턱 올렸어. 제가 6살이 됐긴 하지만, 평균보다 작긴 하지만 어린아이를 계속 안고 다니는게 힘든거라는 건 안다. 신부님이 은근히 고집이 쎄다며, 나중에 몸살걸리면 안 될텐데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사이 병실에 도착했어. 최윤은 화평을 간이 침대에 내려두고 여즉 잠들어 있는 할아버지 상태도 한 번 보고 화평의 옆에 앉았어. 화평은 계속 졸린지 눈을 부비며 하품을 했지.
"졸리면 자요. 저쪽에 빈 침대 있습니다."
"강형사님 온다며."
"오면 깨울게요."
꾸벅꾸벅 조는 화평을 보다 못 한 최윤이 다시 화평을 안아들어 빈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줬어. 버티겠다 했지만 화평은 금세 잠들었어. 새근새근 잠든 화평의 옆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다 최윤은 조심스레 화평의 조그마한 손을 잡았어. 손보다 한참이나 작은 손에 느껴지는 온기가 지금 이 모든 게 거짓이 아니라 하는 거 같아 최윤은 살짝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어. 놓으면 그대로 차갑게 식어버릴까봐, 환상처럼 사라져버릴까봐.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 문이 열리면서 길영이 들어왔어. 길영의 두 손은 쇼핑백으로 가득 차 있어서 최윤은 좀 당황했지.
"뭘 그렇게 사오셨습니까?"
"어, 신발이랑 옷이랑 좀 샀어."
"...좀이 아닌데요?"
길영의 손에 들린 짐을 건네받아 간이침대에 올려두며 살펴보던 최윤은 황망한 표정으로 길영을 바라봤어. 길영은 제가 좀 과했나싶어 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긁적였어.
"그런가? 애들은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일단 추전 받아서 샀거든."
"윤화평씨가 언제까지 저 모습으로 있을지 모르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사면 어떡합니까."
"거야 그렇긴...하지...?"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길영에 고개를 내저은 최윤은 기왕 사왔으니 써야겠다 생각하며 갈아입힐 옷이랑 신발만 우선 찾아서 꺼내놨어.
"저녁은 드셨습니까?"
"어. 대충?"
"좀 챙기세요."
"너 어째 잔소리가 갈수록 심해진다?"
"두 분이 그럴 일 없게 하면 저도 안 합니다."
그 말에 찔리는 일이 많은 길영은 시선을 피하며 자고있는 화평에게 다가갔어. 새근거리며 잠든 화평을 보고있는게 어색하기도 하고, 편해보이는 모습에 내심 다행이다 싶기도 했어.
"너희는 먹었어?"
"네. 누구씨랑 달리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아, 진짜..! 챙겨먹을게! 됐냐?"
"제대로 된 식사로 먹어야죠."
"알았어, 알았어."
최윤이 따박따박 붙이는 말에 길영은 고개를 내저었어. 얘가 처음엔 안 그러더니 갈수록 꼬장꼬장거린다 생각하며 화평의 옆에 앉았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어?"
"아무래도 계양진으로 내려가거나 할아버님을 모시고 새로 지낼 집을 알아보거나 하는게 나을것 같아요."
"역시 그렇지? 너 모아둔 돈은 있냐?"
"조금은요."
"나도 지금 있는 집 정리하면 돈 될 것 같긴 한데, 하루이틀 사이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거지."
답답한듯 한숨을 크게 내쉬는 길영에 최윤도 마냥 속은 편친 않았어. 급작스런 상황에 돌볼 사람이 둘이나 되는데 최윤이나 길영이나 그러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
"일단 제가 정직 풀리기 전까진 계양진에 있을게요. 거기서 지내면서 답을 찾아보죠."
"그래도 되냐?"
"양신부님 일도 있으니 괜찮을겁니다."
"그래. 나도 되도록 자주 찾아갈게. 정리될 때까진 그게 낫겠다."
두 사람은 조용히 잠들어있는 화평과 할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며 소리없는 다짐을 해. 어릴 땐 지키지 못했던 소중한 것을 이번에야말로 지키자고. 그들을 괴롭히던 만악이 사라졌으니, 이제 세상으로 부터 지키자고.
그들이 소리없는 다짐을 하는 사이 잠들었던 화평이 끙끙거리면서 뒤척였어. 악몽을 꾸는건지, 아니면 갑자기 어려진 탓에 몸이 고된탓인지 작게 앓는 소리가 울리면서 자꾸 뒤척였어. 그에 놀란 둘이 화평에게 다가가 길영은 작은 손발을 주물러줬고, 최윤은 식은땀을 닦아주며 화평에게 괜찮다, 괴롭히는 건 전부 사라졌다 작게 속삭였어. 그리 다독이고, 몸을 편히 해주자 끙끙거리는 소리가 줄어들고 곧 편안히 다시 잠들었어. 그제야 둘은 안도하며 그 옆에 앉아 잠든 화평을 바라봤어.
"우린 이제 다 끝났는데 얜 왜 아직도 이러냐..."
"그러게요."
"에혀-"
"이럴 땐 신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사제가 그래도 되냐?"
"사제라도 항상 신을 믿기만 하는건 아니니까요."
최윤의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 갔기에 길영은 더 말을 얹지 않았어. 그저 너도 고생이다, 그 말만 했지. 최윤은 그 말에 작게 웃었지만.
"그러면 강형사님이 제일 고생이죠."
최윤은 길영의 말에 갑자기 생각에 잠겼어. 구마사제가 됐던 것도 전부 다 저의 형 때문이었고, 원인이었던 박일도가 사라진 마당에 그가 걸어온 길이 옳은 방향인가 싶어져서. 길영의 말처럼 구마사제 일을 계속 할 수도 있겠지. 박일도의 존재를 알기 전에도 부마로였지만 했었으니까. 하지만.
"저 환속할까봐요."
"뭐?!"
길영은 크게 소리 치다가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고 잠든 화평을 바라봤어. 다행히도 깊게 잠들었는지 깬 기미는 없어 보여서 작게 안도했지. 그리고 잠든 화평을 도닥이는 최윤의 옆모습을 길영은 가만히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어.
"후회하지 않을거라면 해."
"안 말립니까?"
"너랑 윤화평이 말린다고 들을 애들이냐."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니다 보니 서로에 대해 잘 안 탓인가, 최윤은 길영의 말이 썩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분명 자길 비꼬는건가 싶었을 말인데 그걸 길영이나 화평이 하면 괜찮아.
"그거 강형사님도 똑같습니다만."
맞받아칠만큼. 누가 보면 도토리 키재기라고 할만한 상황이었어. 그걸 둘 다 알아서 푸스스 웃었고, 길영은 최윤의 어깨를 툭툭 쳤어. 믿는다는, 그런 의미를 가득 담아서.
"나보단 쟤가 더 문제일거 같은데."
"윤화평씨가요?"
"쟤 이상한데서 자기 탓이라고 다 말하잖아. 네가 환속한다 하면 그것도 자기 탓할걸."
"아-"
길영의 말에 생각해보니 그랬어. 화평은 거의 대부분 일에서 자기 탓이라 돌리는 경우가 많았거든. 심지어 지금 윤화평은 여섯살 어린애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테지.
"좀 더 신중히 말해야겠네요."
"어. 안 그럼 저 쇠고집 상 절대 순순히 안 넘어갈걸."
산 넘어 산이란 게 이런건가 싶어져. 그래도 이번에 제 말에 수긍해줬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 그건 최윤의 오산이었단 걸 얼마가지 않아 깨달았지만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했지.
"할아버지 퇴원하면 같이 내려갈거지?"
"그래야죠. 여기 집은 환자와 어린아이랑 지내긴 좋진 않으니까요."
"퇴원 수속 전에 미리 전화해. 같이 가게."
"안 바쁘십니까?"
"어."
씨익 웃는 길영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건 최윤이었어. 저 미소를 지을 때 길영이 했었던 일들이 주르륵 떠올랐거든. 그렇다고 혼자 할 순 없었기에 알겠다고 했지. 그렇게 조금 파란만장한 하루가 지나갔어. 화평에 깃든 만신이 세 아이를 지켜보던 첫 날이었어.
10. 간호
바람이 쌀쌀해진 간절기 때 범인 뒤쫓다가 같이 천에 빠진 길영. 잡은 범인 데리고 서로 갔더니 쫄딱 젖은 채로 들어와서 동료들 발칵 뒤집어지지. 특히 고형사가 수건 다 끌어와서 길영이 머리 닦아주는데 길영이는 귀찮아하겠지.
집에 가서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라는데 고집 쎈 길영 범인 조서 쓰고 감방에 넣은 뒤에야 간다. 고형사만 저러다 감기 걸린다고 혼자 가려는 길영 데려다주면서 잔소리하겠지. 길영은 걱정해주는거 알지만 잔소리는 잔소리니 그냥 흘려듣고. 집 앞에 도착해서 데려다줘서 고맙단 인사하고 올라가지.
옷도 거의 마르긴 했지만 찝찝하긴 했어서 따뜻한 물에 씻고 머리 대충 말리면서 언젠가 화평이 담가준 레몬청 꺼내지. 물 올려놓고 옷 갈아입고 대충 말린 머리 털면서 화평이랑 윤에게 카톡하는(최윤 스마트폰입니다) 길영. 커다란 머그컵에 반절은 레몬청, 그득하니 뜨겁게 끓인 물 붓고 침대로 가.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연락했냐며 답하는 화평과 무슨 일 있냐고 뒤늦게 답하는 윤에 길영은 웃으며 레몬차를 호로록 마셨어.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역시나 쪼르륵 걱정 어린 말들이 달려. 길영은 괜찮다고 그렇지 않아도 화평이 준 레몬청으로 차 끓여 마신다고 하니 맛 괜찮냐고 물어.
누가 담근건지 맛있다고 답하면서 내일 별 일 없으면 셋이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약속 잡고 다 마신 머그컵에서 레몬만 따로 빼서 우물거려. 이대로 자긴 아쉬운데 내일 저녁 약속 맞추려면 할 게 많아서 그만 자기로 결정하고 윤이랑 화평에게 내일 보자 카톡 보내고 잠들지.
그리고 새벽에 갑자기 목이 아프고 입 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에 잠에서 깨. 일어나서 물이나 마셔야겠다 싶은데 어쩐지 몸도 무겁게 느껴지고 일어나다 저도 모르게 휘청거렸어. 주방으로 가 생수병 꺼내서 벌컥벌컥 마시는데 몸에 열이 있었는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물이 완전 찼어.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싶어 다시 잠들었는데 알람이 울릴 때까지 내내 뒤척였지. 그 사이 열은 더 오르고 목도, 코도 부어서 숨 쉬는게 힘들었던 길영은 간신히 고형사에게 연락해. 출근 힘들거 같다고.
어쩐지 추워서 이불 꽁꽁 싸매고 한참 끙끙거리는데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이 집 비밀번호는 화평이랑 윤 밖에 모르는데 연락한적이 없어서 누구지 싶었는데 방 문을 열고 빼꼼 동그란 얼굴이 보이지. 열이 올라 잘 안 보이는 시야에도 저게 윤화평인건 알겠어서 피식 웃음이 났어.
"아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고형사님이 아침 댓바람부터 울면서 전화해서 얼마나 심장이 철렁했는데."
"아픈 사람에게 왜 짜증입니까, 윤화평씨."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오는 화평이 뒤로 윤도 들어와. 길영은 그런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어쩐지 울 것 같은거야. 엄마가 돌아간 이후로 아플 때마다 혼자였거든. 혼자서 방 안에서 끙끙거리다보면 그게 그렇게도 서럽고, 또 마지막이 기억나서 더 아팠었는데 지금은 저를 걱정하고 한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이 둘이나 있어.
"......야, 큼.... 또 싸우냐....?"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요. 형사님도, 참-"
"많이 아픈가요? 어디가 아픈진 몰라서 일단 종합감기약 사왔습니다."
"아, 죽도 사왔어. 약 먹기 전에 죽 부터 먹어요. 뭐라도 먹어야 기운이 나지."
부산스럽게 사온 것들을 준비해오겠다며 움직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길영은 흐릿한 눈으로 가만히 바라봐. 곧 윤이 조그만한 상에 사온 죽이랑 반찬 몇 개 올려서 가져와.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길영을 화평이 도와서 앉혀주고 손에 숟가락까지 쥐어줘.
"얼른 먹어요. 이거 가게 이모한테 특별히 신경써달랬어."
"...고맙다..."
"고마울 필요까진 없죠. 저희도 신세 많이 졌으니까요."
또 터져나올 것 같은 울음을 죽을 떠 먹으면서 꾹꾹 누르는 길영이야. 윤이랑 화평은 죽 떠 먹는 길영 옆을 지키다가 다 먹자 윤이 약을 챙겨주고 화평은 상을 치우고 좀 너저분한 거실도 그 김에 같이 치웠어.
"약 먹고 자고 일어나면 좀 더 나을겁니다. 혹시 따로 더 아프거나 그런 곳은 없어요?"
"응... 이거면 될거야..."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아침에 윤화평씨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그랬냐...?"
"강형사님 죽는거 아니냐고 호들갑 떠는거 달래느라 힘들었습니다."
고개를 내저으며 그 때 일을 떠올리는 윤의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에 길영은 어땠을지 뻔해서 웃었어.
"이만 쉬세요. 저희 밖에 있을테니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시고요."
"....어.. 고맙다..."
길영이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는 걸 확인한 윤은 물병을 침대 가까운 곳에 두고 조심스레 방을 나갔어. 길영은 그런 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눈을 감았지. 화평과 윤이 챙겨준 죽과 약을 먹은 탓인지 조금 전보다 기침도 덜했고 온몸을 감쌌던 한기도 많이 가신 탓에 좀 더 수월하게 잠들었어. 둘에게 맛있는 고기를 사줘야겠다 생각을 끝으로 길영은 잠들었어.
"강형사님은?"
"약 먹고 잠들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화평은 한숨을 크게 쉬며 거실에 털썩 앉았어. 윤도 그런 화평의 옆에 앉았지.
"강형사님이 아플 줄은 몰랐는데."
"사람이 안 아플 순 없죠."
"뭐, 그건 그렇지만. 강형사님은 몸 좀 아껴야해."
"윤화평씨가 할 말은 아닐텐데요."
윤의 말에 화평은 '내가 뭐!!' 라고 화내려다 화려했던 전적들을 떠올리곤 어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어. 윤은 눈을 떼구르르 굴리며 눈치를 보는 화평을 보고 슬몃 웃었어.
"그보다 강형사님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던데 장 보러 갔다와야할 거 같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한 명은 남아있죠."
"그래. 그럼 내가 나갔다올게. 필요한거 있어?"
"물 좀 사야할 거 같아요. 먹을거랑요."
"오~케이! 혹시 필요한 거 더 생기면 전화하고."
"네."
화평이 나간 사이 윤은 화평이 치웠던 거실도 조심스레 정리하고 가끔 길영 상태도 보다가 열이 나는거 같아서 물수건 이마에 올려주고 화평에게 해열패치 사오라고 문자 남기지. 화평은 차 타고 근처 마트에서 윤이랑 먹을것도 사고 물이랑 길영이 먹을 수 있는거랑 사서 돌아오다가 문자 보고 약국도 들렸다 길영 네로 돌아가.
"최윤~ 나왔어."
"왔어요? 뭘 한 짐 사온거에요, 또."
"아니- 냉장고 보니까 반찬이 하나도 없길래 우리도 오늘 여기 있을거면 뭐 먹어야하니까 좀 샀어."
윤은 작게 한숨을 쉬면서 장 봐온 걸 받아서 안으로 들어갔지. 화평은 윤이 그렇게 화난게 아닌거 알고 쪼르르 따라 들어갔어. 둘이서 장 봐온걸 정리하고 늦은 아침 겸 점심 먹고, 길영 깨워서 점심이랑 약 먹이고 다시 재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지. 해가 짧아져서 4시가 넘어가니 해가 지고 있는게 느껴졌지. 그 사이 길영 상태도 호전이 되서 지금은 끙끙거리는 소리도 없고, 열도 많이 내렸지.
해가 지고나서도 큰 문제는 없어서 푹 자고 일어난 길영과 셋이서 사온 반찬들에 밥 먹고 정리까지 끝내고 셋이서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 밤이 되자 길영이 이제 괜찮으니 가보라는 말로 둘을 내쫓았지. 둘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말 남기고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겨 떠났어. 길영은 둘이 떠나고 난 뒤 숨을 크게 내쉬었어. 허전해진 집 안을 한 번 빙 둘러보다 내내 찝찝했던 몸을 씻으러 들어가면서 역시 내일 저녁은 소고기 사줘야겠다고 생각해.
11. 해돋이
길영이 운전해서 해가 가장 빨리 뜬다는 곳으로 출발함. 가는 길에 휴게소 들려서 먹을 것도 사 먹고 중간에 화평이 길영이랑 바꿔서 운전도 하고 쉬엄쉬엄 가는데 셋 다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 하느라 지루할 틈은 없었을 것 같다.
그 날은 셋이서 맞춘 롱패딩 특별히 입었는데 윤화평 자꾸 자긴 왜 발목까지 오냐구 투덜거려서 윤이 달래주고 길영은 놀리겠지. 그렇게 바다 도착하면 사람들 없는 쪽에 차 세워두고 쉬었어. 그 날은 캠핑카 대여해서 간 거라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사온 먹을것도 먹고 하다보니 어느 새 자정이 되었지.
셋 다 자정이 넘어가면 서로 보면서 한 해 고생했고 올 한 해도 잘 부탁한다, 잘 지내자란 말 나눌거야. 셋 다 잠은 안 와서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보니 어릴 때 이야기도 하겠지? 힘들었던 이야기엔 공감해주고 재밌던 일엔 같이 웃어주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훌쩍 가버리더라.
그렇게 해가 뜰 시간이 되자 셋이 밖에 나가서 바닷가 말없이 가만히 바라봐. 수평선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세 사람 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로의 앞 날이 태평하길 바랄거야. 힘들었던만큼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랄거고. 그렇게 해가 온전히 바다 위로 뜨면 다시 차에 타서 한숨 자고 출발하겠지.
세 사람이 사는 집으로.
12. 1년 중 12번
1년만에 다시 만난 세 사람이 그동안 서로 만나면 하고싶었던 것들, 그 때 이거라도 해볼걸 했던 것들 하면서 다시 꼬박 1년을 함께 지내는거 보고싶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는데 그 달은 이상하게 어떤 날은 길영이, 어떤 날은 화평이, 어떤 날은 윤이 바빠서 세 사람 다 못 보는건가 싶어서 시무룩해져있는데 그 달 마지막 날에 아주 잠깐이라도 보자고 길영과 윤이 화평이 지내는 곳으로 내려가서 밤바다 보며 그냥 시간을 보내는거 보고싶다. 서로 아무 말도 없고 그냥 바닷바람 맞으며 파도 치는 밤바다 구경하다가 화평 네에서 자고 새벽 일찍 돌아가는 길영과 윤이를 배웅하는 화평이 보고십다.
13. 회귀 AU
윤화평이 바닷 속으로 가라앉은 밤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을 되돌리려 해도 계속 똑같은 일이 벌어져서 계속 과거로 되돌아가고, 되돌아가길 반복하다 어느 순간 너무 먼 과거로 가버린 최윤이 아직 박일도를 만나기 전 윤화평을 만나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는 거 보고싶다. 계양진을 벗어나 바닷가가 보이지 않는 산 속 깊은 곳으로 숨어 어린 윤화평을 지키는 최윤 보고싶어.
어찌어찌 태무당을 알게되서 화평이 본래 받들어야할 신을 모실 수 있게 도와달라 요청해서 여러가질 배우게 된 어린 윤화평은 도통 새까만 신부복을 입은 최윤이 이해되지 않겠지. 사제가 무당을 키운다니. 누가 믿겠어?
그래도 어린 윤화평은 알았어. 이 세상 누구보다 더 자신을 위하고, 소중히 하는게 최윤이라는 걸. 결코 이름은 안 알려주고 '마태오'란 세례명만 알려줘서 조금 심술나긴 하지만 그가 제게 주는 애정만큼은 진실이니까.
어린 화평이 태무당에게 교육 받을 동안 최윤은 박일도를 물리칠 궁리도 했어. 도망치긴 했지만 그의 마수가 뻗어올지 아무도 몰랐고, 그가 없어져야 윤화평의 인생이 아프지 않을테니까. 물론 사람의 삶이란 게 안 아플 순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지독하게 아프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어린 윤화평과 최윤이 같이 지내게 된 지 반 년쯤 지났을까? 박일도가 빙의된 할아버지가 결국 찾아왔어. 보름달이 휘엉청 크게 뜬 날이었어. 최윤은 온갖 부적들로 도배된 방 안에 화평을 데리고 가 제 묵주를 작은 손에 쥐어주었어.
"윤화평씨,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어요. 절대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나오면 안 됩니다."
"하지만 밖에 할아버지가.."
"그 분은 더 이상 윤화평씨의 할아버지가 아니에요. 악마입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절대로 누가 부르더라도 이 방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제가 부르더라도 나오지마세요."
"신부님도요..?"
"네. 제가 부르더라도 절대 나오지마세요. 약속입니다."
굳은 결심으로 물든 짙은 눈동자에 세차게 떨리는 어린 눈동자가 비쳤어. 어린 윤화평은 무섭고, 두려웠지만 약속했어.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지 않겠노라고. 그제야 최윤은 설핏 웃으며 잘게 떨고 있는 어리고 작은 몸을 끌어안았어.
"윤화평씨. 이것만 기억해요. 이 모든 일들은 결코 윤화평씨 탓이 아닙니다. 알겠죠?"
"응.."
잔떨림이 어느정도 멈추자 최윤은 화평만 방에 두고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마주친 악마를 보며 방 문을 닫고 그 앞을 막아섰어. 분명 그 때에도 구마를 성공했었어. 제 목숨을 바쳐서. 그러니 이번에도 할 수 있을거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괴하게 웃어대는 박일도에게 다가갔어. 끝의 시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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