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화평최윤] 시선의 끝

*리버시블

*트위터 썰 백업(2018~2019)

*미완성

화평은 주로 풍경 사진을 찍는 사진 작가야. 다른 사진 작가들과 똑같은 풍경을 찍어도 그 안에 담긴 분위기에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게 담겨져있어서 알음알음 팬층이 생겼지. 그래도 흔한 사진전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사진집을 내지도 않았어. 그가 찍은 건 가끔 그의 sns에 올라오긴 하는데 그마저도 드문드문 올려서 팬들은 업데이트 소식이 뜨기만 기다릴정도야.

그러다 한 번 그의 사진이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눈이 소복히 쌓인 어느 산의 풍경이었지.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데도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에 사람들 입에 엄청 오르내렸어. 그 일로 그의 sns에도 팔로워가 엄청 늘어나게 돼.

그 후 어느 팬이 몇 년 전에 화평이 sns에 올린 사진을 찾아서 다시 시끄러워졌어. 그도 그럴게 그 사진은 풍경 사진이 아니라 인물 사진이었거든. 얼굴이 전체가 나온건 아니어서 누군지 특정하긴 어려웠지만 날카로운 턱선이라던지, 환하게 웃고 있는 듯 올라간 입꼬리라던지, 사진에 나타난 특징들이 그가 미인이라고 알려주었어. 게다가 선이 두드러지지만 체격이 있어보이는 어깨와 길고 큰 손에 사진 속의 사람이 남자라는 걸 유추하기 쉬웠지. 어떤 순간인진 모르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보는 사람들도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사진이었어.

헌데 이 사진에는 화평 특유의 쓸쓸함이나 외로움보단 사랑스러운 시선이 한가득이어서 누가 봐도 카메라를 통해 본 상대는 연인이 아니라곤 생각할 수가 없었어. 그 이유들이 겹치면서 떠들썩해진 인터넷 속에선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캐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화평도 남자고 상대도 남자인데 그럼 화평이 게이냐고 수근거리는 사람들도 생겨났어.

이렇게 화평이 찍은 사진으로 시끄러운데 화평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 모르고 있냐면 그렇지도 않아. 지금도 옆에서 길영이 자기 대신 화내고 있어서 저까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그리고 오랜만에 본 사진 속의 상대가 떠올라 내뱉지 못한 그리움이, 외로움이 차올라 꾹꾹 누르는것도 힘들었거든.

"넌 씨발 화나지도 않냐?!"

"뭐, 사실이잖아요."

세상 일에 초월한 듯 웃어보이는 화평에 길영은 머리를 헝클이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어. 이러나 저러나 그가 겪었던 일들이 많았기에 길영은 굳이 거기에 더 말을 붙이진 않았어. 서로 피차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근데 너 살 좀 빠진것 같다?"

"그대론데요?"

슥 제 얼굴을 만져보는 화평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바라보던 길영은 딱 하고 그의 뒷통수를 쳤어.

"그렇게 만진다고 아냐? 아이고, 이 화상!"

"씁- 그렇다고 때릴 일이에요?"

"맞을만 하니까 때렸지. 너 밥 또 그냥 떼우기 식으로 먹었을거 아냐!"

"뭐어, 작업하다보니까."

실없이 웃는 화평에 길영은 또 다시 한숨만 푹 쉬었어. 어쩐지 화평을 만날 때마다 한숨이 느는 것 같다 생각하면서 길영은 나가자고 해.

"갑자기요?"

"밥이나 먹게. 어차피 안 먹었을거 아냐, 너."

"뭐, 그렇죠."

"그럼 얼른 일어나. 밥 사줄게."

"네네~ 갑시다!"

화평은 길영만의 방법으로 신경써주는거란 걸 알아서 군말없이 길영을 따라 집을 나갔어. 둘은 자주 가는 국밥집으로 갔어. 따끈한 국밥 두 그릇 시켜서 각자 먹는데 갑자기 길영이 밥을 먹다 말고 화평을 바라봐.

"근데 그 사진 언제 찍은거야? 너 사람 안 찍잖아."

"음- 왜 그 때요. 최윤이랑 같이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오랜만에 나가기로 했는데 최윤이 일하다가 발목을 다쳐서 멀리 갈 수가 없어서 그냥 집에서 쉬었거든요. 그래서 아쉬워하는 윤이 달래면서 좀 실없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그 때 윤이가 웃더라구요. 예쁘게. 햇살도 내려앉은게 너무 예뻐서 그 때 저도 모르게 찍었나봐요. 그걸, 한참 뒤에 알았어요. 사진 올렸던 그 때."

신나게 환하게 웃던 최윤이 예뻤다고 이야기 하던 화평의 표정이 점점 씁쓸해지는걸 길영은 말없이 바라봤어. 화평과 최윤이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 옆에서 다 봐왔으니까. 그땐 서로 그럴 수 밖에 없어서 그냥 지켜봤으나 그래도 안타까웠어. 그냥 둘은 같이 있는게 더 좋아보였는데 그렇게 헤어졌으니까. 서로 좋아하는데 헤어진다는 게 어떤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겠어. 그건 둘의 일이었으니까.

"왜 얼굴은 다 안 찍고?"

"...그러게요. 좀... 부끄러웠나봐요. 그 때 처음이었거든요. 사람 찍은거."

"허이구. 누가 봐도 애정 덕지덕지 묻은 사진 찍어놓구 부끄럽단 말이 나오냐?"

"하하하."

 볼을 긁적이며 웃는 화평에 고개를 저으며 길영은 마저 밥을 먹으려다말고 다시 화평을 쳐다봤어.

"너 그 것만 있는거 아니지?"

"....."

길영의 물음에 화평은 큰 눈만 도로록 굴릴 뿐 답이 없었지만 길영은 그 답을 알았어. 알 수 밖에 없었지. 옆에서 봐온 세월이 얼만데. 속으로 한숨을 쉬며 국밥을 한 숟가락 넘겼어.

"너 그거 박홍주한테 들키지마라. 걔 지금 완전 벼르고 있으니까."

"아... 그렇게 심해요?"

"말도 마. 나한테 아까까지도 계속 전화해서 너 설득 좀 해보라고 하더라. 사진전이 뭐라고."

"그러게요..."

푸스스 웃으며 마저 밥을 먹는 화평을 보며 길영은 오늘 오전에 받았던 전화를 떠올리곤 진저리쳤어. 집착에 가까울정도로 화평의 사진을 좋아하긴 하지만 굳이굳이 자기 갤러리에 사진전을 열고 싶으니 협조 좀 해달라던 홍주였지만 길영은 화평이 싫다는 데 굳이 하라고 하고싶지 않았어. 그래서 전화도 그냥 끊었는데 조금 후일이 두렵긴 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사람이라서.

"덕분에 든든하게 배 채웠어요."

"좀 잘 챙겨먹어! 작업한다 핑계대지말고!!"

"네네~ 누나도 좀 일 줄여요. 남 말할 처지는 아니던데."

"그걸 내가 조절할 수 있는건 아니지않냐?"

"하긴.... 사장님 요즘도 변덕 많이 부려요?"

"어. 말하면 입 아파."

"누나도 참~ 고생이네요."

"너만 하겠냐."

밥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까지 테이크 아웃해서 느긋하게 화평의 집이자 작업실로 돌아가며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 길영은 우뚝 멈춰섰어. 왜 그런가 싶어 앞을 보다 화평도 걸음을 멈췄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잔뜩 벼른게 보이는 박홍주가 화평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둘 다 도망갈까 했지만 박홍주가 알아차리는게 더 빨랐지.

"윤 작가님 이제 오시네요! 강 비서님이랑 식사하셨나봐요? 맛있게 드셨어요?"

"네, 뭐..."

마치 그게 네 마지막 만찬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해 화평을 떨떠름하게 답하며 힐끗 옆을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영은 화가 나있었어. 앞에는 잔뜩 벼르고 있는 박홍주에 뒤에는 잔뜩 화가난 강길영이라니 어쩌다 순탄하던 인생이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화평은 현실 회피를 도모하고자 했지만 말짱도루묵 되버렸어.

"날이 추운데 안에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누나도 들어가자, 춥다."

"어."

쌩 하니 먼저 들어가버리는 길영에 화가 많이 났다는걸 안 화평은 힐끗 제 뒤를 따라오는 박홍주를 봤으나 도통 속을 알 수가 없었어. 뒷감당은 어쩌려고 저러는건지 몰라 애꿏은 제 속만 타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니 더 해. 길영은 말없이 커피만 마시고 있고 홍주는 속을 알 길 없이 웃으며 이것저것 물어와서 화평은 정신이 없었지. 그래서 미쳐 깨닫지 못했어. 작업실 방 문이 열려있었고 그 틈 사이로 공개하지 않았던 작업물이 걸려있었단 걸. 그리고 그걸 홍주가 봤다는걸.

그 날은 어째서인지 그냥 이야기만 하다가 떠났어. 화평이 그 때의 일을 거의 잊을 때쯤 갑자기 홍주가 또 혼자 찾아왔지. 화평은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 홍주를 작업실로 들였어.

"어쩐 일이세요, 혼자."

"저번에 못다한 이야기를 할까해서요."

"왜 저번에 안 하시고."

"도망갈까봐."

싱글 웃으며 답하는 홍주에 쭈뼛 뒷목이 서늘해진 화평이었지. 지금 잘못하면 눈앞의 포식자에게 잡아먹힐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

"왜 그렇게 긴장해요. 잡아먹힐 것처럼."

"아, 하하."

댁 눈이 지금 사냥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의 눈인데 안 그렇겠냐고 답하지 못한 화평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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