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

2022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underwater by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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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속의 그는 항상 말이 없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며 속을 뒤집던 그인데, 창백한 몽중에서라면 이상하리만치 입을 가만 다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 수 있다. 아, 내가 또 꿈결을 헤매고 있구나. 안개로 뒤덮인 자작나무 숲은 온통 희붐하다. 눈과 얼음이 발밑에서 박살난 유리의 파편처럼 으깨진다. 그는 지척에 비딱하게 서서 미소짓고 있다. 어서 오라는 듯, 혹은 거기서 그만 멈추라는 듯 애매한 모양새로 손을 뻗은 채.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도 나는 그에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 역시 다가오지도 물러나지도 않은 채 제자리에 붙박여 있을 뿐이다. 어떤 말도 건네지 않고,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 지독한 잿빛 눈동자 안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기왕에 자각을 가진 채로 빠져든 꿈 속이라면, 여기에서나마 그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허용된 적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은 쉽게 꺼진다. 폭풍에 대비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를 받아들인다. 늘 그러했듯 이편이 합당한 선택이다.

 

 곳곳에 눈꽃이 만개해, 숲은 가시를 뻗친 것처럼 날카롭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가지들이 어지러이 뒤엉켜 하늘은 온통 반투명한 빗금들로 빽빽하다.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것은 오로지 신기루 같은 그의 모습뿐. 나는 가로막힌 천장을 올려다보지 않고 맨발로 걷는다. 지면의 높낮이를 분간할 수 없을 만치 새하얀 숲 속을 걷노라면 발밑의 감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마치 위태로운 허공을 거니는 것처럼. 가벼운 셔츠 한 장만 걸치고도 춥지 않았다.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되짚는다. 길목을 지날 때마다 나무의 모습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새로운 형상으로 변화한다. 저편의 그는 내게 내민 손을 거두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얼른 붙잡고 싶으면서도 그에게 뛰어들지는 못한다. 이대로 깨어나기가 두렵기에. 아직 그에게 건네줄 말들을 고르지 못했으므로. 마지막은 신중해야 했다. 동시에 그 고백이 최후의 작별만은 아니 되기를 간절히, 빌었으나.

 

 다음 순간 장면이 바뀐다. 그의 어깨너머로 눈부신 호수가 펼쳐진다. 불면의 밤, 커튼 사이 기어코 틈입한 시린 새벽빛. 그것을 외려 뿜어내는 듯하던 거울면처럼. 아프도록 번쩍이는 물의 표면. 역광을 등에 업고 일렁이는……

 

 그의 얼굴.

 

 당신.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성큼성큼 걸어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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