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아드리스
"내게 기회를 줘. 너를 지켜준다 했잖아." "어떤가." 불려온 어의들이 진맥을 마쳤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비 전하께서는 독에 당한 듯싶사옵니다." "해독제는?" "이 독은 아주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몸 속에서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킵니다.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이 없," 쿵. 남망기가 피진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어의들이
"이역만리 타국의 이방인은 고향에서도 이방인이 되어버렸네." 강징은 며칠 사이 조금 야윈 듯 보였다. 제국에서 갑자기 사절단을 파견하겠다고 전갈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사절단을 맞이하는 의전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했기에 신경 쓸 것도 준비할 것도 많았다. 그동안 제국에서는 1년에 한 번씩 파견하는 정기 사절단 외에는 따로 간섭한 일
"계절은 돌고 돌아, 결국 봄이 오는구나." 계절이 바뀌어 봄이 찾아오자 정원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위무선은 곳곳에 피어나는 꽃들을 구경하며 문득 옛 후궁들이 이것을 심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황제의 총애를 가득 받았던 후궁의 정원에는 갖가지 화려한 꽃들이 가득했겠지만 눈 밖에 난 후궁의 정원은 그저 휑하고 심심했겠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난 너를 믿었는데." 야렵대회 당일, 대회장인 백봉산 중턱에 모인 참가자들 앞에서 남망기는 참가자들의 무사 귀환과 성공적인 대회 마무리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본시 제관의 예복은 면사로 된 복면을 착용해야 했기에 남망기는 위무선에게 정체를 들킬 걱정 없이 예식을 치를 수 있었다. 제례가 끝난 후 황제의 짧은 격려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 줄게. 나를 떠나고 싶다는 것만 빼고." "겨울이구나." 어느새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 말은 즉, 위무선이 이곳에 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눈 내리는 정원을 바라보며 언제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한탄하고 있던 위무선에게, 소하가 다가왔다. "참, 오늘 귀공의 나라에서 사절단이 도착했다고
"돌이켜보니, 너는 차가운 얼음이 아니라 포근한 눈이었어." 절경도 하루이틀이지, 위무선은 황궁에서의 일상이 이미 지겨워진 지 오래였다. 선계仙界를 노니느라 다 늙도록 세월 가는 줄 몰랐던 어느 어부처럼, 신나게 놀고 나니 그제야 이곳이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낯선 타국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새삼 서글퍼졌던 것이다. 그 잘난 황제에게 외출 허락
"너와의 만남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악연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폐하, 사신단이 돌아왔습니다." 이 태감이 고하자, 막 돌아온 사신들이 일제히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 앞에 서 있던 황제, 남망기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돌아보았다. 옥같이 단아하고 정갈한 외모의 젊은 황제는 그 고운 얼굴이 무색해지도록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