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생각
사진 출처: Unsplash의Noom Peerapong
단항 x 블레이드
카일루스의 페나코니 광고 촬영을 돕는 단항
날조주의
“광고 촬영을 도와달라고?”
“응.”
카일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항은 설명이 이어지길 기다렸지만, 그의 친구는 ‘광고 촬영’이라는 네 글자로 모든 게 설명될 거라고 믿는 듯 더 말이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단항은 다시 물었다.
“무슨 광고를 말하는 거야? 촬영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자세히 얘기해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최근에 새로운 시계 소년 극장판 애니메이션 개봉했잖아. 시사회도 열렸고. 내가 그 작품 제작하는데 힘 좀 썼거든.”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도 들어갔지, 덧붙인 카일루스가 제 허리에 양 손을 얹고 뽐내는 포즈를 취했다.
단항도 시사회 초청장을 받긴 했지만 참석은 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 크게 관심이 없는 데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갈 기분도 아니었다. 카일루스가 그 영화의 제작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한 번 더 생각은 해봤을 텐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각 가문에서 은밀하게 보낸 초대장이 열차에 쌓이던 참이라 시사회도 그런 불순한 협잡질의 일환인 줄만 알고 무시했다.
“그게 흥행하면서 광고 촬영 의뢰가 꽤 들어왔어. 그중에 제일 돈 많이 주겠다는 일을 받았는데 광고주가 색다른 게 필요하다면서, 애니메이션 대신 실사 형식에 ‘선주풍’으로 만들었으면 한다는 거야.”
“선주풍?”
“응, 선주풍.”
타 은하계의 문화를 장식적인 개성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건 단항도 알았다. 신비와 무지는 형제 관계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화외지민이 공중을 나는 검을 타며, 소매가 길고 우스꽝스러운 매듭이 달린 복장을 하고, 눈 주변을 파랗거나 빨갛거나 심지어는 녹색으로 물들이기까지 하는 꼴을 보고 선주풍, 선주식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한 선주 토박이들의 반감은 굳이 묘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단항은 선주풍이란 단어에도, 화외지민의 무지함에도 별 유감이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유폐옥에 머무르며 책으로 세상을 접한 그에게 선주 문화는 페나코니의 문화만큼이나 피부에 와닿지 않는 관념으로 존재했다. 불완전한 기억마저 없었다면 나부를 떠올릴 때마다 단항이 느낀 감정은 애착이나 그리움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주 문화와 관련된 조언이 필요한 거야?”
“아니. 배우가 필요해.”
백 마디 말보다 견본을 한 번 보여주는 게 빠를 것이라 생각한 카일루스가 핸드폰을 켜서 대략적인 콘티를 보여주었다. 발로 그린 낙서 수준인 스케치를 보아하니 카일루스 본인이 직접 그린 눈치였다. 단항은 알아보기 어려운 스케치를 애써 외면하고 오른쪽 표에 적힌 개요와 광고주의 요구 사항을 확인했다. 솔글래드 스페셜 콜라보. ‘진정한 화합’을 추구하기 위해 은하계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오마주. 갤럭시 레인저, 지식 학회, 지니어스 클럽 시리즈도 추후 기획 예정. 화려한 탭댄스를 선보이는 주연 배우(클락·게이블 씨로 내정!). 무대를 구경하던 관객들에게 아이스 박스 속 솔글래드를 선물. 음료를 마신 후 무대 광경이 바뀜. 거세게 바람 불고 나뭇잎 휘날리는 선주풍 배경. 검을 든 스턴트맨과 주연 배우의 <선주식 대결>이 펼쳐짐….
더 볼 필요 없겠군. 단항은 눈을 들었다.
“스턴트 같은 건 해본 적 없어.”
“대충 시늉은 할 수 있잖아. 가짜 칼 들고 그럴싸해 보이게 움직이기만 하면 돼.”
검도 좀 쓸 줄 알지? 카일루스의 말투엔 확신이 어려 있었다. 틀린 건 아니었다. 무기 휘두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으레 다방면의 무도에 손을 뻗기 마련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지 않은가. 선대들이 남긴 기억에 말미암은 단항의 조예는 제법 훌륭한 수준이었다.
“출연비 줄게. 네 이름 적힌 영화배우 의자도 준비하고.”
“그런 건 됐어.”
“도와주는 거지?”
단항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승낙 받았다 여긴 카일루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 얼굴을 보며 다른 사람 찾아보란 말은 하기 어려웠다. 내버려 두면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고. 단항은 이번 조력을 경호 임무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시작한 건 좋았는데.
“컷, 컷!”
카일루스가 말아쥔 대본집(대체 이 짧은 광고에 대사가 얼마나 들어간다고?)을 요란하게 휘두르면서 외쳤다. 콧등에는 큼직한 선글라스까지 얹은 모습이 영락없이 겉멋 잔뜩 든 신진 감독 같았다. 단항은 스튜디오 구석에 기대서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스무 번째 촬영 중단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카일루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까탈스러운 젊은 감독의 태도에 분위기가 경직될 법도 했으나, 스튜디오 내부의 공기는 갓 촬영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꿈세계의 촬영장은 거의 모든 것이 ‘반자동’으로 작동했다. 카메라, 조명은 물론이고 관객 역할을 수행하는 광고판들까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한 스탭은 한 손에 꼽았다. 그들은 일찌감치 손을 놓고 사태를 느긋하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탭댄스만 추던 사람이 어떻게 검을 쥐자마자 능숙하게 움직이겠어요? 최대한 서툴게 움직이면서 초보 티를 내야죠.”
클락·게이블처럼 보이려고 큼직한 콧수염까지 얼굴에 붙인 스턴트 배우가 분노에 차서 손에 들고 있던 가짜 검을 팽개쳤다.
“처음엔 너무 서툴다고 하더니 이젠 또 너무 능숙하다고?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거야?! 한계야. 더는 못 해!”
그리고는 미처 붙잡기도 전에 촬영장 밖으로 뛰쳐나가버렸다. 스탭 한 명이 당황해서 그 뒤를 쫓아나갔지만, 카일루스는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항은 손을 들어 제 이마를 짚었다.
“이 정도도 못 버티고 도망치다니, 프로 실격이야.”
“…오늘 안에 촬영 가능한 거야?”
아무래도 이런 문제는 유경험자인 카일루스가 더 잘 알겠거니 싶어 지켜본 건데, 배우까지 탈주해버린 것을 본 이상 가만히 있기만은 어려웠다. 불쑥 말을 거는 단항을 보고서야 카일루스는 자신이 한참동안 친구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음을 깨달은 얼굴을 했다. 그 깨달음은 곧 ‘헉, 대박.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로 바뀌었다.
“계획이 바꼈어, 단항. 네 역할이 중요해.”
“….”
“대충 선주풍 검술을 하는 걸론 부족해! 열과 성을 다해서, 고수의 경지가 뭔지 보여줘야겠어. 그러면 클락·게이블이 연기를 좀 못해도 티가 안 날거야. 전문가 앞에서 아마추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초짜처럼 보일 테니까.”
정말 괜찮은 걸까, 이런 식으로 일하고 돈 받아도. 단항은 생각했다.
“검은 내 전문이 아닌 거 알잖아.”
“용존이잖아!”
“내 선대가 용존이었던 거지, 엄밀히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는 법이지!”
카일루스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기한 단항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도는 해볼게.”
역시 단항이야. 지나치게 이른 립서비스는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카일루스는 단항에게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했다. 어차피 CG로 후처리될 테니 얼굴이나 신상이 노출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촬영 카메라의 위치(사실 이건 육안으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본에 대사는 한 마디도 없지만 원한다면 어느 정도 애드립은 시도 가능.
단항은 스턴트 배우가 던져버린 가짜 검을 주워들었다.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검은 상당히 가벼웠다. 저격총처럼 이쪽을 겨누고 있는 십수 개의 카메라 렌즈 앞에 선 그가 시범 삼아 여러 동작을 선보였다. 나부 운기군 보급형 검식. 너무 밋밋해. 역동적인 느낌이 전혀 없잖아. 방호 원시음양검법 유술형. 그게 춤이야 검술이야? 아니스 5-2식 찌르기와 베기. 선주풍. 선주풍이 필요하다니까? 단항 너 어디 출신이야? 창성 파월류 유파 달빛 베기. 이제 좀 볼 만하네. 거기서 더 힘을 실을 순 없어? 파워풀하게!
“…….”
까다롭다. 수 분 만에 연이어 퇴짜를 맞은 단항은 렌즈 뒤의 카일루스를 바라봤다.
“도망가려는 거 아니지?”
조명 빛이 워낙 눈부셔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이쪽을 보고 있을 게 뻔했다. 단항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검이 더 무거워야 돼. 다른 소품 없을까?”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 법이라는데….”
“‘파워풀’한 걸 원한다면서. 동작에 힘이 실리려면 무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지금 쓰는 검은 너무 가벼워.”
카일루스는 미술 소품 담당자를 호출했다. 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단항이 요구대로 검의 중량을 늘렸다. 기존에 쓰던 소품이 종이접기 몇 번에 다른 물건처럼 변했다. 새삼 이곳이 꿈 속이라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단항은 확연히 묵직하고 길어진 검을 횡으로 한 차례 그어보았다. 부웅. 동작을 따라 이는 바람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손잡이를 한 바퀴 돌려 검을 고쳐 쥔 단항이 카일루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세가 처음과 완전히 달랐다. 촬영이 재개되었다.
단항은 눈을 감고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의 폭과 너비를 가늠했다. 넓은 보폭으로 걸어서, 좌로 열 걸음, 우로 열두 걸음. 후방에 설치된 세트와 전방의 카메라를 훼손하지 않도록 적절한 위치를 찾는다.
—!
역수로 쥔 검이 직선 궤도를 그리며 상승한다. 조명으로 뜨겁게 달궈진 공기를 난폭하게 찢는 한기가 그 궤적에 서려 있다. 반지름을 가로지르는 보법은 검의 움직임과 달리 무겁다. 무게 실린 신발 밑창이 바닥을 으깰 것처럼 밟는다. 칠흑 속에서 단항은 보이지 않는 적을 본다.
그 자신이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 혼란스러워 하는 눈, 구명줄처럼 꽉 움켜 쥔 격운. 검사의 눈으로 본 자신은 한낱 사냥감이다. 단항은 살기를 담아 사냥감을 노린다.
전두근, 관자놀이, 목, 심장, 배, 대퇴직근, 경대…. 동맥을 따라 휘도는 피가 지나는 자리들. 그린듯 눈에 선하다. 머릿속의 목소리가 찌르고 베면 빠르게 죽음에 이를 부위들을 낱낱이 나열하고 단항은 그 목소리의 지시를 좇아 검을 휘두른다. 몇 번은 스치고 몇 번은 빗맞았다. 조금만 더. 한 치. 딱 한 치의 틈만 좁히면 성공할 수 있다. 사냥감을 노리는 검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빠르고 난폭해진다. 공격에 치중한 탓에 보법 역시 처음의 안정성을 잃었다. 움직일 때마다 급소가 훤히 노출된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그의 몸은 오염되어 있다. 삿된 힘이 그의 죽음을 막는다.
고통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검은 당연하다는 듯 자기파괴로 치닫는다. 사냥감이 휘두르는 눈 먼 창에 살이 찢기고 근육이 파열될 만큼 무모한 공격이 계속된다.
단항은 숨이 차는 걸 느낀다.
피비린내가 콧속을 맴도는 탓이다.
“…컷!”
카일루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단항은 퍼뜩 눈을 떴다.
“역시… 난 천재야.”
감동에 젖어 거의 울 것처럼 카일루스가 중얼거렸다. 단항의 검술은 기대 이상으로 완벽했다. 완벽하게 선주풍에, 빠르고, 어디서 본 것 같지만, 파워풀했다! 인재를 알아보고 포섭하는 것도 엄연히 재능인 법. 냅다 의자에서 일어난 카일루스가 짝짝짝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객석에 얌전히 앉아있던 광고판과 카메라 뒤에서 딴짓 중이던 스탭들은 젊은 감독의 열렬한 반응에 의아해하며, 얼레벌레 분위기를 맞췄다. 브라보, 브라보! 이번 광고 진짜 대박날 걸!
“아… 또 광고야.”
은랑이 볼멘 소리를 하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 게임은 왜 광고 제거 버전을 안 만들까? 어플 두 버전으로 나누는 게 싫은 거면 정액제 방식으로 과금 유도를 하든지. 매번 귀찮아죽겠어.”
블레이드는 은랑이 중얼거리는 말의 1할 정도만 겨우 알아들었다. 광고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부분. 그 외에는 공감각 비콘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외계어를 듣는 것 같았다. 딱히 받아칠 주제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아서 묵묵히 하던 일에 집중했다. 손가락의 붕대를 새로 감는 그에게서 진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광고를 할 거면 좀 재밌게나 만들든지… 어.”
시큰둥하게 핸드폰 액정을 노려보던 은랑이 묘한 소리를 냈다.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고개를 좌우로 갸웃대고, 가늘게 뜬 눈을 보다 가까이 액정에 붙였다. 띵, 다당, 띠디딩…. 은랑의 손가락이 무음 모드 해제 버튼을 터치했다. 뚱땅대는 현악기 소리가 섞인 근본 모를 배경음악이 시끄러웠다. 캉! 카강, 쿵! 핫, 흡흡! 곧 요란한 기합소리가 배경음악을 압도했다.
“뭐지…?”
아예 양반 다리를 하고,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앉은 은랑이 분주하게 손가락을 놀렸다. 핸드폰 액정 주변으로 여러 겹의 홀로그램이 떴다. 가장 크게 뜬 홀로그램 창에서 예의 광고가 다시 재생되었다. 모바일 게임 중간에 삽입된 20초 버전이 아니라 풀버전이었다. 은랑은 1분 30초짜리 영상을 멈췄다가 재생시키고, 화면을 키웠다 줄였다 하면서 장난감처럼 다뤄댔다.
“블레이드, 이것 좀 봐.”
“?”
은랑이 블레이드에게 다가왔다. 또 무슨 알아먹지 못할 말을 하려고. 블레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잠자코 제 앞에 들이밀어진 홀로그램 창을 쳐다봤다.
꿈의 천국 페나코니에서 보내드립니다, 솔-글래드 스페셜! 흑백이었던 화면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색을 덧입었다. 무대의 붉은 커튼이 걷히고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을 단 남자가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는 만화 속 세계 같은 무대에 있었다. 모든 게 평면에 비현실적이었다. 춤추는 찻잔, 웃는 얼굴의 꽃과 나무들, 큼직한 코가 인상적인 태양. 경쾌한 탭댄스가 이어지다가 광고의 진짜 주인공인 솔 글래드가 등장했다. 큼직한 선물 상자에 든 음료를 남자가 객석을 향해 이리저리 던져댔다. 그림자 뿐인 관객들이 남자에게 받은 음료를 마시는 시늉을 하자, 무대가 바뀌었다. 블레이드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뭘 보라는….”
“쉿, 이제 시작이야.”
은랑이 홀로그램 창의 크기를 키웠다. 무대의 변화와 함께 음악도 달라졌다. 아까 들었던 우스꽝스러운 음악이다. 대나무 잎이 사납게 이는 바람에 마구 흩날리고 음울한 얼굴의 달 아래 두 실루엣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선주 복식도 뭣도 아닌 옷차림의 남자와 검을 든 시계소년. 히야앗! 남자가 희한한 기합 소리를 내며 시계소년에게 검을 휘둘렀다. 몸을 반 바퀴 뒤로 돌려 손쉽게 그 공격을 피한 시계소년이 단독 공연을 선보였다. 종縱으로 짓쳐 올린 검을 따라 대나무잎이 휘몰아치고, 이어지는 초식은….
“시계소년 모션이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서 봤나? 왜 이렇게 익숙하지.”
과도하게 다른 레퍼런스를 참고한 게 아닌가 의심하는 어투였다. 블레이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물었다.
“이걸 만든 게 누군지 알아?”
“찾아봤는데, 감독 이름 말고 다른 정보는 없어. <은하 너구리>래. 촌스러워.”
페나코니에서 만들어져 송출된 광고. 자신의 검법을 재현한 움직임. 블레이드는 이 모션을 제공한 범인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검을 이 정도까지 꿰뚫어 보는 상대는 애초에 많지 않다. 그의 검을 몸소 받은 자 중에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니까.
“웃기지도 않는군.”
블레이드의 평가가 감독의 작명 센스를 겨눈 것이라 받아들인 은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레이드는 붕대의 매듭을 짓고 일어났다. 은랑은 자신이 찾고 있는 ‘원본’이 코앞에 있다는 건 까맣게 모른 채 열심히 정보의 바다를 뒤적였다.
퇴없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