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연애담

6학년 크리스마스

Anchor Point by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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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수위의 학교폭력 암시가스라이팅을 포함한 언어폭력을 다루고 있사오니 열람 시 유의 바랍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오레스테의 연애는 5학년 초입부터 시작되었다. 상대는 딱히 놀랍지 않게도 머글 태생 마법사였고, 그리핀도르 1년 선배 렉스 블레어라는 신상정보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널리 유포되었다.

그 오레스테 오플린의 연애다. 소식을 들은 학생들 대다수가 이 연애가 오래지 않아 쫑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둘의 연애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무려 1년을 훌쩍 넘겼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그마치 5년 간 보여 왔던 경향성이 부서졌다. 임자 만났다, 드디어 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다, 별의 별 추측과 소문이 호그와트 청소년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대체 네 어디가 그렇게 좋대?”

한 학년 후배와의 연애놀음, 그 당사자인 렉스는 눈꺼풀을 예쁘게 내리깔며 비죽한 미소를 띠었다. 눈앞에서 남자친구 이야기를 들은 것치고는 냉랭한 반응이었다.

“뭐야. 표정이 왜 썩어?”

렉스가 미간을 구겼다.

“‘좋대’?”

“그럼? 싫어하냐? 너네 연애하잖아.”

렉스는 미간을 살짝 찡그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렉스는 그리핀도르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지만 워낙 성격이 불 같고 까탈스럽기로 악명이 높았다. 동기는 둘이 싸웠겠거니 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때 렉스가 입을 열었다.

“난 걔 별로 안 좋아해.”

“엥?”

“걔도 나 별로 안 좋아하고.”

“뭔… 염병하지 말고 싸웠으면 화해나 제대로 해라.”

“뭐?”

“네가 한 살 더 많으면서 왜 쫌생이처럼 굴어? 싫은 점이 있으면 차라리 대놓고 욕을 해. 그런 식으로 나쁜 애 만드는 꼴 보기 추하니까.”

렉스는 사정도 모르고 떠들어 대는 동기에게 며칠 전에 오레스테와의 사이를 완전히 쫑냈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입방아에 오르는 건 렉스로서도 달갑잖은 일이었다.

* * *

불 같은 성질머리와 주둥이는 늘 보복을 불러온다. 학생들 사이의 주먹다짐이 썩 놀랍지 않은 분위기가 된 이후로는 더더욱. 또한 찍어 누르려는 시도는 언제나 그렇듯 반발을 낳는다.

하여간 순수함을 일생의 자랑거리로 삼아 잡종 소릴 입에 서슴없이 담으면서도 고상한 척을 일삼는 놈들은 자기 자신의 수직적인 우위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 심기에 조금만 상처를 내 줘도 상스럽게 굴기 일쑤였다.

렉스는 그 고상한 표정들을 부서뜨릴 때마다 형용하기 힘든 쾌감을 느꼈다. 그 말초부터 피어오르는 쾌감의 대가로 받는 주먹질은 차라리 포상에 가까웠다.

렉스가 불에 덴 듯 후끈거리는 뺨을 문지를 즈음, 대체 어디서 소식을 듣고 온 건지 익숙한 기척이 가까워졌다.

“또 맞았어?”

오레스테다. 하여튼 행동 하나는 감탄이 나올 만큼 재빨랐다.

“어.”

“이번엔 또 뭐라고 했는데.”

“나더러 잡종이라길래 너는 교배 잘 된 종마라서 좋겠다고 해 줬지.”

“뭐?”

험한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진심으로 충격 받은 듯한 모양새가 우스웠다. 교배 잘 된 종마. 따지자면 렉스의 눈앞에도 있었다. 이쪽은 조금 더…… 사육사를 잘 따르는 쪽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똑같은 사람 되지 말라니까 왜 또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 내가 입 적당히 놀리라고 했잖아.”

렉스는 눈만 움직여 오레스테를 보았다. 그래도 일 년 사귀었다고 말버릇이 옮은 건지 제법 맹랑한 소리를 할 줄 알았다. 기특하게 넘어가 준다고 해도, 방금 그 말은 오레스테가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같은 동물이래도 렉스는 잡종이고, 오레스테는 품종 보증서가 있는 종마니까.

렉스는 오레스테에게 딱밤을 먹였다.

“하, 이것 봐라. 선배한테 싸가지 없게.”

“아, 아파.”

“나니까 이런 소리 해도 봐주는 거지, 나 때린 놈한테 이런 소리 하면 넌 죽었어.”

렉스는 오레스테의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고 손바닥을 털었다. 렉스는 오레스테가 질색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오레스테는 계속 씩씩대더니 렉스의 어깨를 잡고 제 쪽으로 당겼다.

“너야말로 왜 자꾸 답답하게 굴어?”

“무슨 소리야, 내가 맞고만 있었을 것 같아? 한 대 먹여 줬지, 당연히.”

“걔네 집, 우리 집 없으면 납품 루트 막히는 거 알잖아?”

그 순간 렉스의 낯짝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원예 사업을 하는 모링턴이 오플린의 거래처인 건 사실이었다. 꽃들 중에서도 유난히 좋은 향취를 풍기는 개량 품종들을 키우고 있어 프랑스에서 더 수요가 있다는 점도.

약간 가라앉은 눈이 오레스테를 향했다.

“그런데.”

“누가 이상한 소리 하면 내 이름 팔라니까 자꾸 말 안 듣지.”

건방진 말본새가 문제가 아니었다. 렉스는 오레스테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꽤.

시비 걸릴 때마다 순혈인 자기를 찾아라, 렉스가 시비에 휘말릴 때마다 하는 소리였다. 말로는 자기 이름을 팔라 하고 있었지만, 싸움 나면 부모를 불러 해결하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이었다.

“내가 네 이름을 대서 뭐 하는데?“

“그걸로 협박이라도 해서 그만 때리게 해야지. 앞으로도 계속 맞고만 있을 거야?”

자기가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순진한 심리를 우연찮게 목격할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오레스테가 제안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한 결국은 혈통의 위계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안쓰럽게도 열여섯 살짜리는 이런 점에서 자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더러 오플린을 이용해서 상황을 피해라, 이거잖아.”

오레스테의 미간이 움찔 떨렸다. 내뱉기 전엔 몰랐겠지. 거기까지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 왔을 테니까. 하여간 렉스의 어린 남자친구는 지나치게 알기 쉬웠고, 발전이 없었고,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동그랗게 뜨인 눈을 보니 속에서부터 무언가 훅 치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는 꼭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충격받은 얼굴을 보니 울화통이 금방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칠 년간 차곡차곡 쌓여 왔던 응어리들이 난장을 치기 시작했다.

렉스의 고약한 버릇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끼는 물건에 상처를 내고 싶은 충동처럼, 이 고상한 줄 모르는 고상한 녀석의 표정을 깨뜨리고, 상처를 입히고 싶었다.

따지자면 이 녀석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머글 태생 마법사를 붙잡아 최하급 품종으로 라벨링하는 그 부당한 질서에 렉스가 지나치게 짓눌려 왔고, 마침 눈앞에 있는 녀석이 그 고뇌나 고질적인 고민 따위를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 데에 화가 났다. 고작 그뿐이었다.

“주먹질 몇 번만 하면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네 이름을 팔아서 뭐 해?”

“…….”

“도움이 되는 건 오플린이고, 오레스테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돼. 알잖아?”

제 형을 뛰어넘고 싶어했듯, 오플린이라는 틀을 깨고 오레스테가 되고 싶어 했던 녀석은 이 말에 제법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렉스는 상처받은 얼굴을 보며 그간 느껴본 적 없는 희열을 느꼈다. 제 말이 누군가에게 그만큼 위력적인 말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니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 모르셨어?”

더구나 렉스는 성격이 나빴다. 눈앞의 순혈이 그저 상대의 심기를 섬세하게 살피는 법을 모르고 순진했을 뿐 별달리 저지른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금 간 얼굴을 후벼파야 직성이 풀렸다.

아무리 사육사의 말을 잘 듣는다 해도, 오레스테는 그에게 종마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플린이 싫다면서 오플린을 써먹으라는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앞에서 하잖아. 좋아할 것 같았어? 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

“…….”

“이제 보니 본인 주제 파악은 뒷전이고, 나 같은 사람 동정이나 하면서 나는 다른 순혈들이랑 스탠스가 다르다, 그 사실에 심취하는 게 취미이신가?”

무언가 꾹 눌러 참는 듯한 숨소리가 렉스의 귀까지 들렸다. 렉스는 직감했다. 이대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이 관계는 끝이었다. 그러나 이 기회가 어디 쉽게 오는 기회인가? 오레스테가 아니라면 누구에게 이런 말로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렉스는 오레스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움켜쥐어 당겼다. 순순하고 말 잘 듣고, 어떤 점에서는 화풀이 상대가 되기도 했던 후배가 손아귀에서 벗어날 걸 뻔히 알고 그랬다.

“정신 차려. 넌 순혈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방패막이도 뭣도 안 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도움을 줄 수도 없어. 내가 누구랑 치고 박고 난리를 치든 오플린이라는 이름이 없으면 눈 하나 깜짝하기를 해, 뭘 해?”

“…….”

“네 주제를 알란 말이다. 알아들었어?”

렉스는 오레스테가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하며 움켜쥔 손을 놓았다. 무언가 바꿔 볼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혈통이 싫다는 소리나 해 대고. 그게 순수하지 않은 마법사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이 뒤틀린 분류법이 붕괴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눈에 띄지 않게 기대어 살아가는 방식이나 제시하는 주제에….

렉스가 방금 저지른 짓은 화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기이한 사회에서 눈을 돌리고 싶다는 이유 고작 하나만으로, 회피의 일환으로 연애 아닌 연애를 택한 건 피차 마찬가지였으니 후배 또한 이러한 고별 방식에 불만은 없으리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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