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촬

포도메론

일상적이며 간단하나 알 수 없는 모든 것의 답

“쿠레시마 씨, 누누이 말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나락 끝에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에게, 그게 너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건 폭력이에요. 절대 귀담아듣지 마세요.”

그렇게 문은 닫혔다.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나아질까. 하루가 지나면 비슷한 하루. 익숙한 병원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 미츠자네는 성실한 환자였다. 꼬박 약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지킨다. 꾸준히 운동하고 주변 환자들의 평판도 좋으며 간호사나 의사도 그의 방문을 기껍게 여긴다. 미츠자네는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할 줄 안다. 줄곧 그래왔다. 팀 가이무에서는 밋치로, 학교에서는 외로운 우등생으로, 집에서는 말 잘 듣는 동생으로.

그리고 이제는 우수한 간병인이다. 물론 간병인을 쓸 여력이 없어서 안 쓰는 건 아니다. 그냥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힘들고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둬야 하나, 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에게 좋지 않을 수가 있단다. 그러나 미츠자네는 인내심을 가지고 간병 일을 배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던가. 적어도 자신의 환자를 돌보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졌다.

문제는 그 환자 –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언제 깨어나느냐.

평생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미츠자네에게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네, 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상담이다. 저는 벌을 받는 중인 거죠.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말한다. 상담사는 무언가를 끄적이고 무겁게 답한다.

“그렇지 않아요.”

또 문은 닫힌다.

나빠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것이 미츠자네에게 주어진 벌이다. 당신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선하다는 증거입니다. 누군가 했던 말이다. 기념일에 전도하던 사람이었던가.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모든 것과 그 결과를 생각하면 무책임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시험에 들게 하지 않고,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그랬으면 될 것을.


 

“기적이 일어난 걸까요?”

미츠자네가 중얼거렸다.

“노력이 빛을 발한 거죠.”

상담사가 살풋 웃으며 답했다.

“노력이라면.”

“간병이라던가.”

“그거 가지고 나아졌다면, 세상에 아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개미의 정성도 하늘에 닿는다’고 하잖아요.”

“……”

다시 문은 닫힌다. 꿈보다 해몽이군. 무엇이든 좋게 해석하는 게 상담사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잠을 설쳐서 그런지 삐뚤게 생각하고 만다. 미츠자네의 눈썹이 삐뚤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는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린다. 문득 궁금해져 그것을 보자고 했지만, 알아볼 수 없는 글씨투성이라, 됐다고 손을 휘휘 젓는다.

“오늘은 이만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깨어났다.

가장 먼저 카즈라바 코우타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고깝게 느껴지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병원에서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말에, 미츠자네는 먼저 집에 돌아갔다. 형이 돌아오면 쓸 수 있도록 방을 치워놓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도망친 셈이었다. 오랫동안 의식이 없었으니, 재활까지 긴 시간이 걸리겠지. 그러니 하루 정도는,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역처럼 보존하고 있던 형의 방을 처음으로 침범했다. 특별한 것도 없는 형의 침대인데 눕는 것만으로도 배덕감을 느낀다. 미츠자네는 아무 향취도 없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스라이 형의 향기가 나는 듯도 하고…

그래서 잠들지 못했다. 모진 악몽을 꿀 것 같아서. 또는 아주 못된 짓을 할 것 같아서. 모자를 꾹 눌러 쓰고 군중 속에 섞여 들면 그는 쿠레시마 미츠자네가 아니라, 의외로 흔하디흔한 ‘밋치’일 뿐이다. 팀 가이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알아볼 사람도 손가락질하며 뭐라 할 사람도 없지만, 카즈라바가 그럴 사람도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타카토라를 돌려줬으니 누가 대가라도 받아 갈 것 같아서 무서웠다.

또는 이 역시 형벌의 일종이거나.

 


…쿠레시마 씨, 큰일이에요. 환자분이 숨을 안 쉬어요. 쿠레시마 씨, 듣고 계시죠?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무쪼록 빨리 병원으로 와 주셨으면 해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 그렇구나. 역시 나는 안 되는 거였어.

 


눈을 뜨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침이었다.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나아질까. 하루가 지나면 비슷한 하루. 익숙한 병원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 미츠자네는 성실한 환자였다. 꼬박 약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지킨다. 꾸준히 운동하고 주변 환자들의 평판도 좋으며 간호사나 의사도 그의 방문을 기껍게 여긴다.

타카토라의 재활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평이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미츠자네는 가끔 그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근처를 산책하지만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약을 먹는다던가, 상담을 받고 있다던가. 숨길 수 있다면 최대한 숨길 생각이다. 눈치 빠른 형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차피 타카토라가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사실,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든 좋아요. 형은 좀 어때요?”

“그냥…잘 지내요. 이제는 앉아서 책도 읽고, 휠체어에 타서 산책도 하고, 재활 치료도 받아요.”

“쿠레시마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고 뭐고…아무 생각 없어요. 그냥 형이 깨어났으면 잘 된 거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됐어요.”

“…더 안 물어보시나요?”

상자를 열기 전 판도라의 기분이 이랬을까. 미츠자네는 생각했다. 1초가 무슨 1년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상담사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웃다가 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내가 무슨 경찰도 아니잖아요.”

무슨 걱정을 하냐는 것처럼.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문은 닫힌다. 아니, 다른 것은 하나 있다. 미츠자네는 그 문 앞에서 조금 오래 서 있었다. 다음 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생각하다, 이내 자리를 떠 어디론가 갔다. 솔직히, 그게 어디인지는 너무 뻔했다.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사소한 것으로도 마음은 편해지는 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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