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메론
침수주의보
괴로워. 차라리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사람은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동생을 찾는다.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미츠자네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그에게 뭐라도 하고 있다는 확증을 받고 싶은 것이다. 형으로서, 부모의 대타로서 타카토라는 얼마나 비루한 존재인가. 목표는 인류의 구제. 하지만 가족 한 명도 지키지 못하는 가장에게 쓸모가 있을까. 좀 더 따스한 말을 건네고 싶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어 제자리걸음을 한다.
미츠자네는 타카토라가 찾기도 전에 중앙 계단에 나와, 소쇄하고 우울한 얼굴로 ‘형, 왔어?’ 같은, 형식상의 인사를 하고는 했다. 그런 미츠자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학교에서 행사나 보충 수업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약간의 불안을 안고 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미츠자네는 자신의 책상에 엎드린 채 곤히 자고 있었다.
…침대로 옮겨야겠지.
그리 생각한 타카토라가 책상에 손바닥을 올려놓은 순간이었다. 눈물에 번진 글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미츠자네의 글씨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기장인가.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보호받는 동생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외면하려 했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괴롭다는 말. 차라리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말. ‘그 사람’은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라는 말.
미츠자네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침대로 옮겨두고 몰래 읽어볼까.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폐기했다. 가족이라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그러나 어쩌면, 어쩌면 타카토라가 그 일기장을 읽어보는 게 맞았을지도 모른다…미래의 일따위 아무도 알 수 없으니 그 역시 자신의 판단이 맞다며 지나갔지만 말이다. 일기장은 덮어버렸다. 미츠자네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타카토라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미츠자네만한 나이의 소년이라면 타인에게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어쩐지 착잡했다. 그 아이는 청춘을 즐기고 있을까.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겨우 ‘학부모 면담’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밖에 보지 못한 그의 담임은 ‘조용하지만 착실하고 좋은 아이’라는 평을 내렸다. 쿠레시마 가문의 남자로서 당연한 평가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를 고립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이그드라실의 주임을 맡을 만한 사람에게 곧이곧대로 진실을 말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타카토라는 모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선생에 대한 미츠자네의 공작이 먹혀들어갔던 것이다.
타카토라의 생각 이상으로 미츠자네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 모두를 뜻한다. 그것을 모르는 한, 타카토라가 미츠자네를 이해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고민은 동생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어쩌면, 이게 ‘그 사람’의 사랑이라고 체념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타카토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학교는 좀 어떤가.”
저녁을 먹던 중, 타카토라가 말했다. 미츠자네는 그런 말을 들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그저 그래. 별거 아니야. 수프 접시 위로 시선을 떨군다. 하긴, 말하고 싶지 않겠지. 무책임한 형에게 괜한 말을 듣고 싶지 않겠지. 타카토라 역시 시선을 떨군다. 미츠자네가 잠깐 자신을 훑어봤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 둘은 이 어색함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처럼 숟가락을 입으로 옮긴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또는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모르는 그대로 계속.
“…형.”
그리고 미츠자네가 입을 열었다. 타카토라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반대편에 앉은 그의 안색을 살핀다. 걱정…하고 있을 리가 없겠지. 가끔 보면 순진한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문득 료마가 던진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 말이 어째서 미츠자네의 얼굴을 보며 떠올랐는지는 불명이다.
“무슨 일 있어?”
그것은 마치, 타카토라에게 있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나한테 신경을 쓰느냐’는 말처럼 들렸다. 괜한 말을 했나 싶어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때 차라리 ‘네가 걱정되어서’, 아니면 ‘일기장을 봤다’는 말을 던졌더라면 엇갈림은 덜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카토라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쭉 뻗은 직선과 실타래처럼 꼬인 곡선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처럼…결국 최악의 수를 두고 만다. 바로 입을 다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에 미츠자네가 얼마의 절망을 곱씹었는지 타카토라는 알 수 없었으리라. 형은 나에게 관심 따위 없는 걸까. 미츠자네가 숟가락을 들었다. 괴로워, 차라리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형에게 품은 최저의 감정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최악의 방법으로 새어 나왔다. 그 사람은 나 같은 거 아무래도 상관없겠지…숟가락이 접시 위로 쨍,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냥 손이 미끄러진 거야. 미츠자네의 다이어리에 괜히 눈물이 떨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식탁 앞에 타카토라는 홀로 남았다. 동생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것은 어느 쪽일까. 다행일지 불행일지.
후회는 최후까지 심장에 남을 응어리를 말한다고 한다.
미츠자네의 비명 섞인 말에 모든 것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타카토라가 지금까지 해온 건 배려가 아닌 외면이었다. 미츠자네와 괜히 틀어지고 싶지 않아서, 원하지 않을 거라는 명목으로 해온 모든 것이 그를 망치고 있었다. 너는 내 그림자다. 너는 내 과오의 모든 것…사람은 바다로부터 기인하였으니 결국 바다로 돌아가는 것일까. 죽음의 공포보다도 후회가 심장에 사무치는 것일까…바다 위로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알자마자 타카토라는 눈을 감았다. 미츠자네가 그의 그림자라면, 타카토라가 그의 빛이라면, 광원이 사라진 그림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차라리 미워하며 나의 죽음에 눈물 짓지 않기를. 그 소원마저도 엇갈렸다. 세상에는 너무 좋아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관계도 있다.
이번에야말로 틀린 대가를 받아 가겠다는 듯, 바다는 입을 벌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