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리의 짧은 회고

그는 뛰어난 치료사로, '마왕' 시대 이후 저주 해독에 대한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으며...

Aporia by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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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 아니 이제는 청년이라고 칭해야겠다. 그는 참 선량하게도 일 년에 한 번씩 나에게 짧은 안부 편지를 보내왔는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병원에서 보았던 그 소년이 흔들림 없이 그대로 큰 것 같아 대견하고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아내 줄리아와 나누었던 것이 기억난다. 유순하면서도 강단 있는 이였다. 두 개의 단어가 합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그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의식을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할 것이며, 운 좋게 부상을 이겨내더라도 예전처럼 지내지 못하리라는 소식을 전한 뒤로도 그가 열 여섯살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새벽'이라는 무게도,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도 그를 꺾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 해 겨울, 여느 때처럼 도착한 안부 편지에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던 것에 우리는 적잖이 놀랐다. 마침 나와 아내는 크리스마스 준비를 위해 그 주말에 다이애건 앨리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므로 고민할 것 없이 만날 약속을 잡았고, 예정된 시각에 약속 장소로 갔다.

잠시 셈해보면 그 자리에 나온 헤르모드 군은 갓 스물이었을 테다. 우리는 연말 분위기로 왁자지껄한 대로를 벗어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당시 예견했던 대로 조금도 옅어지지 않은 흉터가 치료사로서의 내 부족함을 새삼 느끼게 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나와 줄리아는 그가 요청하려는 '도움'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해본 상태였는데, 추측 중 하나가 깔끔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럼 혹시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된 것일까? 그런 것을 먼저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 안부 인사와 다가올 크리스마스 이야기, 곧 첫눈이 올 것이라든지 오늘 쇼핑한 물건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벼운 대화를 건넸다. 그는 훌쩍 어른스러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투로 그 대화에 어울렸으나, 나는 그가 부탁을 꺼내기 어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물어볼까, 싶던 때에 호랑가시나무 잎과 붉은 열매가 그려진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은 청년이 우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사람을 구하려고 합니다.

두 분 같은 마법사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카멜리아는 눈 내리는 겨울에 피는 꽃이다. 잿더미가 불씨를 품은 듯이 결연했던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얼마 전에 나와 아내는 마지막으로 그의 가게에 들렀다. 우리는 휴업 안내문을 읽고, 거기에 쓰인 다양한 글씨체의 메모 몇 가지도 읽었다. 줄리아가 문 아래의 틈새에서 찾은 쪽지까지 읽은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의 심정은 지금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오늘, 마법 사회에 '전쟁'의 결과가 공표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나이드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아, 살아남은 그 청년이 너무 오래 고통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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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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