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과 난롯불

타브아스, 드림글에 가깝습니다.

발더삼 by 소금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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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타리온, 사랑한다고 말해도 돼? "

" 달링, 내가 그러지 말고 그냥 안아주기만 하라고 했지? "

그는 늘 그래왔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사랑한다는 말에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아스타리온은 질색하며 그저 타브에게 꼭 안겨있고는 했다. 사랑한다는 말. 영원히 함께하겠다는말. 너 뿐이라는 말. 아스타리온에게는 익숙할 만큼 익숙하고, 진창의 진흙처럼 발 뒤꿈치에 달라붙어 질척거리는 단어들이었다. 아니, 사실 발 뒤꿈치보다는 온몸을 뒤덮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는 이미 7천명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았고, 그 중 절반이 넘는 인원들에게 더욱 달콤한 말을 들어보았다. 하지만 아스타리온은 그럴때마다 더욱 벼려져 갔다. 점점 더 차갑게, 점점 더 날카롭게. 그 말을 가슴에 담아두지 않기 위해서, 몇번이고 머리속으로 되뇌이며 웃었다. 웃는 것 정도는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하니까. 그러나 그 짓을 너무 오래 한 탓일까,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 자체를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아스타리온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익숙하게 알아왔다. 슬픔, 긴장, 아픔, 분노와 무력까지. 그 사이에 기쁨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언젠가 타브가 죽음과 가깝게 다쳐 온 일이 있었다. 모든 처치를 했고, 시간만이 남아있던 그 밤. 날카롭게 벼려둔 마음이 쓸모 없이 허물어지고, 민감한 로그의 감각이 타브의 죽음만을 외치고 있을 때. 아스타리온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달았다. 매섭게 불어오는 북풍에, 땅이라고 생각하며 디디고 있던 그곳은 꽁꽁 언 얼음판 위였다. 사람이 서 있을 정도로 두꺼운 얼음판은 어느새 조금만 움직여도 금이 갈 정도로 얇아져 있었다.

그리고 타브가 일어나 아스타리온을 보았을 때. 아스타리온은 그때만큼 자신이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고, 거울에 비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비통해 했다. 타브가 깨어나 그에게 인사했을 때, 아스타리온은 화를 내었다. 어떻게든 끌어올려보려 했던 입꼬리가 자신을 배신하고, 언제나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들쑤셔진 벽난로의 불처럼 타올랐다. 그날 밤. 타브만이 아스타리온의 표정을 볼 수 있었고, 그만이 그에게 말을 걸 수 있었을 때. 타브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에 아스타리온은 쩍쩍 금이 간 발 밑이 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스타리온은 생각했다. 언젠가 꽁꽁 언 강 위는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더랬다. 얼음이 깨져 한번 물 속으로 빠지고 나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스타리온은 물 속으로 빠져들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물 속이 차가워 꽁꽁 얼어버린 탓이 아니라, 그만큼 그 물 속이 따뜻했기 때문에. 그 위에서 불고있는 북풍 같은건 다시는 맞고싶지 않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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