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토끼는 외로워도 죽지 않는다 上

“이거…… 진짜 하는 거야?”

“하하. 우리는 꽤 익숙한데, 이런 거.”

망설임 섞인 타카미네의 말에 대답한 것은 마시로였다. 그야, 라비츠의 컨셉은 타카미네도 알고 있다. 토끼를 모티브로 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복장이나 무대는 타카미네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문제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건장한 남학생들이 축제랍시고 라비츠에게나 어울릴 법한 토끼 귀를 달고 카페를 연다는 것이다.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타카미네는 한숨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나도 라비츠 멤버들만큼 작고 귀여웠으면 망설이지 않았을 거라구. 하지만 난 이렇게…….”

“걱정마십쇼. 미도리 군은 토끼 귀를 달고도 잘생겼으니까.”

어느새 타카미네의 등 뒤로 다가온 나구모는 무심하게 말하며 타카미네의 머리에 토끼귀 머리띠를 씌웠다. 하얀색의 길쭉한 귀는 사랑스럽지만 확실히 타카미네의 캐릭터는 아니다. 물론 그의 앳된 얼굴과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일어나는 순간 그 기다란 귀는 큰 키와 더불어 그를 더욱 커보이게 만들 테다. 나구모의 기습에 타카미네가 희미하게 우는 소리를 냈다.

“아앗…….”

일련의 과정 끝에 마시로의 시선이 향하는 것은 하얗고 사랑스러운 토끼귀가 아닌 타카미네의 얼굴 쪽이다. 특유의 우울한 표정은 그 잘생긴 가죽 덕에 그를 우수에 찬 미남으로 보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그 얼굴을 보는 순간 토끼귀는 잊혀진다. 마시로는 넌더리를 내며 말했다.

“정말이다. 짜증날 정도네.”

“으읏……. 나라고 좋아서 이런 얼굴로 태어난 게 아닌데…….”

타카미네가 물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누구에게도 그를 달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타카미네 역시 위로를 바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영혼을 토해내는 것 같은 한숨 끝에 타카미네는 몸을 일으켰다. 단정한 흑백의 종업원 유니폼은 그의 늘씬한 몸을 부드럽게 감고 있다.

타카미네는 요리 파트를 담당하길 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돌과이고 매력적인 학생이 많다 하더라도 타카미네가 주방에 틀어박혀 요리하기를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타카미네는 서빙 담당이었다. 길고 날렵한 발을 감싼 검은 구두는 묵직하게 바닥을 울렸다. 내키지 않는 느린 걸음마저도 화보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의 반 친구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도리어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거의 한 달에 서너 번 꼴로 행사가 잡혔기에 아무리 학습이 느린 타카미네라도 1년이 지나고 난 뒤에는 이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본래라면 이미 한참 전에 잘하게 되었어야 하는 시점이었을까. 물론, 조금 느리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잘하게 될 것이니 서두를 이유는 없다. 타카미네는 마음을 다잡았다. 전부 그 사람이 알려준 것이다.

누구나 제멋대로 타카미네를 오해했다. 키가 크고 외모가 말쑥하다는, 겨우 그 정도의 이유만으로 모든 일을 금세 완벽하게 해낼 것이 분명한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타카미네는 그렇게 요령이 좋지는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공들여 하다 실패해봐야 꼴사나워질 뿐이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타카미네는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열심히해서 우스워지는 것보다 냉소를 가장하며 미리 포기해버리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적어도 우스운 꼴은 면할 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타카미네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타카미네는 분명히 말했다. 싫다고 했다. 귀찮다고 했고 내버려두라고 했다. 말을 하는 쪽이 지겨워질 정도였다고 타카미네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상 뿌리치지 않았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기뻤다. 이 사람이라면 저를 내팽개치지 않을 거라고 끝까지 믿어줄 것이라고 타카미네는 생각해버리고 만 것이다.

뭐, 그랬던 그 사람도 최근에는 바쁜 모양인지 연락도 통 없지만. 타카미네는 한숨을 내쉬고 다음 서빙을 위해 카운터를 향했다. 똑같이 토끼 귀를 달고 카운터를 보던 마시로가 안쪽으로 들어서는 타카미네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타카미네, 저 사람.”

“응?”

“모리사와 선배 아냐?”

일부러 낮춘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은 타카미네를 배려한 탓일 테다. 마시로의 시선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분명 잘 알고 있는 동시에 이 장소에는 맞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정말로, 모리사와 선배였다.

“엣, 어째서.”

타카미네는 카운터 아래로 숨듯이 주저앉았다. 연락도 거의 안 되던 사람이다. 타카미네가 당혹감에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쥐었다. 입술을 겨우 달싹여 하는 말이라고는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 뿐이다.

“……어째서?”

“축제니까 시간을 내서 오겠다고 했었슴다.”

타카미네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나구모였다. 나직한 한숨 소리에 타카미네가 고개를 들면 카운터에 기댄 채 타카미네를 바라보는 나구모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구모는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나구모는 비밀을 만드는 데에는 아무래도 재능이 없었다.

“나한테는 비밀로?”

그러니 아마 이것도 모리사와가 신신당부한 일일 테다. 그렇게 생각한 타카미네는 턱을 당기며 나구모를 노려보았다.

“네, 뭐. 그렇슴다.”

나구모는 그렇게 말하고 제 뺨을 긁적였다. 나구모의 반응은 확실히, 타카미네의 기분을 신경쓰고 있는 사람의 것이다. 테토라 군이 잘못한 건 아니야. 타카미네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굴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나구모에게마저 투정을 부리고 마는 것이다. 죽고 싶다. 최근엔 이렇게까지 우울할 일이 없었는데, 전부 모리사와 선배 탓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모든 울증의 원인을 모리사와에게 전가했지만 타카미네의 기분은 아무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타카미네는 앉은 자세 그대로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안 나갈래.”

“미도리 군을 위한 깜짝선물이었는데 마음에 안 드는 검까?”

“깜짝선물은 무슨.”

“그렇슴까. 그럼 대장에게 그렇게 전하겠슴다.”

나구모는 타카미네가 취할 행동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휙 몸을 틀었다. 테토라 군을 붙잡고 싶다. 함께 모리사와 선배를 만나고 싶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리사와 선배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읏…….”

타카미네는 안절부절 못하며 나구모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나구모는 타카미네를 억지로 끌어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타카미네가 어떤 억지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기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일지도 몰랐다. 나구모는 기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지만 어리광을 부리기에는 묘하게 엄격한 구석이 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테토라 군에게는 좀 더 비밀로 해둘 걸 그랬어. 말도 안 되는 후회를 하며 타카미네는 뺨을 부풀렸다.

“대장.”

“오, 나구모! 토끼귀가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누님이 만들어준 토끼귐다! 호랑이 무늼다!”

“우오옷! 굉장하구나!”

이상하게 들뜬 두 사람의 목소리만 교실 내를 울린다. 둘 다 목청이 큰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내는 소란스러운 편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귀에 꽂히는 것은 타카미네가 그들의 대화에 집중한 탓일 테지. 타카미네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어질 말 역시 귀 기울여 들을 셈이다. 이제 곧 나구모는 타카미네의 선택을 모리사와에게 전할 것이다.

“아, 이게 아니라. 흠흠, 미도리 군은 안 나오겠다고 함다.”

타카미네가 예상한 대로다. 그러면 모리사와 선배는 이제 무슨 대답을 하는 걸까. 타카미네는 이어질 모리사와의 반응을 상상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 오히려 아무 생각도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눈 앞이 핑핑 도는 것만 같았다.

정이 많은 사람이니 타카미네가 나오지 않는 것을 서운해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직접 타카미네를 찾아나설 수도 있다. 타카미네는 카운터 아래에 숨은 저를 확인하고 환하게 웃어보이는 모리사와를 상상한다. 타카미네가 알고 있는 모리사와는 그런 사람이었다. 저돌적이고 무를 줄을 몰랐다. 타카미네가 금세 들킬 법한 틈을 찾아 보란 듯이 숨어 있으면 모리사와는 그를 찾아내 억지로 끌어냈다. 말한다면, 타카미네가 무얼 원하는지 뻔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음……. 그런가. 아쉽게 됐구나.”

하지만 모리사와는 그 정도의 인사치레를 무심하게 건네었을 뿐이다. 나구모와 다를 바 없는 반응에 타카미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달고 있던 토끼귀가 반동을 얻어 흔들렸다. 모리사와와 나구모는 그 뒤로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타카미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일단 커피를 부탁하마!”

“알겠슴다.”

“그런데 말이다, 나구모.”

“예?”

“지금 유성대의 대장은 내가 아니지 않나.”

“아, 그랬슴다.”

모리사와의 말에 나구모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모리사와의 말 그대로다. 유성대의 대장은 나구모다. 모리사와가 현역 유성대에게 연락을 취한다면 당연히 그 중간다리 역할은 나구모가 맡아야 한다. 타카미네 역시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투정을 부리게 되는 이유야 뻔하다. 타카미네는 무릎에 이마를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미도리 군. 찻집의 얼굴담당이 그러고 있으면 곤란함다.”

타카미네의 긴 한숨에 대답한 것은 나구모였다. 타카미네가 고개를 들면 어느새 카운터 안으로 돌아온 나구모가 타카미네를 바라보고 있다. 타카미네는 눈을 굴려 시선을 피하며 투덜대었다.

“얼굴담당이라니, 그런 거 하기 싫구.”

“좋슴다. 일 안 할 거면 그냥 여기서 나가십쇼.”

“으으, 선배가 가면 그땐 제대로 할 테니까…….”

“히나타 군에게 다 들었슴다.”

타카미네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려니 나구모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 이름은 타카미네 역시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나구모가 말하는 히나타 군은 아오이 형제 중 형 쪽으로, 작년 타카미네의 클래스메이트였지만 실은 학기가 끝나갈 무렵까지도 아주 친해지지는 못했었다. 겨우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것은 2학년이 되기 직전으로,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애초 계기 없이 누군가와 친해질 수 있을 정도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적극적인 인물은 못 되었다. 타카미네는 그 계기를 떠올린다. 나구모의 귀에 들어간 이야기도 분명 그 날의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대장…… 아니, 모리사와 선배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슴까?”

“그건 맞지만!”

맞구나. 자리에 있던 모두가 타카미네의 강한 긍정을 애써 모른 척 하고 더욱 제 할 일에 몰두했다.

타카미네는 제 진심에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선배는 학생 시절보다 훨씬 더 바쁠 테니까 차마 만나고 싶다고 조르지 못했다.

그걸 후회했다. 차라리 어른인 척 하지 말고 솔직하게 조를 것을 그랬다고 어린아이 같은 후회를 했다. 선배의 소식을 가장 첫 번째로 듣는 사람이 저이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한 게 속상했다. 말하자면 타카미네는 그저 모리사와가 제가 아닌 나구모에게만 저의 방문을 귀띔해두었다는 것이 서운했던 것이다. 전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나구모에게 이야기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눈동자를 굴리던 타카미네는 이내 제 토끼귀 끝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이어지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나, 토끼귀 달고 있고…….”

“뭐 어떻슴까. 다 달고 있는데. 미도리 군은 이러나 저러나 짜증나게 잘생겼슴다.”

타카미네가 의미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와중에 마시로가 말했다.

“그나저나 저 사람 안 가는데?”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슬슬 짜증남다.”

나구모가 질린 표정으로 모리사와를 흘끔거렸다. 아마도 모리사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의도인 건 아니리라고 타카미네는 생각한다. 보다 단순한 문제다. 타카미네는 불퉁하게 중얼대었다.

“그야, 그 사람 커피 못 마시니까.”

“진짜냐…….”

“그러고 보면 그랬슴다. 대체 왜 커피를 시킨 검까.”

“그러게.”

나구모는 턱을 문지르며 모리사와가 차지한 테이블을 바라보다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억지로 팔을 붙드는 손길에 타카미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자연히 나구모와 눈이 마주친다. 아. 타카미네는 이 순간 어떤 안정감을 얻는다. 하여튼 타카미네는 솔직하지 못했고 어떤 종류의 상냥함에 기대기를 좋아했다. 나구모가 말했다.

“자, 어쩔 수 없슴다. 미도리 군이 얼른 끌고 나가십쇼.”

그 말에 타카미네는 울상을 만든다. 애써 투정부려보지만 가슴께가 근질거리는 것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에엑. 테토라 군 사실은 날 그냥 여기서 내보내고 싶을 뿐인거지. 으, 우울해. 죽고 싶어…….”

“안 죽을 거 아니까 나가십쇼. 그렇게 방구석에만 있지 말고 사람도 좀 만나고 바깥 공기도 쐬는 검다.”

“으, 테토라 군 우리 엄마야?”

“그만두십쇼. 이렇게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은 이 쪽에서 사양임다.”

“엣, 그런 문제야?”

“우웃, 우울해…….”

타카미네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키고, 어깨를 늘어트렸다. 선배를 향해 내딛는 걸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 조급해질까 신발 밑창으로 일부러 바닥을 긁었다. 타카미네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커피잔만 만지작거리던 모리사와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맞닿는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타카미네는 수많은 말을 골랐다. 

보고 싶었어요. 잘 지냈어요? 난 잘 지냈어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셈인 인사부터 시작한다. 왜 연락하지 않았어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하지만 머릿속의 말들이 전부 투정으로 끝을 맺고 나면 그런 말은 아무래도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영업 방해하지 말고 나가여.”

결국 타카미네는 그 정도의 말을 꺼냈고, 모리사와는.

“우오오, 타카미네! 드디어 와줬구나! 후하하하! 꽉 안아주마!”

익숙한 반응으로 맞아주었다. 그 덕분이다. 타카미네가 조금은 오래된 평소처럼, 모리사와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윽, 싫어, 비켜요.”

타카미네는 냅다 저를 끌어안으려 드는 모리사와를 밀어내며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테토라 군이 날 팔았어…….”

“나구모는 나를 신경써 준 것 뿐이다!”

모리사와의 커피잔에는 여전히 커피가 남아있다. 타카미네의 예상대로다. 하얀 테두리엔 입을 댄 흔적조차 없다. 억지로 도전해보겠다고 주문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데도 타카미네는 달콤한 오해를 하고 만다. 먹을 수 없는 커피는 좀 더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을까 하고. 어째 가슴께가 근지러운 것을 느끼며 타카미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벅차 죽고 싶을 정도였으니 별 수 없었다.

“하아, 정리하고 나가여. 오늘 하루 안내해줄게요. 어차피 당신, 커피는 먹지도 못하잖아. 먹지 못하는 걸 굳이 먹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후후, 타카미네는 역시 상냥하구나.”

그 말에 타카미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여전했다. 타카미네에게 상냥하다느니 자애의 그린이라느니 하는 낯뜨거운 소리를 하는 것은 모리사와 정도였다. 시선을 피하며 타카미네는 서둘러 제 머리띠를 잡았다. 토끼귀를 벗을 셈이었다. 모리사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으으음? 벗는 건가?”

그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아 타카미네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럼 이대로 나가라구여?”

“그렇다! 그러면 쉬는 동시에 홍보도 할 수 있지!”

“쉬는 게 아니잖아…….”

“핫, 그런가!”

무얼 깨달은 양 눈을 크게 떴던 모리사와가 문득 타카미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모리사와를 만난 게 너무 오랜만이었던 탓이다. 타카미네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그 따뜻한 손의 온기가 뺨에 닿게 될 테다.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뜬 것은 뺨에 닿으리라고 생각했던 온기가 일순의 시간을 지나고도 닿지 않은 다음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기대를 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모리사와의 손은 당연히 타카미네의 뺨에 닿지 않았고 조금 더 높이 올라가 부드러운 토끼귀에 닿았을 뿐이다. 모리사와가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귀여운데 아깝지 않나.”

그 말에 타카미네는 어이가 없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가, 곧게 저를 향한 커다란 눈동자에는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모리사와의 말은 단순히 토끼귀를 향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도 타카미네의 심장은 그 말에 반응하듯 쿵쾅대었다.

“으, 으읏…….”

타카미네는 신음하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럼 그냥 이러고 가는 걸로 할까여…….”

얼굴이 시뻘게진 타카미네가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타카미네의 반 친구들은 애써 그 모습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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