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에마

변하지 않는 것

ㆍ사에마지 ㆍ동거중임 ㆍ아직 사에지마조 습명 전

팡, 팡. 하고 갈비뼈를 두드리는 손바닥에 잠을 깨었다. 가슴 밑에서 새어 나오는 짜증과 졸음이 섞인 목소리.

"비키라, 문디야. 비키라꼬"

그대로 잠들었던가. 사에지마는 순순히 몸을 틀어 마지마를 해방해줬다. 겨우 사에지마의 몸 밑에서 빠져나온 마지마는 들으란 듯이 헥헥거리며, 천장을 보고 투덜거렸다.

"헤엑, 문디자슥. 깔려 디지는 줄 알았구마"

"그래 깔고 뭉개지도 않았잖나, 너가 얼굴 파묻고 잤음서"

"그른거 몰른다꼬, 정원석 끌어안꼬 자는 꿈 꿨다 아이가. 우예할끼고?"

"몰른데이. 내 탓은 아니구마"

종알종알 투정을 부리는 형제를 내버려 두고 사에지마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은은한 나무 향, 새벽의 냉기. 감옥의 눅눅한 곰팡내와 지린내가 잠시 뇌리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여기에 그런 것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먼지 냄새도.

필요한 것만 갖춰놓은 널찍한 방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실, 그렇게 넓은 방은 아니었다. 빈 곳이 많아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마치 갓 이사 온 집의 풍경, 갓 이사 온 집의 냄새. 산지 꽤 오래되었다고 자랑하듯 말해놓고는.

"머꼬, 정 떨어지게스리..."

마지마가 꾸물꾸물 이불 속에서 기어나갔다. 벌써 일어나는 건가, 하고 사에지마가 걱정하던 그때.

"책임질 거제? 형제"

배 위에 무거운 것이 올라앉았다. 아래위 속옷만 갖춰 입은 마지마가 위에 걸터앉아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난인가, 싶지만 딱히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탓 아니라 캤는데"

"몰른데이. 암튼 니 책임이라 안카나. 한 판 하면 용서해 주께"

사에지마는 잠자코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얬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마냥 넓은 흰색에 가름쇠처럼 박혀있었다.

"자라"

사에지마는 말했다.

"머꼬, 그게"

"자라꼬, 문디 자슥아"

"문디 자슥이 누꼬? 야이 문디야, 니 이래..."

"두 시간밖에 안 잤데이, 니"

마지마가 입을 다물었다가, 곧 언성을 높여 대꾸했다.

"그래가, 먼데? 이래 봬도 아직 팔팔하다 안카나!"

"니 기억 몬하나"

"뭣을?"

말해야 하나. 사에지마는 잠시 마지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핏발 선 눈, 까맣게 죽은 눈자위. 본인은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것 같지만.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 봤다. 간부회라 했던가. 곧 새로운 1차 단체가 설립되니 그럴 만도 하다만.

"심하더마, 잠꼬대가"

짜증 가득하던 표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변했다.

"아나구라, 그래 힘들더나"

그 얼굴에서 곧 핏기가 가셨다.

"내?..."

"물어뜯기고 쥐어뜯기고, 난리였다. 나야 괜찮지만서도, 다른 놈이었으면 꽤 고생했을기야. 그래 몬 움직이게 끌어안고 잔기라"

얻어터진 개처럼 신음하며 몸부림치던 모습을 굳이 자세히 말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눈동자를 떨며 힘없이 고개를 숙인 형제의 팔을 잡고, 앞으로 당겼다. 다부진 장신의 몸이 간단하게도 쓰러졌다.

"나 아무 데도 안 간다"

잠자코 커다란 손으로 마지마의 머리를 가슴팍에 갖다 누르면서 말했다.

"머라카노. 내 뭔 말 했나"

"불안하나, 내 없어질까봐. 그래가 하자칸 거 아이가"

몸으로 느끼고 싶어서, 이어지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던 형제를 떠올리며 말했다.

마지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에지마를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그야 야스코도 없어지고, 우리 살던 집도 없어졌다. 오야지도 그래 변했제. 우리 알던 거는 다 변했데이. 그래도 난 안 변한다. 여기 있을끼다"

"그걸 우예 아노"

섬뜩하리만치 어두운 목소리였다.

"니가 우예 알아, 내도 모르는걸. 내는 못 믿는다. 지난 25년, 믿을 건 암것도 읎었다"

잠자코 형제의 머리를 부드럽게 내리눌렀다. 기분 좋은 압박감에 마지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들리나"

쿵, 쿵. 커다란 심장 소리.

"나 살아있다"

사에지마는 천장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난 니 안 버렸다. 25년 걸렸어도 돌아왔다. 니가 뭘 하든, 난 니 안 버릴거다. 며칠이고, 몇 년이고 걸려도. 난 니한테 온다. 반드시"

마지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 소리는 일정하게 반복되었다. 절대 환상이 아니라는 듯이. 절대 변하지 않겠다는 듯이.

"자라. 눈 떠도 난 여기 있을끼네"

멀리 거실에 걸린 벽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틱, 틱. 초를 세는 침 소리. 따뜻한 살냄새. 가만히 오르내리는 숨소리. 

시간이 가고 있었다. 삶이 흐르고 있었다.

"잔다, 자슥아"

한참을 있다가, 그렇게 툭 내뱉었다.

"뭔 어무이고, 니가. 말끝마다 자라, 자라카게. 더러버서 잔다. 기니께 싸물라"

"나 아무 데도 안 갈 끼니까, 또 이상한 꿈 꾸지 마래이"

"안 꾼다, 문디야. 니가 우예 아나?"

"안다, 니는 기다렸잖나"

25년을 기다렸으니까, 변하지 않고, 주욱.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아는, 그 때의 너 그대로.

그 말을 형제가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일어난 사실이고, 절대 변하지 않을 증거였으니까. 마지마는 대답 대신 사에지마의 옷을 꼭 쥐었다. 자신의 심장과 같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후, 낮은 숨소리가 조용한 침실 속에 퍼졌다. 반짝 깨어났던 것은 얕은 잠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에지마는 가만히 형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시간이 나면 둘이서 소파를 사러 갈까. 이 집은 너무 황량하다. 이제부터 조금씩 채워나가기로 하자, 우리 둘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하는 것도 있어야겠지.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