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R/썰백업] 물들어 버린 기억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츠나쿄코(2795/ツナ京) CP
* 사와다 츠나요시 X 사사가와 쿄코의 CP-로맨스적 관계를 주로 다룹니다
* 10년 후 츠나&쿄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캐해석 O
* 지인분께서 꾸신 츠나쿄코 꿈 이야기를 들은 후, 허락을 맡아 그 기반을 토대로 내용을 덧붙여 작성되었어요
* 소설처럼 정리된 문장은 아니며 편하게 써내려가는 썰에 가깝기 때문에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 자기만족 및 개인 기록-백업용이므로 쓰여진 썰에 대한 별도의 지적은 받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교내 따돌림 관련 언급 有
* 타사이트에 업로드 했던 썰을 동일하게 백업해둡니다(24.10.18)
이야기는 츠나의 시점에서부터 시작해. 당시 츠나는 원작보다 학교의 괴롭힘이 더 심각했던 건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해와서 그런지 아예 등교 거부를 하던 중이었어. 괴롭힘은 나미중에 입학하기 전부터도 쭉 이어져 왔겠지. 츠나는 그전까지 학교를 좋아하지 않아도 쿄코를 본다는 이유 하나로 등교했던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리본이 예정보다 더 늦게 찾아왔던 게 문제였을까. 좋아하는 사람조차 보러 가지도 못할 만큼 마음의 상처가 훨씬 크고 깊어진 후의 상태가 되어 버린거야. 학교에서 중간에 무단조퇴하고 돌아오는 일은 있었어도 아예 학교 자체를 나가지 않으려고 하니 나나씨가 걱정을 많이 했어. 당시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보호자인 엄마가 걱정하니까 분명 마음이 쓰였을 텐데도 그것보다 학교 가는 게 더 힘들고 두려웠던 츠나.
그러다가 장기간 등교 거부로 학교에서까지 연락이 왔고, 츠나를 등교시키기 위해 그나마 츠나가 쿄코를 좋아했던 것 같다! 라는 점 때문에 선생님이 쿄코한테 츠나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 좀 도와줄 수 있느냐며 부탁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뒤 쿄코를 츠나 집에 보내게 돼. 쿄코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같은 반 친구이자 늘 친구들에게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고 중간에 학교를 나가버린 츠나가 조금은 신경 쓰이던 상황에서 이런 제안을 받으니 도와줘야겠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그래서 하굣길에 츠나의 집에 오게 돼 나나씨는 애써 웃는 얼굴로 쿄코를 반겨줬지만 집은 엄청나게 조용해서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초대받은 기분이야. 가장 가까운 부모님과 있는데도 이 정도인데 과연 같은 반 친구를 만나줄까? 싶은 생각에 조심스러운 쿄코. 그리고 츠나 방문 앞에서 노크하면서 「 츳군 있니? 같은 반 친구인 쿄코쨩이 와줬는데 들어가도 괜찮을까- 」 하는 나나씨 츠나의 허락 없이 무작정 들어가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한참 동안 적막 속에 우두커니 놓인 두 사람… 안되나 싶어서 일단 돌아가야 하나 싶을 때 문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열렸어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츠나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고 그랬거든 아는 사람을 반길 여유조차도 없었던 것 같고… 전해 들은 것보다 훨씬 나빠 보이는 츠나의 상태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쿄코는 츠나한테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츠나가 스스로 얘기할 수 있게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좋겠단 결론을 내려. 이런 상황에서 빨리 학교에 나오라며 재촉이라도 받았다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아. 하루만에 츠나가 설득되진 않았음에도 쿄코는 매일 하교하고 난 뒤 츠나의 집에 와줬어. 하나가 옆에서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단 얘기도 한번 했지만 라 나미모린느에서 케이크도 들고 가보는 등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 그래서일까 쿄코가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서 문밖에서라도 츠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학교 공부한 것도 숙제가 뭐 있는지도 이야기해주었더니 처음에는 불편해하면서 말이 거의 없던 츠나가 여전히 쿄코를 좋아해서였을지 마음이 좀 열긴 건지 조금씩 대답해주고 대화도 나눠주기 시작해.
그러다가 어느 날, 츠나군은 여전히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거야? 하고 물어본 쿄코…. 이 때 츠나가 어렵사리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해. 「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계속 놀리고 괴롭히고 할 줄 아는 것도 거의 없어서 늘 한심하단 생각만 들어.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있으면 방해만 될거야. 」 이렇게 말하는가 싶더니 「 하지만 엄마가 걱정해서 내가 더 잘못 하는 것 같단 생각도 들거든. 그래도… 가기 싫어…. 」 라면서 고개 푹 숙이고 울먹이기 시작해. 쿄코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역시 나 같은 건 한심해서 실망했을 거야… 라고 생각해버리려던 그 순간 쿄코가 츠나의 손을 잡아줬겠지. 놀라서 그 상태로 움찔한 츠나였어.
「 있지, 난 얼마 전에 쿠키를 만들어서 친구를 주려고 했다가 그만 새까맣게 태워 버렸지 뭐야? 또, 쪽지 시험 보는 날을 착각해서 엄청나게 많이 틀려 버리기도 했어! 」 쿄코는 츠나 앞에서 자신이 실수하고 잘 못한 것들을 하나씩 얘기해주기 시작해. 츠나가 생각하기에 쿄코는 인기도 많고 성실하고 모범생 같았는데 이런 실수도 많이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그러면서 쿄코가 「 나 말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것도 못하는 게 있으면 잘하는 것도 있어. 츠나군도 분명 잘하는 게 있을 테니까 학교에 가서 다시 같이 찾아보자, 내가 도와줄게! 같은 반이니까 더 많이 도와줄 수도 있고…. 」 그 말을 들은 츠나가 다시 용기가 나는 기분이 들어. 이전에도 오로지 쿄코를 보기 위해서 학교에 갔었는데, 지금도 쿄코가 학교에 갈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해주네. 우는 모습을 보이면 더 꼴불견 같아 보일 테지-라는 생각에 끝끝내 고개는 푹 숙인 채였지만, 「 응… 노력해볼게. 학교에 잘 나갈 수 있도록…. 」 라는 답을 주게 되버렸어.
긍정적인 대답에 웃어준 쿄코가 집에 돌아가고 그 다음 날 아침 교복을 입은 채로 방에서 나온 츠나. 어제 쿄코에게 츠나가 학교에 다시 나와준다고 했단 말을 전해 듣고 아침밥도 차려 주며 등교할 때 교복은 제대로 입었는지 확인까지 해준 후 츠나가 등교하러 나갈 때도 잘 다녀오라며 웃고 배웅해준 나나씨. 오랫만에 학교에 다시 간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긴장해버린 나머지 평소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와버렸는데, 교실로 들어가려 머뭇거리다 문을 열었으나 교실에 일찍 와 있던 다른 친구들이 츠나를 쳐다보고 웅성거리는 걸 보고 속이 울렁거려서 결국 밖으로 뛰쳐나왔어.
운동장 계단 위까지 뛰어간 뒤 주저앉아 바닥만 내려다보고 한숨을 푹 쉬는 츠나였을테지. 역시 다들 또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라고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츠나를 부르는 쿄코의 목소리가 들려와. 「 오늘 츠나가 등교한다고 해서 평소보다 일찍 나와 있었는데 복도에서 츠나가 나가는 걸 보고 쫓아온 모양인 걸. 츠나군 학교 와줬구나! 기뻐…! 」 뛰어 왔는지 약간 숨이 찬 것 같아. 「 나 때문에 그렇게 뛰어오지 않아도 되는데…. 」 라고 말하는 츠나에게 「 오랜만에 교복 입고 학교에서 보니까 정말 반가웠는걸? 같이 등교했어야 했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먼저 와서 기다렸어! 지금은 어때? 」 하며 물어봐줘. 츠나의 낯빛이 여전히 밝지 않은 걸 보고 걱정하는 눈치지. 학교에 오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쿄코가 기다렸다고 해주니 왠지 조금 괜찮아진 츠나. 아까보단 괜찮다고 하니 「 그럼 같이 교실에 들어가자 마침 이번에 자리를 바꿨는데, 내가 츠나군 옆자리가 됐거든! 」 하는 쿄코. 사실 전혀 다른 자리였는데 늘 비워져 있어 구석진 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츠나 옆자리가 된 친구한테 부탁해서 바꿔달라고 한 거지만 그것까진 말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 말을 듣고 츠나의 표정이 좋아졌거든 일부러 바꿨다는 말보단 우연히 옆자리가 되었다고 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오랜만에 수업을 듣는 츠나. 쿄코가 옆에서 등교 거부 중에 따라잡지 못한 수업 내용도 같이 알려주고 오래간만에 등교한 츠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친구들은 왠지 쿄코의 절친한 친구 하나가 뭐라고 한마디 해줬을 것 같지. 하나의 말에 수군대는 친구들은 좀 사라졌을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쿄코와 쭉 친구로 지내온 하나는 츠나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쿄코를 보고 마지못해 쿄코의 편임과 동시에 츠나 편도 들어주기로 해. 어차피 츠나는 평소에도 딱히 잘못한 것도 없고 단지 조금 바보 같고 실수를 많이 할 뿐인 반 친구 중 하나 인걸. 단지 못난이라는 별명이 하나 붙었다고 이렇게까지 놀림거리 삼아도 되는 게 아니라는 걸 하나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어쩌면 그동안 귀찮다고 외면해온 게 신경 쓰여서 쿄코 옆에서 츠나 편을 들어줬겠지. 츠나는 또 다른 사람의 호의에 낯선 기분이 들었을 거고.
그래도 당장 괜찮아지기란 어려운 일이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도 수업을 듣지 못해 뒤처진지라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긴장만 한 채로 점심시간이 됐어. 이날은 나나씨가 츠나의 도시락을 조금 더 신경 써서 준비해줬겠지. 츠나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츠나와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쿄코. 한적한 곳에 앉아서 점심을 먹다가 문득 좋은 게 떠올랐다는 듯이 츠나에게 방과 후 동아리 하나를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해와. 아무래도 공부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엔 따라잡는 것부터도 벅찬 상태니까 차라리 취미 쪽을 도전해보잔 생각인거지. 츠나는 그동안 학교 끝나면 귀가부로 집에 빨리 가거나 중간에 수업을 다 마치지 않고 조퇴하곤 해서 동아리에 대한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상황이라 쿄코가 무슨 동아리가 있는지 어떤 걸 하는지 츠나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면서 제안했어. 쿄코는 미술 동아리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츠나는 지금 제일 편한 동시에 아직도 좋아하는 쿄코가 하는 동아리라고 하니 쿄코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져서 미술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어. 하지만 막상 신청서를 넣으려니 괜찮을지 걱정이 되어 쿄코가 동아리 활동을 하는 걸 며칠 옆에서 지켜본 뒤 적기로 이야기를 나눠.
그림 따위 한 번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쿄코가 없으면 학교에 있을 이유도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야. 쿄코는 츠나가 동아리 활동까지 하게 된다면 학교에 더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거나 다름없었어. 방과 후에 가야 하니 오후까지 수업 다 들어야 하잖아? 게다가 동아리는 상대적으로 교실에 있는 친구들보다 적은 수의 친구들이 모여 있어서 츠나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에 천천히 적응할 수 있는 쪽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단 말이지. 이건 하나의 조언이었는데, 츠나를 학교에 오래 있게 할 방법을 고민하는 쿄코를 위해 생각해준거야. 나중에 하나에게 라 나미모린느의 케이크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날 츠나가 오후 수업까지 듣게 하는 데 성공한 쿄코… 다음 날부터는 츠나가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서 쿄코가 츠나와 함께 등교해줬을 거고 학교에서도 가능한 많은 시간을 츠나와 보내준 쿄코야. 게다가 동아리 부장을 설득해서 츠나가 참관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줬지.
쿄코가 옆에 있어줬기 때문일까 츠나는 차츰 학교에 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어색한 얼굴로 가입 신청서도 쓰고 제출까지 해버렸어. 대망의 동아리 활동 첫 날! 그 전날에 츠나는 엄마와 함께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사서 바리바리 가방에다 싸서 들고 왔을 것 같고 그걸 본 쿄코가 잘했다며 칭찬해주지 않았을까? 왠지 낯간지러운 기분과 쑥스러운 기분에 자리에 앉았는데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어야지. 일단 오늘 주제 나온 대로 뭔가 그려보려고 노력했는데, 다들 그럴듯하게 그림 그리는 사이에서 츠나만 완전 형태도 엉망진창 완성도 못 하니 왠지 주눅이 드는 것 같아. 「 다들 잘하네…. 」 자존감이 한참 낮은 츠나가 우물쭈물하면서 앉아 있는 걸 보고 그림을 다 그린 쿄코가 츠나가 뭘 그렸는지 궁금해하면서 구경하러 왔을 거야. 츠나가 「 아, 아니 나는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그리려고…! 」 하고 쿄코한테 못 그린 그림 보여주기는 싫어서 급하게 종이를 구겨버려. 「 그래도 한번 볼 수 있을까? 츠나군이 처음 그린 그림이니까 꼭 보고 싶어! 」 라며 츠나에게 웃으면서 부탁하는 쿄코. 그 웃는 얼굴에 또 거절하는 것도 미안한 기분이라 결국 구겼던 종이를 어렵게 펴서 쿄코한테 줬겠지. 속으로 쿄코가 어떤 말을 할지 긴장되어서 굳은 채로 눈만 데구룩 굴리면서 말이야.
쿄코가 츠나의 그림을 진지하게 봐준 후 처음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해줘. 「 그, 그래…? 나는 잘 모르겠던데…. 」 말은 이렇게 해도 쿄코가 좋게 봐주니 그저 좋을 뿐이야. 좋아하는 아이에게 듣는 칭찬이고 쿄코의 칭찬은 항상 진심이 담겨 있다는 걸 여러 번 들어왔기 때문에 기쁠 수 밖에 없어. 그 다음 쿄코가 자신이 오늘 그린 그림을 들고 보여주겠대. 조심스럽게 펼쳐진 그림을 보니 그 애가 그린 그림은 누가 봐도 따뜻하고 포근한 들판이라고 생각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화였어. 츠나가 감탄하고 있는 와중에 쿄코가 그림을 보고 이런 말을 해. 「 오늘은 츠나군을 보면서 떠올리는 그림을 그렸어- 」 라고. 츠나가 「 으,응? 나…!? 」 하고 조금 놀라는데, 쿄코가 뒤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를 해줘. 「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 」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부터 그랬는데 불안하거나 슬픈 마음이 그림을 그리면서 다 물감에 녹아들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고 해주는 거야. 「 마치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온전히 이 그림에 처음 선을 긋고 더 이상 빈 곳이 없을 때까지 가득 채우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니 다른 생각이 안들게 되더라 또 내 마음, 생각, 감정을 그림에 모두 쏟아내고 나면 후련해지기도 해! 」
쿄코가 잔잔하게 웃으면서 그리 말해주니 왠지 츠나도 구겨진 그림 속에 어설프게 그려뒀던 그림을 그리는 동안엔 그랬던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몰라… 그림 그리기를 권유해준 쿄코를 위해서 열심히 그려야지! 하는 생각 외에 다른 건 떠오르지도 않았는 걸. 그러니까, 츠나군도 잘 그리는 것보다 내가 정말로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그리는 게 어떻겠냐고.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어떤 방식이든 좋으니 츠나군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걸 그림에 전부 담아내 보라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고 또 멋질 거라고 해줘. 그 말에 좀 더 용기가 난 츠나. 어떤 형체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자신의 첫 그림을 한번 심하게 구겨놔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다시 잘 접어서 가방에 넣어두고 쿄코하고 뒷정리까지 마친 뒤 함께 하교해. 내일은 내가 무얼 그리고 싶은지에 더 집중해보기로 다짐하면서.
동아리 시간에 뭘 그릴지 고민하느라 바빠서 등교할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떠들어대던 전혀 신경 쓰지도 못한 츠나야. 쿄코가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해줬던 건 츠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도전이자 목표 같은 거였으니까… 처음으로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 그렇게 돌아온 미술 동아리 시간. 마침 오늘은 주제도 가장 보고 싶은 걸 그려보는 거였거든. 츠나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캔버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스케치부터 하기 위해 연필을 들었어. 오늘은 끝까지 제대로 완성해보자고 마음먹고 온거니까. 처음 선을 그을 때 생각한 대로 그려지지 않아 잠깐 헤매고 느릿한 채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어느새 집중하게 되어서 그런 건지 츠나의 손이 점점 바빠지더라 잘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리고 싶은 걸 완성하는 게 목표라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거침없이 쭉쭉 긋게 되었거든. 수채화 붓을 들고 있을 즈음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는 상태로 정말 의식의 흐름처럼 그리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잘 그리게 될 수는 없지… 그림은 여전히 똑같이 엉망인데도 불구하고 처음과는 전혀 달라. 그릴수록 마음이 점점 편해지고 개운해지는 기분이 드는 거야. 쿄코가 말했던 게 이런 기분일까…? 어쩐지 그림 그리는 게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츠나였어.
그렇게 동아리 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그림을 완성한 츠나. 쿄코는 진작 그림을 완성하고 뒷정리까지 다 끝낸 상태였는데, 츠나가 집중하는 걸 보고 기다려주는 중이었거든. 츠나가 완성하고 나서 그림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하기에 어떤 그림이 그려졌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츠나가 붓을 내려놓으면서 「 다 그렸다! 」 하는 말에 그 애가 무얼 완성했는지 궁금해서 츠나 옆으로 온 쿄코. 그리고 츠나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환하게 웃어 줬을 것 같아. 「 정말 예쁜 무지개네! 」 츠나가 그린 그림은 푸르고 맑은 하늘에 떠오른 무지개였는데, 왜 이걸 그리고 싶었던 건진 알 수 없지만 느낌이 이걸 그려야 할 것 같았어. 불이 다 꺼져서 어두운 방에 홀로 있을 때, 문득 한 번쯤 제대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풍경이라서 그럴 지도 몰라. 그리고 그 무지개를 떠올리게 해준 건 따스하고 환한 햇빛을 닮은 쿄코의 미소 덕분이었어. 웃는 모습이 정말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무지개 아래에 있는 쿄코를 보고 싶었을 뿐이야. 너무 실력이 형편없는 나머지 쿄코는 무지개 아래에 자기 자신이 그려져 있는 줄은 몰랐지만, 츠나는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어. 언젠가는 진짜 무지개가 뜬 하늘 아래에 서 있는 쿄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이후부터는 조금 더 제대로 된 걸 그려보고 싶어서 사과나 토끼 같은 것들도 따라서 그려보기 시작했을 것 같아. 계속해서 꾸준히 그리니까 실력도 늘었겠지. 츠나가 무언가를 그려서 완성할 때마다 쿄코가 기특해하고 같이 기뻐해 주고,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함께 이야기도 해주니까 그림 그리는 시간 자체가 츠나에겐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 되었을 듯. 쿄코와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된 거기도 하잖아. 그것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학교 끝나고 쿄코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야. 그걸 위해 가기 꺼려졌던 학교도 조금 기대를 하고 갈 수 있게 되었고, 안 좋은 이야기에 마음 쓰지도 않게 되었어.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그리는 게 좋은 걸.
이후로는 원작처럼 가정교사인 리본이 찾아왔고, 갑작스럽게 마피아 10대 보스 후보가 되면서 정신없이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일에 던져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쿄코 말고도 고쿠데라부터 야마모토로 이어져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는 건 비슷하지 않았을까. 첫 필살탄을 맞고 필사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쿄코에게 고백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 이유도… 쿄코를 좋아하기 때문도 있으나, 진심으로 츠나를 걱정해주고 격려해줬던 마음에 같은 진실한 마음으로 보답해줄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도 포함되어서였을 것 같네. 물론 츠나가 난데없이 속옷 차림으로 고백하는 바람에 제아무리 쿄코라도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는 없어서 도망치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후 모치다와의 대결에서 도망치지 않은 채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츠나가 이제껏 움츠러들어 있던 츠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잖아? 코가 그걸 보고 변한 츠나가 처음으로 대단하다고 느꼈겠지. 「 츠나군도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 그림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소소하게 기뻐하며 작게 웃던 모습에서 더 대담하고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며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이 쿄코에겐 무척 인상 깊었을 거야. 물론 그다음 스모 대회부터 갑작스럽게 무시무시한 미래로 가게 된 일, 그곳에서 내가 마피아 조직의 10대 보스 후계자가 되었노라고 고백했던 일, 당시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나 무언가를 위해 바삐 움직이며 열심히 돌아다니다 잠든 채로 공터에 있던 츠나를 보고 지내면서 츠나에게 낯선 기분을 느껴…. 갑자기 쿄코도 모르는 새에 츠나가 훌쩍 커버린 기분이지.
그렇게 정신없고 바쁜 와중에도 동아리 활동만은 꾸준하게 해온 츠나. 부득이하게 학교를 빠지게 된 날은 어쩔 수 없었지만 빠진 날이 있으면 다른 때에 시간을 내서라도 그림을 완성해 오곤 했어. 그리고 완성하는 그림은 항상 쿄코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고, 츠나가 의도치 않았지만 보스로서 성장하는 동안 그림 실력도 꾸준히 성장했을 것 같아. 처음에는 형태도 엉망이고 선도 삐뚤고 수채화는 덧칠을 너무 많이 해서 종이가 울거나 색이 탁해졌는데, 제시간에 완성 못 하는 일도 잦아서 완성까지도 한참 걸렸던 츠나가 이제는 동아리 시간에 그림을 완성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그 시간에 가벼운 스케치도 더 해본다든가 이제는 쿄코 옆에 와서 쿄코가 그림 완성하는 거 같이 구경한다든가. 동시에 쿄코 외로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츠나의 캔버스에는 좋아하는 친구들이 꼭 한 명씩 들어가는 날이 늘어났어. 이전에는 캔버스에 사람이 들어가면 쿄코 단 한 명만 있었는데, 지금은 그릴 때마다 누굴 넣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한 명도 빼놓고 싶지 않게 된거야.
그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츠나는 풍경화에서 인물화가 중심이 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쿄코 이제 츠나군은 내가 없어도 학교에 오는 걸 무서워하지 않겠구나. 더불어 나보다 더 힘든 일이나 무서운 일을 겪어도 이전만큼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서 기분이 묘해진거지. 츠나는 여전히 자신을 변함없이 소중한 친구로 여겨주겠지만, 그의 옆에는 쿄코가 굳이 함께 있어주지 않아도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줄 사람들이 많으니 더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구나…. 기쁘고 뿌듯한 마음인 동시에 시원섭섭해진 걸지도 몰라. 미래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10년 후의 츠나는 이미 마피아 보스가 되었다고 했어. 게다가 마지막 싸움까지 함께 용기를 내 지켜봤던 쿄코는 처음 만났을 당시의 츠나가 모두에게서 외면받고 배척당했던 모습과 츠나를 중심으로 모여 그를 믿고 따르는 친구,동료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도리어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 더 와 닿았을지도 모르겠네. 게다가 쿄코가 츠나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이제 츠나가 쿄코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더 많아져서 그런 걸까? 츠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전히 풍경화만 고집하고 있는 자신에게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느껴져 마치 자신만 아직 멈춰 있는 채인 것 같아서 어쩐지 조금 침울해진 쿄코.
그림 그리는 건 여전히 즐겁지만… 훌쩍 성장해버린 츠나, 그리고 그가 이제 자신을 앞질러서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해. 심지어 그림마저도 말이야. 게다가 졸업이 다가올 때쯤부터는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텐데 무얼 하면 좋을지 막막하기도 하네. 동시에 문득 졸업하게 되면 츠나와 함께 하는 이 동아리 시간도 같이 끝나겠구나- 싶어져. 동아리 시간인데도 생각이 복잡한 나머지 평소 같았으면 스케치까지 끝났을 시간인데 여전히 텅 비어 있는 쿄코의 캔버스. 이렇게 막막한 적은 그림을 그린 이후로 난생 처음이야.
쿄코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았던 걸까 츠나가 갑자기 자리를 쿄코 가까이 옮겨와 앉아 「 무슨 일 있어? 요새 기운이 없어 보여 쿄코쨩…. 」 언젠가부터 이런 쪽으로 눈치가 빨라진 츠나라서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네. 「 으응… 이제 슬슬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하잖아?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 」 츠나 앞에서는 차마 별일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결국 솔직하게 털어놔. 그 말을 들은 츠나가 곤란한 표정을 지어. 「 나도 요즘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게 좋을지 모르겠네. 진로가 반강제로 정해진 상태니까… 물론 하고 싶은 건 아닌데…! 」 얼버무려 얘기했지만 아무래도 여전히 마피아 보스가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싶지. 쿄코가 보기에 츠나는 마피아 보스 같은 건 어울리지 않지만, 미래에서도 그렇고 설령 진짜로 마피아 보스가 된다고 해도 츠나 나름대로 더는 휩쓸리지 않고 잘해낼 것 같아 보여. 나쁜 짓만 하는 무시무시한 악당이 아니라 모두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착한 마피아로.
착한 마피아 보스라니… 왠지 공존해서는 안 되는 두 단어가 붙어 있어서 쿄코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아. 츠나는 「 역시 나 같은 사람이 마피아 보스 같은 걸 해서는 안 된다고…! 」 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 때문에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단 느낌이 드는 쿄코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갑자기 츠나가 쿄코의 빈 캔버스를 보더니 아 맞다! 하며 자기가 그리던 중인 그림을 옆에 내려두고 새 캔버스를 올려두는 거야. 그리던 그림이 마음에 안 들었나? 싶은 때 츠나가 쿄코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와. 「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 라면서…. 쿄코가 응? 하고 되물어 오자, 츠나가 연필을 다시 고쳐 잡으며 「 쿄코쨩이 예전에 무얼 해야 내가 잘 그릴 수 있을까 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려보라고 했었잖아. 꼭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정하기보다는… 쿄코쨩이 지금 해보고 싶은 게 뭔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그걸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안 그래도 아까 실수로 붓을 놓쳐서 그림을 망쳤거든…! 다시 그려야 하니 같이 시작해서 같이 완성할래? 」 라고 말해주네.
내려둔 그림은 조금 더 그리면 완성인 것 같았는데…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나를 위해 배려해준 걸까? 츠나의 서투르지만 다정한 거짓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필을 잡은 쿄코. 지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손이 가는 대로 스케치를 시작했어.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쿄코를 보고 츠나는 한참 동안 쿄코를 바라보다 이내 연필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그림을 다 완성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거나 떠들고 있었지만, 쿄코와 츠나는 동아리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쿄코가 붓을 내려놓았을 때에는 이미 다들 정리를 끝내고 집에 간 뒤였어. 이렇게 정신없이 그림을 그린 건 오랜만이라 스스로도 깜짝 놀란 와중에 츠나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가만히 앉아 있던 쿄코를 불러. 그림은 완성했냐면서.
「 츠나군은 아직 남아 있었어…? 」
「 쿄코쨩이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내가 동아리실 문을 대신 잠가주기로 했거든. 그래서- 」
「 그렇구나 나 때문에 하교가 늦어졌네 어쩌지…. 」
「 아, 아냐! 오늘은 리본이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괜찮고…! 그렇게 늦지도 않았어. 」
츠나도 진작 그림을 완성했는지 자리가 이미 정리된 상태여서 그가 무슨 그림을 새로 그렸는지는 보지 못한 게 아쉬운 쿄코. 그래도 이 그림 만큼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츠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 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해. 그는 쿄코에게 무얼 그렸는지 볼 수 있느냐며 물어와. 그냥 보러 와도 되는데 굳이 허락을 맡는 츠나. 한결같이 상냥한 그를 향해 활짝 웃으며 응, 츠나군 덕분에 내가 무얼 하고 싶었는지 그리면서 알게 되었으니까 제일 먼저 보여줄게- 하면서 완성한 그림을 보여주는 쿄코겠지.
쿄코가 그린 그림은 한창 수업 중인 교실 안에서 선생님이 지목한 학생이 답을 말하느라 자리에서 서 있는 그림이었거든. 정확하게는 답을 잘 몰라서 어쩔 줄 모르는 츠나의 옆모습이 그려진, 한동안 쿄코가 츠나 옆자리를 자처해 앉았던 시절의 쿄코 시점에서 봤던 그를 그대로 옮겨 담아 놓은 거였어. 함께 그림을 보면서 쿄코가 말해주길 먼 미래의 일부터 생각하는 건 너무 어렵고 복잡하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릴 때뿐만 아니라 친구들하고 함께 하는 일상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고… 그리고 늘 그곳에는 츠나군이 함께 있어줬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더니 이런 그림이 나왔어- 하며 후련한 얼굴로 웃는 거야. 고마워 츠나군! 또 도움을 받아버렸네- 하는 쿄코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츠나. 쿄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츠나를 쳐다보는데 왠지 츠나의 표정이 새삼 진지해. 그리고 이어지는 츠나의 말-
「 그렇지 않아,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 걸…. 무엇보다 나는 받은 대로 배운 대로 행동했을 뿐, 오히려 도움을 받은 건 나였으니까…. 그때 쿄코쨩이 도망치곤 했던 나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리본이 가정교사로 온 후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도 성장하긴 했지만… 리본이 찾아오기 2개월 전, 학교에 입학한 후 친구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 준 것도 쿄코쨩이었고, 서툴어도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며 응원해주어서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준 것도 쿄코쨩이였어. 네가… 나에게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거야. 하늘이 맑고 푸르다는 걸 알 수 있는 것도 결국 태양이 떠오르고 빛을 비추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쿄코쨩은 나에게 다시 없을 따뜻하고 상냥한 빛이었어. 그래서 리본과 나아가 모두와도 함께 지낼 수 있게 된거니까 말이야. 힘들고 무서운 미래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쿄코쨩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리본이 그랬거든…. 나는 히어로가 될 수 없는 남자라서 근사한 이유 따위는 나답지 않다고. 단순하게 그때 뭘 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하라고. 나는 그때… 쿄코쨩을 지키고 싶다고 각오했었고, 결심했었어. 그리고 그렇게 대답했어. 나를 포기해주지 않았던 쿄코쨩을 나도 포기하지 않고 꼭 평화로운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내 각오의 불꽃은 너로 인해 다시 피워낼 수 있었고, 그 각오는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라 지금은 내 긍지 그 자체가 되었어. 히바리 선배가 말해주었던 절대로 내어줄 수 없는 것 말이야.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건, 분명 모두가 도와주고 함께해줬기 때문이지만 계기만큼은… 어떤 일을 해내고 시작할 수 있게 동기 부여를 해준 건 쿄코쨩이야.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이제까지 나를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
생각하지도 못한 말들과 그걸 말하고 있는 츠나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 게다가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어서 그런 건지 츠나의 눈동자가 유독 더 따뜻하게 타오르는 불꽃과 닮아 보이니 왠지 낯뜨거운 기분이 되어 얼굴이 붉어져버려. 나는 츠나군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다들 한 발짝 크게 나아갈 동안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채 그저 지켜보고 걱정하는 것만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에겐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이 되었구나…. 본인에게 직접 들으니 그게 더 와 닿아서 기분이 정말 이상해. 쿄코는 이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황급히 화제를 돌렸겠지. 「 나도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아! 나도 츠나군이 오늘 그린 그림 보고 싶은데 보여줄 수 있을까? 」 하면서 말이야. 그 말에 「 아, 어디다 뒀더라? 잠시만…! 」 하고 그림을 찾으러 간 츠나 그 사이에 애써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쿄코.
그림을 가지고 돌아온 츠나가 들고온 그림을 보려는데, 잠깐 기다려달라며 쿄코의 그림 옆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딱 맞게 붙여 세워뒀어. 왜 그런지는 곧바로 알게 되었지. 츠나도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들을 그렸거든. 심지어 쿄코의 그림과 이어지게끔 말이야. 그림 속에는 쿄코가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잔뜩 그려져 있는 건 당연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쿄코의 그림 속에 그려진 츠나를… 서로의 캔버스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자리 잡은 채 활짝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쿄코 자신의 모습이었지. 쿄코가 자신이 츠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그린 것과 마찬가지로 츠나도 본인이 좋아하는 쿄코의 모습을 가장 크게 그려둔 거야. 마치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더욱더 각각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마치 원래 하나의 그림이라고 착각하게 되어 버려. 그리고 알게 돼. 나중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도, 하기 싫은 걸 하게 된들 당장은 그런 미래만 생각하기보다 다 함께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시간에 하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소중한 추억을 잔뜩 만들어 두고 싶다고…. 그게 쿄코 혼자만의 바람이 아니라 츠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가 바라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행복하고 안심이 되어서 츠나에게 말해.
「 다행이다! 우리 매일 같이 등교하고 수업도 같이 들을 수 있어서… 기뻐! 」
…그 말을 들은 츠나도 역시 웃으며 답했어.
「 응, 나도 기뻐…! 쿄코쨩이랑도 모두와도 여전히 함께 할 수 있어서! 」
이 날 두 사람이 그린 그림은 떨어지지 않은 채 동아리실 근처 복도에 한동안 걸려 있었고, 내려간 뒤에도 잘 보관되어 있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누군가 그 그림을 찾아내 가져가서 잘 보이는 곳에 또 걸어뒀겠지. 먼지만 쌓인 채 내버려두기엔 너무 아까운 그림이라 도무지 그냥 둘 수 없었던 모양이야… ….
「 …설마 그걸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분명 버려지거나 잃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어. 츳군은 역시 대단해! 」
「 쿄코와 있었던 일이라면 하나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걸…. 게다가 그날 이후부터 내가 이성으로써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해줬잖아. 처음 들은 날엔 정말 믿을 수 없어서 리본한테 한 대 때려달라고 했다니까? 」
「 아하하-! 그렇지~ 그전부터도 츳군이 좋았지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결정적인 계기는 그때부터였던 것 같지! 」
「 그게 고백이 아니면 뭐냐고 했던 비앙키의 말도….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야 당시에는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고백이냐며 계속 아니라고 했었던 내가 한심해…. 」
「 그래도 결국에는 직접 좋아한다고 이야기해줬잖아?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
「 …고백에 하도 실패해서 쿄코가 먼저 나를 좋아한다고 얘기해주기 전에 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
「 으응~ 괜찮아! 대신 츳군이 해준 프러포즈는 나도 아주아주 기뻐서 울어 버릴 만큼 멋졌고… 다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잖아? 」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 부끄러운 기억은 왜 갈수록 선명해지기만 하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하나같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 대부분이라 이마 짚게 되는 츠나…. 쿄코는 괜찮다고 말해줬지만, 더 멋지게 고백 했어야 한다라는 아쉬움이 가득 남아 버린 건 어쩔 수 없어. 도리어 쿄코가 가지각색으로 고백에 실패한 츠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를 좋아해서 열심히 노력해줬구나! 라며 아예 일기장에 적어 둘 정도로 좋아해 주니 말하기 싫다고 할 수도 없네. 특히 제일 첫 번째로 좋아한다고 말했던… 필살탄을 맞은 당시까지도!
필살환 없이도 전투가 가능한 지금이야 그렇게 될 일은 거의 없지만…. 리본이 작정하고 츠나를 수치스럽게 만들 작정인 게 아니라면 나미모리에서 워낙 대문짝만 하게 변태라고 오해받은 적이 많아 보스가 되자마자 관련 흔적은 전부 극비 정보로 꼭꼭 숨겨 버렸으니 불행 중 다행일까. 「 새삼 힘과 권력이란 건 대단하구나…. 」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 체감했다고 하니 리본이 한심하게 쳐다보곤 언제 제대로 된 마피아가 될 거냐고 한마디 했었지. 물론 츠나는 반사적으로 앞으로도 그렇게 될 생각 없거든!? 하고 대답했다가 발로 걷어 차였지만. 그럼에도 츠나와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이들의 기억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이따금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이야기되는 정도로 남았어. 그 이야기를 당시 고백받았던 쿄코가 훨씬 재밌어한다는 건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조금 침울하게 변한 츠나의 표정을 보며 쿄코가 넌지시 웃어. 이틀 전 미용실에 가서 짧게 잘라버린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면서. 한동안 긴 머리를 쭉 유지하다가 돌연 미용실에서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단발로 스타일을 바꿔와서 아직은 조금 어색하기도 해. 츠나가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이 정말 예쁘다고 해준 뒤로 몇 년간은 계속 긴 머리를 유지해왔던 터라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츠나하고 무슨 일 있었냐, 부부싸움이라도 했냐, 안 좋은 일이 생겼냐… 하고 많이들 물어왔었지. 물론 이제까지 정답을 말한 이는 딱 한 명 뿐이었어 그야… 쿄코가 미용실에 가고자 마음먹었던 날은 츠나가 10년 전 동아리 실에서 함께 완성했던 그림을 찾아온 날이기도 하거든. 그 그림을 다시 본 순간 결정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고. 어떻게 보면 조금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후회하게 될까? 싶은 생각도 잠깐 있었지만, 막상 거울을 보니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거야. 그대로 츠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더니 일하던 도중인데도 깜짝 놀란 게 얼굴에 다 보이더라. 덕분에 이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네.
평소 친구들끼리만 모여 있어 풀어져 있는 상태라면 몰라도 일하는 중인 츠나를 진심으로 놀라게 하는 건 이제 드문 일이거든. 그는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금세 무얼 하려는지 눈치채 버리기도 해서 이제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지.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퇴근하자마자 바로 쿄코에게 무슨 일 있었는지 걱정해오는 츠나를 계속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없으니 그런 일은 없다고 얘기해줬었어. 「 물론 나는 단발인 쿄코도 좋아 중학교 시절이 생각나서…. 」 하고 머쓱하게 웃는데, 쿄코가 그런 츠나에게 포옥 안겨와. 「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나한테 말하기 어려운 거야? 」 하고 물어오면서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안겨 있기 편하도록 자세를 바꿔주는 츠나. 「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주니 정말 좋아서! 」 라고 대답해주니 츠나는 그제야 아- 하고 깨달았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게 된 이유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어하는 츠나에게 쉬는 날에 꼭 얘기해주겠다며 말을 아꼈더니, 쿄코가 일부러 장난치려고 그러는 건 또 금세 눈치채서 순식간에 역으로 쿄코가 곤란해져 버리긴 했었지.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워왔느냐는 잔소리 한마디와 함께-
그렇게 츠나도 쿄코도 아침부터 늦잠을 잘 수 있었던 오늘이 되어서야 겨우 츠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었어. 그림을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걸어둔 채로…. 비록 지금은 진로를 결정하면서 둘 다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지 않게 되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다시 그때 그렸던 그림을 되찾고 싶었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던 당시는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쿄코도 츠나가 다른 기억까지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것까진 예상하지 못했었던 모양이야. 츠나가 어른이 되고 보스 자리에 오르면서 상당히 변한 게 많은데도 이럴 때에는 계속 중학생 시절의 모습이 변하지 않은 채 툭툭 튀어나오곤 하니… 옛날 생각이 안 나게 될 수가 없잖아?
결국 츠나의 등에 기대어 안겨 있던 쿄코는 빙글 돌아앉으며 얼굴을 마주 보는 자세로 바꾼 뒤 두 손으로 츠나의 양쪽 뺨을 살포시 감싸 안아 그를 빤히 바라 봐줬어. 이 행동은 츠나에게 가장 좋은 특효약이자 그의 기분을 빠르게 달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니까. 정확하다 못해 너무나 완벽한 처방을 받았는지 츠나는 자신을 바라봐주는 쿄코에게 다시 웃는 얼굴을 보여 주게 되고 말아. 어쩔 수 없는 걸 쿄코는 끝내 마피아 보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용기 내어 따라와 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 같은 거 이제는 모른다고. 쿄코가 웃어 버린 츠나를 보고 따라서 함께 웃으며 말해와. 「 우리 츳군~ 행복해 보여서 나도 기뻐! 」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츠나는 앞으로도 쿄코와의 일상을, 나아가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몇 번이든 노력할 거라고 반드시 그리 만들 거라며 각오할 수 있는 거겠지.
그 뒤에 쿄코가 「 그나저나 어느 새 이렇게 잘생겨져서 어떡하지…. 츳군, 옛날에는 귀여운 얼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그때처럼 귀여우면 좋겠단 말이야. 」 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바람에 츠나가 또 한 번 웃어주는 듯하다 순식간에 「 하지만… 쿄코가 지금의 내 얼굴을 더 좋아하는 걸 아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 」 라며 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바람에 그만 쿄코가 또 곤란해져 버렸다는 건 비밀이야.
24.05.17 최초백업본
24.10.18 타사이트 백업본 일부 다듬어서 재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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