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이에게.

좋은 아침일세.

조식으로 영국식을 선택하길 바라. 오늘 처음 개봉한 에티오피아 원두가 자네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네만, 나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았거든. 물론 평소 카페인이 섭취가 많은 작가는 카페인이 부족하다느니 하며 화를 내었어. 자네가 잘 달래주었으면 해. 뭐, 그들 방식대로 커피를 내리면 원두 종류 상관 없이 카페인 폭탄일 텐데. 하하.

그래.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조금 지루한 나날이야. 이성의 신의 계획 저지를 위해 노력하는 반면 개인에게 주어진 과업은 없으니 뇌가 지루함을 호소하는 것일지도. 주회에 가고 싶다는 게 아니네. 미리 못 박아두지.

다른 자극적 행위를 원한다는 이야기야. 자네가 줄 수 있지 않을까 싶군. 물론 무리라면 과하게 강요하지는 않겠네. 의외로 자네와 의논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짧더군. 대화 상태에서는 아주 길고, 긴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는데 별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 하나 정도는 깨달았어. 흠. 이건 좋은 징조일까, 그렇지 않은 징조일까? 자네가 나에게 질려가는 것일지, 아니면 더욱 성장하기 위해 나와 거리를 두기로 결정한 것일지 모르겠군. 이는 단지 예상일 뿐이라네.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샜군. 간단하게 본론만 말하겠네. 휴가 신청서일세! 자네가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별개로 두고 나는 공방에 처박혀서 자극 행위를 즐기고 싶다는 뜻이야. 본래 멋대로 처박힐 셈이었지만...

영주로 볼썽사납게 끌려 나오는 것만은 사양이었기에 이렇게 편지를 남겨. 자네도 휴식의 때를 찾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이 적기라고 말해두지! 꼬시는 거야? 하고 물어볼게 뻔하니 지금 말해두지. 맞네. 꼬시는 거지. 함께 합법적인 니트 생활을 즐겨달라는 의미이기도 해. 실 교수가 이 칼데아에 소환 되었을 때는 다른 사건을 꾸며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자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쉽게 일을 꾸미지 않더군. 시시한 남자가 되었어, 나의 적수는.

사고를 벌인다면 나도 만만치 않게 벌일 수 있을 터인데. 음. 정말 벌이겠다는 뜻은 아닐세! 그 이후의 수습이 지나치게 귀찮을뿐더러 자네를 아끼는 신왕이나 현왕에게 아직도 철이 안 들었냐며 머리채를 다 뜯겨버릴 노릇이니. 아, 물론 저주를 둘러싼 광기의 남자도 포함해야겠군. 또 누가 있을까, 자네가 그토록 바라는 남자가 만약 이 곳에 소환된다면 잔소리꾼이 하나 더 추가되겠지. 그건 별로 기쁘지 않은 일이야.

어렵군. 자네의 기쁨과 나의 자유는 그렇게 동행할 수 없는 조건인 모양이야.

...굳이 말하는 것인데, 커피는 내가 더 잘 내려줄 수 있어. 영특한 자네라면 충분히 속뜻을 짐작하였으리라 생각해. 오늘은 8시에 일과가 끝나는 날이었지? 기다리겠네. 먹을 간식 정도는 가지고 오는 걸 추천해. 내 방에는 흠, 별다른 게 없거든. 그리 질색하기에 오늘은 담배도 밖에서 피울 테니 꼭, 오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나누고 싶은 말도 제법 쌓아둔 편이니까. 아,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미리 밝히면 즐겁지 않으니.

그래, 이렇게 말해두겠네. 아직 밝힐 때가 아니라고. 그러니, 궁금하다면 찾아오게나. 가만히 있는다고 의뢰인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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