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쨩 칼데아

여름이었다.

뜨거운 태양, 빛을 머금은 채 흔들리는 파도,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밟고 지나간다.

여름의 열기를 뒤로하고 선 여인을 바라본다. 얇은 은사가 늘어지듯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풍경 사이사이로 흩뿌려진다. 그 아름다운 시간에 덧붙일 말은 없다. 하루의 풍경, 하루의 목소리, 그 이후의 것은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갈 것이었으므로.

파라솔 아래에 자리를 잡고 멍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불온한 기색 하나 없이 청명한 푸른색을 내뿜는 하늘은 내게 익숙한 동시에 거북한 것이 되어 다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모습을 함께 담는 동안 어린 천재는 한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야. 이 앵글이 딱 맞아 떨어져! 작은 두 손으로 만든 액자 속 풍경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 명화와도 같을 터였다.

" 홈즈! "

자신을 향해 말을 던진 그 여자를 바라본다. 평소처럼 부드러움과 온기를 담은 웃음을 음미하고 한 손을 들어서는 가볍게 휘젓는다. 모래시장에 던져진 공을 주우러 가면서도 웃음이 멈추는 법이 없다. 하늘을 향해 공이 던져지고, 멈췄던 게임이 흘러가는 내내 흔들리던 벚꽃을 곱씹고 있었다. 흰 시트 너머를 넘실대던 옅은 분홍색 머리카락과 또 다른 풍경이었지.

뜻 모를 웃음을 쏟아내었는가, 옆자리 동료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 유리보다 반질대는 눈동자를 피해서 활자로 시선을 돌린다. '인간의 애정은 때때로 단순하며 복잡한 것이다. 깊은 사랑을 나누는 듯 하다가도 낸일이 흐르기 전 이별할 수 있는 종족이 인간이므로. 찰나의 순간에 머무르는 단 애정을 거두지 마라. 표현하고, 또 쏟아내어 최후에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순간을 영원히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부족한 연민과 언어를 죄 끌어내어 사랑을 읊조릴 필요가 있다.'

문장이 토해내는 감정을 몇 차례 끌어내어 활자를 곱씹는다. 바다는 지나치게 반짝이고, 하늘의 청명함은 두 눈을 아프게 만들었다. 모래알에서 올라온 열기를 느끼며 책을 얼굴 위에 올려놓는다. 투정 어린 작은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찰나의 휴식을 누리기로 했다.

" 홈즈. "

달빛이 살짝 내려온 피부는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그 아래로 늘어진 머리카락은 하나의 비단 물결, 말랑한 입술은 선명한 복숭아색이었다.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이전과 다르게 달의 은은한 빛이 유일한 빛인 것을 보니 그새 밤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해가 떨어진지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지났을 테다. 이 시간까지 잠들었던 것인가, 작은 미소를 덧그리고 자신의 근처에 앉아 내 이름을 부르는 마스터의 목소리가 퍽 달게 느껴졌다.

약을 삼킨 것도 아닌데., 느른한 수분을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신 후 몸을 일으킨다. 푸른 눈동자는 밤하늘을 등지고 자신을 향해 있었다. 문득 낮에 읽었던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름을 부르면 부드러운 미소가 돌아온다.

응, 왜?

" 내일 사랑을 말할 수 없기에 사랑을 말한다면 그것은 기만이 아닐까. 내일을 같이 맞이하고 싶은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게 옳지 않은가, 마스터. "

나는 그 여자가 내일을, 미래를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필히 아름다울 그 시간에 나도 그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욕심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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